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아름다운 사람 (행 6:15)
이 시간에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아름답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기를 갈망합니다. 특히 여성들은 다이어트와 미용에 좋다고 하면 뭐든지 하려는 것 같습니다.
백설공주 이야기가 있지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질투 많은 어느 왕비가 아침마다 요술거울 앞에서 묻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 때마다 거울은 “그야 왕비님이시죠.” 그렇게 대답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비가 다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할 때 거울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백설공주!” 또 물어도 백설공주 또 물어도 백설공주라고 대답합니다. 백설공주는 왕비의 의붓딸입니다. 그래서 질투가 난 왕비는 백설공주를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동화이지만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극한 심리를 잘 묘사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외모도 필요하지만 크게는 관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교훈은 얼굴과 몸의 치장보다 신앙으로서 자기를 단장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때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영의 눈을 열어보면 외모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누추하여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모는 별거 아니지만 영적으로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 스데반집사를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스데반집사의 얼굴이 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굴만 천사가 아닙니다. 여러 면에서 천사와 같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닮아야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스데반처럼 아름답게 될 수 있을까요?
1.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행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으로 민간에 행하니” 이 얼마나 예수 닮은 멋진 모습입니까? 스데반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도 예수님을 꼭 닮았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행10:38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스데반이 얼마나 예수님을 빼닮았습니까? 우리들도 예수님의 하신대로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처럼 일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낮에는 말씀 전하시고 밤에는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만 잡니까? 아니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텔레비전만 봅니까? 아니면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합니까? 기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용모가 변화되고 기도하면 하늘의 능력을 주시고 길이 크게 열립니다.
조지 뮬러는 5만 번이나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영국의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 1761~1834) 선교사는 “기도의 능력은 마귀를 추방시키고, 사망의 결박을 풀어주며, 질병을 치유하고, 죽은 영혼을 소생케 하며, 지구를 복음으로 점령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은사는 다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이로 볼 때 스데반은 예수님의 기도의 본을 그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2.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행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마음이 어두우면 얼굴도 어둡습니다. 육신의 피부는 그을러서 어두울지라도 마음은 밝아야 합니다. 얼마나 성령이 충만하고 마음이 밝았으면 천사의 얼굴과 같았을까요?
요한이 계시로 만나 본 예수님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계1:16에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13:43) 이게 우리 성도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에 속한 사람이니 성령으로 해처럼 빛나게 살아야 합니다.
웃으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건강해지고 젊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웃으면 심장이 상하고 뇌가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기뻐하면 엔돌핀보다 4,000배나 강한 다이돌핀이 나와 불치의 병을 고치고 부작용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이 납니다. 어떻게 날마다 다이돌핀이 나오는 생활을 할까요?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교훈은 항상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찬송할 때 천사의 얼굴로 나타납니다. 갈수록 인생 살기가 힘이 듭니까? 찬송하는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비관하고 염려하고 실망하고 나약한 것은 찬송하지 않아서입니다. 주님은 원수들에게 잡히시기 전 찬송하며 감람산으로 가셨다는 사실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뭔가 귀한 진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힘도 찬송이었습니다. 그만큼 찬송은 세상도 죽음도 무엇도 이기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찬송 줄 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스데반처럼 성령으로 밝고 밝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나 사람 보기에 천사와 같이 아름답습니다.
3.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행7:2 “스데반이 가로되”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이 얼마나 성경에 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전했습니다. 능할 뿐 아니라 담대했습니다. 대상이 악했지만 하나님이 시킨 대로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열심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배우고 전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성경의 오묘한 진리를 드러낼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스데반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및 신령한 진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롬10:15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배우고 또 배우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말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혜롭게 한다고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말이 아니니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가감하면 하나님의 성과 생명나무의 은혜에 참예할 수 없습니다. 메시지가 율법과 윤리 수준이라면 깊은 은혜에 참예시킬 수 없습니다. 더욱 복음의 신령한 메시지를 전하여 영혼들로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게 해야 합니다.
그 때 나도 행복하고 모두가 행복합니다. 귀한 말씀에 너무 좋아 펄쩍펄쩍 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기독교 설문조사기관 ‘바나바 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크리스천 중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은 74%가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은혜 받아 먼저 나에게 전하고 그리고 남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남을 바로 전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4. 내가 죽어야 합니다.
행7:54-56“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악인들은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며 독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눈과 귀는 악인들을 향해서는 닫혀있고 하나님에게만 열려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들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에 대한 증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산다고 말합니다. 스데반도 눈과 귀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미워하는 소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돌로 쳐도 거기에 관심 두지 않고 하나님께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세상과 죄에 대해서는 죽었습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올무에 걸립니다. 해로운 소리에 귀 기울이면 시험 들어 살 수가 없어요. 자기의 나약함과 문제에 너무 집착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내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죽으셨습니다. 스데반도 죽었습니다. 바울도 죽었습니다. 우리들도 죽어야 합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아야 합니다.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산 순교자입니다. 공동묘지의 시체와 같이 죽어 욕해도 누명 씌어도 관심 갖지 않아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시고 일어서서 응원해 주시는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5.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닮은 또 하나는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기도하셨는데 스데반도 그랬습니다. 행7:59-60에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처럼 마지막 자기 영혼까지 아버지 손에 부탁드렸습니다. 주님을 닮아도 이렇게 닮을 수가 있나요?
흔히 큰 죄는 용서하면서도 다투었다든가 이런 작은 죄는 용서하지 못하는데 큰 죄도 작은 죄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다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닮는다고 수염 기르고 긴 머리에 도포자락을 입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세대 문화를 닮는 것이지 예수를 닮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이 우주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예수 안의 몸된 신부들도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가장 아름답도록 계획되어져 있습니다. 스데반처럼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으십시다. 우리 모두 기도와 찬송과 전도와 죽음과 사랑을 통해 스데반처럼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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