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 (마 11:11)

공 상희 2019. 9. 7. 10:58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 (마 11:11)


마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이 시간에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오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례요한입니다. 본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한 사람, 메시야의 앞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 그리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받은 사람,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던 겸손과 충성의 사람 등 세상에서 세례요한보다 큰 사람은 없습니다. 폭군 헤롯도 세례요한 앞에서는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천국 백성으로서 기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엄두도 안 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세례요한보다 더 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나는 사라지고 우리 안에 세례요한보다 더 크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가능합니다. 고전1:30에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려면


1. 율법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마11:11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여기에 큰 사람이 되는 힌트가 나타납니다. 한 마디로 세례요한이 율법과 선지자의 모습이듯이 그러므로 율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율법적이라 했을 때는 정죄의 기능을 말합니다.


이처럼 용서의 복음을 알지 못해 자기를 정죄하고 미워하고 벌하는 사람은 절대 클 수 없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사망과 절망과 실패와 어두움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려 하면 섬기려 할수록 더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내 죄와 허물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하심과 같이 자기를 용납하세요. 용서하세요. 그것이 복음입니다. 자기를 용납하지 못하면 어둠과 슬픔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하셨습니다. 나도 남도 함께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6:14-15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롬7:24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했던 것처럼 바울이 용서의 복음을 알지 못할 때 얼마나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까?


2.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마18: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당시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야 왕국을 기대했던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자리에서 권세를 떨칠 수 있을 것인지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출 때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낮추다”의 헬라어 '타페이노오'는 단순한 의미의 겸손이 아니라 멸시와 천대와 굴욕을 당하면서까지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른들 속에 어린이가 끼어 있다면 그 어린이는 모든 것에서 자기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른에 비해 힘도 못하고 지혜도 못하고 지식도 못하고 키도 못하고 나이도 못합니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어도 조금만 연하가 되면 상석은 꿈도 못 꾸고 심부름을 도맡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섬기는 가장 낮은 자로 여기고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대나라에서 발을 씻어주는 일은 종들만이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베드로의 눈에 예수님 하시는 일이 얼마나 못마땅했으면 “내 발도 씻기려 하십니까?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신 것은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세상 권세는 자기를 자랑하고 선전하고 어떻게든 정적과 싸워서 이겨야 높아지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반대입니다. 교회도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교회에서도 모범적으로 신앙생활하면서 늘 섬기고 사랑하고 전도하면 우리 교회에 일군이 나타났다 하고 그 사람을 크게 보고 대가 되면 높여주지만 자리를 탐하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다 하면서 도리어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섬김의 자리에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나이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날마다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낮춤이 아니라 섬김을 통한 낮춤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고통과 고민을 내가 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서 섬길 때 하나님께서 큰 은혜 주셔서 영적으로 크게 하여 주십니다.


3. 말씀을 가감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5:1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잘 달리는 자동차라도 작은 부속 하나만 고장 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믿음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말씀이라도 무시하고 소홀히 한다면 자랄 수 없습니다. 우리 몸도 어느 영양소 하나만 부족해도 병이 옵니다. 산소 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 효소 등 수 백 가지가 있는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치명적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크게 자라지 못한다면 무슨 이유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말씀은 있는데 기도가 부족하고, 어떤 이는 기도는 많은데 말씀이 부족하고, 혹은 찬송, 혹은 지혜, 혹은 충성, 혹은 사랑, 혹은 겸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4. 하늘의 상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마6:1-2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하셨습니다.


고전9:18에도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상 받을 생각해야지 세상에서 상 다 받아버리면 하늘의 상이 없습니다.


박용규 목사의 천국간증을 보면 “또 한국교회 지도자이면서 노회와 총회와 연회에서 싸우고, 교회를, 노회를, 총회에서, 교단을 찢고 분쟁을 일으키고 자기의 교권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세상에 조소거리가 되도록 하던 지도자들이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것도 보았다. 지옥에 교회를 괴롭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움직이던 집사, 장로, 권사들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천국 갈 준비해야 합니다. 근신하여 함부로 행하지 말고 예수님을 닮고 하늘의 상을 갈망하며 지상이 아닌 하늘에다 쌓으시기 바랍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몇 년 동안 수고해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공개하기 위해 지인들을 초청했습니다. 드디어 천이 벗겨지고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 예수의 손에 들린 저 광채 나는 유리잔을 보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붓을 들어 유리잔 부분을 뭉개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을 향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패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시선이 예수님의 얼굴에 집중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유리잔에 시선이 모아졌다면 그것은 제 의도를 벗어난 것이지요." 그는 유리잔이 예수님의 표정을 가리지 않도록 다시 그림을 그려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나는 사라지고 예수만 나타나야 합니다. 내가 나타나면 작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면 큰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이 아무리 커도 우리 인격과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우리가 더 큰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율법적이지 않고 복음적으로 용납하고 용서하며,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고 섬기고 사랑하며, 말씀에 편식하지 않고 다 믿고 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상을 위하여 이 땅에 쌓지 않고 하늘에 쌓아, 영적으로 잘되고 천국에서 가장 큰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