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하나님의 막대기 (삼하 7:14)

공 상희 2008. 5. 24. 11:22

하나님의 막대기 (삼하 7:14)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막대기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막대기가 무엇일까요? 양치는 목자에게는 지팡이와 막대기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지팡이는 양들을 인도하는데 쓰이고 막대기는 양들을 맹수에게서 보호하는데 쓰입니다. 그러니까 이 막대기 없이는 이리나 사자 같은 맹수들을 막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목장의 평화를 위해서 중요한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원하십니까? 평화의 사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막대기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적도 있으나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나라와 여러 가지 것들을 막대기 삼아 쓰셨음을 봅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재판관들, 선지자들, 다윗 왕과 같은 왕들, 사도들,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고 동물이나, 자연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가령 발람을 책망한 나귀, 요나를 집어삼킨 고래,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갖다 준 까마귀, 그리고 구름, 태풍, 비, 태양, 나무 등등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얼마든지 사용하시고, 도구로 이용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악한 도구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잠16:4에 “주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지으셨으니, 정녕, 악한 날을 위하여 지으신 악인까지라” 했습니다.

그리고 삼하7:14에 “만일 그가 죄악을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로 그를 징책하고, 사람의 자식의 채찍으로 징책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막대기는 나무 막대기가 아닙니다. 이 악의 막대기는 마귀가 그 대표적인 도구이며, 이스라엘을 징책하기 위한 이방인들이나, 이방 왕과 나라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막대기로 사용하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은 마귀나 악인 같은 악한 막대기가 아니라 반드시 선한 막대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악 세상에서 이끌어 내고 양육하여 죄를 멸하고 저주를 멸하고 마귀를 멸하며 안위하고 보호해 주어야합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신나는 일입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막대기가 될 수 있을까요?

1. 강해야 합니다.

막대기는 맹수를 물리쳐야 하는 도구이기에 강한 목재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막대기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 강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역사할 때도 얼마나 강했습니까? 애굽을 완전히 항복시켰습니다. 다윗도 강했습니다. 삼상17:34-36에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그랬습니다.

그러나 애굽이나 모압과 같이 갈대 같고 더구나 부러진 상한지팡이로서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사36:6, 사14:29). 즉 이 애굽의 갈대 지팡이는 우리가 세상의 도움을 구해도 세상은 우리를 도와줄 힘도 방법도 없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친구가 되고 행복이 되고 인생을 보장해 줄까요? 천만에요. 세상은 부러진 상한 갈대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강해질까요? 믿음에 서는 것입니다. 요일5:4에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다음은 은혜 충만하는 것입니다. 딤후2:1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그랬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강해집니다. 그래서 나약한 제자들이 능력 받고 큰 일했습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한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겔3:9에 에스겔에게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완악한 백성이라도 에스겔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악한 백성에게는 더 강한 은사를 입혀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강하게 되는 은사입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하나님께서 주셔도 큰 복을 주시고 쓰셔도 크게 쓰십니다. 강하지 못하면 누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나 다윗이나 마르틴 루터나 모두 강한 사람을 귀한 일에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은 모두 강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고전16:13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했습니다. 벧전3:6에도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강해야지 울면 되겠습니까? 기쁨의 눈물, 사랑의 눈물 외에는 흘리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막대기가 되려면 강해야 합니다.

2. 겸손해야 합니다.

사10:15에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막대기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야지 교만하여 자행자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강하고 아름다운 은사를 주셨어도 교만하여 함부로 행하면 안 됩니다.

이사야 10장을 보면 앗수르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만 치라고 하셨는데 앗수르는 하나님이 주신 그 큰 힘으로 열방의 모든 나라까지 다 굴복시키고 왕 중의 왕이라고 자기를 높이며 스스로 교만했습니다. 언제 이스라엘만 치라 했지 다른 나라까지 치라 했습니까?

그래서 사10:12에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하셨습니다. 내가 성령을 쓰려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고 겸손히 그 발아래 엎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쓰임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나의 영광과 이득을 위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큰 능력 받아서 큰 일해야겠다는 말은 맞는 말 같아도 틀린 말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부리려는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받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쓰셨습니다.
아무리 숭고한 목적일지라도 내가 나서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제가 여기 있어요. 원하시는 대로 써주세요.” 이런 쓰임 받는 자세로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3. 충성해야 합니다.

요5:17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마음적으로도 일심동체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부지런한 분이신데 그 손에 들린 도구가 게을러서야 되겠습니까?

시23:1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부지런하지 않고 어떻게 부족함이 없게 되겠습니까? 또 4절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했습니다. 여기 안위하신다는 말씀은 위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 위로를 주려면 충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언제나 보호하시고 안위하셨습니다.

197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 때 지하 교회를 섬기던 어떤 장로님이 끌려가서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매를 매일같이 맞는데, 쉬었다 때리고, 쉬었다 때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맞았는데 무려 240대나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 속에 주님이 나타나시더니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신기한 것은 아무리 때려도 아프지 않고 맞을 때마다 희열이 오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로의 도구로 쓰이려면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도구를 구하지만 막상 받으면 게을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감당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충성하십시다. 고후11:23-28에 보면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막대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처럼 강하고 겸손하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쓰시는 막대기가 되어 원수들을 다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온전히 인도하고 보호하고 축복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