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 엡 5:8~10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 엡 5:8~10
이 시간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삽니까? 예수 믿는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간단하게 정리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9절에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고는 본문10절에서“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험하여 보라’는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당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전 10:9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광야생활 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여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도 사도 바울이 한 말씀 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주었고, 본문에서는 주를 시험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시험에 관한 말씀을 우리말로만 보면 모순처럼 보입니다만 성경의 원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할 때의 ‘시험’은 ‘유혹하다’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할 때의 ‘시험하다’는 ‘증명하다, 입증하다’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찾아내 증명해 보이라’는 의미로 받아드리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1. 믿음입니다.
♣히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조건 중에 하나라는 말 입니다.
♣존 칼빈은. “믿음이란 저수지 물을 집으로 끌어다 주는 수도관과 같다. 즉, 하나님의 보물을 지구에 날라다 주는 수송 파이프인 것이다”라고 말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예비해주신 모든 복이 믿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도 믿음으로 받고, 치료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축복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믿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구원의 믿음입니다.
구원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구절은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둘째, 생활의 믿음입니다.
♣내가 삶 속에서 복음을 누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에게 나타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커밍 워크라는 사람은 성공의 요인을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①머리가 좋아야 하며, ②지식이 있어야하며, ③기술이 있어야 하며, ④태도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인 중에서 성공에 93%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태도’라고 했습니다. 태도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는 태도를 믿음이라고 봤습니다. 믿음은 바로 태도입니다.
♣성경에서 커밍 워크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사건 하나 소개합니다. 민수기13장에 나오는 12정탐꾼들의 정탐 사건입니다. 거기서 믿음의 차이가
가져온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동일한 땅을 봤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이 너무나 좋은 땅이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장대하여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말대로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의 풍부함과 가나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장대함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돕고 계시기 때문에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사람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백한대로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과 여호수아와 갈렙은 각자 자신의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
♣믿음을 갖게 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롬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들음은 믿음을 줍니다. 그래서 무엇을 듣는 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2. 예배입니다.
♣시69:30-31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황소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라고 선포하는 공식적인 모임이 무엇입니까? 예배죠. 하나님은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창 15:6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할 수 있었는데.
①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수준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행함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②예배자의 삶입니다. 창 13:18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성경의 기록만 네 번이라는 말은, 그의 삶은 제단을 쌓는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예배를 삶의 우순순위에 두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다는 증명입니다. 시 50:5에“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하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의 희생제사로 하나님과 언약관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모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언약관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노아는 홍수 때문에 1년 넘게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방주 생활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노아는 집도 지어야 하고 양과 염소를 위한 우리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위하여 밭도 갈아야 하고 할 일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모든 일을 뒤로 하고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의 삶이 이래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배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배가 우선순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외교, 국방이 무너지고 가정과 사업과 개인이 무너질 때,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은 하나님과 나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질 때 거기서부터 오만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가 중요합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창 5:24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 11:5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하십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하늘로 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믿음 때문이고,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으로 증거 되었습니다.
♣동행한다는 말은 ‘함께 걷는다’, ‘함께 산책 한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아무런 거리감 없이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격적인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은혜로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행하려면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든지 하나님이 땅으로 내려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지 않는 이상 하늘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기 위하여 하늘보좌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와 동행 하십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②믿음으로 동행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 하나님”하며 하나님을 불렀고 동행했던 것입니다.
③변함없이 동행해야 합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3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환경의 변화가 있었겠습니까?
♣300년 간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경험했겠습니까. 실패도 했을 것이고, 슬플 때도 많았을 것이고, 답답할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에녹은 언제나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에녹처럼 변함없이 해야 합니다.
잘될 때는 하나님 찾다가 문제가 좀 있으면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에.녹은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④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유다서14~15절에 보면 에녹은 노아시대에 있게 될 홍수 심판만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에녹은 마지막 때를 바라봤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이 원하는 대로 막 살 수가 없었습니다. 에녹은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이 시대는 종말의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말에 대한 개념 없이 육신적인 일에 몰두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녹처럼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⑤뜻이 일치해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암 3:3에.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뜻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과 뜻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진리인데, 인간의 뜻은 비진리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조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한 뜻으로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든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에녹, 노아,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면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시 37:4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승패는 많은 물질, 좋은 직장, 큰 사업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 예배로, 하나님과 동행 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므로 복 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마 경훈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