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삶을 위하여 (딤후 4:6-8)
야구에서 홈런을 치고도 아웃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홈런을 쳐놓고 1루부터 여유있게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유유히 폼을 잡으며 홈까지 들어왔지만 중간에 어느 한 루를 밟지 않고 들어왔다면 그 선수는 만루홈런을 쳤어도 아웃이 되고맙니다. 한 바퀴 돌고나서 아까 2루를 안밟은 것 같다고 다시 한바퀴 더 돌 수는 없습니다. 홈런을 쳤어도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내야를 돌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일을 다하고 죽은 무덤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움이란 단어를 가슴에 품은 채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져 가는 모양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당당하게 살던 사람도 불치와 병으로 죽음을 앞두게 되면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후회`라는 반갑지 않은 그것이 엄습하여 눈물을 짓게 만들고 가슴에 한을 남기기도 합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을걸" 이런 류의 후회는 늘상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지 않습니까? 후회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행복하고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오늘이 훗날 후회의 슬픔으로 바뀌어 지지 않기 위해 말씀을 통해 제안하려 합니다.
바울은 젊은 날에 다메섹 도상에서 주 예수님을 만난 후로부터 한평생을 복음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파란 만장한 그야말로 가시밭길 같은 길을 걸어 왔습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맛보면서 살아 온 바울입니다. 이제 인생의 황혼에 서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남은 숨을 몰아쉬며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자신의 인생 노트를 펼쳐 보이며 당부하는 모습이 본문에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날에 아쉬움이나 후회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만난 그날부터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 즉 학문이나 힘이나 시간, 그리고 육체의 정력과 예리한 정신과 정열적인 헌신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생명뿐입니다. 그는 지금 기꺼이 그의 생명도 하나님을 위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 노트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을 관제와 같이 부어 드리려는 굳은 결심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 사도를 볼 때 후회없는 삶은,
1.후회없는 삶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지나온 신앙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최선을 다한 것을 상기하면서 만족감에 잠겨 있습니다. 이는 임종의 베개곁에 앉아 슬픔에 어쩔줄 모르는 아들을 위로하는 아버지 같습니다. "내 아들아 울지말라 나는 명예롭게 살았고 이제 나이가 많아 너를 떠난다. 나의 생은 흠이 없었고 이제 영광과 더불어 떠난다"라는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표현과 같습니다. 주어진 시간과 여건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와는 관계없이 후회란 없는 법입니다.
후회란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 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최선을 다했다면 더 이상 후회라는 단어가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2.후회없는 삶은 최선을 다하되 "선한 싸움"이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미워하고 편을 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코 누구하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라이벌 의식도 갖지 않았었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다른 사도들보다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이며 다른 사도들보다도 더 작은 사도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늘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깨끗한 승부이어야 합니다. 반칙을 하고 상대에게 해를 주면서 자신을 가꾸어온 것이 아니라 페어 플레이(fair play)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학생의 취할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남의 허물을 들춰내고 깔아뭉개고 비열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잘못된 가치관이 난무하는 오늘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대통령에서 물러나면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 어떤 대통령도 존경받는 사람없고, 청와대 살던 사람은 감옥이나 청문회에 나서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지요? 깨끗한 정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컨닝을 해서라도 성적을 올려야 합니까?"라는 제목으로 어느 교회 수련회 때 토의를 하라고 했더니 50%정도가 긍정적인 대답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한 싸움이 아닙니다. 후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학업에 있어서나 친구관계에 있어서나 또 다른 어떠한 상황 중에라도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3.후회없는 삶은 끝까지 달려가는 삶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삶입니다.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마라톤 선수가 출발해서 아무리 잘 달린다 해도 끝까지 달려서 골인하지 않는다면 그의 수고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운동경기와 공부 등은 1,2,3 등을 가르지만 인생은 1,2등이 아니라 끝까지 달렸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끝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곧잘 시작합니다. 영어 단어장을 외우기 시작하고 계획표를 짜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도 곧잘 합니다. 그러나 그 영어단어장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별로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겠다고 시작하지만 늘 창세기만 읽다가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악기를 배운다고 하지만 제대로 할 때까지 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러므로 후회없는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달려갈길 마치고"란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은 그의 일생을 걸어 온 것이 아니라 줄기차게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성실히 살았다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끝까지 성실한 삶에 후회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4.후회없는 삶의 최후는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 7:24-27절에 집을 짓는 두 부류의 사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훌륭한 인생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단 한번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어떤 업적을 남기겠다는 삶의 방향과 목표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훗날 인생이란 작품의 공정한 평가는 주님이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으며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 라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의 헛된 모래위에 지은 집인지 믿음의 반석위에 지은 집인지 그것이 중요한 평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단테란 사람이 지은 `신곡`이란 책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진 책입니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인데 지옥에 가보니 흉악한 죄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황이었던 사람도 지옥에 있더라고 합니다.
한평생을 살아 오면서 솔로몬과 같이 부귀 영화를 다 누렸다고 한들 믿음을 잃어 버렸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헐벗음과 굶주림과 매맞음과 갇힘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향한 절개(믿음)를 굳게 지켜왔습니다. 부귀영화, 권세와 인생의 모든 쾌락을 맛보았던 솔로몬은 그의 인생 말년을 헛되고 헛되다고 말했지만, 재산도 없고, 아내도 없고, 가족도 없고, 연약한 몸둥아리만을 갖고 복음을 전도하는 일에 평생을 달려온 바울은 그의 말년을 감옥에 갖혀있으면서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쳤고,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으며 천국에 자신을 위하여 면류관이 예비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가 사랑하는 친구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소중히 아끼던 그 어떤 것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시련과 핍박이 있다해도 믿음만은 지켜야 합니다.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이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마 24:51).
미국 서북쪽에 있는 넓은 알래스카 주는 1867년까지는 러시아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별로 가치가 없는 땅으로 여겨 72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팔아 넘겼습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산지 13년만에 무려 3억 달러 어치의 황금이 묻혀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땅속에 3억 달러 어치의 황금이 묻혀있는 것을 모르고 당장에 손에 쥘 수 있는 720만 달러에 유혹된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금 못지 않게 귀중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엄청나게 땅 밑에 매장 되어있다는 것은 숨겨진 미국의 보화로 온 세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 현실적인 것에만 착념하여 살다가 영원한 값진 보화를 잃어버리고 후회할 우매자의 삶이 이러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믿음만 바로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보화보다도 귀중한 것을 소유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도 믿음만은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히말리야 산 꼭대기에는 야맹조가 산다고 합니다. 이 새는 자기 집을 짓지 않고 밤이 되면 남의 둥지를 기웃거리며 어디 잠 잘곳 없나 찾아다니다가 이 새에게 쪼이고 저 새에게 쪼이면서 `내일이면 집지리 내일이면 집지리 집지리 집지리` 구슬프게 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 날이 밝고 태양이 뜨면 밤사이에 추위도 다 물러가면 이 새는 집지리 집지리 하던 결심을 다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또 놀다가는 밤이 되어 추우면 다시 남의 둥지를 기웃거리곤 하는 삶을 늘 살다가 결국 자기 둥지 한번 짓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요?
십대 여러분이여!
후회없는 멋진 삶을 계획해 보십시다. 얼마나 기쁘고 가슴 벅찬 일입니까? 하루를 살고 한달을 그리고 일년을 살고 난 후에 "진정 최선을 다했노라"고 고백할지언정 후회없는 일이 없도록 이시간 다짐해 봅시다. 그리고 생의 끝날에는 "믿음을 지켰노라"하면서 주님의 상급을 기대하는 작은 바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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