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거부하는 죄(요 16:5-11)
우리가 교회의 생활 속에서 매우 자주 쓰는 용어가 성령입니다. 성령에 대하여서는 지난 4월에 오후 성경공부반들을 통하여 조금 깊게 공부를 했습니다. 이 시간 그 내용을 간추린다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가신 이후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혜사로 역사 하십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 인생들을 지키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다시 임재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땅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들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하여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비록 근원적으로는 해방된 자유의 존재가 되었고 의인이 되었으나 육을 가지고 사는 우리 인간들이기에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래서 성령은 항상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셔서 새롭게 살도록 격려하시고 우리들의 영안을 밝게 만들어서 바른 길로 가도록 도와 주시기도 합니다. 오늘의 세속의 현실에 함몰되어 세속화되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한 복판에서 의롭게 살아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인간의 원초적인 육적인 욕망과 욕심을 잘 다스리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에 대해서도 공부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합니다. 누구나 똑 같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봉사의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찬양의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자선의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고난과 순교의 은사를 주십니다. 이 모든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더 중요합니다. 그 은사들을 통하여 얻어내는 열매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아홉 가지 열매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입니다. 이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맺어야 하는 열매들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에 주시는 성경의 본문들에서는 성령을 거부하는 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일 자 성경교재 속에 성령을 거스리는 죄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하나님과 똑 같이 섬기고 그리고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는 행위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이 짧기에 성령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성령을 거스리는 죄에 대하여는 잠시 언급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령강림절의 본문들을 구체적으로 성령을 거스리는 죄의 대가가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본문에서는 바벨탑의 사건이 언급되고 신약에서는 심판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들을 보면 성령은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성령은 조용히 역사하십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성령도 우리가 알 수 없게 잠잠하게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는 불의 혀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주 강력한 힘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그 때에는 낙심되고 주저하고 절망하는 제자들에게 그런 강력한 힘으로서 성령이 역사하여야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여러 가지이듯이 성령의 나타나는 모습도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구약의 본문에서는 무섭게 책망하시고 처벌하시고 변혁시키시는 힘으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5절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바벨탑의 이야기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항명사건중의 하나입니다. 그 전에도 몇 차례의 항명파동이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신 것, 동생을 죽인 가인을 유배 보낸 것, 노아의 시대에는 8식구만 빼고 모두 물로 몰살을 시킨 것 등등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의 역사 개입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11장 5절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구경하시려고 강림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언어를 혼잡케 하여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만든 결과를 보아 그것은 자명합니다. 성령의 임재는 인간들의 오만을 꺾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바벨탑은 대도시를 상징하고 동시에 인간의 지능과 영예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뉴욕의 엠파이어 빌딩, 시카고의 시어즈 빌딩, 여의도의 63빌딩 등을 보면서 인간들에게는 자기네들의 힘을 과시하고픈 마음이 있음을 엿봅니다. 큰 건물을 짓는데는 많은 재력이 동원됩니다. 많은 인력이 동원됩니다. 상당한 인간의 기술이 동원됩니다. 그러기에 높은 탑과 고층 건물은 인간의 안보의 표징으로 세워지며 명성과 영예를 얻으려는 의지의 표상으로 이해됩니다. 옛날에 프린스톤에서 공부를 할 때 프린스톤대 채플이 있었는데 그 옆에 대학 도서관이 세워졌습니다. 규모가 매우 큰 도서관인 데도 높이는 채플의 높이 보다 낮게 지었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이 학문하는 집 보다 작아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도서관의 높이를 낮췄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공간의 확보를 위하여 지하를 깊게 파서 쓰고 있었습니다.
