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특별한 탄생 (요3:16-17)
이 시간 “예수님의 특별하신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탄생이 왜 특별할까요? 보통 인간의 탄생과는 달리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셨다는 점이 가장 특별하겠지만 그 외에도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것을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1. 예수님 탄생은 예언대로 오셨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구약에는 예수님에 대해 456회나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모세오경에 75회, 선지서에 243회, 기타 138회, 이 예언대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런 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1년도 아니고 수천 년 전부터, 그리고 한 사람에 의해서도 아니고 모든 선지자들과 성경을 통해서, 한 번도 아니고 수백 수천 번을 통해서 말입니다.
구약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매일 했던 제사나 절기나 예물 등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표요 오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예행연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예수 빠지면 그것은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요셉 한 사람 이야기에 나오는 것만 예표로 풀어 봐도 100가지도 넘는 예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기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수많은 예언이 있는데 그 많은 예언이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 되었습니다.
나실 것, 어디서 나실 것, 누구에게 나실 것, 어떻게 나실 것, 누가 먼저 나서 그 앞길을 예비할 것, 누구에게 잡히실 것, 어디에 묻히고, 어떻게 살아나시고, 그 후에 될 일까지도 너무나 정확해서 진리를 안다면 아무나 남을 속여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단의 미혹을 받아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예수님 탄생이 특별한 것은 남자 없이 나셨다는 것입니다.
사7:14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나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서 한 예언인데 아기가 완전한 처녀의 몸에서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남자 없이 아이를 낳는 것 보셨습니까? 지금 복제기술이 발달 되어 남자 없이도 만들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장담하고 있는데 그 때는 복제기술도 줄기세포 기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이 사건은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건입니다. 미국 TV 토크 쇼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래리 킹(Larry King)에게 누군가가 물었답니다. "당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다 인터뷰를 해왔는데, 만일 전 세계 역사를 통해서 딱 한 사람만 선택해서 인터뷰를 하라고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러자 래리 킹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무엇을 묻고 싶으냐?"는 질문에, "정말로 처녀의 몸에서 나셨습니까? 이것을 묻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생각으로는 신비한 사건이 바로 동정녀 탄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우리 성자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로 들어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 구십 세라 경수가 끊긴지 오래 되어 아들을 낳았어도 기적이라고 하는데 마리아는 남자 없이 예수님을 낳았던 것입니다.
3. 예수님 탄생이 특별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비요, 희생이요, 사랑이요, 겸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이것은 사람이 짐승이 되는 것보다 더 큰 비하이기 때문입니다. 벌레보다 못한 우리 인간이고 볼 때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사람이 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자기를 낮춘 비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지요?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위대해 지려면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죠지뮬러의 전기를 쓴 피어슨 박사가 뮬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하여 그토록 아름답고 거룩하게 살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뮬러는 "박사님, 제가 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언젠가 뮬러라고 하는 자아는 땅에 떨어져 완전히 깨어지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느라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이미 죽고 죽으심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탄생은 특별한 탄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그리고 이 탄생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제물로 대신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말로만 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성육신은 온전한 실천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장에 이리 떼가 나타나 양들을 무참히 물어 죽였습니다. 양들은 놀라 사방으로 도망쳤습니다. 아침에 주인이 양떼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양들은 이리 때문에 놀라서 인기척이 나면 다 도망갑니다. 강제로 한두 마리 붙잡았지만 주인도 몰라보고 앙탈을 부립니다. 양들을 사랑했던 주인은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아픈 마음을 본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양들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양을 찾아다녔습니다. 양을 만날 때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양처럼 소리를 내고, 양처럼 기어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양을 12마리나 찾았지만 머리는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었고 목은 쉬고 손과 발은 찢겨져 결국 아들은 양을 찾다가 입은 상처로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양은 누구겠습니까? 우리들입니다. 그 피 흘린 목자는 누구시겠어요?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지만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5. 예수님 탄생이 특별한 것은 지금도 특수한 형태의 성탄이 계속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1:11-13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이 오묘한 것은 이 글을 쓴 요한이 예수님의 성탄을 각인의 심령에서 일어나는 중생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생이란 거듭난다, 위로부터 난다, 성령으로 난다는 신학적인 용어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썩고 부패한 우리 영혼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우리가 새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 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탄생이 우리가 새로 태어나는 은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엄청난 복이요, 또 신비입니다. 우리 영혼에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는 중생도 작은 성탄절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탄은 역사 속에서도 있지만 먼저는 우리 심령 속에서 이루어져야 진정한 성탄인 것입니다.
어제 성탄 축하의 밤에도 말씀했지만 주님은 우리를 위해 낮고 낮게 오셨습니다. 그렇게 낮게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 같이 누추하고 어리석고 악한 심령에 찾아오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낮게 오신 아기 예수님, 요셉과 마리아 그 가난한 집에 태어나시고, 태어날 곳도 없으셔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나셔서 말구유에 눕히시고, 나시자 말자 시기한 헤롯왕이 죽이려 하지요, 제사장,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시험하고 노리지요, 그토록 예고하고 또 예고하시면서 자기 땅에 왔지만 그를 영접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사 53장을 보면 그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었다고 했어요. 주님의 모습은 볼품이 없었어요. 이렇게 낮고 천하게 오신 것은 낮고 천한 우리 죄인들을 멸망에서 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높고 귀하게 오셨다면 어떻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 있으며 우리 같이 누추한 심령에 찾아오실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아기 예수로 특별하게 나신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간에 이 특별한 은혜를 받으십시다. 역사 속에 이루어진 성탄도 귀하지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를 찬양하고 예수를 높이십시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화가 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가장 복된 영생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마2:1-11) (0) | 2008.12.20 |
---|---|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눅2:10-14 ) (0) | 2008.12.20 |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0) | 2008.07.21 |
아기를 경배하라 (0) | 2008.07.21 |
제목:아기로 오신 예수님이름의 의미 (0) | 200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