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실망의 3대 함정, (마 11:2-6)

공 상희 2018. 4. 29. 06:21

실망의 3대 함정, (11:2-6)

 

이 시간에 실망의 3대 함정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에게나, 혹은 타인에게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믿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기대가 무너질 때, 실망하게 됩니다. 또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커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믿을 대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대해서는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대하여 실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토록 예수를 메시야로 소개하고, 그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외치며, 옥에까지 잡혀 들어갔는데, 예수님은 웬일인지 요한의 기대대로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지 않으시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과연 이런 분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하나? 기대가 컸기에, 실망 또한 컸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셰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았고, 일생 빈들에서 연단 받은 기도의 사람이요, 성령의 지시를 받고, 메시야의 길을 예비했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고,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나타난 그 능력의 사람,

그리고 의롭고 강하고 불도저 같은 그 믿음,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겸손의 사람,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 하고자 했던,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대하여 실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거인 세례요한이, 실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실망의 함정이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서, 나와 여러분도, 믿음에 실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믿음의 거인도 무너뜨린 실망의 함정은 무엇일까요?

 

1. 잘못된 지식의 함정입니다.

세례요한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함정은, 그의 메시야 관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메시야 지식을, 세례요한도 가졌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메시야관은, 고난의 메시야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메시야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있을 수 없는 치욕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은 것은 잘한 것이지만, 각론에 있어서는, 잘못 된 지식으로 기대했기 때문에, 실망도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10:2-3"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십니다.

 

이처럼 잘못된 지식으로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고 다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열심은 있으나, 비 진리를 가지고 이단이 된 사람들을 보면 박 태선, 문 선명, 이 만희 장 길자, 정 명석, 이 재록등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중세기에 교회가 타락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진리에서 떠나, 개인의 공덕사상이 강조될 때, 사람들이 얼마나 죄에서 방황했습니까? 루터도 그런 갈등 가운데 방황하다가, 마침내 로마서에서 이신득의의 진리를 깨닫고,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습니다.

 

2,기도 역시 열심히 한다고 다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4: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못한다면, 기도 할수록,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없다면, 왜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살펴야 합니다.응답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고, 육신의 정욕을 구하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또 열심히 회개 한다고 다 사죄 받는 것이 아닙니다.

59:1-2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십니다. 회개는 독백이나 신세타령이 아닙니다.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돌이켜 회개할 때 사죄 받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자신을 살피고, 진실로 하나님 앞에 잘못된 지식, 잘못된 소원, 잘못된 심령이 아니었는지 살펴서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2. 잘못된 표적중심의 함정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에 대해 실망감이 찾아온 또 다른 이유는, 투옥이라는 외부적인 요인보다, 영적 체험과 관련된, 내면적인 문제가, 더 큰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세례요한이 성령 충만으로 능력과 표적이 체험으로 나타날 때와, 그리스도의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에 낙심하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즉 성령의 증거 하심이 희미해진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태로부터 충만하시던 성령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영 권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듣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며, 그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았을까요?

그런데 옥에 갇힌 후에도 세례요한에게 예수가 메시야라는, 이런 성령의 확신이 지속되고 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그는 결코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보이는 표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모세와 다윗 같이 표적을 나타내 원수들을 멸하고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여 민족을 구원 하시기를 기대했는데, 당시 예수님은 육신일이 아니라. 영의 일에만 힘쓰시므로 실망하게 된 것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꾸 표적만 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잘못된 메시야관 외에도, 그의 잘못된 표적 관까지도 다분히 유대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성령의 감동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려 주셨다면, 이제는 그 말씀위에 끝까지 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그 말씀에 대한 기대가, 잘못된 표적중심의 신앙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유대인들의 표적중심의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도 흔들리는 믿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표적중심을 악하고 음란하고 불신이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표적은 믿되, 표적 중심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표적이 멈춘 상황에서 요한의 내면은 고독한 옥살이 못지않게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야 역시 능력이 나타난 후 낙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의 박해를 피해 다닐 때, 왕상19:10을 보면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합니다.

 

이때의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대 승리를 거두던 능력의 엘리야가 아닙니다. 육신도 지쳤고,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과, 음성도 예전과 같지 않은 ,고독한 엘리야였습니다. 권력을 대항하여 우상과 싸우던 그 놀라운 믿음과 능력은 어디로 가고, 고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호렙산 반석에서 그의 잘못된 체험관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지금도 대개는 초신 자일 때 하나님께서 표적적인 체험을 많이 주시지만, 어느 정도 신앙이 자라면, 온전히 말씀위에 서라고, 그런 체험 거두어 가시고, 훈련의 광야로 내보내시는 것을 봅니다.

즉 전에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체험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믿음으로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전에는 하나님의 이름만 불러도, 그 분의 임재가 느껴지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는데, 이런 체험을 잃은 지 몇 년째라면서 탄식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상입니다. 이제 광야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럼 광야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 없고, 귀에 들리는 것 없고, 함께 하시는 체험이 없어도, 오직 말씀대로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 광야에서 훈련 잘 받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승리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 감사와 찬양의 삶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실망하지 않으려면, 표적중심의 믿음이 아니라, 오직 말씀위에 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무지의 함정 입니다.

4-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십니다.

 

세례요한이 옥에 갇혀 있다 보니, 예수님의 메시야 적 활동상황에 대해 현실적으로 무지했습니다.

 

엘리야의 실망도 자기 혼자라는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11:3-5"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 하셨습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이 없고, 만져지는 표적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마치 광야에서 연단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지금 이 세상 광야에서 신앙의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즉 훈련 상황이라는 사실입니다.

 

12:5-6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에 무지할 때 실망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고 보면 다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형통케 하시고, 강하게 하신 것입니다.

2:26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신다고 하신 대로, 악인들을 형통케 하시는 것은, 그들의 형통을 통해서 의인들을 복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을 통해서, 의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악인들이 성도를 대적하고, 이교와 이단들이 창궐하게 하시는 것은, 다 우리를 경책하시는 사랑의 채찍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참 아들로 대우하셔서, 징계로서 연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를 진실로 깨닫고 무지에서 벗어나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망하는 것은, 신에 대한 불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울수록 담대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도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과는 사흘 만에 승리의 부활을 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우리의 구원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떠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하고서도 실망된다면, 내 뜻대로 하려 했거나, 회개하지 않거나, 육신의 눈으로 보았거나, 말씀에 서지 못했거나,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섭리와 복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잘못된 메시야 지식과, 잘못된 표적중심의 삶에서, 또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에 서서, 담대한 믿음으로 실망하지 말고, 더욱 힘차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