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은혜의 날 성탄절 (눅 1:26-38)
오래 전 연예인 교회에서 구봉서 장로님이 신앙생활 할 때였답니다. 당시 하목사님께서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주일 오후 연예인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했답니다. 그날 목사님께서 동정녀 마리아 사건에 대하여 열정을 다하여 가르쳤는데 뒤에서 한 젊은 연예인이 손을 번쩍 들더니 "목사님 농담하지 마세요.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아요? 그런 얘기는 그만 하시고 예수님께서 좋은 일 많이 하셨잖아요. 다른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목사님께서는 더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에 대하여 가르쳐 주니까 이 젊은 연예인이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성경 공부 분위기가 이상해지니까 그 때 구봉서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그 후배 연예인을 향하여 "야, 임마! 마리아 신랑 요셉도 믿었는데 네가 뭔데 안 믿어?"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과학이 발달되어 체세포 복제를 하는 것을 보면 동정녀 탄생이 과학적으로도 이해가 되어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1. 오늘 성탄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임을 확신합시다(28,30).
우리 옆 사람을 향하여 인사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집사님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안에 위대한 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외모가 모자라서 항상 머리 숙이고 다녀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한자로 줄이면? 나! 두자로 줄이면? 또 나! 세자로 줄이면? 역시 나! 네자로 줄이면? 그래도 나! 다섯자로 줄이면? 다시봐도 나! 이것은 정신병 걸린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자존감이 높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말씀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시 16:3)"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마리아는 큰 은혜를 받은 존귀한 자였습니다(28.30)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마리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합니까? 지금까지 이름없는 초라한 시골 소녀였습니다. 무시 받는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대단한 부자이고 많은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장례가 촉망한 수능 만점 맞은 사람이 아닙니다. 당시 강력한 로마의 귀족 부인도, 지혜 있다는 헬라 귀부인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리아를 향하여 뭐라고 말씀합니까?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말하길 "은혜를 받은 자여"라고 말씀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1절) 32절 이하를 보십시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요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2-33절) 메시아가 그의 몸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을 잉태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2)우리는 큰 은혜를 받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내 인생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질그릇같은 우리 몸에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성령의 전이 된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아들로 삼았습니다. 종이 아닙니다. 품꾼이 아닙니다. 어둠의 자식이 아닙니다. 빛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탄생하게 하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똑같은 돌이라도 미켈란젤로가 만지면 위대한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시 16:3)" 성탄절을 바로 큰 은혜를 주어 우리를 존귀한 자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보내신 날입니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가 인생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신에 대한 생각은 자신의 인생을 그 생각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 보람있는 삶, 성공적인 생을 살려면 생각과 말과 행동의 뿌리인 '의식(Consciousness)'을 바르게 갇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의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생각, 말, 행동을 결정하는 밑바탕입니다. 의식이란 인간 행동의 숨겨진 결정자(The Hidden Determinant of Human Behavior)입니다. 인간의 말과 행동, 생각 그리고 감정의 뿌리가 의식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녀도 자의식이 썩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걸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을 쥐라고 망상하고 있던 사람이 마침내 정신병원을 퇴원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병원 출입문에서 발이 땅에 달라 붙어 버렸는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았답니다. 의사가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답니다. "왜 그러구 서 계시오?" "바루바루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쥐가 아니라는 걸 아셨지 않소?" "그건 틀림 없습니다만 고양이 쪽에서는 모르고 있을지 도 모르잖아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가있는 다니엘을 향하여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단 10:11)"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단 10:19)"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은총을 존귀한 자들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오늘 성탄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큰 은혜를 받았으니 참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28)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늘 불안하게 사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바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8절을 보십시오.
1)천사는 은혜를 받은 마리아에게 평안을 누릴 것을 말씀합니다(28).
"평안할지어라"라고 말씀합니다. 마리아를 불안하게 하기 위해,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 복잡하고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하였습니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갖는 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입니다. 정혼한 상태에서 아이를 갖는 것은 간음죄에 해당되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잉태하게 한 것은 불안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니 평안하라고 말씀합니다. 메시아를 잉태하는 것이 은혜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안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바로 첨부하여 말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평안하라는 말씀입니다.
