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언 강해

잠언 새벽 강해11장~12장

공 상희 2018. 9. 21. 06:27

35,영적생활의 경영 (11:1-4)

 

이 시간에 영적생활의 경영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서점가에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는, 성공과 경영에 관한 책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꼭 참고해야 할 내용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경영과 성공은가장 성경적인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가장 성경적인 것이 가장 위대합니다. 가장 성경적인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우리의 영적생활의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성공해야 합니다.

 

어떻게 영적생활을 경영해야 성공할까요?

 

1. 성경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1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라하십니다. 옛날에는 저울을 속여서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뿐 아니라. 사람들도 결국은 등을 돌리게 됩니다.

 

참으로 더 크고 아름답게 발전하려면 도덕적 수준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나라가 강대국이 되고 초강대국이 되려면, 국민성이 타에 신뢰를 줄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세계가 중국에 주목하고 있지만, 더 강대국이 되려면, 정치도 발전해야 하고, 국민성도 더 발전해야 합니다. 지금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다가 얼마나 애를 먹습니까?

 

이처럼 영적 경영도 양심을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 양심은 성경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이 곧 잣대이고 공평한 추입니다. 성경이 중요한 영적생활의 원리입니다. 말씀대로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도 기쁘고 풍성해집니다. 그러나 말씀을 벗어나면 이단에 빠지고 사탄이 틈타게 됩니다.

그래서 딤전1:19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경고하십니다.

 

2. 더욱 낮추면서 경영하시기 바랍니다.

2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하십니다. 겸손의 리더쉽과 교만의 리더쉽의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명령만 하는 리더쉽으로는 일시적인 결과는 얻어낼 수 있어도, 일군들의 마음은 얻어낼 수 없습니다.

겸손의 리더쉽을 다른 말로 서비스형 리더십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서비스형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배려와 친절 그리고 나눔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지혜의 공유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사는, 지시 일변도에서 바꿔, 직원들에게 분임토의하게 하여 지혜와 관심을 얻어 크게 발전하여 사주나 직원이 함께 잘된 예가 있습니다. 겸손해서 손해 볼 것 없습니다.

이처럼 영적 경영에도 겸손이 필요합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4: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22:26에도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18:12에도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하십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잘되려면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겸손에 주력해야 합니다.

 

3. 성실하게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3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면 남도 살리고 나도 살지만, 반대로 악한 생각으로 행하면 남도, 자기도 패망합니다. 국가의 기밀을 빼돌리거나 회사의 기밀을 빼돌리는 사람들 참 한심스런 사람들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자신도 온전하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

우리 영적생활에도 성실이 요구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하나님의 품 안에 들어와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한 발 세상에 한 발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을 만큼 신앙생활해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물을 가까이 하면 물에 빠지기 쉽고 절벽을 가까이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경계선에서 위험한 곡예행진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만하길 원한다면 내 열심도 충만해야 합니다. 성실은 영적 생활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4.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심판을 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4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하십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의롭지 못한 불의한 재물에 마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불의한 재물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돈을 주웠어도 소유해 버리면 위법입니다. 돈을 함부로 받았다가 면직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심판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생각하며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칭찬 받을지 책망 받을지, 상을 받을지 화를 받을지,심판을 대비해야 합니다.14:10-12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1-2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라고 하십니다.

 

육적생활이든, 영적생활이든, 복 있는 자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떠나지 말고, 더욱 겸손을 구하며, 성실하게 신앙생활하며,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참되게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6,영적 승리의 길 (11:5-8)

 

이 시간에 시험에서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귀에게서 오는 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있습니다. 마귀에게서 오는 것은, 유혹 혹은 파괴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은 상을 주시려고 하시는 테스트 그 자체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시험이든 져서는 안 되고, 이겨야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요?

 

1.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5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하십니다. 여기 5절의 완전한 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뛰어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완전하게 보십니다.

 

욥이 진정 완전했습니까? 불완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가 고통이 더 심해지고 친구들이 자꾸 말을 시키니까. 결국은 자기 인생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고 자기도 알지 못한 이론들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다가 책망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완전한 자라고, 칭찬하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한다는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면 형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차적으로 이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하면, 우리에게 약점이 가득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할 때, 나의 인격을 평탄하게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차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하시는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악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합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거룩한 삶의 방법입니다.

2.영적인 승리는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6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하십니다. 여기 하와라고 발음 되는데 욕망을 가리킵니다. 악인은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자기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다릅니다.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건지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욕망과 반대되는 건지시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성령의 은혜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성령이냐? 욕망이냐? 이 두 싸움입니다.

5: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십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에 사로잡히면 범죄하고 성령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답이 나옵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하십니다. 어떻게 성령을 따라서 삽니까? 이걸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 많은데,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옵니다. 하나님을 더 잘 경외하라는 말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승리를 주십니다.

 

3. 십자가에서 내가 잘 죽어야 합니다.

7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하십니다. 악인은 죽으면 소망은 다 사라집니다. 그들의 소망은 현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자신의 저지른 행동에 대한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의인의 죽음은 이와 반대입니다. 7절에는 의인에 대해서 나오지 않지만, 악인을 통해서 의인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죽음은 도리어 소망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이 넘칩니다. 이 희망 때문에 잠 못 이루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절망이지만 영의 생각은 소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죽을수록 승리자가 됩니다. 죽어야 삽니다. 더 온전히 죽어야 왕 노릇까지 합니다.

죽음은 두 가지입니다. 과거와 현재입니다. 성령으로 십자가에 이루신 죽음의 공로가 나타나, 내가 죄에서 죽는 변화의 죽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듯이 성령의 은혜로 주님 앞에 절대 순복하는 현재적 죽음이 있습니다. 잘 죽어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4. 승리하려면 섭리적인 도우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8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하십니다. 의인도 악인도 같은 환난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환란을 당할 때 깨닫고 돌이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 백성은 깨닫지 못하고 더욱 자기 길로 갈 뿐입니다. 성도 대부분은 극심한 환난 속에서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휘몰아치는 환난의 바람 얼마나 세찹니까? 세상에 환난과 고통이 심해도 나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연단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승리의 삶을 살지만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만 원망하다가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날마다 깨닫게 하지만, 악인들은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이름을 핍박합니다. 조금만 정직해도 예수 앞에 돌아올 텐데 ,죽는 날까지 수백 번 수천 번 기회를 주시지만, 깨닫지 못하면 쓸데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갖 사탄의 방해와 시험을 받았지만 다 이기셨습니다. 우리들도 승리하십시다.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십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 잘 경외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더욱 십자가 바라보고, 내가 죽고, 삶에서 더 깨닫고 ,주님을 붙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7,진실한 사랑 (11:9-13)

 

이 시간에 진실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진실한 사랑은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것입니다.

9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하십니다. 악인을 개역성경에서는 사특한 자’(원문에는 하네프’)라 했는데, 그 의미는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한 일을 행하는 불경스러운 자, 혹은 위선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웃의 잘못을 보면, 증오하고 해코자 할 생각으로 가득한 자입니다. 그 결과 이웃은 물론 자기도 망하게 됩니다.

