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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 야고보서 1:12-18

공 상희 2022. 6. 14. 11:5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 야고보서 1:12-18

 

이시간에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사람들이 사단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넘어가는 이유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면 거짓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진리 앞에서 거짓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단은, 초대교회 당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교묘하게 속이며 믿음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장로는, 시험과 환란 중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16절에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합니다.

사단의 역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단은 여전히 믿는 자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신앙의 대열에서 낙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를 통해서 주시는 이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그럼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속였던, 사단의 속임수와 사단의 속임수로 인하여여 그 당시 교인들이 쉽게 빠졌던, 신앙적인 오해는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연단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고생과 근심만 주시는 분이라고 오해하지 말라(12)
본문에서 우리말로 시험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원어를 보면 두 가지 의미의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연단을 말하는 것이고, 마귀가 주는 시험은 유혹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연단은, 훈련하여 성장시키시려는 것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인정받으면, 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가 하는 유혹은, 넘어뜨려 망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빼앗고, 하나님과 원수 되게 만들기 위해 찾아옵니다.
본문 12절에서 말하는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를 고생시키기 위해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자녀가 미워서 자녀를 괴롭게 하려고, 학교에 보냅니까? 아닙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도록 교육하기 위해서, 학교에 보내는 것입니다.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사단이 주는 유혹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성장 성숙시키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훈련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교인들 중에는 고생하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 장로는 그들에게 속지 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과정을 통과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도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고생하고 근심하며 괴로운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3: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하시고 욥23:10절에서도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십니다.
2. 사단의 유혹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악에 빠뜨리는 분이라고 오해하지 말라(13-15).
간혹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자신이 죄를 범해놓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곳으로 밀어 넣었다고 막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만드시거나, 우리를 죄 가운데로 밀어 넣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기에 무엇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결정하여, 행동하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선택의 의지가 있다는 것은, 책임도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도, 죄를 범하는 것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도, 마귀의 뜻을 선택하는 것도,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악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마귀에게 돌리거나,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마귀의 시험에 들어놓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합니다. 자기가 시험에든 것은 다른 사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부모 탓을 하기도 합니다. 목사 탓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는 다른 교우 탓을 하기도 합니다.

혹시 다른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들었어도,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시험의 드는 것은, 하나님 때문에도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에도 아니고, 자기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돈의 유혹으로 믿음이 떨어졌다는 것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시험에 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는 말은,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경고하십니다. 결국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시험에 들게 되면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면 사망의 쓴맛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라고 오해하지 말라(17).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에 살던 교인들 가운데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풍성하신 분이시지만, 자기에게 만은 인색한 아버지라고, 오해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풍성하시고, 넉넉하신 분이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늘 풍성하게 역사하시는데, 자신에게는 구두쇠처럼 인색하게 역사하신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그 오해를 말라고 하나님을 소개하는데, 1:17절에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온갖 좋은 은사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이시지, 어둠의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풍성하시고, 온갖 좋은 은사를 주시고,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풍성하신 아버지이신데,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는 신앙생활을 정말 빈곤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한 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인데, 광야의 말라비틀어진 초목처럼 비참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저는 두 가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오해해서 그렇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고 싶어도 하나님께서는 좋으신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니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지만, 믿지 않으면 영생은 없습니다. 믿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나님의 창고에 가득 채워놓고 우리가 믿음을 갖고 구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로 연단을 받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창고에 있는 선물들을 풍성하게 받아 누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과거의 경험이나, 자신이 처한 환경 등을 바라보고, 주저앉아 믿음을 포기 하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니 받지 못하는 것이요, 받지 못하니 누림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푸십시오. 딤전6:17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8:32에서는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은사(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둘째는 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2~3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온갖 좋은 은사를 주시는 분입니다. 온전한 선물을 예비하시고 우리들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창고에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온갖 보화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풍성하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담대한 믿음으로 필요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구하십시오.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임하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분이라고 오해하지 말라(17).
우리는 주변에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도 그런 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17절에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하십니다.

도한 히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소개합니다. 분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신 변덕스러운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변하시는 분으로 느껴 집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전에는 온갖 좋은 은사를 주시더니, 이제는 환란과 시험을 주시는 분 같습니다. 전에는 말씀도 잘하시더니, 요즘은 삐지셨는지 전혀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태양은 어제처럼 오늘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내일도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떠서 서족으로 집니다. 그런데 하늘에 구름이 끼면 태양은 보이지 않습니다. 구름이 없어도 우리가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태양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양이 변한 것이 아니라. 구름이 태양을 가린 것입니다. 태양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양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교통이 잘 되었는데, 지금은 어려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는데, 이제는 고난만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하나님을 가리는 구름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내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그늘 속에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까?

예를 들면, 탕자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고생한 것이지, 집에 있는데 아버지가 변해서 고생한 것이 아닙니다. 탕자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집에 계시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5. 하나님은 나를 하찮은 존재로 만드셨다고 오해하지 말라(18).
고난의 세월을 많이 보낸 사람들 중에는,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고보서를 받아보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단과 시험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분이라고 하나님의 존재만 의심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사랑 받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야고보 장로는, 18절에서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확신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시각을 바꾸십시오. 내 눈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도 주관적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가장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자기의 가치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가치만큼 인정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