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 2:1-7)
이 시간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변화무쌍한 세상입니다. 마치 하늘의 뭉게구름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듯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한 순간만이라도 한 눈을 팔면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게 되는 시대의 낙오자 혹은 방황자가 되고 맙니다. 어제 갔던 그 길을 오늘은 찾지 못해 방황하기도 하고, 어제 엘리트 말을 듣던 사람이 오늘은 시대에 뒤진 구세대 말을 듣기도 합니다. 정말 정신없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누구 못지않게 노력하지만 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을 향한 신앙입니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우리 신앙만큼은 변해서는 안 됩니다.신앙이 세상과 편승해서 달라진다면 거기에는 아무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신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는 옛날 그 신앙으로 돌아가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좀 달리 표현하면 은혜 받았을 때 그 믿음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은혜를 받을 때 얼마나 그 믿음이 아름답습니까? 세상의 그 어떤 꽃이 있어도 그 때의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고,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이 있어도 그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 그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우리가 회복해야 할 처음 행위는 어떤 것들일까요?
1. 처음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순수하고 완전했던 그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벧전2:2에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갓난아기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시기가 있습니다. 은혜 받아 즐거워하던 그 때의 믿음입니다. 정말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온전히 아멘으로 수용하고 기쁘고 열린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순종하던 그 믿음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은혜가 떨어지면 마음은 오염되고 행위는 변질되어 그 본래의 모습들을 잃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수하고 아름답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잃고 세상으로 죄악으로 교만으로 불신으로 타락해가더라는 말입니다. 예수의 마음은 사라지고 인간의 마음으로 차더라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악인을 보면 성령의 마음이 되어 슬퍼 울며 기도해 주었지만 은혜 떨어지면 단순한 육신적 분노로 변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통탄해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순수했어요. 눈물이 있는 믿음이었어요. 진리를 사모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겸손한 믿음이었습니다. 충성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회복하자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얼마나 봉건주의 사상에 찌들었는지 여자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지요. 어느 시골에 어떤 부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종갓집이었던 터라 예수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시어머니와 남편은 핍박을 계속하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새벽 기도하는 부인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와 어머니와 함께 구들장에 부인을 쳐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도 예수를 믿을래? 말해 봐" 그런데 구들장 속에 들어간 아내는 아무 말이 없어 구들장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끄름과 눈물이 범벅된 채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와락 끌어안으며 용서를 구하고 핍박하던 어머니를 야단치며 그 다음 주부터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쫓겨나고 예수 믿는다고 머리가 터지고 저도 그런 교인 많이 보았습니다. 믿음에 목숨 걸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조금만 틀리면 교회 안 나온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알아서 해요. 안 나오면 자기 손해지 누가 손해 보는 것 아니에요. 성경은 처음 믿음을 저버리는 자에게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딤전5:12). 은혜 받아 다시 처음의 그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2.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본문 4절에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은혜 받으면 왜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지, 교회에 오면 교회를 떠나기 싫고, 성경을 보면 성경을 덮기가 싫고, 앉으나 서나 기도하고 전도합니다. 저 어릴 때지만 새벽에도 교회로 달려가서 한 시간 기도하고, 저녁에도 달려가서 한 시간 기도하고, 종일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 생각으로 꽉 찼어요. 저는 이 처음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렘2:2에 “네 소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이고 했습니다. 나이 먹으면 사랑도 계산적이지만 어릴 때 첫사랑은 얼마나 순수하고 뜨겁습니까? 그런 사랑 한 번씩은 다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말하는 소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조강지처는 버리지 말라고 그럽니다. 조강지처는 아무리 어려워도 남편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도 조강지처여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 일편단심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 말고 세상 다른 것이 내 마음을 차지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존 비비어의 “거룩한 열정”에 보면 아시아 어느 공산국가에서 온 여성 사역자를 만났는데 그 나라에서는 핍박이 심해 신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수없이 체포된다고 합니다. 아마 중국이나 북한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감옥에서도 계속 복음을 전하여 재소자 다수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역자가 집회를 마칠 무렵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왜 우십니까?” 그러자 “저는 우리가 자유를 얻을까 두렵습니다. 자유가 생기면 교인들이 물질적 세속적으로 서구교회의 일부 교인들처럼 주님을 떠나갈까 두렵습니다.” 하더랍니다. 신앙의 자유가 우리를 세속화시킨 것은 아니지만 평안하고 형통할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잊기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2-14)고 경고했습니다. 은혜 받아 주님을 위해 일생과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었던 그 때의 그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3. 처음 진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렘6:16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 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옛적 길, 선한 길이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될 마땅한 도리를 뜻합니다. 그 옛날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주어진 변치 않는 참된 진리를 가리킵니다. 이 진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성령이 충만하고 사랑이 풍성하고 부흥하는 교인과 교회가 되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행 되어야 할 것은 신학적 진리가 회복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다 된 것이라는 잘못된 사상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났다면 이제는 영적으로 장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보세요. 예수님의 제자들 삼년 반이나 믿음의 훈련을 받고 참된 신앙을 고백했지만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구원의 시제는 이미와 아직입니다. 우리는 이미에 견고히 서야 하지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가 바로 되어야 은혜생활이 가능합니다. 교리는 역사 속에서 발전을 거듭했고 더 분명해지고 더 완전해져간 면이 있지만 일부는 본질에서 크게 이탈하고 있습니다. 반면 초대교회의 교리는 비록 단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 삶의 모본을 직접 받은 신앙이었기 때문에 큰 맥락만큼은 너무나도 바르고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활기 있게 신앙생활하고 더욱 예수 이름이 높여지고 성령의 충만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교리가 바로 되면 예배가 바로 되고 예배가 회복 되면 성도의 삶이 회복 되고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바꾸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4:23). 참된 진리 없이 영적 예배는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기 위해서 바르고 용기 있는 신학자가 필요합니다. 신학이 바로 되면 교회는 살아나지만 신학이 타락하면 교회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지동산 신학교를 위해서 기도와 성원을 아끼지 않아야합니다. 참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진리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은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알지만 잃어버렸다면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처음 믿음, 처음 사랑, 처음 진리를 회복하여 주님이 약속하신 온갖 아름다운 것과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로 만족하실 수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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