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사 43:15-28

공 상희 2022. 6. 23. 14:25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43:15-28

 

이 시간에는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에 대해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6:35에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면, 황무한 성읍이 에덴동산 같이 될 것이라고 예언 합니다. 3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니, 생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소성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본문 20절에서는, 새 일을 행하셔서 사막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낸다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고, 그 결과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 된 그들의 형편을 28절에 보면,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소의 어른들이 욕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백성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저주, 국가를 잃어버린 저주, 포로였기에 환경적인 저주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비방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생활과 사역에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보다 더 강력하게 새 일을 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의 영혼과 생활 가운데,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적으로 환경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럼 새 일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내 인생에 어떻게 새 일을 행하시는가?
1)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15절에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언제나 거룩하시고 언제나 창조자이시며 언제나 왕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으면, 그분과 우리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탁월한 어른이, 내 친구의 아버지인 것과, 내 아버지인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 어른이 내 친구의 아버지라면,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내 아버지라면 그분의 모든 것은 나와 상관이 있으며 그분의 능력은 내 행복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상관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까요.?

1:12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2) 불가능한 일을 행하십니다.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신분이시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신 분입니다. 20절에 보면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신 분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데,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므로,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므로 불가능한 일을 행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는,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셔서 사막에서도 물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셔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하십니다.
 
사실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의 역사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눅18:25절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시고 곧 이어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지금 자신의 환경을 보면, 절대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할 수 없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불가능한 환경을 보지 말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 적을 물리쳐 주십니다.(17)
17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일시에 홍해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그 일을 방해하는 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실제적인 사건이면서, 영적인 비유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고, 어둠의 권세들을 깨드리고 승리하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새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셔야 하는데, 항상 적들은 그 일을 방해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들, 그리고 사단의 도구가 되는 사람들과 저주 받은 환경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 일을 방해 합니다.

하지만 믿는 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계획하신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적들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십니다.

 

2.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21절에서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25절에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며,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기 때문에 산만한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 때 집중력이 생기는 것이고, 더욱 풍성한 인생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인생은 감사와 찬송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데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있습니다. 무엇이죠? ‘찬송입니다
찬송은 승리의 능력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 벅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한번은 그 어머니 캐롤라인이 마침 남편이 전도 여행을 떠나고, 집에 아이들 셋만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중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내용은, 가뭄으로 온 동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다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신이 노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밤이 깊어지면 처치하자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캐롤라인이 질겁했습니다. 대책이 없어 그냥 골방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중국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침착하게 그들을 맞이하였고 다과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어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했고, 신기하게도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면서 멋쩍어하다가, 하나 둘씩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역시 찬송 중에 임하셔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찬송하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3.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새 일을 행하시도록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늘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줄에 묶인 개와 같습니다. 개는 줄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줄의 한계를 초월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과거의 영광에 묶인 사람도 있고, 과거의 실패에 묶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줄이 없는 개와 같습니다. 원하는 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비록 과거에 실패의 아픔이 있었어도,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에 하나님께서 펼치실 그림을 보는 사람입니다. 비전을 보는 사람입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은 광야에서 애굽을 생각하고, 애굽을 그리워했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광야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광야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고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을 부르라.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고통 가운데 머물러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는,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새 일을 방해하는 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조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조금만 환경이 좋아지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환경이 어려운 것이 더 유익한 일일 수 있습니다.

새들이 나무 위에다 집을 짓는 이유는 거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 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둥지를 공격하는 적이 있습니다. 뱀입니다. 새가 아무리 높은 곳에 집을 지어도 뱀은 나무를 감고 새 둥지가지 올라가 새끼들을 잡아먹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안전해 보여도, 사단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예배를 회복하라
23, 2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멸망당한 원인입니다. 한 때 영국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웨일스에서 큰 역사가 일어나서, 세계 교회들과 세계를 움직이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영국교회들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가 쇠잔하고 쇠퇴했는가를 역사가들은 몇 가지로 분석을 하는데, 그 첫 번째가 교회가 예배시간을 짧게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을 점점 줄이고,

모든 예배를 의식화 예식화 해서 1시간 내에 끝냅니다. 이런 예배의 쇠퇴가 교회의 쇠퇴를 가져왔고, 교회의 쇠퇴가 국가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성에 젖어서 신앙이 의식화 형식화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예배의 변질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예배의 회복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4) 죄 문제를 해결하라.
24-28절에 보면, 죄 문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환경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죄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죄가 사단이 역사하는 거점을 만들어주고. 그로 인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면 죄로 인하여 발생된 문제들 역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죄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고, 잘못을 자백하면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허물과 죄를 알고 계실 수 있지요. 그러나 한번 하나님 앞에 고백한 죄, 하나님이 용서 해 버린 죄는 하나님께서 등 뒤로 던져 버리시고 기억조차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결론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셔서 구원해 주시고, 방해하는 사탄의 권세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부르며 다시 정죄에 빠지지 말고 기쁨과 감사로 예배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