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후 믿음 (단 3:16-18)
전천후 믿음 (단 3:16-18)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시간에 “전천후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전천후(全天候)란 어떠한 상황 그 무엇과 상관이 없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을 전천후라고 합니다. 우리 믿음이 전천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믿음을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비서새가 있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하늘을 곧잘 날고 무리지어 놀기도 하고 벌레를 잡고 또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위기를 만나게 되면 당황하여 날개가 꽁꽁 얼어붙고 온몸이 마비가 되어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된다고 합니다. 비서새와 같은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전천후의 위대한 믿음을 봅니다.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지는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참 믿음을 고백하고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18절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란 그들의 위대한 믿음을 한 마디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전천후의 믿음이란 어떤 믿음입니까?
1. 불가능이 없는 믿음입니다.
17절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무쇠를 녹이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는 이 믿음은 불가능이 없는 믿음입니다.
막9:2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합리성이 있을 때 믿고, 가능성이 있을 때 믿고, 문제가 작을 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도무지 해도 불가능할 때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요16:33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이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어쩌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지 그것까지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는 다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할 때 믿는 그 믿음을 더 귀하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부터 선언하시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2. 목숨을 바친 믿음입니다.
18절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얼마나 확고부동한 믿음입니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신다 해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표현은 신앙은 결코 흥정이나 합의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대 여호야김 왕 때 바벨론에 잡혀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상 앞에 드려지는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채식하면서 우상을 거절하고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제국의 권위와 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바벨론 성 남쪽 약 10km 지점의 두라 평지에 약 30m의 거대한 금 신상을 만들고 제막식 때 모든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신상 앞에 절하게 했습니다. 만약 왕명을 어기면 활활 타오르는 풀무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에 던져지면 던져졌지 결코 왕의 신상에 절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우상에게 절할 수 있겠습니까? 왕은 노하면서도 너무나 귀한 인재들이기 때문에 기회를 주고 달래고 회유하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면서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소원대로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어야 합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대가 때문에 믿는다면 아직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은 대가를 믿지만 대개가 없다 할지라도 주를 위해 충성하다 죽기를 원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 믿음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치 않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불같은 시험이 있어도 이 믿음 가지면 다 이길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이 와도 변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했습니다. 이런 담대한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전천후의 믿음입니다.
3. 깊은 체험의 믿음입니다.
25절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믿음이 자기에서나 사람에게서 났다면 무너질 날이 옵니다. 고전3:12-15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 드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혼적인 자기 열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깊은 체험과 연합을 이룬 사람은 어려울수록 더욱 용기를 발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속에서 지원하시는 강력하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4. 말씀을 서는 믿음입니다.
7절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이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러한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는 것은 십계명의 제 1,2계명대로 하나님께 돌려질 영광을 결코 우상에게 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2:3-6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저 유명한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캅도 끝까지 믿음 지키다 순교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믿는 자를 잡아 가두고 죽이고 갖은 핍박을 가했습니다. 로마 총독이 폴리캅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나는 주님을 86년 동안 섬겨 왔소. 그분은 내게 한 번도 나쁜 일을 행하시지 않으셨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왕을 저주 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신앙은 당시 많은 신자들에게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생명 바쳐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위대한 세례요한도 메시아에 대한 유대교적 믿음을 가졌을 때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 세워진 신상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탐욕도 우상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믿는 것도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이 우상이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악을 이기시고 죄인을 위해 십자가 지심으로 참 신앙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고 예수 안에서 우리들을 승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리 안에 찾아오신 성령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더욱 큰 은혜를 체험하여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어떤 가운데서도 승리하는 전천후의 믿음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참 예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