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고난이 주는 유익 (시 16:8-11)

공 상희 2018. 11. 4. 06:01

고난이 주는 유익 (시 16:8-11)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 시간에 “고난이 주는 유익”이라는 제목입니다. 고난 속에 있다 보니 고난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되네요. 하나님께서 일반인은 물론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왜 고난을 주실까요? 그것은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을 통해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수 믿게 하실 뿐 아니라 믿는 성도는 더욱 하나님을 붙들어 더 큰 은혜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고난 속에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계7:13-14에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오늘 시 16편에 나오는 다윗도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 다닐 때 시은 기도시인데, 사울이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 대군을 풀어 전국을 샅샅이 뒤졌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다윗이 나타나면 곧바로 신고하여 언제 잡혀죽을지 모르는 운명이었습니다. 욥의 고난도 컸지만 한 순간이었지만 다윗은 거의 일생이었습니다. 그만큼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 가운데서 그의 믿음은 참으로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1. 먼저 그 고난으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께 붙들어 매어줍니다. 사느냐 죽느냐 생사가 달렸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고난이 주는 은혜입니다.


바울도 고난 당한 이유를 말씀합니다. 고후1:8-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하나님 멀리하고 방종할까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복음전도자 니도슝 목사, '워치만 니' 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 그는 20대에 폐결핵과 협심증으로 살 소망이 없어서 날마다 하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그 날도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룻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데 강 한가운데서 배가 큰 바위에 걸려 요지부동입니다.


그래서 그는 꿈속에서 "하나님, 배가 지나가도록 도와주소서" 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때 "내가 바위를 옮겨줄까, 아니면 물이 불어나게 하여 배가 바위 위로 지나가게 해줄까?"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워치만 니는 "하나님, 물이 불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바위에 걸린 배가 쉽게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꿈을 깬 워치만 니는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비록 중병이 제게 있지만 더 큰 일을 하도록 은혜를 주시면 낫는 쪽보다 오히려 질병을 택하겠습니다." 이후에 그는 병으로 고생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어떤 분은 그의 책을 무릎을 꿇고 3번을 읽었다고 하듯 귀한 책들을 많이 썼고 온 세계에 복음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진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귀히 쓸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숨 쉴 겨를도 없고 눈코 뜰 새 없이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몰아붙이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욥도 얼마나 고난을 당했습니까? 욥7:3-5에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그러면서 17-18절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했습니다.


이 훈련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훈련입니다. 이 기초가 제대로 닦아지면 그 사람은 아주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1500년대 종교개혁자들을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코람데오의 삶을 살았습니다. 코람데오란 “코람”이 ‘앞에서’란 뜻이고, “데오”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았기에 기독교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귀한 일군으로 써주셨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 받아 세상을 바꾼 것도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려우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조금 편해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그래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2. 다윗은 고난 가운데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9절에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다윗이 그런 고난 속에서도 기쁘고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46편에 기개 넘치는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그런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다윗은 영혼만이 아니라 자기 육체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육체도 보호해 주십니다. 2016년 10월 2일 바로 2년 전 중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이블포미드이스트라는 선교단체에서 무슬림이었다가 회심한 24명에게 세례를 준 후 그들을 포함한 그리스도인 50명이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이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IS대원들의 총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회심한 IS대원 하룬이라는 사람이 말하길 기독교인들을 그들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아 대원들이 총을 쏘며 뒤쫓았는데 갑자기 모래 폭풍이 앞에서 일어났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되어 차량을 멈춰 세워 계속 총을 쏘아댔습니다. 영상에도 간혹 보지만 사막의 모래폭풍이란 구름에 닿도록 절벽 같은 거대한 모래폭풍이기 때문에 피해야지 아무도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모래폭풍 속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서 “왜 너희는 나를 핍박하느냐 ㅡ 나는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ㅡ 이제 평안히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놀라운 일을 접한 IS대원 18명 중에 16명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놀라운 간증입니다. 얼마나 놀라웠으면 그 악한 그들이 그렇게 회개했을까요?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3. 다윗은 고난 가운데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10절에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달리 표현하면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은혜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죽음의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죽음을 허락하신 것은 본래는 두려우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또 이것 때문에 하나님 떠나지 않고 이것 때문에 방종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이것 때문에 순종하고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세론에 죽음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자기에게로 오게 하여 구원하시고 또 자기 백성을 성화시키려는 강력한 은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살면 죽음도 두렵지 않더라.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만이 누리는 특별한 은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히2:14-16에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의 삶이 위대합니다. 우리가 고통 당할 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아파도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 생각하면 우리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아무 고통도 슬픔도 미움도 걱정도 고독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다윗은 11절에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은혜가 있었기에 다윗은 시119:71-72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고난을 당한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할 뿐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지시고 도와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을 변화시키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변화시키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할 때 슬퍼하지 말고 더 하나님 앞에 나오고, 고난이 없을 때도 변함없이 그 모습으로 살아서, 영육 간에 평안한 가운데 복락의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기쁘게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