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성령의 은사 1 (고전 12:8-11)

공 상희 2018. 2. 21. 16:14

성령의 은사 1 (고전 12:8-11)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 시간에는 고전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의 노만 빈센트 필 목사가 첫 목회를 할 때 후두염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 되어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걱정이 많으시군요.”, “예, 걱정이 많습니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십니까?”, “설교 걱정이지요. 주일설교, 주중설교, 이런설교, 저런설교, 설교, 설교, 설교,,, 그 많은 설교를 어떻게 감당할지 자나 깨나 걱정입니다.”,


“목사님, 설교 준비하는 일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때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설교를 생각하면 한평생 설교를 어찌하나? 라는 생각에 눌리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 힘이 생깁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셔서 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사도 바울이 소개하는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분류한다면 약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는 것 혹은 깨닫는 것과 관련된 은사들입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그리고 영들 분별함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들입니다. 그것은 방언과 방언을 통역함과 예언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은사로서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알고 깨닫는 것과 관련된 은사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지혜의 말씀의 은사입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무엇일까요? 이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이고 적중하게 전할 수 있도록 지혜로서 돕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는 설교자도 있고 신학자 교사 선지자 사도 예언자 부흥사 등이 있는데 이 은사의 도움을 받아서 말씀을 전할 때 그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어떻게 다른지 신학자 클린턴은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은 주어진 상황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의 적용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말한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의 안정과 성장에 필요한 지식, 그리고 생각들을 알아내고 그것들을 모으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설교나 예언 등을 수행할 때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로서 말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완악한 사람도 마음의 문을 열고, 거부하는 심령도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며, 우둔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에도 깨닫게 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말씀도 이런 은사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분이 설교의 서론입니다. 서론은 마치 집의 현관과 같아서 그 말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여  끝까지 듣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특별히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많이 사용됩니다.


그 뿐 아니라 지혜의 말씀은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초자연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마10:19-20에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혜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다릅니다. 지혜의 은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까지 망라하지만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주어지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문제 해결을 위해 주어지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사울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더고 지혜롭게 실시하고, 행27장을 보면 암초에 걸릴까 하여 두려워하여 배를 버리려는 사공들을 보고 미리 선장에게 알려 주기도 했으며, 행 15장에 유대인의 관례와 이방인들과의 관계에 어려운 문제가 야기되었을 때, 야고보는 예루살렘 장로회 의장으로서 지혜로운 말을 하였습니다.


언젠가 시찰장으로 회의를 인도할 때 어느 교회의 문제로 심히 난감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한 안건에 동의 개의 재개의까지 나와 충돌하고 양보하지 않는 바람에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그 때 회원들이 회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저를 아끼는 분들이 긴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슬기롭게 문제를 풀어감으로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2. 지식의 말씀의 은사란 무엇일까요?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말씀의 지식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명확하게 깨달아 잘 전하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전해야 할 내용이 바로 지식의 말씀의 은사요, 그 지식을 전하는 방법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입니다. 그래서 지식의 말씀은 대개 학자적인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12:11에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했는데 여기 찌르는 채찍 같은 말씀이 지혜의 말씀이라면, 잘 박힌 못과 같은 말씀은 지식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은사를 하나님께 받으려면 무엇보다 사무엘처럼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자 사무엘은 엘리가 가르쳐 준대로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대답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알지 못하고 또 말씀을 전해야 하는 도구이니 무엇을 전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달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의지할 때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지식의 은사라 해서 하늘에서 지식이 뚝 떨어진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는 본문을 읽고 또 읽고, 전후문맥과, 원어적인 부분, 낱말해석, 배경적인 부분, 주석적인 부분 등을 살펴가며 본문의 의미를 먼저 잘 파악하고, 나아가 다른 성경과의 연관성이나, 신약으로 구약을 해석하는 등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좋은 지식이 열리면 순간순간 메모하고 설교 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판단해 보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놓치게 됩니다. 벧후1:19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단숨에 다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더 밝게 열려지므로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은사란 깨닫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초자연적으로만 역사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역사 속에서 위대한 말씀의 은사자들을 주셔서 업적을 남기게 하셨으므로 그것을 참고하는 것도 말씀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요, 자신의 은사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헛소리하는 것보다 앞서간 선배들의 지식을 빌리는 것이 더욱 안전하고도 지혜로운 일입니다. 특히 평신도 설교자들은 건전한 목사님들의 자료를 차라리 그대로 읽는 것이 알지 못해 실수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모방을 부끄러워 말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역자는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총회에서 표준설교문을 내어 참고하게 한다면 그것이 더 안전하고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초자연적으로 깨닫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종종 사람들을 대하실 때 그들이 가진 질병의  원인을 알기도 하셨고 또는 사람들의 생각을 다 읽고 아신 초자연적인 지식을 봅니다.


어떤 사람이 겉으로는 웃지만 그 마음에는 깊은 슬픔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 병의 원인을 갑자기 깨닫기도 하며,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느껴지면서 알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지식은 물론 어떤 것의 숨겨진 본질을 초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능력이 곧 지식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를 주시는 것은 상대적으로 우리가 이대로는 안 되고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에도 난 은사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가장 교만하고 오만하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경에 기록된 은사를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고 사모하고 간구하고 잘 감당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자신과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