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사 서

본 받을만한 감사의 사람, 대하 29장 31-36절

공 상희 2018. 10. 28. 06:34

본 받을만한 감사의 사람, 대하 2931-36

 

이 시간에 본 받을만한 감사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미국의 햄크스라는 사람은, 광산에서 일하다가 두 손과 두 눈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절망하여 자살을 계획했습니다. 그때 예일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교회에 와서 설교한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설교 내용 중에 "사람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라는 말을 듣고, 교수를 찾아가 "나같이 손도, 눈도 없는 인간에게 무슨 사명이 있단 말입니까?"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교수가 "그대에게는 아직 입과, 귀와, 발이 있지 않습니까?

눈과 손은 없을지라도,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햄크스'머리에는 전광석화 같이 스쳐가는 소망을 붙잡게 됩니다, 햄크스는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회개하고, 입과 귀, 발을 남겨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 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비관하고 원망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며, 자살을 결심했던 그가, 감사를 하기 시작한 이후에, 점차로 생활에 활기가 넘치게 되고, 스탠포드대학에 입학, 최선을 다하여 공부함으로 미국의 최고의 인기 있는 스타 강연자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를 빼앗기고 낙심하면, 가장 좋아서 춤추는 무리는 사단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마귀가 감사를 빼앗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제 발로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매튜 헨리 목사님이 하루는 어떤 골목길을 가다가 강도에게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차려 일어나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신히 일어나 집에 오니, 온 식구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재에 들어가서 그 피투성이의 몸을 가지고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내가 예수를 안 믿었다면 나를 때린 저 강도와 같이 되었을 터인데, 예수 믿고, 강도가 안 되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었버린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의 조건만 찾아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감사하지 못할 일이 있거든, 범사에 감사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고,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지면 기도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25세의 나이에 유대의 제13대 왕으로 즉위하여 29년을 통치하였던 히스기야왕의 이야기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들을 개혁하는 작업에 열심을 내었던 왕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왕이 되자마자 아버지인 아하스 왕이 닫아버린 성전 문을 열고, 수리하였으며, 아하스 왕이 꺼버린 성전의 등불을 다시 밝히고, 중단했던 분향 또한 다시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회복운동에 최선을 다하였고, 그리고 모범적인 감사의 제를 드린 왕입니다. 오늘 우리도 햄크스처럼, 매튜헨리 목사님처럼, 히스기야 왕처럼, 본이 될 만한 감사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성결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히스기야왕은, 백성들로 하여금 감사제를 드리게 하고, 감사제물을 가져오라고 명하면서도, 그것에 우선하여 "너희는 성결케 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우상) 성소에서 없이하라"고 명령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까닭에 우리는 회개하여 성결한 심령, 성결한 생활, 성결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죄는 우리의 기도를 상달치 못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시킵니다. 59:1`2

조선 말기에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대감이 이상재 선생님을 포함한 손님들을 불러 선교사로부터 받은 비누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재 선생님이 비누를 받아 칼로 깎아서 먹었습니다.

대감이 깜짝 놀라며, 그것은 때를 씻는 것이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이상재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 뱃속의 때를 씻어 볼까 해서 그럽니다"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러자 당시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시절이라, 그 곳에 모였던 손님들이 하나같이 죄가 생각나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으며, 더러는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는 마음의 죄, 속 때를 그대로 둔 채, 겉 때만을 아무리 씻어도, 벗겨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배는, 성결케 하는 회개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성결치 못하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우리에게도 거룩함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거룩해 질 수가 없습니다,(10:10) 오직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깨끗함을 얻고 거룩해 집니다,

 

둘째로 자원하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히스기야왕은 몸을 깨끗이 하여 나온 백성들에게, 감사제물을 하나님께 가져오라고 했을 때, 백성들은 모두 감사의 제물을,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고후 9:7에 보면 예물에 대하여 이 같이 말씀 하십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십니다,

이것이 헌금의 원리입니다.

감사는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득이하여 체면이나, 조건 때문에, 또는 재물이 아까워 마음에도 없는, 감사제물을 드림은, 형식적인 것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백화점에서 사오거나, 이웃에게 빌리거나, 꾸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될 때 스스로 생기는 것이며,

감사의 마음이 자기 속에서 우러러 나올 때, 제물도 자원하여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찾아오는 제일 무서운 병은, 중풍과 암이라고 합니다.

