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주님과 회복, 요 20:19-21
부활하신 주님과 회복, 요 20:19-21
이 시간에는 부활하신 주님과 회복,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고난 주간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고. 우리에게 의롭다 하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저녁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평강을 주셨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켜주시고 싶으신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두려워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는데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왜 문을 닫고 있었을까요?
♣19절에 보면,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두려움 가운데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6절에는 8일 후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도 역시 제자들은 문들이 닫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이말 씀은 주님이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평강과 담대함을 회복시켜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히브리어로는 샬롬 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의 내면의 평강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오늘은 내면의 평강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왜냐면 제자들은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면의 평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평강은 사실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다윗은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서는 아주 용감하고 담대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보면 심각한 상황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버지의 첩들과 대낮에 동침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군사를 동원해서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다윗은 시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나온 신앙의 고백입니다.
♣시편 3:6에.“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때 지은 시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놀라운 평강입니다. 대단한 담대함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담대함과 평강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앞 절 시편 3:5을 보면.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다윗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잠도 잤고 이제는 일어나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 여호와께서 자기를 붙들고 계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만큼 하나님과 화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화목하면 내면의 평강이 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두려움으로 떠는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 어떤 사람, 어떤 질병, 어떤 문제를 만나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안하므로 내면의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내면의 평강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2. 슬퍼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감정이 절망감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믿고 따랐던 주님께서 허망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그들의 마음이 슬픈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시자 제자들은 슬픔이 치료 되었고 기쁨이 회복 되었습니다.
♣20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비시고 그 다음으로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마음에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사61:3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셔서 예수님께서 하게 될 일들 중에 일부를 말씀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시고 그 재를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고 슬픔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을 입히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슬픈 자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슬픈 자에게 기쁨을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 해야겠습니까? 당연히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전5:16-18에.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 보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세 가지가 나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항상 기뻐하라 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평강을 회복하는 비결이 하나님과 화목이었던 것처럼 슬픔을 이기고 항상 기쁘게 살 수 있는 비결 역시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다른 말로는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희락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기쁨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할 때 슬픔이 있는 사람에게 기쁨이 회복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증거 중에 하나가 쉬지 않는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하면 기쁨이 회복됩니다. 요한복음 16:24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하십니다. 기도하면 기도 응답을 받고, 기도 응답을 받으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니 기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성령 충만으로 기쁨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3. 사명을 버린 자에게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사명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잃어버린 사명을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21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주님의 대리자로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사명이 회복 되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도 자신들의 사명을 내팽개쳤습니다. 요한복은 21장에 보면, 7명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니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자”라고는 갈릴리로 가서 배에 올랐습니다.
♣그 날 밤에 그들은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시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자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습니다.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구운 생선과 떡으로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아침식사 후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또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주님께서 세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세 번째 물으시니 베드로가 근심하여 대답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베드로가 버린 목양의 사명을 말씀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사명을 잃어버린 베드로가 사명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위하여 삽니다. 사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보편적인 사명이 있고, 각 개인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사명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사명 중에서 중요한 것 4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➀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예배하도록 지음을 받았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배 자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마귀는 세상 권력으로 예배를 막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➁중보(도고)기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중보기도 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와 열방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가정과 사역자들과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 사역자들입니다.
➂전도와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우리는 이웃과 민족과 북한과 세계와 열방에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➃섬김입니다. 마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섬김의 삶을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각각의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명
♣사람이 방황하는 인생을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명을 발견하지 못해서 방황합니다. 둘째는 사명을 발견했으나 사명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기 때문에 방황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사명대로 살려는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으나 무엇이 사명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명이 무엇인지 몇 가지만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➀부르심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라고 부르시면 그것이 사명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이 사명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입성과 정복이 사명입니다.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사명입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힘을 써야 하고 기도에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➁직분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목사는 목회의 사명이 있고,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목회를 보조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장로는 담임목사를 도와 교회를 치리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직분을 받았습니까? 직분을 받은 그것이 사명입니다
➂능력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가졌다면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그게 사명입니다.
➃관심사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남달리 내게만 더 관심이 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유독 내 관심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 사명입니다.
➄아픔 속에 사명이 있습니다. 아픔을 많이 격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청소년기에 너무나 힘들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자기처럼 어려운 학생들을 위하여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의 학비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주님은 두려워하는 자에게 평안을 회복시켜주시고, 슬퍼하는 자에게 기쁨을 회복시켜주시고, 사명을 버린 자에게 사명을 회복시켜주고 싶어 하십니다. 부활 주일 맞이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회복 하셔서 삶속에 평강과 기쁨으로 사명 감당 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