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고난은 강력한 은사다 (고후 12:7-10)

공 상희 2018. 11. 4. 05:58

고난은 강력한 은사다 (고후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 시간에 "고난은 강력한 은사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답니다. 가서 보니까 천사들이 뭘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사람들에게 줄 복을 포장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복이 사람들에게까지 잘 전해지도록 포장을 해서 보내는데 자세히 보니 그 복의 포장지가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난이라는 껍데기만 보고 그 안에 복을 모르고 회피하거나 받아놓고서도 껍질조차 벗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사랑의교회 목사였던 옥한흠 목사는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는 제목에서 “고난은 문제가 아니라 훈련이다. 당신에게 오는 고난을 겁내지 말라. 불안하게 생각지 말라. - 당신이 설혹 실수하여 죄를 범하고 고통이 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큰 유익을 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고난은 문제가 아니라 기회이며 훈련과 축복이다.”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 살게 하시고 큰 복을 주시려는 훈련시키시는 특별한 은사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바울도 누구보다 그것을 깊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9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신 말씀처럼 고난은 은혜 중에서도 족하고 족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왜 고난이 우리에게 족한 은혜입니까?


1. 반드시 믿음의 사람을 만드시고 마는 강력한 하나님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받은 계시가 너무 크고 놀라워서 혹시라도 믿음을 떠나 자만하고 교만할까봐서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붙여 주셨습니다.


그 사탄의 사자가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10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한 말씀 속에서 약한 것 즉 질병도 있었고, 능욕 즉 항상 부정적으로만 보고 칭찬이란 없고 불평하고 악평하는 사람, 궁핍은 경제적인 문제, 박해는 유대인들이라든지 악한 대적들, 곤고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했던 것처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그에게 있었을 것으로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만하려야 자만할 수 없는 대단히 불리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사면팔방 여지없이 어디서 터지든지 터지는 그런 고통이 있었습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달리 표현하면 바울의 믿음을 위해서였습니다. 믿음 버리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은 잘못되면 자기가 숭배를 받고 영원히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6절에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했던 것처럼 사실적으로만 말해도 바울을 숭배할 사람은 세상에 꽉 찼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시대를 자기 pr시대라 하여 자기를 자랑하고 홍보하면 존경 받고 사랑 받지만 자랑 않고 겸손하면 무시 당하는 세상입니다. 그랬다가 어느 누가 기회가 생겨 간증을 했더니 그때서야 저 분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무엇이든지 기도로서 응답 받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존경해주더랍니다.


그러나 바울이 받은 계시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만약 사실적으로 말하다가 사람들의 존경이 지나치면 바울이 교주가 되는 것이므로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만 두노라” 그랬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시기에 고난 가운데 그를 두셨습니다. 자만하다가 방심하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한 불같은 연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벧전4:12-13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약1:2-4에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요령 피우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요령이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라는 신앙훈련소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하고 참된 마음으로 신앙생활하는 것만이 우리가 진정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길입니다.


2. 고난은 우리를 반드시 크게 쓰시고 마는 강력한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8-9절 “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난 속에서 바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것을 떠나도록 세 번이나 주께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주께서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니까 큰 능력을 나타내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 때 더 사모하고 갈망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들 치고 고난을 크게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야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해서 능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도 주님이 아니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0년 8월에 온 세계 이목은 칠레에 집중 되었습니다. 광부 33명이 갱도가 무너져서 땅속에 고립되었습니다. 622미터 깊이였습니다. 그들이 살아날 가망성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17일 만에 조그만 구멍이 뚫리면서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미국 펜실바니아주의 제프 하트라는 사람이 특수한 굴착기를 제공하여 7주 만에 구멍을 파서 캡슐로 실어 구해낸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틀 만에 33명 전원이 구조되면서 굴 안에서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졌는데 먼저 작업반장 우르수아의 탁월한 지도력, 엘리게라는 크리스천의 기도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최연소자는 지미 산체스였습니다. 산체스는 19세였는데 그는 말했습니다. “굴속에 있는 우리는 33명이 아니었습니다. 34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 기사는 동아일보에 난 기사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믿음 가지고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깨여있지 않는다면 더 극한 상황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나 에녹은 회개하지 않으면 다가올 상황을 항상 생각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3. 고난을 알면 자랑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크고도 만족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9절 중반 절에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자신의 불리한 핸디캡과 고난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명함도 내놓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지만 그 의미를 알고 보니 그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웠습니다. 그토록 부끄럽던 것이 이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자랑스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고난은 반드시 복주고 또 복 주고야 마는 강력하고 족한 은혜입니다. 이만큼 강력한 은사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 뜻을 다 이루기까지 물러서지 않고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바울처럼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더욱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잘 믿고 더욱 잘 섬기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가장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