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신앙의 평행 수를 채우라. 이사야 26:1-4

공 상희 2019. 5. 26. 06:24

신앙의 평행 수를 채우라. 이사야 26:1-4

 

이 시간에 신앙의 평행 수를 채우라는 제목으로 은혜받겠습니다.

모든 믿는 성도는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적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다가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목적지가 천국인데, 목적지를 잘못 알아서, 엉뚱한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천국을 향해서 출항한 배와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의 항해 중에, 수많은 파도와 푹풍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파도도 견디지 못하고 신앙의 배가 침몰합니다. 어떤 사람은 폭풍을 만나도, 잘 견디고 천국 항구에 안착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배가 침몰하지 않고, 천국 항구에 무사히 입항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인생을 배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세월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세월호는 지난 2014년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였습니다. 그 사고로 304명의 무고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요인을, 저는 복원성 이였다고 생각 합니다. 배는 흔들의자처럼 파도와 바람에 흔들려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복원성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세월호에는 복원성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세월호가 복원성이 약화된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무리한 증개축과 평형수의 균형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평행수를 채우는 원리는 오뚝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오뚝이를 쓰러뜨리려고 하면 쓰러집니까? 아니죠. 오뚝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이것을 복원성이라고 합니다. 배의 복원성을 위해서는, 배 밑창 부분에 평행수를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호는 배에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하여, 평행수를 많이 빼냈습니다. 이런 원인들로 인하여 기울어졌던 세월호는 일어서지 못하고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배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평행수를 채워야 하는 것처럼, 신앙의 배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영적인 평행수를 채워야 합니다.

신앙을 견고하게 세우려면. 두 가지가 필요 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배를 침몰시키려고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파도와 폭풍을 극복하는 믿음입니다. 둘째는 신앙의 복원력을 위하여 우리의 내면에 채워야 할 영적인 평행수입니다.

 

1. 그럼 먼저 신앙의 배를 침몰 시키려는 파도와 폭풍들이 무엇인지 살펴 봅니다.

우리의 신앙을 침몰시키려는 파도와 폭풍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살펴 겠습니다.

 

1) 세상 염려

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염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염려할 일들이 많 만약 세상 염려를 물리치지 않으면, 세상 염려는 우리의 신앙의 배를 침몰시킬 것입니다.

 

세상 염려는 우리의 신앙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한 산 기슭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넘어져 있었습니다. 학자에 따르면, 그 거목의 수령은 약 400여년입니다. 그 거목은 약 400년 동안 열네 차례의 벼락을 맞았으나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무수한 눈의 붕괴, 무수한 광풍과 폭우를 만나고도 우뚝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목이 쓰러졌습니다. 원인은 갑충에게 먹혀 쓰러졌습니다. 작은 갑충들은 끊임없이 나무껍질로부터, 나무 심지까지 잠식해 갔습니다.

결국 400년을 버틴 나무는, 보잘 것 없는 벌레들에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세상 염려는, 벌레와 같이 우리의 신앙을 갉아먹고 무너뜨립니다.

염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를 돕는 분이시라고 확신한다면, 염려하지 않습니다.

2) 욕심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하십니다. 욕심이 뭡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더 원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 욕심이 죄를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은 사망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주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범사를 주님이 주신 것인가, 아닌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누려야 합니다. 주님이 많이 주시지 않았다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만족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욕심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돈 욕심에 주의해야 합니다. 13:22을 보면.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하십니다. 말씀이 기운이 막혀서 결실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재물의 유혹입니다.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배가 침몰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멸망한 원인이,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롯의 처가 소돔성이 멸망할 때, 소금 기둥이 된 원인은, 소돔성에 있는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뒤를 돌아봤기 때문입니다.

 

3) 고난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인생은 크고 작은 고난의 파도에, 끊임없이 부딪히는 것입니다. 고난은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경제적인 문제, 가족의 문제, 사람의 문제, 질병의 문제 등 다양하게 우리를 괴롭힙니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 전까지 고난은 계속 될 것이고, 언젠가는 믿음 때문에 심각한 고난도 받을 것이라고 예언 되어 있습니다.