 

9절의 의인은 무엇일까요? 악인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조형 문장으로 서로 보완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사랑을 가득히 담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즉 악인이 증오 때문에 견딜 수 없어 하듯, 의인은 애석한 마음 때문에 견딜 수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잠언 기자가 표현을 상당히 엉뚱하게 합니다.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의인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의인 자기 구원을 이룬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여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결국 자기를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구원은 넓은 의미에서 구원, 즉 구원의 서정 중에서 성결 성화 영화에 이르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임마누엘하시는 은혜입니다.

 

임마누엘이 곧 구원인데,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신다면 그것이 성화이고 영화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고, 사랑으로 장성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결국 자기를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악인과 반대로 이웃을 향해 사랑으로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2. 진실한 사랑은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것입니다.

10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의인과 악인은 통치자를 암시합니다. 선한 통치자의 형통은 백성들이 기뻐합니다. 그러나 악한 통치자에게는 다릅니다. 악한 통치자는 죽어야 비로소 기뻐합니다. 김정일이 죽은 날이 경사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눈물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고 감시 때문에 겉으로는 울었지만 속으로는 웃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백성을 섬기기는커녕 자신의 정권과 영화를 위해 백성을 압제하며 공포의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인정도, 사정도, 눈물도 없는 사람입니다. 해외에 숨겨둔 돈은 무엇이고, 기쁨조가 웬 말입니까? 개혁 개방으로 나가면, 모두가 살 텐데 백성을 죽이면서까지 자기 정권을 연장하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10절의 의인 역시 이와 반대라고 해석하면 그 의미가 나옵니다. 10절의 의인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가? 백성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3. 진실한 사랑은 믿음을 가지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11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축복은 베라카라고 하는데, “무릎을 꿇다. 경배하다. 찬양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거기서도 가능성을 발견하여 희망을 주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보이는 그대로만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아가 악담하고 저주까지 합니다. 공부 못하면 이 바보 멍청, 거기까지만 갑니까? 더 나갑니다. “너는 바보라서 아무 것도 못해, 남의 밑에서 빌어먹고 살 거야.” 그러니까 더 못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교육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육이란 지식 전달 뿐 아니라 숨어 있는 잠재력을 발굴해 내는 것인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에디슨이 학교에서 더 이상 학습 불가능한 아동으로 분류되어 집으로 왔지만 에디슨의 어머니는 그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그의 장점을 개발하여 가장 위대한 과학자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차이입니까? 사랑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았고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실패로 똘똘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나도 안 되고, 남도 안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사랑은 믿음 가지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4. 진실한 사랑은 허물을 용납하고 숨겨주는 것입니다.

12-13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 하느니라.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의 부족과 잘못을 보고, 멸시하고, 두루 다며 한담한다 합니까? 지혜가 없거나 신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은 남의 허물을 험담하고 다니지 않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허물을 숨기고 싶어서,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은, 남의 허물을 보고서도 잠잠하고, 남의 비밀을 누설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숨겨준다고 말씀합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자라 약혼한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보고 가만히 끓고 숨겼습니다. 분노하고 보복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도 중요하지만 율법 위에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잘못을 용서하고, 용납하며, 허물을 덮어주고, 숨겨주는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실 만큼, 아래로 낮아져 섬겨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만큼, 절망하지 않고 긍정심을 가지고 끝까지 축복하며, 원수 맺지 않고 허물을 온전히 용납하고, 숨겨주는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8,영적 성공의 길 (11:14-17)

 

이 시간에 영적 성공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 최대의 관심은 영적으로 잘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않는 것까지도 선물로 주십니다. 요삼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하십니다. 이런 요한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영적으로 성공할까요?

 

1. 지식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원해도 말씀의 지식이 없으면 안 됩니다. 14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지략은 끈으로 견실히 감다.’는 의미로, 지혜나 지식이나 충고나 계획 등으로 충실히 무장되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기본 지식은 물론, 성공담 실패담까지 잘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창업했다 폐업한 자영업자의 비율이 80%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습니다. 경쟁이 치열하여, 전문성을 갖추어도 어려운데,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백발백중 실패합니다. 지식이 많다고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백과사전식으로는 부족하고, 잘 꿰인 구슬처럼 정리되어 그 세계에 완전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영적 생활에 성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경을 잘 알되, 교리적으로 잘 정리되고, 의미가 명확하고, 잘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잘 꿰인 구슬입니다. 이걸 모르면 어떤 때는 신비주의에 빠지고, 어떤 때는 율법주의에 빠지고, 어떤 때는 낙심 적이거나 이교적이거나 ,침체주의에 빠져 방황합니다.

그래서 사8:20-22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경만 알면 되지 무슨 교리가 필요하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몰라 하는 말입니다. 교리는 성경을 잘 정리해 요약한 것입니다. 성경을 알수록 교리가 나옵니다.

 

2. 지혜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15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보증을 전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보증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남의 사업 보증은 잘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채무가 보증인에게 바로 떨어집니다. 그 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증하지 말되, 보증을 꼭 해야 한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살펴야 합니다.

영적생활의 지혜도 그렇습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라도 살펴야 합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독버섯이 더 아름답습니다.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 따라가면 죽습니다. 이단들의 말이 더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단의 말에 따라가면 이리의 밥이 됩니다.

주님은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주님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간절히 기도하셨을 때는, 언제나 사탄의 뜻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건이었습니다. 40일 금식하신 후 사탄의 시험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십자가 말고, 세상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하라는 미혹이었습니다.

또 주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기도하셨을까? 세상에는 갖추어진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에 그런 사람들을 제자 삼으면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지식과 권력과 명예로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 후에 예수님이 왕 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김없이 그 날 밤 기도로 보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그토록 기도하신 것은, 사람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와 여러분도 기도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모르면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면서라도 아버지의 뜻을 묻고 지혜로우시기 바랍니다.

3. 충성의 은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16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유덕한 여자는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자입니다. 31장의 현숙한 여인은 길어서 소개해 드릴 수 없지만, 한 마디로 자기 가족을 배부르고, 따뜻하고, 안전하게 먹여 살리는 살림 잘하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유덕한 여자를 육신적으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자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상징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교회가 꼭 그렇게 합니다. 그런 시각으로 잠언을 보면 눈이 열립니다.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이 말씀도 충성의 교훈입니다.

지식이 많아도 행함이 없으면 뭐합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약1:22절에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합니다. 한 말씀이라도 깨달았으면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가나 혼인집에도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행했더니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향해야 기적이 나타납니다. 행해야 홍해도 요단강도 갈라집니다. 행해야 두 배에 가득 잡힙니다. 행해야 5000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4. 사랑의 은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17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인자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지만, 미워하면 결국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살리는 주파수입니다. 사랑하면 내가 삽니다. 7: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또 사랑은 완전하게 합니다. 3: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또 사랑은 우리를 장성하게 합니다. 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부패하지 않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부패는 사랑의 부패였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녀 간에도 첫사랑이 제일입니다. 음 만났을 때 그 사랑, 하나님에게도 그 첫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원동력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완전한 신앙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잘하십시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은혜와 은사로 충만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은사를 구하십시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충성의 은사, 사랑의 은사, 은사로 충만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9,성도의 삶의 목표 (11:18-21)

 

이 시간에 성도의 삶의 목표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천양지차이입니다. 목표에는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목표의 제 1법칙은 아무 것도 겨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명중시킬 수 없다.” 즉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 유무의 차이는 목표의 차이입니다. 그만큼 목표가 중요합니다.

