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행 3:1~10)

공 상희 2020. 10. 4. 06:17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행 3:1~10)

 

이 시간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라는 제목입니다. 사람이 앉은뱅이로 산다는 것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소설가요 초등학교 교사인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인간승리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의지와 용기로 장애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말이 그렇지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의 제목과 같이 팔다리가 없는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하겠습니까?

 

오늘 읽은 본문에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으니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요즘 같으면 휠체어라도 타고 다니겠지만 당시에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죽기를 구했겠지만 죽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가 살기 위해서 한 일은 구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 미문에서 베드로를 만나 예수 이름으로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앉은뱅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이제까지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구원과 승리와 영광스런 복을 주셨건만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떻게 일어나 걷고 기뻐 뛰고 찬송하며 살아가는 정상적인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갈망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3절에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그래서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절)았습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돈이었습니다. 2절에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한 것을 보면 그는 출석은 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이 땅의 것이라면 진정한 신앙은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십니다. 신앙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습1:6에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하셨습니다.

 

마6:24에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하는 찬양이 있듯이 우리의 소망하는 것이 잘못되어 있다면 은혜의 초보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렘2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세상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삶의 패턴에서 스스로 결박을 풀고 나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제가 무엇에 매였는지 무엇에 미혹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결박에서 헤어 나오게 해주세요.” 자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문제를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라도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과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2. 교회생활의 기본이 잘 되어야 합니다.

 

3-5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나를 보라 하지 않고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겸손일까요? 사역의 협동성을 보여준 걸까요? 상대의 관심을 끄는 화법일까요? “우리를 보라” 상대방으로서는 얼마나 애매한 말입니까?

 

비약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거기서 교회를 봅니다. 베드로와 요한 불과 두 사람이지만 최소 단위로서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셨습니다.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 이 두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에게 소망을 주었겠습니까? 그들이 아니면 누가 그의 손을 잡아줍니까? 예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두 사람에게서 치유의 말씀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소망이 나옵니다.

 

여기서 교회생활의 기본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교회 없으면 누가 진리를 보존하고 가르칩니까? 교회가 없으면 어떻게 신앙이 유지되고 발전됩니까? 그리고 교회에 예배가 없으면 어떻게 양들을 보호하고 양육할 수 있겠습니까?

 

비대면예배라는 것은 없습니다. 감염을 피한다는 이유로 몇 주 몇 달 이러다가 수도권은 1년 2년도 갈 것 같아요. 이렇게 교회 못나가면 나중에는 그것이 편리하게 느껴지고 습관화되어 허울은 교인일지 몰라도 속은 이미 세상사람 되고 말 것입니다. 50%는 불신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서운 사탄의 시험입니다.

 

수도권 교회들은 10부 예배를 드려서라도,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하면 주변 도로에라도 서서 예배해야 합니다. 한 주일에 한 번 이상 개인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기 운동이라도 펴야 합니다. 우리 몸도 드려져야 합니다. 마22:37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교회생활 소홀하고 영혼이 잘된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한 것처럼 교회는 여러분에게 은금은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나고 걷고 뛰며 춤출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 잘하시기 바랍니다.

 

3.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외친 후에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 것은 그는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몸도 굳고 마음도 굳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라 해서 일어날 사람이 아닙니다. “베드로님, 저는 안되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데다 몸이 바위처럼 굳었습니다.” 그럴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오른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믿음생활이 잘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잘되고 적성에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복하면 습관이 생기고 습관은 적성을 낳습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들여 기도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의 인체는 하루만 순종해도 그 리듬이 어김없이 다음날 나타납니다. 오늘 몇 시에 일어나면 다음날 그 시간이 되면 깨집니다.

 

신체리듬이 놀랍습니다. 며칠만 힘써 하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우리 몸도 마음도 돕습니다. 저도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새벽기도하지만 습관화되어서 그 시간이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4:7) 했습니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지 말고 강제로라도 힘써 반복하면 여러분께서도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4. 더 아름다운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는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신체적 결함이 있으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른 사람과 같이 마음껏 성전에 들어가 춤추며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지 못합니까?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주신 더 아름다운 특권을 모르거나 적용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용서와 거룩과 능력과 축복과 영광과 권세를 주셨음을 믿고 늘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엡1:3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 사람은 성전 미문으로 들어가 희열에 넘쳐 경배하는 거룩한 성도들의 모습을 수십 년을 보아왔습니다. 10년 전에도 보았고, 어제도 보았고, 오늘도 보았습니다. 성전 안에서 삶에 대한 마음의 연습은 수천 번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누리는 연습을 날마다 하셔서라도 온전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저도 오랜 세월 동안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며 믿음에 서고 또 써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해와 같이 빛나게 사는 것을 시기하여 무슨 상처라도 입혀서 웃음을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그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찬송하고 그래도 감사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며 해처럼 빛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으니 앉은뱅이 신자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 이상 세상 것에 관심 갖지 말고, 늘 아름다운 믿음을 갈망하세요. 그리고 교회생활 잘하면서 그 가르침에 충실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를 믿는 믿음을 늘 연습하고 훈련하여, 천국의 은혜 가운데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