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불평의 습관, 감사의 습관

공 상희 2007. 5. 31. 14:51
불평의 습관, 감사의 습관

본문: 골로새서 3장 15~17절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서 그 사람이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습관은 어떤 행위를 하고 또 하고 반복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고 불행한 일이 찾아오게 되고, 감사의 습관을 갖게 되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행복한 날이 찾아오게 됩니다.
제가 젊은 목회자였을 때 감리교에서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인물도 잘생기고 설교도 말씀 중심으로 잘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7계 문제로 교회에 문제가 발생해서 결국 그 교회에서 목회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 훌륭한 목사님이 문제의 주동자 되는 몇 분을 몹시 미워하고 원망 불평하더니 간암에 걸려서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어느 분이 병문안 갔더니 여전히 이를 갈며 미워하고 원망 불평하더랍니다. 남을 미워하고 불평하는 것이 그렇게 해롭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또 제가 아는 한 전도사님은 그 옛날에 목회를 열심히 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면 그 지방 감리사가 교회 장로들과 짜고 형편없는 교회로 쫓아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그런 억울한일을 당하고 나서는 목회의 의욕을 잃고 그 감리사와 자기 교회 장로 한두 분을 몹시 미워하고 원망 불평하며 세월을 보내더니 소화불량을 앓다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또 한 여자는 평생 불평과 원망으로 살던 여자인데 불평의 조건은 여러 가지입니다. 아들들만 공부시키고 자기는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 시켰다는 것과 식모처럼 부려먹기만 했다는 것, 시집 갈 때 많은 것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 등입니다. 사변 직후에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딸까지 대학 공부시킬 수가 없었고 밥을 굶는 형편에 혼숫감을 많이 해줄 형편이 아니라서 못해주었는데 평생 부모형제를 원망 불평하며 살더니 결국 중풍에다 유방암까지 걸려 수술을 몇 번이나 하면서 고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증오와 불평과 원망은 마귀에게 사로잡힌 결과이므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자기 남편이 어쩌다가 바람 한 번 피웠다고 5년, 10년 미워하고 불평하고 잠자리에도 못 오게 하더니 암병에 걸려서 수술을 몇 번이나 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불평, 원망, 증오심은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1. 불평의 습관을 버리라

미국에서 하루는 멋쟁이 숙녀가 고급 밍크코트에 번쩍번쩍 하는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머리에는 근사한 모자를 쓰고 기차를 올라탔습니다. 기차에 올라와 앉자마자 불평을 늘어놓는데 기차간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역무원들은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 음식은 왜 이렇게 형편없느냐는 둥 계속 불평만 늘어놓더랍니다. 보다못해 옆에 있던 신사가 그 여자를 “불평을 만드는 공장”(complain factory)이라고 하더랍니다.
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아도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입니다. 불평은 마귀를 기쁘게 하는 삶이요,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욥기가 가르치는 중요한 영적 가르침은 사탄이 하나님께 참소하여 욥의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겠다고(욥1:11) 자신하고 돌아가서 욥의 재산을 다 쳐서, 양이 7천, 약대가 3천, 소가 5백 겨리, 암나귀가 5백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도둑맞게 하고 벼락 맞아 죽고 불에 타 죽게 했으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고, 욥기 1장 21~22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욥의 아들딸 10남매가 맏형의 집에서 잔치하고 있을 때 대풍이 불어와서 네 모퉁이를 쳐서 10남매가 깔려 몽땅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이 욥의 몸을 쳐서 온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자기가 태어난 날이 없었다면 좋을 뻔했다고 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처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해도 아내를 책망하면서도 그 입으로 하나님을 욕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불평원망이 얼마나 큰 죄이기에 사탄이 욥의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하려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사탄이 결국 패배하고 도망갔고 욥은 그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2003년도에 꼭 40일간 구치소에 있었는데 그 안에서도 신비한 체험과 놀라운 은혜를 받았거니와 출소한 후에도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를 대적하며 참았지, 제 입으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37편 1절~7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
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불평은 죄 아닌 것 같으면서도 큰 죄이며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평은 한 번, 두 번 자꾸 해 버릇하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사탄의 노예가 되고 불행하게 됩니다. 모든 불평은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키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걸핏하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이끌고 나왔느냐”, “이 박한 식물을 먹기가 지겹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가 더 좋았다” 하며 불평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 안 믿을 때가 더 좋았다”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하고 불평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리” 하시고 기성세대가 다 죽을 때까지 광야를 맴돌다가 새로 태어난 사람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습니다.

불평, 원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불평이나 원망은 다른 어떤 악습보다 더 위험하고 해로운 습관입니다.

여러분,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먹다가도 웬만하면 맛이 없어도 맛없다고 불평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사람이 맛없다고 불평하면 맛있게 먹던 사람도 금방 맛없게 느껴집니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사람을 평가할 때도 장점을 들어 좋게 평가하는 버릇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을 혹독하게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큰 해를 끼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기 자신에게도 해롭습니다. “저 사람 가까이 하다간 나도 피해를 보겠구나.

멀리하자”, 이렇게 됩니다. 불평의 습관, 비판의 습관, 원망의 습관을 버려야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2. 감사의 습관을 키우자

불평의 습관은 무슨 고통이 있을지라도 벗어버리도록 하고 대신에 감사의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의 영향 아래 살기 때문에 감사의 습관이 몸에 베어 있습니다. “Thank you” 혹은 “I appreciate” 한다던지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감사의 습관이 안 되어 있습니다. 큰일뿐 아니라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좋은 일이 생길 때만 아니라 고난을 당하고 슬픔을 당할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요셉은 시기하는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 상고들에게 팔아먹었는데도 그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종으로 팔려갈 때가 축복의 시작이었고 억울하게 감옥살이할 때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였습니다.

요셉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하는 말씀은 우리 생활 전반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나중에 좋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해야 됩니다”(always for all things).
하나님이 보내신 축복이 어떤 때는 저주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조금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고 괴롭겠습니까? 우리의 슬픔과 실패까지도 가장 좋은 선물로 바뀌는 때가 옵니다. 의사가 우리의 병을 치료해주려고 아픈 주사를 놔주고 쓰디쓴 약을 먹이려고 하는데 의사에게 불평하고 욕하고 멱살을 붙잡으면 얼마나 고약하고 무례한 행동이겠습니까?

수술을 받는 한 소녀가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엄마를 바라보며 미소를 띄웠습니다. “어떻게 아픈 데도 엄마에게 미소를 띄울 수가 있었니?” 하니까 “나는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것도 알고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괴로워하실 것을 알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아픔을 숨기고 괜찮은 것처럼 웃었어요” 하더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참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분이 “모든 것이 좋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It is not because things are good that we are to thank but because he is good).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설교도 하지 않을 것이고 뭐 달라는 기도도 안 하게 될 것이고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인애하신 구세주여” 그런 찬송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칭송하는 찬미는 영원히 계속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0~12절에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며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엎드려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문을 여는 방법이고 불평은 하나님의 문을 닫는 방법입니다. 구약 시대에 세 가지 큰 명절이 있었습니다. 이 삼 대 절기는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봄에 지키는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이며 여름에 지키는 맥추절은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들이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가을에 지키는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절기인데 가을 곡식을 다 거두어들이고 광야에서 고생하던 때를 상기하면서 들에 나가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지키는 세 가지 큰 절기는 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가르쳐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습관은 벗어버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키워나가시기 바랍니다.

과거 일에 감사하고 현재 일에도 감사하고 앞으로 주실 은혜를 믿고 감사해야겠습니다. 본문 말씀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세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17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김홍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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