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다비다의 선행과 구제 (행9:36-43)

공 상희 2009. 2. 26. 15:10

다비다의 선행과 구제 (행9:36-43)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난 후에 더 잘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그 예로 제 5공화국을 들 수 있습니다. 5공화국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그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인식하는 것을 봅니다. 특히 사람의 선행은 죽어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다비다의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울었겠습니까? 우리들도 다비다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 받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다비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었습니다.

36에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많지만 성경에서 언급되는 여 제자는 이 사람 뿐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제자임을 언급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의 사랑을 본받는 사람임을 말씀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 요13:34-35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정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믿음과 함께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서든지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성경에는 베풀라는 말이 약 300번이 나옵니다. 그만큼 성경은 우리에게 선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1901년 2월 25일 금융 왕 모건에게 강철회사를 4억9천2백만 달러에 판 다음 그는 그 돈을 사회에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1902년에 워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하고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을 지어 헌납했으며 카네기 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 모두 3억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카네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다비다나 카네기처럼 크든 적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다비다는 이름대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36절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했습니다.
여기 다비다와 도르가라는 이름은 ‘눈이 아름다운 영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의도적으로 아람어식의 이름 다비다를 히브리식의 이름 도르가로 번역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비다는 자기 이름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짐승 중에 양은 선한 동물 중의 선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눈마저 아름다운 양입니다. 여기서 눈이 아름답다란 쌍꺼풀이란 뜻이 아니고 남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증거로 잠22:9에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다비다는 자기 이름대로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심히 많이 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롬부스는 황금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신천지를 향해 떠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이름 “크리스토퍼”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업고 다니는 자’란 뜻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업고 사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황금을 업고 사는 인간이 될 것인가" 그는 며칠을 기도한 후 자기의 이름대로 살겠다는 다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죽기까지 14년간 주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평화스럽게 미소를 띄고 운명했는데 죽기 며칠 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주님의 제자가 되었던 지난 14년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빛과 소금, 성도, 하나님의 자녀, 십자가 군병이라는 이름입니다. 세상에서 천사 같이 살라는 이름들입니다. 우리 모두 다비다처럼 이 이름에 합당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다비다는 자기 달란트에 가장 적합한 봉사를 했습니다.

39절에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다비다의 섬김의 대상이 과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과부는 가난하고 힘없고 가련한 사람들의 대명사였습니다. 특히 초대교회는 극심한 핍박 속에서 고아와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더 살펴보면 다비다 역시 비슷한 형편의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 앞에 남편이나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구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십자가를 짊어졌습니다. 우리 속담에 누가가 누구의 속 안다고 다비다는 그들의 심정을 알아주고 그들과 호흡하며 돕고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39절에 “지은 속옷과 겉옷"이라는 말씀에서 그의 재능을 다한 봉사였음을 봅니다. 이처럼 자신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결코 비관하지 마시고 자기 재능과 은사를 활용하여 자기 형편과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랑하고 복음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4. 다비다는 열정을 다해 봉사했습니다.

37절에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했는데, 39절에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이라 한 것을 보아 다비다는 마지막 죽기까지 옷을 지으며 봉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늙어 병들면 남의 봉사를 받아야 하는 데도 그녀는 마지막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의 사명을 계속했습니다. 이렇게 열정에 사로잡힌 생애를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처럼 열심이 자신을 삼키셨듯 죽는 순간까지 열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화의 고장 할리우드에서는 가끔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나누며 당대의 최고 인기 배우나 유명 인사를 초빙하여 연설을 듣는다고 합니다. 한번은 한 여배우가 연사로 등단했는데 그녀는 미국의 최고 미인 열 명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힐 만큼 아름다운 영화배우였습니다. 이 여자가 마이크 앞에 나오자 박수가 요란스럽게 터졌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지금 사랑에 빠졌습니다!" 장내는 갑자기 이상야릇한 흥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도대체 그 행운을 잡은 사나이가 누굽니까?" 한 사나이가 소리쳤습니다.

여자는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그 분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화배우의 일도 그만두려고 합니다." 과연 그 여자는 자신의 말처럼 할리우드를 떠나서 후에는 목사의 아내가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할리우드의 명예와 부를 물리치고 예수님을 택하신 일에 후회가 없습니까?" 그녀의 대답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할리우드의 스타나 영국 여왕의 자리도 지금의 저와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저에게 이처럼 귀하신 분이십니다." 이처럼 주님을 위해서 자기 사명에 정열을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다비다는 바른 진리대로 선행과 구제를 했습니다.

39절에 “속옷”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속옷을 지었다는 것에서 다비다의 구제가 은밀했음을 보게 됩니다. 다비다의 구제가 제대로 된 구제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겉 봉사는 잘합니다. 대신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일은 본능적으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은 전시행정을 좋아하고 봉사자들은 자기 이름이 나타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마6:1-4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셨습니다. 만약 다비다가 나팔 부는 구제를 하였다면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비다가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온 욥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베드로의 기적 때문이라고만 보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기적일지라도 만약 악인을 살려 놓았다면 도리어 하나님이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그만큼 다비다의 선행과 구제가 사람들을 감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름다운 사람 다비다에게서 배우십시다. 우리 주님의 참 제자가 됩시다. 성도의 아름다운 이름대로 삽시다. 자기 달란트를 살리십시다. 죽기까지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바르게 봉사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상 받고 사람들을 구원하며 더욱 아름답게 평가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