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구원의 방법 (요 1:12-13)

공 상희 2018. 3. 14. 06:43

구원의 방법 (요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지난 시간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에 관하여 배웠습니다. 즉 인간은 누구든지 영원히 멸망할 죄인이요 영적으로 죽어 있고 또 앞날에 영원한 심판이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1. 예수 말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엡2:8-9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했고, 벧전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토록 성경이 예수 말고는 구원이 없음을 강조한 이유가 뭘까요? 종교다원주의로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도 하나의 길이라는 다원주의 가운데 있다면 그는 구원이 무엇인지 명확히 모르는 자입니다.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을 다 아버지라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는다 해도 아직 구원에 이른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율법으로도 안 됩니다. 그래서 갈5:4에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구원과 죽음에서 영생에 이르기 위해 힘썼지만 불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아닌 다른 종교를 통해서 공덕 쌓고 선행하고 양심 도덕 지식 철학 의학 수련 음식 등을 통해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치지만 죄에 빠진 인간은 불가능합니다. 영생은 물론 작은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해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2001년 8월 27일자 한국선교신문에 나왔던 3일간 죽은 상태에서 지옥을 보고 온 어느 중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미얀마(버마)에서 한 독실한 불교 승려가 3일 동안 죽었다가 화장하기 직전 관에서 살아났는데 그 사이 그는 천국과 지옥을 보았고 그로 인해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아데트 피얀 신토 파울루입니다.


그는 1977년 19살 때 불교의 승려가 된 그는 6년째 되던 해에 황열병과 말라리아에 걸려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죽어 무시무시한 불못을 보았지만 미얀마의 불교에는 지옥사상이 없기 때문에 그 곳이 지옥인줄 몰랐습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이 존경했던 그 시대 미얀마의 많은 중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왜 저 스님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 받던 스님인데 지옥에 왔느냐” 물었더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지옥에 간 이유다.”


놀라운 사실은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어떻게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가? 부처는 좋은 윤리와 도덕의 사람인데 왜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가?”라고 물었더니 “얼마나 착한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은 그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랍니다.


또 한 곳을 보니까 군복을 입고 가슴에는 큰상처가 보이는데 “이 사람은 누구냐?”고 하니까 “이 사람은 아웅 산(Aung San)이다. 미얀마의 혁명가이며 지도자이다. 그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였다. 그러나 그가 지옥에 간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하더랍니다.


파울루는 거기서 나와 베드로의 전도를 받게 되었고 “네가 지금까지 본 것을 세상에 나가 전하라”는 당부를 받았습니다. 그 때 파울루의 귀에 우는 소리가 들려 몸을 움직여 눈을 떠보니까 관속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시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을 치는데 파울루는 사람들에게 “나는 방금 지옥 불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왔는데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잘못된 종교에 속아왔다. 오직 기독교만이 구원을 전해줄 수 있는 종교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파울루는 불교의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지금쯤은 사형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간증이기는 하지만 한 부분도 틀린 곳이 없습니다. 불교는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기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흉내 우리도 부처를 믿는다는 정토종이라는 이상한 불교가 생겨났지만 그건 더 어리석습니다. 부처도 자기 문제를 해결 못해 죽었는데 누굴 믿는다는 것입니까? 그 어떤 종교라도 어떤 무엇의 도움으로라도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야 합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했고, 행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영접기도하면서도 예수를 주로 삼는 것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다면 예수님을 바로 모셨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되신 것을 믿지 못한다면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후4:3에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 다시 사신 구주이신 것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생이나 성화나 그 이상도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이루어주신 그 구원을 믿는 그 믿음으로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중생과 성화를 하나로 보거나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루는 방법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놓으신 것을 오직 믿음에 서되 끝까지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3:14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했고, 골2:6-7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나무가 뿌리르 내리듯 우리가 처음 믿은 그 진리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죄가 꿈틀거릴지라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거기서도 구원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란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더 풍성한 구원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믿음에 견고히 서야 하고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주가 되어 살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계속하여 순종과 겸손으로 주님께 넘겨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입으로만 “주여”가 아니라 온전히 예수를 나의 주로 삼는 합당한 자세를 갖추어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3:15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롬6:19에는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모시고 구원을 받을 때 예수를 주로 영접한 그 광경을 보세요. 눅19:8-9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과 우리의 모든 삶을 다 지배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드리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또 다른 공로가 아니라 내가 주인 되었던 것들을 예수님에게로 인계해 드리는 예수를 더욱 주로 삼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부르면서도 아직도 내가 주인인 부분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모두 예수님께로 넘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이요, 이것이 계속하여 믿음으로 성화되는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피 값으로 사셨으니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의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종은 자기가 주인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이제부터는 주님 기쁘게 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이 내신 예수 말고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다면 얼마나 온전히 주로 믿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부를 뿐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의 모든 삶에서 주님으로 주님이 되시도록 해드리는 참된 믿음 가운데서 더욱 자라가시는 구원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