2)우리도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신다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평안은 우리 삶에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평안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리프맨의 소설,「마음의 평안」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청년이 어느 노인을 찾아가 자기 소원을 부탁하였습니다. 노인은 무엇을 갖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며, 셋째는 미모이고, 넷째는 재능이며, 다섯째는 권력이고, 여섯째는 명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말을 듣고 있던 노인은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그러나 평안이 없이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네." 이 모든 것이 있다하여도 평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도 평안이 있을 때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쌓여진 명예도, 재물도, 성공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84세로 죽기 직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답니다.그는 건강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항상"적당한 운동, 적당한 음식, 신선한 공기 그리고 마음의 평화인데 그중에 제일은 마음의 평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와 파키스탄 사이에 있는 훈자라는 곳의 사람들은 120세를 넘겨 산다고 합니다. 병원도 없지만 죽을 때도 그 날의 밭일을 다 하고 저녁먹고 잠들고 아침에 가보니 조용히 죽어있음을 발견할 정도로 건강하게 산다고 합니다. 그들의 장수 비결은 마음의 평안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안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가정에도, 교회에도, 나라에도, 직장에도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이 평안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은혜로 누릴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로부터 오는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사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평안입니다. 조건적 평안은 그 조건 사라지면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자신을 비워서 이루어지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도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면 없어지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평안은 다릅니다. 모든 조건을 초월한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조건에 의해 생기는 평안이 아닙니다. 안에서 생기는 평안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바울과 실라는 이 평안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은혜로 주시는 평안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죄사함 가운데 주시는 구원의 평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미래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하여도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은혜로부터 오는 평안은 감정의 문제로부터 오는 불안을 성령 충만으로 누리게 만듭니다. 마음의 평안이란 단순이 감정 조절이나 적극적인 사고 훈련이나 명상, 마인드 컨트롤, 요가, 최면요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은 육체의 문제나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령의 문제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속에 있는 불안과 공포를 쫓아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바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요한복음 20:22).
우리의 내면 세계의 평정은 성령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사울왕을 보십시오 성령이 떠나니까 그 순간부터 얼마나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됩니까? 심리적 불안으로 미친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령 충만한 다윗을 보십시오. 그 위기 가운데서도 시를 짓고 찬양을 드립니다. 더욱 담대해지도 평안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제자들을 보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으니까 얼마나 심령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까? 감옥에 가서도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처럼 평안하고 자신을 죽이는 자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성령충만하면 확신을 가지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감옥에서도 평안하게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이 함께 하신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참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아버지와만 함께 걸으면 두렵지 않듯이 하나님과 함께하면 평안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 친척을 평안한 가운데 어떻게 떠날 수 있었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그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요셉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과 사람과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그 좁은 길을 걸어 갈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가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말씀하였습니다. 문제가 일어나면 기도를 통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빌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면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문제가 있을 때 그것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이 성탄절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3. 오늘 성탄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큰 은혜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세상에서 꿈을 가지고 삽니다. 대부분 보면 세가지 범주의 꿈을 갔습니다. 첫째는 소유에 대한 꿈입니다. 갖고자 하는 것(Having)입니다. 둘째는 행위에 대한 꿈입니다. 하고자 하는 것(Doing)입니다. 셋째는 존재에 대한 꿈입니다. 되고 싶은 모습(Being)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소유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 다음에 성취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진정 성공하는 사람들은 꿈의 순서를 반대로 세웁니다. 먼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꿈을 세웁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은 존재가 이미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옥가는 인생이 아니라 천국가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면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큰 은혜를 부어 주어 하나님의 아들 딸로 살게 해 주셨는데 문제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까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삶,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서부터 예언한 구속사를 성취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잉태할 아기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이름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이름을 예수라고 말씀합니다. 저가 자기 백성의 죄를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미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탄생이 마리아를 통해 이루진다는 말입니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 기적적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예증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37절에 마지막으로 말씀합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믿습니까? 아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때 마리아는 어떻게 합니까? 38절을 보십시오.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고백이 은혜 받은 마리아의 믿음이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34절에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이루어지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삶만큼 값지고 귀중한 삶은 없습니다. 마리아의 영광과 축복은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는 순종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라고 말씀합니다.
2)오늘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예배에 참여한 우리는 큰 은혜 받은 자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특성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의 뜻을 이루어 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홍해가 갈라집니다. 여리고가 무너집니다.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메시아가 탄생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몸을 주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로 내어 놓았을 때 하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그에게 메시아를 잉태하게 하였고 마리아는 신비한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는 것을 몸으로 실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비천"(눅 1:48)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이루어드리는데 자신을 내어 놓으므로 복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아기 예수의 탄생부터, 십자가의 죽음, 3일만에 부활, 40일 후의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세례를 모두 체험하는 영광을 누린 여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순종으로 활짝 꽃이 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로마를 정복해서 구원사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순종함으로 구원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얼마든지 힘을 상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순종하였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힘의 원리와 은혜의 원리입니다. 힘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 하는 사람이고 은혜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나라는 힘의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고 하나님 나라는 은혜의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그 힘이 돈일 때는 재력이라고도 하고, 벼슬일 경우에는 권력이라 하며, 지식일 때는 실력, 육체적 건강일 때는 체력, 숫자일 때는 세력, 아름다움 일 때는 매력, 영적인 것일 때는 영력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자들은 이것을 추구하여 얻고 그것을 자신 마음대로 휘두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하나님이 사용하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이 땅을 통치하시고 은혜로 섭리하는 도구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은혜로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조상을 만들고 이삭을 바치는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모세를 은혜로 나일강에서 구원하여 순종으로 택한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합니다. 목동의 지팡이지만 순종할 때 그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나게 만듭니다. 다윗을 은혜로 불러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고 순종할 때 그 물맷돌이 골리앗을 넘어뜨리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힘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 주십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창12:1~3).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의 순종을 통해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 은혜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어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성탄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아기 예수로 오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은 존귀한 사람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과 고난이 있습니까? 두려움과 절망이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탄절 아침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말씀 붙들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리는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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