 

그럼, 성도의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1. 하늘의 상을 목표해야 합니다.

18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하십니다. 여기 상이 나옵니다. 악을 뿌린 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공의를 뿌리며 수고한 자는 하늘의 상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 하시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심히 하라고 보너스로 신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을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합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열심 있다고 다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6:1-2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하십니다. 사람 앞에 보이려고 하는 목표를 세우지 말고, 꼭 하나님 앞에 하늘의 면류관, 큰 상을 목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영원한 생명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19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생명은 히브리어로 하야라고 하는데 생명, 소성, 구원등으로 변역되는 영적 생명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영생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8: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하십니다. 육신의 생명도 귀하지만 영원한 생명은 더 귀합니다.

내 생명만 중요할까요? 타인의 생명도 귀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었으면, 이제 우리 목표는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미 생명 가진 자의 사명이며 의무이며 책임이며 목표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해야 합니다.

20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하십니다. 하나님께 미움 받지 말고 하나님께 사랑 받고 기뻐하심을 받자는 말입니다.

 

소요리 문답 제 1문답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목적이 고전10:31에 나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5:10에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제일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영국의 청교도 소설가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 1615~1691)는 왜 인생이 기쁨이 없는가에 대해 성도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4. 장성하고 온전한 믿음을 목표해야 합니다.

21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하십니다. 여기 악인이 피차 손을 잡는 것은 유대감을 뜻합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힘을 결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악인이 유대감을 갖는 이유가 뭘까요? 그런 결속을 가지고 힘을 얻어 의인을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므로 거기서도 구원을 받고, 악인은 자기가 저지른 악의 결과에 의해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도에게 주시는 은혜가 심히 큽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의 성숙해야 합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되면 안 됩니다. 5: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하십니다. 여기 지각은 아이스데테리온으로 영적분별력을 말합니다. 장성한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분별력입니다.

분별력이 있으면 미혹 당하거나 시험 당하지 않습니다. 왜 시험에 듭니까? 우매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현상만 보고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살상을 보고, 영적인 것을 보고, 신앙과 지혜로 대처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처럼 영적으로 장성한 믿음을 목표로 하시기 바랍니다.

 

5. 주신 은혜 잘 감당하며 주님만을 목표하시기 바랍니다.

22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하십니다. 돼지 코에 금 고리, 이것은 천부적인 아름다운 미인일지라도 바른 품행을 갖추지 못한다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웃음거리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내적인 아름다운까지 갖추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성처럼 빛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르고 날뛰지 말고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 목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목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목표를 가지셨기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목표의 예수님입니다. 목표가 있으셨기에 죄악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늘의 상을 목표하고, 영원한 생명전도를 목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 닮아 장성하고 온전한 믿음을 목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0,영적 부요의 원칙 (11:23-26)

 

이 시간에는 영적 부요의 원칙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해야 할 대상은 믿음의 부자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야고보는 약2:5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가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가난도 복입니다.

 

그렇다고 꼭 가난해야만 할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 다윗 등 믿음의 부자 가운데서도 물질의 부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다고 다 믿음의 부자가 아니요, 부자라고 다 믿음의 가난한 자가 아닙니다. 부요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원칙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세상 책에는 나오지 않는 원칙이 있으니, 성경의 원리를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부요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영적 부요에 어떤 원칙이 있을까요?

 

1. 동기와 방법이 선해야 합니다.

23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하십니다. 의인이 건짐을 받고 악인이 멸망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이나 편애하심이 아닙니다. 모두 자기 행동의 결과입니다. 특히 동기와 방법이 선해야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큰 능력을 구했어도 얻지 못했다면 속히 반성해야 합니다. 혹시 동기나 방법에 잘못은 없는가. 4:2-3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하십니다. 내가 큰 은혜 받아 내가 크게 일하려고 간구하는 것 잘못이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쓰임 받는 자세가 아닙니다.

 

겸손히 절대 쓰임 받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세만 철저히 교정하면 하나님께서 쓰지 말라 해도 쓰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자세를 가지고 경외해야 하늘의 문이 열리고 은혜가 쏟아집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동기와 방법이 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럴수록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일 뿐입니다.

 

2. 영적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24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하십니다. 본문 그대로는, 물질적 부요가 구제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끼면 살긴 삽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저축을 통한 부자 말고는 더 될 수 없고 사람들에게 원성을 삽니다. 부자가 더 지독하더라 하고 상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껴도 구제를 못할 만큼 아끼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영적 부요의 원리도 그렇습니다.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을 이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에 더 시간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애쓰고 부르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눈물도 아끼지 말고. 몸도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감사했습니다. 원수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진다고 법을 제정하여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사자가 사자의 입을 봉해서 다니엘을 물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2: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26:13에도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하십니다.

우리의 게으름의 사자부터 이겨야 합니다. 춥다, 덥다, 비 온다 ,왜 핑계가 그리 많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바빠도 피곤해도 병들어도 쉬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충실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을 기다린 지 열흘 만에 임하셨는데, 10은 가득한 만수입니다. 동기와 자세가 옳다고 해도, 우리가 경외하는 예배생활에 미흡하다면, 영적 부요는 오지 않습니다. 채워져야 합니다. 영적 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가나 혼인집처럼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기적이 나타납니다.

 

3.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5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하십니다. 구제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의 가르침 따라서 최소한 10분지 1을 구제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그 이상으로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하지 않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구제의 원리는 부흥에도 해당됩니다. 이웃을 위해 힘쓰는 교회가 더 부흥이 됩니다. 주안장로교회 나겸일 목사님은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힘쓰는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제와 선교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일군들을 붙여주셔서라도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수학은 지상의 수학과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수학은 사용할수록 더욱 불어납니다.

 

영적 부요도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서만 기도하면 큰 은혜는 맛 볼 수 없습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넉넉하지 않습니다. 넘치지 않습니다. 겨우 목마르지 않을 만큼 혹은 목마를 때가 더 많은 그 수준일 뿐입니다. 나와 내 가족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잘되는 길이 아닙니다.

기도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타인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세계의 여러 공통주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기도할 제목이 생각나면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다가 눈물이 나면 눈물로 기도하세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소원을 가지고 간구하시기 때문에 눈물도 납니다.

