▣성탄절 설교

메시야의 도래(到來)

공 상희 2009. 12. 7. 16:58

메시야의 도래(到來)  

                                                   사 9:1-7절, 183.427.500장.&

 

  거리에는 캐롤이 은은히 울려 퍼지고, 백화점이 교회보다 앞서서 성탄 분위기를 만드는 것같습니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성탄절 대목을 노리는 데 관심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우리의 심정도 주님의 성탄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이 많지는 못한듯 합니다. 한 해를 마감하려는 우리의 마음은 공연히 분주하기만 합니다.

 

첫째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세상은 변하여 새롭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사야는 왕족 출신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주전 650년을 전후해서 약 60년 동안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한 걸출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민적인 타락과 죄를 지적하고, 그대로 죄악된 삶을 살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가적 멸망을 극복할 소수의 남은 자들의 그룹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며,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운동을 위한 도구로 삼으실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세계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체적으로 메시야를 보내시며, 그가 오실 때는 역사(役事)가 바뀌고, 캄캄한 암흑천지에 빛이 쏟아지듯,

 

   소망과 즐거움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한 아이의 출생으로 이루어지며 그 아이의 역할과 모양을 한폭의 그림을 보듯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선지자이면서도 뛰어난 시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대개가 시로 기록되었습니다.

 

  시적 표현으로 예언(豫言)이 기록되었기에 문자적 의미의 배후에 있는 깊은 뜻을 또한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1-5절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의 말씀들은 너무나도 극적이고 소망적인 말씀들이기에 독자로 하여금 가슴을 뛰게 합니다.

 

  8장을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씨라고 한다면 9장의 이 부분은 폭풍우가 지나가고 맑게 개인 날에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8장 끝부분에서 마술을 신뢰하는 자들이 받을 화를 경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9장 1-5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내용입니다. 바로 그것은 복음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자체를 놓고 볼 때 전혀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 자신이 놀라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골격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사야서라고 말하는 대신 이사야복음서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1 2절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자, 학자, 지식인, 종교인들이 밀집한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멸시천대 받고 소외된 천민들의 땅인 갈릴리에서 첫 번 사역을 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자, 겸손한 자, 자신이 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깨닫는 자에게 임합니다. 고통 당하고 소외된 납달리, 스불론, 갈릴리가 빛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암흑이었으나, 이제는 큰 빛이 비추이고 사람의 그늘진 곳에 빛이 비추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교만한 자, 잘난 척 하는 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메시야는 비록 개인과 가정과 신체적 어려움, 물질적 어려움으로 고난받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희망이며,

 

   꿈이며, 감격이 됩니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에게 빛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역적 차이와 신분상 차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 인종적인 차이가 극복되지 못한 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으로 교만(驕慢)할 대로 교만해져서 혈통을 자랑하고 전통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류에 끼지 못하는 사람은 좌절과 낙심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오심,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시는 것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복된 소식입니다. 아니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고뇌, 불안과 절망, 소외감과 좌절, 그리고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암흑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밝은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어두움을 밝게 하여주십니다. 과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불구자, 병든 자, 로마정권의 블랙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사람들 등이었습니다. 그가 나실 때 왕궁에서는 그를 도리어 죽이려고 했으나, 이방의 과학자들인 동방의 박사들이 그를 찾아 와서 경배했고, 들의 양 치던 목자들이 이 놀라운 소식을 들었고, 가난한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메시야 탄생의 예정된 순서를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처지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여기 왔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스불론, 납달리, 갈릴리 지방처럼 소외되고 고뇌하는 백성에게,

 

  빛으로 찾아 오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이방이었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고통과 아픔은 치료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보면 그가 오심으로 즐거움이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멍에를 메우고, 채찍을 가하는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어버리며, 피 묻은 군복은, 불타고 전쟁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변길 갈릴리 지경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이사야의 이런 꿈이 없었던들 이스라엘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낙심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령도 어둡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우리 가운데 오신 메시야가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집니다.

 

  아니 이미 예언대로 역사 속에서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진실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을 이루신 하나님을 믿을 때 오늘도 우리는 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빛이며 소망이며 즐거움이며 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암울한 시대를 살지만 당당하게 기쁨으로 세상을 정복해 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성탄의 의미가 됩니다.

 

둘째로, 이 성경은 구체적으로 한 아이가 탄생할 것이며, 그 한 아이가 메시야이며, 그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예언했습니다. 사실 왜 구원은 한 아기를 통해서 이루어 가십니까? 그것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완전히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 길이 인간을 구원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의 권능으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는 있으나 그렇다면 인간이 지은 죄를 그저 눈감아 주는 꼴이 됩니다. 인간이 지은 죄를 스스로 책임진다면 인간 자신이 멸망받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하시되 죄의 형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 형벌 받는 것을 원치 않기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대신 죽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승리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운동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이미 창세기 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사탄을 정복할 것을 말씀했고, 구약성경에서 후손, 자녀, 씨란 말로 표현해서 메시야가 육신을 입고 탄생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 본문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6절)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 이사야 7: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던 것도 하나님의 구속운동이 바로 하나님의 성육신을 통하여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본문을 읽을 때 이 본문이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운동에 대한 웅장한 메시지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야에 대한 묘사를 보면 아버지 하나님은 메시야의 신적 권위를 말씀하고 기묘자, 모사는 통치자로서의 능력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은 통치자로서의 덕성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의 다스림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메시야의 구원운동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획(計劃)하신 그 모든 구원운동(救援運動)은 하나님 자신(自身)이 온전히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아직도 메시야를 눈으로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시로 장차 오실 메시야, 한 아이의 출현을 내다보면서 저렇게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2600년 전에 이미 이사야가 꿈꾸고 예언하던 한 아이의 출현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이사야가 살던 시대보다 더 암울한 시대이고 고통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고통을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능히 승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문제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말구유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면 우리는 능히 승리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희망이며, 즐거움이며, 능력이며, 확신이며,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넉넉히 이기시는 성도들이 되시길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