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았으면 이렇게 살라 창세기 47장
구원받았으면 이렇게 살라 창세기 47장
이 시간에 구원받았으면 이렇게 살라,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창세기 47장은 야곱의 일가족이 7년간의 기근으로 가나안에서 굶어 죽을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기근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신 이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야곱과 그의 자손들의 구원은, 성도의 구원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야곱족속의 구원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요셉의 공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공로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럼 야곱 일가가 흉년에서 구원을 받은 후에, 어떻게 했는지를 통해서 구원 받은 성도가 구원을 받은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세상과 구별되게 살라.
♣그리스도인은 주변 상황을 초월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가는 길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멈춰야 합니다. 모두가 원치 않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가야 합니다. 그게 거룩이고 구별입니다. 우리는 세상과는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본문 1-6절에서, 요셉이 자기 형 다섯 명을 애굽왕 바로 앞에 인사시키면서, 형들에게 대답할 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바로 왕이 형들에게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종들은 목자입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그런 대답을 하게 한 것은, 야곱의 가족을 애굽과 구별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가증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왕이 야곱 일가의 직업이 목축이라는 것을 알면, 바로는 그들을 애굽 사람들과 분리시킬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요셉의 예상대로 바로는, 야곱 일가를 고센에 살게 해주었고, 야곱 일가는 요셉의 의도대로 애굽 사람들과 구별되게 된 것입니다.
♣야곱 일가가 애굽 사람들과 구별 된 장소인, 고센에서 살게 된 것은, 영적인 비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 되게 살아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떨어져 살라는 말이 아니라, 언행심사가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최소한 세 가지 힘이 있어야 구별 된 생활이 가능합니다.
➀자생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 혼자 떨어져도 홀로 설 수 있는 신앙의 능력입니다. 교회나 목회자로부터 은혜를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영적인 자가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영적 자생력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요셉은 자생력이 충만했습니다. 종살이, 옥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요셉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자기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자생력이 있었습니다.
➁공생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생력만으로는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생 력도 있어야 합니다. 가정생활도, 교회생활도, 사회생활도, 공생력이 강해야 행복하게 은혜롭게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공생력이 강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구별시키신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영적 공생 력이 있어야 합니다.
➂은혜력 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요셉이 세상과 달랐던 것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거나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사야 49:15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하십니다.
♣어머니는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곳에 있어도 어머니의 마음은 젖 먹일 자식에게 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는 자식을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생력이 강하고 공생력이 뛰어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날은 심각한 영적인 병을 앓고 있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참 희한하게 흘러갑니다. 국회의원들이 동성애를 합법화한다고 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역차별적 법안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이것을 막았는데, 이제는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에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의 힘이라는 당이 막아내겠습니까?
♣전투력도 없고 또 그럴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변수가 있으니 결과는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변수를 기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별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행심사가 달라야 합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달라야 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야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2. 복의 통로로 살라.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 받은 후에는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아야 하고, 세상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세상을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문을 잘 못 이해하면, 애굽 때문에 야곱 일가가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애굽에 곡식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이 그곳에 가서 먹을 것을 얻게 되고 고센 땅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니 애굽 때문에 야곱이 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야곱 때문에 애굽이 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미리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유대민족의 보존을 위하여 기근을 대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본문 7-10절을 보면, 야곱이 바로 왕 앞에 서서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대화를 나눈 후에 다시 축복했습니다. 이게 놀라운 일입니다. 야곱은 애굽사람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목축업자입니다. 130세의 힘없는 노인입니다. 애굽 왕이 야곱을 볼 때, 야곱은 초라한 노인에 불과합니다. 바로는 야곱에 비하면 온갖 영화와 위엄을 다 갖추고 높은 보좌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는 막강한 권력자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바로 왕을 보고 축복했고 헤어지면서 축복했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바로가 높은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야곱이 높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7:7에.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하십니다. 야곱은 바로가 보기에는 하찮은 존재인지 몰라도 야곱이 바로 왕을 축복했습니다. 바로 왕이 야곱에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축복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말은, 우리가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큰 사람은 남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축복으로 세상에 복을 주십니다. 잠언 11:11을 보면.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하십니다. 도시는 의로운 사람들의 축복으로 진흥합니다. 그리고 악인의 입으로 망합니다. 가정과 사업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축복해야 합니다. 성읍은 도시를 말하고, 국가를 말하고, 공동체를 말합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진흥합니다. 그래서 국민은 국가를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중보기도와 한라에서 백두까지 사역은,
대한민국을 축복하는 귀한 사역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축복해야 하고, 부부는 서로 축복해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축복해야 하고, 교회는 세상을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합시다. 요즘 그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축복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4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세상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고 핍박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국가권력과 언론이 총동원되어 교회를 핍박하는데, 그게 망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축복의 통로이지만, 잘못하면 저주의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것입니다. 이런 심판은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도 권력자도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얼마나 축복된 곳인지 모르기 때문에, 교회를 핍박합니다. 세상이 교회 때문에 복을 받는데 그걸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붙어서 세상으로부터 얻어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사실을 알고, 신앙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경력을 자랑할 것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종살이 옥살이가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어디 가든지 복덩어리였습니다. 항상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일할 때는,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또 감옥에 갇혔을 때는,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요셉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꿈 해석대로 전직을 회복되었습니다. 요셉이 축복의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국가 경영을 너무 잘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다 굶어죽을 뻔했는데, 요셉이 살렸습니다.
요셉 때문에 애굽 모든 백성들은 생명을 유지하고, 짐승도 지키고,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어디에 가든지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 때문에 세상으로 복이 흘러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거룩해야 하고 둘째, 축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룩하게 사는 것이 어려울까요? 축복하며 사는 것이 어려울까요? 거룩하게 사는 것이 어려울 것 같고, 축복하는 것은 쉬울 것 같은데 사실 축복도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5:44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하십니다. 하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도해야 합니다. 원수도 축복하고, 국가의 지도자도 축복하고, 가족도 축복하고, 우리끼리 서로서로 축복합시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합니다.
3. 천국 소망으로 살라.
♣27-30절에 보면 야곱이 요셉을 불러서 자기가 죽거든 애굽에 묻지 말고 반드시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유언 합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아무리 인정받고 높아지고 부귀를 누려도 애굽은 자기와 후손이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은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좋은 일이 많아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많이도, 결국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소망으로 모든 것을 해석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죽음도 천국 소망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슬픔이죠. 왜요? 죽음 후에 영원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죽음은 기쁘고, 희망입니다. 왜 그렇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 때문입니다. 성도는 죽음 후에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도 기쁨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상이나 인정도 천국 소망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지만, 이 세상에서 보상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마땅히 칭찬 받아야 할 일을 했는데, 칭찬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천국 상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의를 행하거나, 구제하거나, 기도하거나, 금식할 때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상을 잃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의를 행하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면 하늘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언행심사를 하늘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도 천국 소망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 세상길은 나그네 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천국에 소망을 두시고 인내하며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이 시간에 그리스도인은 구원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세상과 구별 되게 살고, 복의 통로로 살고, 천국 소망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복 주시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