 

어떻게 기도의 사명 자가 될까요?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10분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구제의 교훈은 이웃 사랑에 근거합니다. 사랑할 때 구제할 수 있듯이 사랑할 때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4. 순종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는 생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26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하십니다. 흉년이 왔는데 부자가 곡식을 풀지 않고, 물가가 더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으면, 백성들에게 저주를 받습니다. 폭동이 일어납니다. 공산주의도 나쁘지만 ,그것을 유발케 한 원인 제공한 악덕 지주도 나쁩니다. 선의의 피해자도 많았지만 ,악덕 지주들 때문에 공산주의가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영적 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전9: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하십니다. 좋은 소식을 가졌으면 전해야 화를 당하지 않습니다. 영적 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사명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결과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령하시니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결과를 생각했다면, 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살고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에 부요하길 원함 같이 영적으로도 부요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동기와 방법으로, 시간과 몸 아끼지 말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순종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잘 경외하고, 사명 감당하셔서, 영적으로 가장 부요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1,영적 성장의 법칙 (11:27-31)

 

이 시간에 영적 성장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영적으로 장성하되 그리스도만큼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하십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라고해서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이 되거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권은 언제나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면 독립하는 순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몇 가지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1. 회개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27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하십니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선에 미친 사람, 악을 더듬어 찾는 자는 악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 갈망이 커서 견딜 수 없는 사람입니다. 선 쪽으로 갈망이 커야지, 악 쪽으로 갈망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회개해야 할까요?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과 같을 만큼, 죄에 대한 소원이 사라지고, 선의 소망으로 불탈 만큼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버리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죄를 원수와 같이 싫어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생각하기도 싫어야 합니다. 꿈에라도 나타날까 원수처럼 여겨져야 합니다. 그 정도 되어야 회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소원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선이 우리 친구와 같고 죄악이 우리 원수와 같게 되는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며 갈망해야 합니다.

28"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하십니다. 여기 재물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갈망합니까?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돈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섬뜩합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왜 돈이 나옵니까? 돈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혹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돈 앞에 무릎을 꿇는 것보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돈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돈을 벌기 위해 수고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갈망하라는 말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임종 직전 마지막으로 쓴 말은 우리는 모두 거지다. 그건 사실이다였습니다. 종교암흑기에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일에 쓰임 받은 하나님의 큰 종 루터가,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거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혜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늘 갈망하는 삶이였습니다. 그는 하루 세 시간 이상은 반드시 기도했다고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먹이 주는 것을 보면, 어미 새는 더 목을 길게, 더 입을 크게 벌리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이렇게 간절히 갈망하는 자가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섰다. 다 이루었다. 나는 대단하다. 나는 누구, 나는 이런 사람, 그렇게 자만하면, 하나님은 주시지 않습니다. 2:4-5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갈망하는 심정으로 사모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3. 영적 배경을 조성시키며 지혜로워야 합니다.

29-30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공하려면 나를 도울 배경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째가 가정입니다. 가족만큼 나를 사랑하고 기도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부모님들의 기도가 귀중합니다. 아내의 기도, 남편의 기도, 자녀의 기도, 형제의 기도, 이런 기도의 배경이 튼튼하면 거침없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자기를 도울 배경들을 무시합니다. 나의 영적 배경을 조성시켜야지 쓸어버리면 안 됩니다. 신학적 배경이 잘못되면, 자기에게 큰 손해 입니다.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하는 것 처럼 자기의 신앙의 배후를 바람처럼 쓸어버리면 안 됩니다. 기도의 배경이 되고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배경도 중요합니다. 왕대밭에 왕대가 나듯이, 좋은 믿음의 사람이 많을 때, 우리들도 믿음의 왕대가 됩니다. 설교의 왕자라는 스펄전의 능력 있는 목회의 비결은 교인들의 배후의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그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더니 부흥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하십니다. 사람들을 얻어야 합니다. 왕이 백성들에게 기도 못하게 하면 누가 손해입니까? 왕이 손해입니다. 왕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없으니 손해입니다.

사람을 얻어야 생명나무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떻게 얻습니까? 사랑으로 얻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함께 기도해주고 동역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4.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31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하십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겠느냐? 하십니다. 반드시 보응은 있다는 사실입니다.

 

못을 빼도 못 자국은 남습니다.. 방탕할 때 저질러놓은 결과물들이 계속 나를 찌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어도 결과는 있다는 사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 잘못으로 가정에 불화가

오고, 지금까지 그의 자손들이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의 사람 모세도 성품을 참지 못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영웅 다윗도 한순간의 잘못으로 범죄하여 일생 얼마나 찌르는 가시가 않았습니까? 위대한 사도요, 선교사인 바울에게 왜 가시가 있었습니까? 자만하고 교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면 내게 주신 연단의 환경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몸이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만큼 자라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죄악의 소원을 버리고, 의의 소원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의지 하고, 갈망하며, 지혜와 사랑으로 영적 배경을 만들어나가며, 자기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 영적으로 자라고 사명 적으로 크게 쓰임 받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2,영적 성장의 토양 (12:1-4)

 

이 시간에 영적 성장의 토양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믿음은 농사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3060100배의 결실을 맺는 옥토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데나 씨 뿌린다고 겻실을 맺습니까? 옥토에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씨앗은, 얼마나 좋은지 토양만 잘 갖추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열매를 맺어주십니다.

 

그럼 영적 성장의 옥토는 어떤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달게 받는 마음입니다.

1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하십니다.

여기서 말씀 하시는 훈계란, 지적해 주는 교훈과, 교정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볼 때, 1절에서 우리는 이런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훈계와 징계조차도 달게 받을 정도라면, 말씀은 더욱 더 달게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한 편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하시는데 여기 짐승의 원문의 뜻은 사나움, 어리석음, 잔인함등의 의미입니다. 야생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심령은 짐승과 같이 야생적입니다. 야생적인 마음의 특징은 훈계를 싫어합니다. 훈련을 싫어합니다. 채찍을 싫어 할 것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징계란 무엇입니까? 징계란 행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잘못해도 꾸지람과 채찍이 없다면, 우리 어떻게 됐을까요? 버릇없는 아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인 징계를 받고도, 정신 차리지 못한다면 짐승과 같습니다. 어떤 짐승입니까? 49:20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하십니다. 멸망하는 짐승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는 야생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주님의 주권에 순복하거나 얽매이기도 싫어하고 내 생각 내 주관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야생적인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아가 강한 사람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로 가득한 곳에는,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이런 야성의 내 자아를 내려놓고 훈계도 징계도 달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진정 옥토입니다. 그는 어떤 말씀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고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2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하십니다. 여기 선인이 은총을 받는다 했는데, 은총은 그 쓰임을 볼 때 일반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요셉이나 다니엘 느헤미야 같이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11:27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하십니다. 아주 선을 간절히 찾는 자가 받을 은혜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은혜를 크게 받은 다니엘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악인이 받는다는 정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죄가 의미하는 것은, 그 죄질이 심히 악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부지중에, 실수로, 어떤 환경 속에서, 나약하여, 범하는 죄와는 차원이 다른, 아주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죄를 암시합니다. 생각과 사상이 악할 뿐만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그 계획을 줄 곧 진행해 가는 죄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때 홍수로 심판하신 것은, 부지중에 실수로 저지른 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이 계획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고의성입니다. 여기 선인과 악인 모두 고의성을 가졌습니다. 선인은 선을 위해, 악인은 악을 위해 골몰합니다. 선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까? 악인은 어떻게 악을 저질러야 불노소득을 얻고 쾌감이 있을까 피 흘리기까지 주저하지 않고 골몰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변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바벨론 왕이 준 음식의 유혹도 이기고, 풀무불의 위협도 이기고, 사자로 위협해도 하나님을 위해 계획한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향한 변치 않는 마음이 완전한 옥토인 것입니다.