14:6-9을 보면, 주님이 오시기 전에,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있을 것이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재난의 시작 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환난에 넘겨줄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순교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매를 맞아죽거나 목이 잘려서 죽고 있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성경을 가지고 있어도 수용소에 가거나 심하면 사형에도 처 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슬람권이나 북한만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대명사로 여기는 미국에서도, 믿는 자들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 존슨법이 있었습니다. 미국 존슨 전 대통령이 만든 법안입니다. 교회가 국가가 하는 일을 비판하거가 제동을 걸면, 세금을 매기는데 세금을 제하고 나면, 헌금의 약 20% 정도만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년에 1억의 헌금이 들어오면,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2천만 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을 없앴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성경에 동성애가 죄라고 하는 내용 등을 빼는 투표를 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 투표에서 결정이 되면, 성경을 사람들이 고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변개하려는 이 일에 찬성한 자들이 받을 화가 얼마나 클지 걱정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는, 차별금지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법이 통과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전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설교 중에 다른 종교를 비판할 수도 없습니다. 기독교만이 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는 성경의 예언이 서서히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파도를 만나도, 견고한 믿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4) 사람

신앙의 배를 쓰러뜨리려고 오는 파도와 폭풍 중에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2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하십니다. 말세 지말에 주님을 떠나고, 신앙의 배가 파선하고, 침몰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사람의 미혹입니다.

아담은 하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하였다가, 13년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 의해서 은 30에 팔렸습니다. 나와 교회를 망치는 것도 사람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합니다. 신앙생활은 사람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보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말씀으로 분별하여 믿음으로 사람의 파도를 이기시기를바랍니다.

 

2. 신앙의 복원력을 위하여 채워야 할 영적 평행 수들을 살펴 봅니다.

우리의 신앙의 배를 어떻게 하면 견고히 세울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울 평행 수는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어서, 흔들림 없이 만드시는 분입니다.

7장에 보면, 신앙의 집을 짓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이 내용만 보면, 마치 행함으로 신앙의 집을 짓고, 행함으로 구원의 여부가 결정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반석의 의미를 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단히 붙잡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단히 붙잡는 사람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파도와 폭풍에도 신앙의 복원력을 주는 영적 평행수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2) 성령 충만

고후 3:16~18에 보면.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하십니다.

모세가 수건을 벗은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려면,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주께로 돌아가는 방법이 뭡니까? 성령충만입니다. 고후3:17절을 보면. 주의 영이신 성령께서 자유함을 주십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것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면,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방법은 18절 마지막에 보니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입니다. 곧 성령충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3년간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영광을 봤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죽는데도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주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고 주님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의 신앙의 배는 침몰하고 말았습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베드로는 주님을 직접 만났으나, 물고기 잡으러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이후 베드로는 목숨도 아까지 않으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는 형벌 중에도 ,주님을 버리지 않는 담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신 성령님께서 그를 어떤 파도와 폭풍에도 견디는 신앙의 항해자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3) 종말론적인 신앙

다니엘의 신앙의 특징 중에 하나는,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다니엘은 그런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가면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는 영적인 평행수는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성경적인 종말론적인 신앙이란 어떤 신앙입니까? 다섯 가지가 충족되어야 성경적인 종말론을 믿는 것입니다.

죽음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사후의 세계를 믿는 신앙입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사람이 갈 곳은 두 곳 밖에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성경적인 종말론적 신앙은 천국과 지옥을 믿는 신앙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지구의 종말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세계는 불타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게 될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심판과 상급을 믿는 신앙입니다. 인류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는데, 이 세상에서 행 한대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 종말론적인 신앙을 확실히 가진 사람은, 인생의 어떤 파도에도 신앙의 배가 침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복원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4)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나지만,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좋으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만나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힘든 상대를 만나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어떤 문제도, 어떤 고난도, 어떤 사람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폭풍과 파도를 믿음으로 지켜내고, 신앙의 복원력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성령충만으로, 종말론적 신앙의 평행수를 가득 채우셔서 천국에 무사히 안착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마경훈 목사 설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