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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의 영적각성, (벧전 4:7-11)

공 상희 2020. 5. 2. 15:08

마지막 때의 영적각성, (벧전 4:7-11)


이 시간에 마지막 때의 영적각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요즘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전 세계로 급속히 번지고 있습니다. 그 일로 세계 모든 나라가 국경을 폐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환자가 30~40여명 일 때, 별것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우리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된 어느 사이비집단으로,

말미암아 대구 경북지역에 수 천명을 전염 시키고, 전국으로 확산 되었으며, 온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특별히 자기 집단만 감염 된 것이 아님을 희석 시키려고, 전국 교회로 흩어져서 예배에 참여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러 모로 기도할 제목이 많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의사협회는 경고하기를 '이 모든 것은 초기대응의 잘못이라. 위기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나라의 문을 통제하라. 통제하지 않으면,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 했는데, 이 정부는 아직도 마이웨이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령한 눈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전쟁입니다.

마지막 때는, 더욱 천국이냐, 지옥이냐, 사느냐, 죽느냐, 치열한 영적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때는, 믿음 지키기 참으로 어려운 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육신으로는 곧 끝날 것 같고, 곧 평안하고 안전할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멸망의 구렁으로 끌고 가려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시험의 때입니다. 이런 때를 위하여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이 바로 본문입니다.


마지막 때 우리가 각성할 것은 무엇일까요?

1.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하십니다. 왜 정신을 차리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그 만큼 정신 차릴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는, 시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사탄의 수법들이 교묘해서 영분별의 은사가 없이는, 다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뜨거운 물에 넣은 개구리는, 뛰쳐나오지만, 서서히 온도를 높인 개구리는 죽고 말 듯이, 많은 사람들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세속적, 정치적, 이념적, 깊은 시험 가운데로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도, 하나님의 종들은 위기가 다가옵니다. 피하시기 바랍니다. 했지만,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눅17:26-30,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는 노아시대만큼, 아니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나 음행 죄는 있었지만, 노아, 소돔시대란, 음란이 보편화되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를 말합니다.

이시대도 유흥 산업의 발달, 이 정도는 보통이고, 우리나라도 유럽을 닮아가, 유치원 초등학교에서까지 동성애와 남녀 성관계를 가르치고, 서로가 원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까지 가르쳐서 장려하는 모습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음란이 보편화되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슬람의 확산입니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이슬람사람들이 전 세계로 이민 가서 세계를 이슬람 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소수일 때는, 한 없이 유순하다가, 국민의 5% 10%만 되면, 국가를 절단내버리는, 악한 집단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이슬람교가 자기 신의 이름을 알라라 하지 않고,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으니 속지 않도록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공산주의 위험입니다. 미국의 폼페오 국무장관이 은밀한 중국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공개했듯이, 인구와, 돈과, 미인계를 이용한, 보이지 않는 중국의 검은 손길이, 온 세계를 향하여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인물의 크기에 따라, 미인계를 통해 수십억 수백억씩 주면, 안 넘어갈 사람이 없습니다. 미국도 이것 때문에 골치 꺼리입니다.

 

우리나라도 중국화의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정부가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과 친하되, 중국처럼 토지공개념하자고 부르짖는데, 그건 사유재산을 포기하는 재산국유화입니다.

 

그리고 총선 끝나고 종교는, 중국 삼자교회처럼 설교도, 국가가 하지 말라는 설교는 하지 못하게 되고, 언론의 자유도 통제하겠다고 합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잘 분별하시고, 국민의 권한을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사회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과는 기독교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뿐 아니라. 평화만 외치는 거짓선지자들의 활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하나님의 참 종들은, 미래를 경고하고 피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모여든 이스라엘 청년들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강단에서 아무렇게나 통일만 되면 된다고, 평화를 외쳐대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5:15절 말씀처럼, 지막 때에는, 사랑 없어 피차 물고 먹다가 멸망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마24:10-12"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하십니다.

교회도 옛날 같지 않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다투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는 교회라면, 아주 복되고, 귀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랑을 하되 덮어주는 사랑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마지막 때는, 공개하고, 까발리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랑의 눈을 가져야지. 어설프게 배워 율법의 눈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사랑 없는 비판은, 또 다른 비판을 낳습니다. 상처는 상처를 낳고, 그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재생산합니다. 세상이 흉악해질수록, 누구와도 서운한 관계 만들지 마시고, 주의 이름으로 용납하고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6, 25사변 한국전쟁이 비극인 것은, 동족 끼리 싸운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이웃 사이에도 싸움을 붙인 원수 갚는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한도 인민공화국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날마다 학습이다 뭐다 불러내가지고, 서로 비판하게 하면서 원수를 맺어 서로 앙갚음의 인민재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모함하면, 그 화살이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탈북민들에게 들어보니 지금도 북한학교에서는 그런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소 사랑을 베풀던 사람들은, 누가 보증을 서서든지 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세상을 사는 지혜요, 마지막 때를 사는 지혜입니다.

 

3. 더욱 지혜로우시기 바랍니다.

9절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예루살렘 교회에 원망이 있었습니다. 제자가 더 많아져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빠지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많아지고, 일군은 적고, 각국에 흩어진 사람들이 모여온 관계로, 헬라 파 사람들을 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집사들을 세워 그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게 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성탄절을 맞이하여 지역교회 대표자들이, 그 면의 공공기관에 선물을 하기로 결의했는데, 그 대상에서 면사무소를 뺐습니다. 다른 기관보다 형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시험 든다. 구제도 아니고, 선물인데 빼면 기분 좋겠느냐?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면장이 화가 잔뜩 나가지고 퍼부어 댑니다. 괘씸하게 생각하게 되면 큰 결과를 불러옵니다.

 

대접을 안 하면 안 해도, 원망은 듣지 않아야 합니다. 소외된 계층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원망의 습관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원망부터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은 이유가 원망이었습니다.

원망은 불뱀처럼 나타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멸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약5: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하십니다.


4.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하십니다. 왜 말세에 은사를 강조할까요?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길 능력을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중세기에도 신비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 그들을 통해서 영혼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실망하기 전에, 하나님께는 무슨 방법이 있든지 있을 것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란 말씀은, 은사가 서로 다르다는 의미와 함께,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이고, 교회고 마찬가지입니다. 목사하기도 어렵고, 장로하기도 어렵고, 성도하기도 어렵습니다. 말세가 되면 힘 있는 사람이 다 장악하려고 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헌법을 위반하면서, 실세들이 등장하면, 그것이 그 집단의 종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5.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11절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말세의 교훈에, 이런 교훈이 주어진 것은, 자기가 부각되는 순간, 그 인생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써주신 것을 감사해야지, 내가 했다거나,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면, 그것이 그 인생의 끝입니다. 예를 들면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다가 충에 먹혀 죽었습니다. 느브삿네살 왕도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다가 7년을 야수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모든 영광 하나님께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온갖 전쟁과 난리의 소문도 있고, 한편으로는 평안하다. 안전하다. 세상 돌아가는 줄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성도는 말세에 이를수록, 각성해야 합니다. 사단에게 속지 않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 신랑으로 맞이할 정결한 신부가 되기 위해 베드로가 교훈한 대로, 정신 차려 깨어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며, 지혜롭게, 받은 은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생활로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