 

3. 하나님과 그 말씀을 깊이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3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하십니다. 의인은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렸으므로 폭풍이 불어도, 홍수가 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악에 뿌리 내렸으므로 그 특성상 불안하고 안정감이 없습니다. 당당하지 못합니다. 숨어 다니고 피해 다닙니다. 오래 정착하지도 못합니다. 자기가 악하기에 남도 믿지 못합니다. 심리적으로 심히 불안합니다. 그래서 잠28:1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는 농법이 좋은 농법입니다. 농부가 농사 할 때, 작물을 심어놓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물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작물 성장이 더디고, 고생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거름이 필요가 없고, 수확량이 몇 배나 증가하고, 품질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의 방법도, 은혜를 맛보게 하신 다음에 그 다음 부터는, 그 풍성함을 잠시 중단하시고, 주실 듯 말 듯, 갈급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사모하게 됩니다. 또 고난이 그 기폭제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고난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십니다.

 

5:7-8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하십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목말라 사모하는 그 마음이 옥토 중의 옥토일 것입니다.

 

4. 마음의 옥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마음입니다.

4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어질다는 것은, 사랑이 많고 덕스러운 것을 가리킵니다. 보통 덕이 아니라, 덕망 있고 강직한 힘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신사임당 같은 여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편에게 면류관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남편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하십니다. 이런 여인을 보면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여자와 사는 남편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자식들이 불쌍하고 그 부모들도 걱정스럽겠다. 부인으로 인해 남편이 영광을 받을 수 있고 치욕을 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위하는 어진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욕을 먹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영광 때문에 울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 웁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도 아깝지 않는 그 마음은 옥토 중의 옥토입니다. 그 마음의 토양에, 어떤 말씀이 자라지 못할 말씀이 있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더 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 100배로 결실할 옥토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옥토로 바꾸어주시기를 간구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는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변치 않는 마음,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생명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는 마음으로 100배로 결실 맺는 옥토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3,영적 승리의 법칙 (12:5-7)

 

이 시간에는 영적 승리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겠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지구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각국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군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전쟁만 전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쟁이 더 무서운 전쟁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죄와 마귀와의 싸움이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로 눈이 열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영적 전쟁터에 있는지 볼 수 있다면 결코 태만하게 살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까요?

 

1. 진리를 깨달아 사탄에게 속지 않아야 합니다.

5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하십니다. 여기 속임이라는 말은 개역성경에서는 궤휼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왜곡시키는 사탄의 행위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사탄에게 속으니까 문제입니다.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이처럼 시험이 다가오면 그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서로 네가 잘했다. 못했다. 타난 현상만 보고 다투거나 혹은 실망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볼 줄 알아야 신령한 자입니다. 시험이 오면, 내기도가 부족해서, 혹은 깨닫게 하시려는 징계, 혹은 게으르거나 교만하지 않도록 주신 가시, 혹은 원수 마귀 사탄의 시험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은폐(속임)의 천재입니다. 자기를 감추고, 온 세상을 미혹하고 싸움 붙이고, 죽이고, 파괴하면서 악한 일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전2:15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하십니다. 그만큼 신령한 사람은 문제를 바로 직시할 수 있기 때문에 분별하여 이깁니다.

그래서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다하십니다. 정직하다는 말은 옳다.

바르다.”는 말입니다. 왜 바를까요?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신령한 자가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는 것입니다. 만사를 말씀의 관점으로 볼 줄 안다면, 그보다 더 사실을 정확히 볼 수 없고, 그보다 더 신령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하나님말씀과 다르면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짓에 속지 말고 승리의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2. 생각을 넘어 입술로 시인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6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하십니다.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합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기회를 엿보아 사람을 해할 말만합니다. 그럼 무엇이 정직입니까? 사실을 말해야 정직인데 무엇이 사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참입니다.

 

40:8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하십니다. 이 우주가 사라질망정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이 영원하십니다. 그래서 시19: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하십니다. 성경만이 정직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말해야 정직한 것입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가 그랬습니다. 14: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넘실거리는 바다 앞에서 모세의 말은 허풍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리였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기쁨도 없고, 체험도 없고 도리어 괴로움과 실패만 가득하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승리자요, 영광스런 자녀라는 확신 가지고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에 입각한 찬양입니다. 이 찬양 앞에 자신도 은혜를 받고, 듣는 자도 은혜를 받아 죄악의 일곱 족속도, 세상의 바로왕도, 어떤 악한 사탄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3. 원수 앞에서 진리에 끝까지 담대히 서시기 바랍니다.

7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하십니다. 악인은 남을 해하려다 자기가 죽지만, 의인은 남을 도우려다 남도 살고 자기도 산다는 말씀입니다. 강풍이 불고 홍수가 나도 의인의 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토대 위에 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승리하려면 나는 예수 안에서 승리자라는 승리의 복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6: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하십니다. 원수 마귀에게 강하게 맞서 대적해야 바로 설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귀도 우리에게 맞섭니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하십니다. 대적 마귀라 하십니다. 마귀도 우리를 대적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4:7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하십니다.

산이 앞에서 가로 막아도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했듯이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쓰러지고 넘어지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승리자야, 나는 복 받은 자야, 나는 예수 안의 천국의 중앙에 있으니 나의 이름은 만사형통이다. 이런 식으로 진리에 서서 굳게 맞서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현실만 보고, 낙심하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승리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예수 안에서 주신 승리를 믿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가면, 우리들도 온전한 승리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탄의 거짓에 속지 말고 우리가 예수 안의 승리자라는 사실을 온전히 굳게 믿고 찬송하고 예배하고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우리의 대적이 무너지고 예수와 함께 온전한 승리를 누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4,영적 은사의 필요 (12:8-11)

 

이 시간에 영적 은사의 필요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잠언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잠언을 자주 묵상하면 지혜로 가득한 사람이 됩니다. 지혜와 미련의 차이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생명과 복락의 대로를 향해 나가는 것이지만, 미련은 사망과 멸망의 길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지혜로우시기 바랍니다.

 

왜 영적 은사가 필요한 것일까요?

 

1.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을 받기 때문입니다.

8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하십니다. 지혜가 있어야 칭찬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류 문명의 발전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거나 발전시킬 줄 안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성공과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도구를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대단히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고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라고 선물을 주시는데 그것이 은사입니다. 하나님 하라고 주시는 도구입니다. 부모도 은사입니다. 우리를 위한 값진 선물입니다. 교회도 은사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온전한 믿음으로 길러줍니다. 고전 12장 아홉 가지 은사도 은사입니다. 은사의 유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해석을 달리하여 진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하십니다. 여기 굽은 자구부리다라는 의미로 진리를 왜곡하고 정의를 거스려 하나님의 뜻과 달리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멸시를 받는 것입니다.

목회 잘하는 것도 은사, 풍요로움을 얻는 것도 은사, 찬양 잘하는 것도 은사, 능력 있는 것도 은사인데, 은사에 무관심하거나 부정하면 이익 볼 것이 없고, 세상에 멸시를 당할 뿐입니다.