창세기의 저자가 3절에 건축 재료들에 언급을 했는데 돌 대신에 벽돌을 구어서 탑을 쌓고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진흙이 아니고 역청을 이용하여 매우 견고한 고층 건물을 지어가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고도의 기술과 용감성과 동시에 오만함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에 이 건물이 "하늘에 닿게 하자" 고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고 건축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올라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 때문에 성령께서 땅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어디까지나 예방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들을 당장 진노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더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령의 오심은 어디까지나 예방 조치를 위한 것입니다. 고로 성령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을 따르지 않고 거역할 때 무서운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의사를 불통하게 하여서 더 이상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서로 언어가 상통하지 못하게 되면서 종족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10절 이하에 보면 각 족속들로 나뉘어져서 산 모습들을 족보로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임재의 결과를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그 다음 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는 것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고집하고 오만한 다른 족속들은 다 포기하시고 오직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시작하셨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한편 사람들에게는 심판으로 다른 쪽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비록 노아의 홍수 때처럼 사람들의 목숨은 이 땅에서 멸절하지는 않았지만 성령을 거스린 자들을 하나님이 결국에는 버리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 많은 종족들 중에 오직 아브라함과 몇 사람들만을 택하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공동체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외의 종족들은 하나님이 버리셨던 것입니다. 계시록의 표현을 빌리면 촛대를 옮긴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라.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한때 기대를 걸었던 공동체였지만 잘못된 길로 가면 먼저 경고를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아주 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친히 가르치신 바에 의하면 성령이 오시면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8절)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더욱 자세하게 해설해 주었습니다: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9절- 11절) 성령이 오셔서 인간들의 마음속에 감화 감동하십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받아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한데 이것을 제 고집, 제 지식, 제 욕심 때문에 받지 않으면 죄인으로 낙인찍힙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처해집니다. 성령이 오셔서 죄를 알려 줄 때 빨리 그 죄악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의를 얻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것도 알려줍니다. 10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에서 죄인들이 살길을 열어주셨음을 성령은 알려 줍니다. 성령은 그래서 자유의 영이시요 진리의 영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령의 감화를 거절하면 그 마지막은 심판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심판을 당합니다. 즉결재판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11절의 말씀처럼 이 세상의 임금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 오만과 영광 속에서 희희락락하고 허랑 방탕하면서 권력 속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면서 사는 것 같지만 어느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초라하게 꺼져 갑니다. 자신의 일가족이 더 나아가서 그 후손들이 망하고 맙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죄값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제 고집과 아집으로 교만으로 살면 그 마지막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는 경우도 봅니다. 그래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참회하면 용서를 받고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참아주시지만 끝까지 고집하고 회개하지 않고 숨을 거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고 결국엔 영원한 지옥의 불을 면할 수가 없게 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저는 목회 생활을 통하여 고집스럽게 믿음을 거부하던 사람들의 비참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제 고집을 앞 세워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던 자들의 말로는 정말로 비참했습니다. 성령을 거역한 죄의 대가는 무섭습니다. 성령께서 감화 감동하실 때 겸손하게 아멘으로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 났습니까? 지혜로우면 얼마나 지혜로운 가요? 권세가 있으면 얼마나 오래 갑니까? 머리가 좋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인간의 무서운 아집과 고집과 불순종으로 성령을 거역하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고로 우리 가족들의 전도를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바벨탑의 사건 이후 그 많은 종족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 것처럼 지금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가족의 전통도 성령을 거역하면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나게 되어 영원히 버리움을 당하고 맙니다. 순종하세요. 오만하지 마세요. 바벨탑을 더 이상 쌓아 올리지 마세요. 겸손하게 머리 숙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임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말씀을 황당한 말이라고 아는 자들이야말로 성령의 감동을 뿌리치는 자들입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저 지난 달에 성령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제기되었던 문제는 성령의 감화와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일들을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가 아니 될 때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문에 먼저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 만이 아니고 가정이나 회사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기도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나 인간의 욕심이 작용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한 순종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욕심, 나의 명예, 나의 이익을 위주로 출발하고 있는가? 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바벨탑을 쌓기 시작할 때 저들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어야 했습니다.
비록 인간의 재력이 쌓였고 기술이 축적되었으나 먼저 물을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인간의 머리를 굴리거나 자신의 재물을 계산하거나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바벨탑 건립을 추진해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물었다면 저들은 하늘에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을 계획을 세우지 아니 했을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가까이에, 아니 우리 속에 내주하여 계십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감화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의 주관, 나의 욕심을 버리십시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강력하게 역사하도록 하십니다. 성령을 거절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지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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