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고 공경하라 (엡 6:1-3)
순종하고 공경하라 (엡 6:1-3)
이 시간에 “순종하고 공경하라”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전에는 어머니날만 있었는데, 1974년부터 어버이날로 바꾸어 지키고 있습니다. 대단히 잘한 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6:2)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5월 두 번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조류 중에 모성애가 가장 강한 것은 펠리컨이라고 합니다. 펠리컨은 부리가 커서 자기 몸체만한 새도 잡아먹는 새로 유명한데 펠리컨의 새끼 사랑만큼은 어떤 새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펠리컨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이고,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끼에게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성애 혹은 모성애입니다. 그런데 자녀 된 우리들은 부모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할 때마다 항상 죄송할 따름입니다. 한 부모가 열 자녀를 먹여 살려도 열 자녀는 한 부모를 거들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본능적인 인간의 사랑은 내리사랑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6:1-2)
이 말씀에서 효도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발견합니다.
1.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1-2절에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문법상 명령형입니다. “공경하면 좋겠다.” 권유형도 아니요, “공경해 볼래?” 의문형도 아니요, “공경하는 것이 좋을 거야.” 선택형도 아닙니다. 의무? 그 걸로서도 부족합니다. 성경은 부모공경을 오직 명령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령에는 단순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이유를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할 때와 같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밥상에 닭고기가 올라왔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이 닭고기 어디에서 났니?” 아들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 잡수시기나 하세요.” 이런 때 탈무드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이렇게 대답하는 아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교리적인 말이라기보다 교훈적인 말이지만 인간으로서 그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공경하는 아버지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랍비(교회지도자)가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를 귀히 여겼습니다. 가장 귀히 여기는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고, 다음은 믿음의 아버지인 랍비고, 그 다음이 육신의 아버지이지만 육신의 아버지를 향한 교훈이 그렇다면 다른 아버지는 어떠하겠습니까?
율법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출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7절에서는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잠30:17에서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했습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이 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에게 대항해서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부모공경은 명령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2. 효도는 옳은 일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 “옳으니라”는 말씀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실망시켰다고 이래도 부모를 섬겨야 하느냐고 상담하는 자식들도 있습니다. 누가 앙케트를 내어 조사했는데 질문은 “부모에게 만족합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절반 정도가 만족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아 부모를 공경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이유로든 부모공경은 옳은 일이라고 대답합니다. 히브리어에 “공경하라”는 이 말은 “카바트=무겁다.”라는 말입니다. 이 무겁다는 카바트는 ‘카베트=간, 간장’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 몸에 오장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이 간입니다. 우리 몸이 천 냥이라면 간이 900냥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그렇게 귀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훌륭한 부모만 공경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배운 부모만 공경하라.” “성품이 좋은 분만 공경하라.” “잘 할 때에만 공경하라.” “돈 잘 벌고 의무를 다할 때만 공경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잘못했을지라도, 공경할만한 조건이 없을지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을 만나 인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찾아다니다 지쳐서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데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고 눈이 아기처럼 맑은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무얼 찾고 있는가?' '위대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가르쳐 주지. 곧장 집으로 돌아가게나. 집에 당도하면 신발도 신지 않지 않고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을 걸세. 그가 바로 위대한 사람이라네.' 젊은이는 달리고 달려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과연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효자는 부모가 출입하지 못할 때 압니다. 잘 걸으시고 움직이면 모시려는 자식 있지만 걷지 못하시게 되면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한자의 효(孝)자를 보면 늙을 노(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가 있습니다. 아들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등에 업는 모습이 바로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노령에 피해 끼치지 않으려면 무릎 건강에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밭일하다가 무릎을 많이 상합니다. 병원비가 더 많이 들어가니 소소한 일은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손자들 업다가 무릎을 더 많이 상합니다. 무릎만 상하는 게 아니라 척추수술까지 합니다. 어느 분은 아이 한 주간 봐주다가 둘이서 척추수술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고 아끼시기 바랍니다.
3. 효도는 잘되는 길입니다.
2-3절에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옛날에 어느 왕이 한 지방을 방문했는데 그 지방에 왕을 보고 싶어 하는 한 노모가 있었습니다. 그 노모의 아들이 효자인데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아들은 노모를 업고 수십 리 길을 걸어서 왕의 행차를 보게 했습니다. 그것을 본 왕은 노인을 업은 효자의 효성에 감동하여 후한 상을 내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한 불효자가 왕의 상을 노리고 원치 않는 노모를 업고 돌아오는 왕의 행차를 구경하는 척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에게도 후한 상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그걸 본 동네 관리들이 그 자식은 불효자인데 상을 노리고 흉내 내는 것이니 벌을 내리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상을 주니까 나중에 진짜 효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 효도하면 복을 주실까요? 육신의 부모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잘 공경하면 복 주신다는 것을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보여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문제가 안 풀립니까? 하나님 공경, 부모 공경 문제에서 걸리지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비타민 박사로 유명한 황성주 박사가 있습니다. 황박사는 효도와 장수에 관한 의학적인 이유로 정신적인 안정과 면역증대를 꼽았습니다. 부모의 존재와 사랑은 어떤 스트레스라도 이길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장수하는 분들을 보면 대개 나이든 노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뿐일까요? 가족의 정신적 신체적 정보는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부모를 공경함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한 설명이지만 그래서 만이 아니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을 성경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사화복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듯이 그대로 믿어도 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 탈무드에도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영국 속담에도 “하늘이 무너져도 효자에게는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효자에게 복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도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연습이다.”라고 했습니다. 독일 속담에도 “부모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친구로 삼지 마라.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했습니다.
공경이란 단어는 구약에 딱 4번 쓰였습니다. 하나님께 2번(잠3:9;사24:15), 그리고 십계명에서 부모님께 공경하라는 말씀이 2번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잃는 다는 것은 세상의 거대한 세파를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방패 하나를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정신적인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 얼마나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축복입니까?
성경에도 아비의 허물을 덮은 셈과 야벳은 자손만대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허물을 누설하고 부끄럽게 한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효성 많은 자부 룻을 보세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잘했더니 이스라엘에 가장 찬란했던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부모와도 좋은 관계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믿음이 자랍니다. 지상에서 다 받지 못한 것은 하늘의 상으로 받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부모를 변함없이 한가지로 받드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도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 깊이 기억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 잘 공경하여 가장 사랑 받고 잘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