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사 서

갑절의 능력을 받자 (왕하2:1-10)

공 상희 2018. 5. 6. 06:18

갑절의 능력을 받자 (왕하2:1-10)

 

이 시간에 갑절의 능력을 받자. 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갑절이란, 양적으로는 두 배이지만, 성경에서 달리 쓰일 때는, 본질적인 온전함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갑절의 능력과 영감이란,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즉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는 것도 능력이지만, 내가 본질적으로 변화된다면, 그건 더 큰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에서 이적을 나타내고크게 쓰임을 받으면서도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해, 방황하는 주의 종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참된 변화를 받아 갑절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본질적인 변화를 받아, 온전케 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받는 과정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그 방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엘리사가 능력의 주의 종, 엘리야를 부지런히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스승이 이리 가면 이리 가고, 저리 가면 저리 가고, 따라오지 말라 해도,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거듭 거듭 맹세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우리도 변화 받고, 참된 주의제자가 되려면, 엘리사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부지런히 우리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갑절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디로 따라가야 할까요?

 

1. 길갈로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 자리)

 1절에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하십니다.

길갈은 굴러가다라는 의미가 있는 지명입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전 국민이 할례를 받던 곳으로, 할례를 통해 애굽의 수치를 모두 굴러가게 했다고 해서 길갈이라 불렀습니다.

 

이처럼 죄를 굴려버리는 길갈은, 신약에 대입해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변화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이 말씀이 히12:2에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지신 십자가 앞에, 세상의 죄악 된 것들을 깨끗이 굴려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1절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라고 하는 것처럼, 엘리사는 혼자 가지 않고, 엘리야와 더불어 갔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죄악을 굴려버리려고 내가 죽고자 할 때, 나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속 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의지하여 죽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흔히 쓰던 그리스도 와 연합을 말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렇게 예수 공로와 연합하여 내가 죽을 때, 예수님이 우리 인격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온전하게 변화되고 갑절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예수님과 더불어 죄에 대하여 온전히 죽고, 의에 대하여 온전히 사시기를 바랍니다.

 

2. 벧엘로 따라가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

 2절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맹세까지 하며 벧엘까지 따라갔습니다. 벧엘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떡집입니다. 야곱이 이곳 벧엘에서 하늘에 놓인 사닥다리를 보고, 복을 받았습니다.

이 벧엘이 주는 교훈은,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영성의 기초입니다. 예배가 부흥의 비결이고, 예배가 능력의 기초입니다. 달리 은혜 받으려고 했다가는 큰 시험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나 깨나 예배 잘 드리기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하며, 준비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공식 예배도 그렇지만, 생활 속에서도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 예배와 기도가 영성의기초요 능력 받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 벧엘로 따라 가는데도 강조되는 간구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2절에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배생활, 기도생활을 하되, 철저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예배에 목숨 걸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배가 온전해 질 때, 온전케 하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혹시 능력의 원천이 되는 기도의 제단이 무너졌다면, 이 시간 수축하시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요단강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의 자리)

 6절에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하십니다.
요단강은 헬몬 산에서부터 흐르는 가나안의 생명줄과 같은 강입니다. 그럼 대체 이 요단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8절과 14절에 요단강을 갈랐던 것을 참고해 볼 때, 믿음의 행함으로 보아야 하며. 그렇다면 생명 내건 말씀신앙입니다.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맥 거두는 시기의 깊은 강을, 여호와의 말씀 하나만 믿고, 믿음으로 요단강 물을 가르고 건너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모맥 거두는 하절기이기 때문에, 물이 많아 걸어서 건너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지만, 그들은 자기 육신적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전진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강물이 벽으로 서고 갈라져서, 모든 백성들이 다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요단으로 따라가자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생각까지 변화시켜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생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속에 말씀이 없는데, 무슨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버가모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버가모 교회는, 순교자가 나올 만큼 예수님께 목숨을 건 교회였으나, 말씀이 없으므로,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과, 버가모 지역에 보편화된 이교 사상이 늘 차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그렇습니다. 예수 이름을 위해 순교적인 피를 흘렸지만, 아직도 교인들의 사고와 습관은, 공자와 석가와 무속과 인간의 생각 등으로 정복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 년 동안 믿었다는 사람들인데도, 말하는 것을 보면, 믿음 없는 소리만 하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히 채워놓지 않으면, 절대 변화는 없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생각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잠23:7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배우고, 마음을 개혁시켜,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나 혼인집에 가셔서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우라고 하신 다음에야 그 물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영적 성장이란, 말씀 안에서 부단한 사고의 변화 속에서 일어납니다.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여 행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여리고까지 따라 가야합니다. (영적 전쟁의 자리)

 4절에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합니다.

 

여리고는 어디일까요? 여리고는 한 마디로 무너뜨려야 할 것들입니다. 좁게 보면 우리 자아이기도 하고, 넓게 보면 이 세상의 불신과 악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영적인 싸움을 계속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이것이 능력 받는 길입니다.

 

그래서 엡6:10-11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하십니다.

전신갑주 입고 사단과 싸우는 것이, 주 안에 사는 방법이요, 그것이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화 되고, 나라가 융성해진 것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밤낮 부르짖어 능력을 구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 기도소리 찬양소리, 예배 소리는 점점 작아져가고 있습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선조들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열매를 따먹고 있다면, 우리 후손들은 우리 가 영적 전쟁에서 이긴 것이 적으므로 열매를 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깨어 근신하므로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하여 영적 싸움을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기위해,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변화 받아, 온전한 능력 안에 거하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 붙들고, 기도에 전념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더니, 위대한 능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따라가고, 예배의 자리로 따라가고, 말씀의 자리로 따라가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까지 따라가십시다. 그래서 모두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고, 갑절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