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요4:23-24)

공 상희 2008. 9. 3. 15:44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요4:23-24)

(요약)

 

하나님이 찾아오심은 구원하시고 상주시고 귀히 쓰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된 의로운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형식이나 의식이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겸손한 자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받아서 충성하는 일군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셨기에 아버지께서 온전히 함께 하셨다.

 

 

(설교)

이 시간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사람을 두시고 최초로 인간에게 하신 대화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사람 찾는 일이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들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십니다.

마9:13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답니다. 상금이 푸짐하게 걸렸는지라 많은 경쟁자들이 출전했습니다. 한 사람이 나와서 거짓말을 하는데 "글쎄, 나는 큰 바위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이 나와서 "나는 두부를 먹다가 이가 부러져서 치과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출전한 사람이 나와서 거짓말하기를 "이래 봐도 나는 정말 정직한 사람입니다. 내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고 심사위원들도 감탄했다는 듯이 그에게 1등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이 세상은 죄인 아닌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죄인이라고 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극악한 죄인일지라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악하고 고등하게 악한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이나 헤롯왕보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세리와 창기들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의인이라고 교만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죄악의 투성이라고 시인하는 주님이 찾아오시는 겸손한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십니다.

이제는 앞과는 정 반대의 말씀입니다. 창18:26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서 의인을 찾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그러나 소돔에는 45인도 없었고 40인도 30인도 20인도 그리고 10인도 의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돔성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계3:2을 보면 주님께서 사데교회에서 의로운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사데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 받아 흰옷 입은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보신다면 과연 얼마나 의롭게 보실까요? 흰옷 입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된다고 평가하실까요? 보혈공로 잘 입어 칭의의 흰옷 입은 사람은 몇 명이고 거룩함과 사랑의 성화의 흰옷 입은 사람은 몇 명이라고 평가하실까요? 이런 사람에게 함께 하시고 쓰시려고 찾고 찾으십니다.

그래서 사57:15에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1) 하였습니다. 여기에 우리 성도들의 놀랍고 설레는 소망이 있고 길이 있고 비전이 있어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말씀과 성령으로 깨끗하게만 해봐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은혜와 은사와 축복을 주시고 또 어디에 보내셔서 쓰실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요4:23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했습니다.
어떤 자료를 검색하다가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이런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는 제목이었는데 그 내용이 좋아서 길지만 모두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과연 어떤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것일까요? [1. 엉성하지만 감격과 환희의 눈물이 젖어있는 찬양이 있는 예배, 2. 더듬거리고 앞뒤 문맥이 잘 맞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여 가슴만 치던 세리들과 창기들의 기도가 있는 예배, 3. 아름다운 벽화도 예쁘게 장식된 꽃꽂이도 없이 마굿간 같은 냄새가 나고 의자는 다 부수어져 앉을 자리는 불편해도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들의 예배, 4. 사람의 지식과 기교로 교만한 자들의 허영심을 즐겁게 하는 설교가 아닌 그 분의 거룩한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나와서 눈물과 통곡으로 외치던 옛날 선지자들의 그 목소리의 예배, 5. 불의의 재물과 교만한 마음의 장식물과 같은 헌금 대신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순전함을 드리는 과부의 두렙 돈으로 드리는 예배, 6. 자신의 종교적 의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소외시키는 바리세인들의 제사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믿음의 예배, 7. 말씀시간이 10분만 길어져도 지겨워지는 삼류 코메디같은 예배가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온 인격이 매료되어 그의 발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던 마리아가 드렸던 바로 그 예배, 8.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인간의 더러운 인격을 녹이고 하나님의 신의 성품을 새롭게 하시는 그 예배, 9. 우리의 자존심과 영광과 축복만 추구하는 예배가 아니라 밖에서 울고 계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 그 분의 눈물 앞에 무릎을 꿇는 그런 예배, 10. 축도가 끝나면 남남이 되어 자신의 자리도 도망가는 콘서트 같은 예배가 아닌 예배의 끝남이 아쉽고 안타까워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그분의 임재 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여호수아의 경외심으로 드리는 그런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욕심 같지만 진정 이런 아름다운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기를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동물학자 E. 마레이즈는 아프리카 개미집 앞에 외나무다리를 설치하여 실험을 했는데 개미들이 먹이를 구하러 나갈 때는 나갈 길을 궁리하거나 목숨을 내걸지 않지만 일단 먹이를 입에 물고 들어올 때는 들러오는 길이 어딘가 찾고 찾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 들어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개미도 일단 먹이를 입에 물었을 때는 목숨을 다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예배드리러 가는 자들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 돌리려고 갈 때는 아무리 어려워도 부지런히 준비하다가 가장 귀한 임무를 띤 사람처럼 어떤 일도 제치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개인에게 주시는 것이 다르고 전체가 모였을 때 주시는 은혜가 또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의 성공자를 찾고 계십니다.

4.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삼상9:20에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암나귀가 아니라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왜 사울을 찾으셨을까요? 그는 겸손했기 때문입니다(삼상9:21).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시사저널에서 국내의 최우수 경영자 10명을 선정했습니다. 금강고려화학, 현대모비스, 신세계, 롯데제과, 아시아시멘트, 한일시멘트, 태평양, 에스원 등 10개 회사의 경영자들이 선정되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거짓말 잘하고 수단 좋은 사람이 성공한다고들 생각하는데 진짜 크게 된 사람들은 오늘만 보고 내일은 안 볼 사람이 아니라 진정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한 삶의 자세로 원칙을 지키며 충실한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러나 돈 좀 벌었다고 다른 사람들 일시키고 자기는 호의호식하며 춤판에나 다니는 사람들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찾으실까요? 크신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찾아 큰 은혜를 주십니다.

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마음에 맞는 일군을 찾으십니다.

사6:8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받아 일하는 선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개성들이 강해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관심 없고 모두 자기 식으로 열심 내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칭찬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순종하는 일군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 하기를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어떤 일을 이루시기 원하실까? 그 일을 위해서라면 내 뜻도 접고 내 취향도 개성도 접고 굳어진 사고와 전통도 깨뜨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을 찾으시는데 자꾸만 구태의연한 사고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일에는 동참시킬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하나님께서 귀하게 찾으시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죄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주의 은혜로 의인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충성하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 이런 하나님의 기뻐 찾으시는 성도 되어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