성령을 인정하거나, 은사 활용에 활발한 교회나 교단은, 계속하여 발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 이전이냐. 이후냐는 천지차이입니다. 다 같이 예수 이름을 불러도, 오순절 이전의 믿음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평안 때는 잘 믿는 것 같다가, 어려운 일 당하면 제자들처럼 다 도망치고 맙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사람이 되어 잘했다 칭찬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보다 더 풍성한 수확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9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하십니다. 여기 종을 부리는 자는 주석을 보면 스스로 종이 되는 자를 가리킵니다. 즉 스스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스스로 높은 체하는 자란, 체면만 생각하고, 먼지 나고 땀 흘리는 일은 피하는 사람입니다.

 

밥도 먹지 못하면서 겉모양만 번지르르하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신사복 그건 옛날 말입니다. 옛날 가난할 때 책상에 앉아서 펜대 굴리는 사람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진짜 부자는 작업복 입고 다닙니다. 누가 봐도 부자인 줄 모릅니다. 비록 작업복을 입고 비천한 것 같아도, 부요하게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능력은 없으면서, 신사인 척하고 경건한 척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은 시끌 벅적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 너무 조용하고 깔끔해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가정도 애들 소리도 나고, 악기 소리도 나고, 웃음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귀족적인 신앙, 자랑할 것 없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예루살렘 왕궁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시작했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서민적이어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부흥운동은 언제나 가난하고 서민적일 때 많이 일어났습니다. 배부르고 귀족적일 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4:4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하십니다. 너무 귀족적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책도 너무 아끼지 마시고. 은혜 되는 말씀이 있으면 색연필로 밑줄도 치고, 좋은 생각이 나면 여백에다 적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더 낮고 훈훈한 서민적인 믿음 속에 성령의 꽃은 피고 더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3. 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하십니다. 가축이 아파도 의인과 악인의 자세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악인의 동물 사랑은 동기가 다릅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물에게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상한 물질을 투여한다든지 동물과 사람을 해하는 일만 합니다. 악인은 마음에 가축의 행복에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잔인할 뿐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다릅니다.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봅니다. 여기 생명을 돌본다.”는 말은 자기 짐승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는 뜻입니다. 짐승이 원하는 것을 알 정도면, 축산학 박사나 수의학 박사가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축산에 성공할 사람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무관심하면, 자기의 욕망만 따를 뿐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까? 성령을 받아야 알 수 있습니다.

고전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성경과 아울러 성령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만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우리에게 그 느낌을 전달해줍니다.

 

4. 이 길만이 온전히 만족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11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토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기에 개인이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최고의 선택은 자기 기업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머물며 거기서 농사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며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강이나 저수지가 없어 하나님만 바라보는 농사법입니다.

잘 살고 못 살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성경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풍년을 주시면 2년 먹을 양식, 혹은 3년 먹을 양식도 주셨습니다. 가나안의 포도송이를 장대에 두 사람이 메었습니다.

우리가 농업을 다시 봐야 합니다. 사람을 흙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흙은 굉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주었더니 토마토 한 그루에서 4만개가 열리더랍니다. 진짜 기술은 어디 누구도 안 가르쳐 줍니다. 스스로 터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방탕한 사람들은 조상 적부터 물려받은 기업에는 관심 없고, 사기를 치거나 남을 해하려는데 관심을 돌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확천금을 노릴까? 그러나 그것이 자기 인생을 저주하는 가장 미련한 일입니다.

 

신앙에도 이상한 편법 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기업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만 믿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은혜와 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관상기도다. 참선이다. 기호흡이다. 뭐다 이방종교의 기법을 신앙에 도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혹 기적이 있다 해도 모두 악령일 뿐입니다. W.C.C.(세계교회협의회)에서 다른 종교, 이념, 다 수용하자 하는데, 이것은 기독교가 부흥하는 것 아니고 스스로 자멸하는 것뿐입니다. 오로지 성경대로 기도하고, 복음 전하면서, 성령의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말씀과 성령에서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신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천지를 지으셨고, 성령으로 독생자를 보내셨으며,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장차 성령으로 우리 인생과 우주를 영원히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인정하고, 사모하고, 그 은사를 삶에 적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5,참 신앙의 열매 (12:12-14)

 

이 시간에 참 신앙의 열매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농사의 가장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나무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수천 년간 온갖 말씀과 은혜와 은사를 주셨지만, 바른 신앙 안에 서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때가 되어도 열매를 맺지 못해 3년을 두고 보다가,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 찍어버리라.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했다는 말씀이 있듯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믿음을 갈고 닦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 신앙의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경이 말씀하는 정도의 길을 가야 합니다.

12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 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뿌리가 나오는데 원칙이나 원리를 의미합니다. 원칙이 무엇입니까? 신앙입니다. 의인은 복 받는 이 원칙에 충실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 받는 원칙은 단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떠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십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칙에 충실하시고. 예수님 떠나지 말고 하나님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6: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산은. 그 어떤 수학의 공식보다 정확합니다. 우리가 바로만 섬기면 무엇보다 더 정확하게 은혜의 단비로 임하십니다.

 

2. 항상 믿음의 생각과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13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하십니다. 의인의 입술은 아름다워 어떤 환난이 와도 벗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항상 믿음의 말만 하고 사랑의 말만 하고 지혜의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하십니다.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미련해서 스스로 말로 얽힙니다. 별 일 아닌데도 악감으로 대하여 문제를 크게 합니다. 6:2에 보증에 대한 이야기 가운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하십니다. 보증만이 아닙니다. 미련하고 악하면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말을 잘해야 합니다. 같은 말을 해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같은 말도 예쁘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 차갑고 찌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믿음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항상 진리에 서서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말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6:45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옵니다.

믿음과 긍정적인 말만 하려면 성경을 보고 늘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아는 것도 좋지만 암송도 중요합니다. 성경암송에 기적이 나타납니다. 성경암송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능력을 받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봅니다. 그래야 정확하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심리를 모르고 장사할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을 알아야 현실에서 믿음의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3. 참 신앙의 열매를 맺으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14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하십니다. 6:10-11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하십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처럼, 손은 행위와 부지런함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손만 보아도 부지런한지 알 수 있습니다. 24:19에도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하십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지런한 종교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부지런했습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행해야 합니다. 수고해야 합니다. 기도만 하고 수고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반대로 수고만 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 많이 했으면 수고도 하셔야 합니다.

 

우리 믿음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아무리 길이고 밝은 등불이어도 걸어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 방법을 알려주고 보여주면 실행에 들어가야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고 행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초대교회 훈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매 맺지 못한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 맺지 못하면 이를 제해버리십니다. 신앙의 참 열매를 맺으십시다. 우리 모두 참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해 성경이 가르치는 정도를 가고, 말씀으로 충만하여 믿음의 생각과 믿음의 말을 하고, 배운 대로 하나님 잘 경외하여 영육 간의 참되고 풍성한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46,하나님의 음성 (12:15-17)

 

이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정상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말씀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19:1-4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에는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꼭 육신의 귀로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듣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많게는 성경을 통해서 들려오고, 혹은 우리 마음의 생각에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일까요?

 

1. 자기 주관을 내려놓을 때 들려옵니다.