중풍은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참을 수 있는 것도, 참지 못해 혈압이 올라가는 사람에게 잘 생기는 것이라면, 암은 참지 못할 것들도 참고, 또 참아, 마음에다 쌓아두는 사람에게 잘 발생합니다. 이 두 가지 병에 다 안 걸리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범사에 감사란, 어떠한 일이든,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세미함프라는 사람은, 비행기공장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50이 넘은 남자로서 두 다리를 잘 쓰지 못할뿐더러, 왼팔도 못 쓰는 장애자였고, 폐결핵 환자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결혼도 하지 못하여, 부인도, 아이도 없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행복이나 기쁨은 없고, 오히려 괴롭고 힘든 고달품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망치가 들려 있었고, 얼굴은 항상 웃고 있었으며, 입에서는 끊임없이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아주 없도다"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이 그리 기쁘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기쁘고 말고요. 물론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가족도, 돈도, 건강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이 계셔서 참으로 기쁘답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본이 될 만한 감사자들은, 외부에게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거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속에서 믿음으로 감사가 만들어져, 외부의 어려움들을 정복하는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세째로 풍성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유대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린 번제물은, 수소 70마리, 수양 100마리, 어린양 200마리, 따로 구별하여 드린 감사제물은 소가 무려 600마리요, 양이 3000마리나 되어 제사를 맡을 제사장이 부족하여, 레위인들에게 직무대행을 시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풍성한 제물들은, 유다 백성들이 넉넉하고 풍성한 가운데서 드려진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아하스 왕의 폭정으로 인하여, 나라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쇠약하고, 황폐하여, 궁핍한 상태에서 드려진 것입니다. 그들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넘치도록 바쳤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에게 위기가 닥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는데. 사기를 당해 원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 밀린 임금을 요구했고. 빚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떠올렸습니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 앞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제게 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십시오." 하며 록펠러는 통곡했습니다. 그 때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석유였습니다.

자살 직전의 록펠러는, 유전을 발견해 일약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록펠러가 대 부호가 된 것은, 하나님 앞에 자원해서 온전한 십일조 생활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제물이란, 히브리어로 제바힘 인데, 제바힘이란 뜻은, '희생'이란 뜻입니다. 히스기야 왕과 그 백성들의 풍성한 감사제 속에는, 희생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감사의 제물은, 희생이 따르는, 넘치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풍요는, 곧 자신에게 돌아오는 복입니다.

내게 지금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 최선을 다하여 감사할 때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문제의 해결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감사로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의 나를, 돌보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진을 찍으면 배경에 따라 사람이 나오듯이 , 나의 삶의 배경을 감사로 하면 감사의 사람이, 불평으로 하면 불평의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이 될 만한 감사의 사람들은, 언제나 감사의 신앙을 배경으로 하여, 축복으로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두 마을이 있었다. 한 마을은 감사 촌이고, 다른 한 마을은 불평 촌 이었습니다. 불평 촌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근심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매사에 분노하고, 또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혹시 잘못되어 다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을 하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담배 연기가 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들에게선 잠재적으로 불평과 불만, 근심의 연기가 항상 입에서 나왔습니다. 불평 촌사람들은, 주소가 그 동네이고, 또 모두가 불평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촌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가운데서도 감사를 했습니다. 고생을 해도 감사하고, 시련을 받을수록 감사의 농도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는 것에 감사했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것에 감사했으며,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에 감사하고, 겨울에는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그 뿌리가 있는 것에 감사를 했습니다.

하루는 불평촌에 사는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왔다가 감사하는 소리에 놀랬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감사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 종일 범사에 감사하다가 저녁이 되어 불평 촌에 돌아온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에이. 감사촌에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 감사는 감사 촌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촌으로 이사를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감사촌에 이사오기 위해서는, 불평 촌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그곳에 놓고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감사촌에서는 무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무에서 출발한다면 모든 것에 감사 하게 됩니다. 옷 한벌, 밥 한끼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불평촌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위치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고, 감사촌은. 바로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입니다.

 

결론 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감사란,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모든 것은 감사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감사치 않을 것이 없는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또한 모든 것이 감사할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지구촌 교회 성도들은 의식적으로라도 범사에 감사하셔서 건강하고 행복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