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아브라함의 복 (갈 3:6-9)

공 상희 2019. 3. 10. 06:18

아브라함의 복 (갈 3:6-9)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 시간에 “아브라함의 복”이라는 제목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진들로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시작이요, 믿음의 조상이며, 모세는 애굽에서 구출해 냈을 뿐 아니라 신앙의 근간인 율법을 받았고, 다윗에 이르러 여기저기를 떠돌던 유목민들이 통일국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메시야를 통해 그 왕조에서 영원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다윗의 별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 오늘은 아브라함입니다. 창12:2에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은 놀라운 복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복이요, 하늘의 별과 같고 해변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복이요, 창13:15에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신 것처럼 땅의 복을 주셨고, 창15:5에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돌아가리라”하신 대로 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고 복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 노아의 자손들이 열국으로 나뉘어지면서 절대권력의 폭정과 도덕적 타락, 전쟁의 공포, 물질만능, 우상숭배, 영적무지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수24:2에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이런 우상 속에 살던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만드시고 복의 사람 만들어주신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처럼 죄악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믿고 순종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1. 철저한 분리해야 합니다.


창12:1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철저히 떠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도 복을 받으려면 떠나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은 우리로 말하면 죄악 세상입니다. 철저히 회개하여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붙들면 복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했고, 대하7:14에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했습니다.


냉전시대에 소련의 3대 기적이 있었습니다. 나무는 많은데 종이가 없었고, 원유는 많은데 휘발유가 없었고, 땅은 넓은데 식량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모는 출중한데 행복이 없었습니다. 잘못된 무신론 공산혁명으로 교회를 파괴하고 하나님을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뉴욕 허드슨 강 하류에 쏠트라인이 있다고 합니다. 쏠트가 소금입니다. 쏠트라인이란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물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만나는 선을 말합니다. 가물면 바닷물이 역류해서 허드슨 강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비가 내려서 물이 흐르면 민물이 바닷물의 세력을 계속 밀어내어 수원지가 안전해집니다. 그래서 이 허드슨강의 쏠트라인은 끊임없이 당기고 미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믿음 따라 세상 유혹을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예배하며 하나님 잘 경외하세요. 도서지방에서 목회하고 계신 어느 목사님 24시간 철모를 쓰고 삽니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설교할 때도 철모를 쓰고 합니다. 하도 특이해서 방송에서 특종세상이라는 프로로 방영을 했는데 철모 쓴 이유는 세상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생각만 하고 살려고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꼭 그래야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철저히 회개하여 세상의 생각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데까지 가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사58:8-9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셨습니다.


2. 복을 받으려면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히11:8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사람이 된 것은 이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을 때 “지시한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르에서 가나안까지는 서쪽으로 1,200km도를 가야 합니다. 몇 개의 국가를 뛰어넘는 먼 길입니다.


이런 믿음의 아브라함도 시험은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가나안을 가려면 아라비아 사막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북서쪽으로 돌아가다가 머문 곳이 하란입니다. 하란은 우르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우상지역입니다. 아버지 때문이지만 거기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데라가 죽고 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란이 있습니다. 세상과 믿음의 중간 지점입니다. 이 정도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하자고 더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이 하란입니다. 철저히 세상에 대해서 죽으시기 바랍니다. 데라가 죽어서 떠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철저히 세상에 대해서 죽어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롬6:6-11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이처럼 복의 사람 되려면 예수 십자가 공로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산 자가 되었음을 믿고 그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믿고 순종하면 복이 옵니다. 그래서 예배하다 복 받고 기도하다 복 받고 찬송하다 복을 받습니다. 전도하다 복을 받고 선교하다 복을 받습니다.


어제도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렸지만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재정이 못할 때 형편이 되지 않지만 선교사를 파송했더니 하나님께서 별스럽게라도 일군들을 붙여주셔서 이번에 또 한 분을 파송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세계선교는 지상명령입니다. 형편이 되지 못해도 순종하십시다.


이처럼 복의 사람 되는 것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믿지 못하더라도 성경 말씀이니 순종이라도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를 그물 가득히 잡았습니다. 믿어서 던진 것 아닙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도 영문도 몰랐지만 순종했더니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이 옵니다.


3. 예배의 삶에 복을 주십니다.


창12:7-9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여기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했다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발붙일 곳도 없는 나그네 생활이었지만 그가 열심히 한 것은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복입니다. 복이 임합니다.


충남 부여에 사는 어느 장로님이 수박농사를 짓는데 한번은 교회 가기 전에 수박밭을 돌아보니 수박 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이럴 때 인공수정을 시켜야 하는데 교회는 가야 되겠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집사 시절에 “나는 꼭 주일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장로가 되었으니 교인들에게 더욱 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주일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수박농사를 망친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내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교회로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부랴부랴 수박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박밭에 웬 개미떼가 그렇게 많은지 사방이 다 개미떼였습니다.


동태를 가만히 살펴보니 개미가 수박 꽃에 붙어서 수정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미를 통해서 수정시켜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더 귀한 일은 그 일로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오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여러 교회에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예배하는 삶이 있다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추장 두 사람이 선교 본부에 찾아와 선교사 카머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부족은 크리스천 교사를 원합니다. 그들을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그러나 당시 그들에게 보낼 만한 선교사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보내드릴 수가 없네요."  2년 뒤, 이 두 추장은 다시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마침 그 때는 카머스 자신에게 특별한 일이 없었고 한가했기 때문에 그는 곧 그들의 부락으로 떠났습니다.


주일 아침, 마을에 도착한 카머스는 놀랍게도 부족의 모든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카머스는 추장에게 물었습니다. "무얼 하는 겁니까?" "우리는 기도하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러자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2년 동안 매주 일요일  아침, 우리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여기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네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기도를  해왔지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아직 배우지 못했답니다." 놀랄 정도가 아니라 까무러칠 정도로 놀랍고 대단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에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사람이 되십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공로 의지하여 철저히 죄와 분리되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정규예배 생활예배 열심하여 하나님께 가장 사랑 받고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