15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하십니다. 왜 미련한 자는 남의 권고를 듣지 않을까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관이 강합니다. 그래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남이 말해도 귀를 막아버립니다. 알지 못하면서 그러면 참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입니다.

 

9:7-8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하십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자를 가르치는 것은 수욕만 당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배우려는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배우려는 열린 사고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최적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항상 이렇게 여쭈는 마음의 상태, 그 상태가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가장 합당한 상태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삼상3:10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상태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가장 잘 들립니다.

 

2. 선입견과 격한 감정을 내려놓을 때 들려옵니다.

16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하십니다. 사람이 너무 성급하고 감정적이면 실수하고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성급한 마음은 사탄이 줄 때가 많습니다. 특히 감정에 있어서는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감정은 인화물질과 같아서 순식간에 타오르지만 그래서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손해는, 선입견과 감정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징계를 받지만, 속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침략국에 대한 악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시므이가 저주할 때 무엇이라 말합니까?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징계하신 채찍으로 알고 달게 받아들였습니다.

 

교회의 영적 위기는, 늘 국가의 위기와 직결될 때가 많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남북분단의 비극이 있었고, 1950년 교회가 분열하더니 그해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것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반면 유엔이 우리를 도와 공산화를 막은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6,25가 터졌을 때 성도들이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미국의 대통령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가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한국엔 50만이 넘는 크리스천이 있는데 만일 공산화가 된다면 저들은 모두 다 처절하게 몰살당하고 맙니다.” 이 말을 들은 트루먼 대통령은 즉시 유엔을 소집하고 맥아더 장군을 통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하여 극적으로 공산화를 막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어떤 일에 고난이 닥치게 되면. 왜 이런 일이 있을까? 방법의 잘못일까? 신앙적 잘못일까? 아니면 거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무슨 메시지가 있을까? 깊이 생각하고, 회개하라는 메시지이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무너진 제단을 일으켜야 합니다. 감정을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분별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17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분별해서 들으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하는 자숨 쉬는 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호흡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숨 쉬는 자란, 넓게는 진리에 목숨을 거는 사람, 좁게는 양심의 소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하는 자의 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좋을 진실한 말입니다.

 

반면 거짓 증인은 자기의 이익과 이해관계에 따라 온갖 그럴듯한 말을 생산하여 이득을 취하거나 이 편에 붙었다 저 편에 붙었다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소리가 있습니다. 참된 진리의 소리와 거짓된 소리, 양심의 소리와 육신의 소리, 그러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이 없어서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듣는 귀가 둔하여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열린 사고를 가지고 배우려는 심정으로 자기주장과 사적 감정을 내려놓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깨닫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7,치료의 음성이 되려면 (12:18-22)

 

이 시간에 치료의 음성이 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잠언에는 언어에 대한 교훈이 많습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말이란 물리적이지 않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위력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사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처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이 말입니다.

 

그럼, 치료의 음성이 되려면 어떤 음성이어야 할까요?

 

1. 지혜의 음성이어야 합니다.

8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하십니다. 말은 칼과 같습니다. 칼은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잠언 기자는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지 말고 지혜롭게 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지혜롭게 하는 말이란 어떤 말일까요? 8절에 이미 답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말입니다.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에 악의가 없을지라도 큰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위험한 사람입니다.

 

치료의 입술이 되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로운 입술은 사실 여부에 입각할 뿐 아니라 여러 관계를 생각하면서 특히 이 말이 나갔을 때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 생각하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에게 배워야 합니다. 아시아 일곱 교회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말씀하실 때 책망을 하시기 전에 칭찬을 먼저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칭찬만 받은 교회,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지만 주님은 칭찬할 것은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지혜의 음성은 치료의 음성이 됩니다.

 

2. 진실한 음성이어야 합니다.

19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하십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여기 진실은, 거짓되지 않은 사실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이해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치료가 일어난다는 것이 상담의 중요한 이론입니다. 그래서 성실하게 잘 들어주는 것이 상담 이론의 중요한 기초입니다.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음성만이 치료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하시는데, 오직 진실만이 통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치료를 받는 것은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그 말씀도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또 다 아십니다.

 

139편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1-4) 하십니다. 우리를 다 아시고 하신 음성이기 때문에 위로가 되고 능력이 되고 회개가 됩니다. 주님이 알아주시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사람은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은 알아주시니 신앙 안에서 치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화평케 하는 음성이어야 합니다.

20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하십니다. 화평이란 무엇일까요? 화평이란, 양자 사이에서 평안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중간역할을 잘해야 하나님 자녀라는 말을 듣습니다. 반대로 쓸데없는 공연한 분란만 일으키면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로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고 사람과 화평해야 합니다. 국가 간의 화평, 지역 간의 화평, 이웃과의 화평, 가족과의 화평이 필요합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양심의 화평도 중요합니다. 마음의 평화 없이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보혈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늘 용서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안합니다. 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평안합니다. 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탄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사탄은 속이는 자입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서 비열한 생각을 합니까? 부정적인 말, 불신의 말은 모두 거짓된 사탄의 말입니다.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세요. 그러면 평안해집니다.

 

4. 사랑의 음성이어야 합니다.

21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하십니다. 의인은 살리는 사람이요, 악인은 죽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뇌에는 아미그달라(amygdala)라는 단백질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 물질은 듣기 싫은 말이 들리면 뇌에 입력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따뜻한 말은 잘 들려옵니다. 또 듣고 싶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차가운 말은 듣기 싫습니다. 피하려고 합니다. 그것 역시 본능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모두 치료의 힘이 대단합니다. “아 그런 것이 있었나요? 놀랍네요.” 그렇게 되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를 살려주는 것입니다. 기는 근력과는 다른 정신적 에너지입니다. 자녀의 기를 살려주세요. 기를 죽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폐인이 되고 맙니다.

부모의 기도 살려주세요. 자녀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기 죽어 살아가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만도 위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 부모님이시라고 말씀하세요. 부모를 부모 위치에 바로 놓아드릴 때 부모가 빈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을 보면 기를 죽이세요. “네가 무엇이냐?” 사탄을 낮춰보면서 기를 꺾어야 물러가는 것입니다. 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대상입니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에 천지가 움직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기는 살려야 믿음이 오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에게도 기가 필요합니다. 그 기를 사랑의 음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음성이어야 합니다.

22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하십니다. 우리 입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입술이어야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우리 심령이 치료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데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림이 우리에게 위로와 치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운 예배는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려드리는데 있습니다. 더 아름답게 더 위대하게 더 기쁘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시간만이 아니라 그렇게 준비해야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준비하면 더욱 큰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이 있어야 내려오는 것이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상심한 제자들에게 치료의 음성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치료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더욱 새로워져서 지혜의 음성, 진실한 음성, 화평의 음성, 사랑의 음성,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음성으로 치료 받고 치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8,성도의 마음관리 (12:23-25)

 

이 시간에 성도의 마음관리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영적생활에서 마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독교 교리에 신앙의 좌소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겠습니까? 마음 관리가 황금보다, 명예보다,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그 좋은 에덴동산 왜 잃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마음 관리 잘못해서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까? 역시 마음 관리 잘못해서입니다.

 

마음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호락호락하지 않고 항상 신중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23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하십니다. 지식을 감춘다는 것은 아주 감춘다는 뜻이 아니라 들어도 배워도 신중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것을 들어도 쉽게 발설하지 않고 마음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하십니다. 미련한 자는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전해서는 안 될 것을 분별없이 전합니다. 우리가 반만 년 역사 가운데 한 번도 침략은 않고 침략만 당했다고 하는데 자랑할 것 하나 없습니다. 그토록 침략을 당해 피로 얻은 값진 역사적 교훈을 속히 잊고, 또 다시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신중하지 못한 탓입니다.

 

우리 영적생활에도 신중해야 합니다. 호락호락하지 말고, 무엇을 들어도, 배워도, 행해도,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이 어떻게 되어도, 확실한 감을 잡을 때까지는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넘어졌어도, 나는 실패자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혹시 가난해도 나는 가난한 자다. 나는 복 없는 자다. 나는 별 거 아닌 자다 그렇게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비록 넘어졌어도 예수 안에서 승리자입니다.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관리는 두 가지로 합니다. 먼저 잠3: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진리로 마음을 관리합니다. 다음은 히13:9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은혜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늘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상황만 보고 호락호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항상 마음을 깨워 부지런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24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하십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가난했습니까? 게으름 때문에, 게으름 때문에 가난해지고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 결과 부림을 받는 종이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종 되기 알맞습니다. 가만히 있어 보세요. 돈 떨어져, 식량 떨어져, 은혜까지도 떨어집니다. 가만히 있으면 시험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죄의 종이 됩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이러냐? 가만히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사탄의 종이 됩니다. 부지런해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부지런한 자의 것입니다. 게을러서는 큰 은혜를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6:6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생활만이 아니라 영적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3. 항상 맡김으로 평안하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25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번뇌하게 되나의 원어적 뜻은 꿇어 엎드리게 하다.’입니다. 근심이 지나쳐 일상생활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실의와 절망에 빠져 쓰러져 있는 모습입니다.

헛쉘 포드 목사의 '물새와 참새의 대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물새가 참새에게 말합니다. “참새야, 저 아래 땅위에서 허덕거리며 다니는 인간들을 보아라.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는 저 인간들의 꼴을 보란 말이야그런데 이 말을 들은 참새의 대답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래, 물새야, 아마 쟤들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모양이지!” 세상 모든 짐을 지고 염려와 근심 속에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을 바라보며 나누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참새도 물새도 걱정 없는데 인간은 왜 걱정만 하고 사는지, 부끄러운 줄 알고 다 떨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염려의 헬라어는 '메림나오'인데, '걱정한다, 근심한다, 마음이 찢어진다, 마음이 나누어지다. 분열되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워리(worry)라는 단어를 썼는데 '물어뜯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염려는 영혼의 멱통을 물어뜯는 것입니다. 그만큼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25절에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선한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양식 열심히 드시기 바랍니다. 들은 말씀을 암송하며 되새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말씀으로 사셨고 말씀으로 시험을 다 이기셨습니다. 어떤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을 향한 여호수아처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함부로 호락호락하지 말고 신중하게 만사를 취급하고,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고 염려하지 말고 평안함으로 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49,성령을 따라 사는 삶 (12:26-28)

 

이 시간에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시원하게, 밤에는 불로서 밝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과 성령입니다.

 

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하십니다. 말씀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6:13에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성령으로도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마치 물과 같아서, 일정한 법칙 속에 흐르는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흘러넘쳐야 하는데, 이 법칙을 위반하면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성령의 흐름 속에 살아갈까요?

 

1. 복음의 기초가 잘 놓여야 합니다.

26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하십니다. 잠언에 의인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 의인은 어떤 의인일까요? 살펴보면 인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소경이 아닙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는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의인은 또 어떤 의인인가? 악인과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하십니다. 미혹하는 악인입니다. 남도 미혹하지만 자기도 미혹 당합니다. 미혹이란 속임과 비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진실과 진리에 선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아무 데나 흐르지 않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사람에게 흐릅니다. 예수 안에서 흐르고, 예수의 복음의 진리 안에서 흐르고, 성경 말씀 안에서 흐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보혈의 칭의로서 의롭고, 십자가의 성결로서 의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그 심령에 강물처럼 흘러넘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악령이 틈타 늘 시험에 넘어지고 신령한 사역을 할 수 없다면 항상 기초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내가 예수를 나의 유일의 구주로 믿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믿어서는 받을 수 없습니다.

타 종교에도 신비가 있는데 그것은 100% 악령입니다. 개인을 신봉하는 이단에도 은사 비슷한 것이 있는데 그것도 악령의 역사입니다. 다른 종교에도 우리와 비슷한 것이 있다고 마음 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음은 내 심령이 세속과 얼마나 분리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과 짝하면 악령에 속한 영이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거룩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온전히 분리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주님을 닮아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사랑의 사람인가? 예수님처럼 낮아진 섬김의 사람인가? 성령님처럼 열심의 사람인가? 이 기본에 늘 충실하셔야 순수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초가 잘 놓여야 합니다.

 

2. 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27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하십니다. 27절이 강조하려는 내용은 부지런함입니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하시는데, 하나님 섬기는 일에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예배할 때 성령이 흐릅니다. 찬송할 때 성령이 흐릅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잡을 수 있는데 게을러서 잡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은혜 생활하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누가 은혜를 주입시켜 주는 것 아닙니다. 타인이 은혜를 주입한다면 과연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그래서 히6:11-12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하십니다. 각자가 부지런하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 사냥하다.”라는 말에는 굽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게으른 자는 눈앞에 나타난 짐승도 잡지 않을 뿐 아니라 잡아놓은 사냥물도 요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26:15에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하십니다. 게으르면 요리해 놓은 것을 스스로 먹으려 조차도 않습니다.

 

신앙에 적용해 보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놓으신 은혜에 등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소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은혜의 자리만큼은 등한히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려고 교회를 통해서 온갖 준비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무관심하다면 그건 하나님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밥을 떠먹여줘도 입을 벌리지 않으면 그건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자동으로 성령으로 살게 됩니다.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듯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자동으로 성령으로 살아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열심히 경외하여 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합니다.

28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생명과 사망이라는 두 구도가 나타납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런 구도입니다. 살려면 잘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공의로운 길에는 해악이 없습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지만, 그 길을 떠나면 사망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30:15-18에 모세는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흐릅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불신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절되리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음에도 가나안을 향해 쳐들어가다 큰 봉변을 당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말립니까?(14:42). 그러나 그들이 만류를 거절하고 올라갔다가 크게 참패를 당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오다가 인도하던 별을 잃습니다. 왜 잃었을까요? 왕을 떠나자 다시 별의 인도를 받는 것을 볼 때(2:9), 헤롯 궁에 자문을 구하려고 생각하다 잃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가라 해서 가면 복이 되지만 가지 말라 하시는데 가면 해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아버지께 받은 성령을 우리를 위해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성령은 강물과 같이 흘러가 온갖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의 기초를 떠나지 말고,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 항상 생수와 같은 성령의 흐름 속에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