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제거하라 (마 10:28-33)
두려움을 제거하라 (마 10:28-33)
이 시간에 두려움을 제거하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가는 밤길을 혼자 걷고 있는데, 양쪽은 모두 절벽이었습니다. 그런데 발을 잘 못 짚어 실수로 절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나무뿌리를 잡고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위기를 모면한 그가 소리를 치며, 살려달라고 했으나,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손목과 팔은 점점 힘이 빠지고,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데, 서서히 손에 힘이 풀려 그만 악 소리와 함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수 십미터의 낭떠러지인줄 알았는데, 그 절벽은 겨우 1미터밖에 안 되는 언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나무뿌리를 잡고,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면서, 핍박과 박해가 임할 것을 아시고, 그 핍박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두려움은 주의 일을 하는데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적입니다.
♣삼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는데, 블레셋에서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수가 나와서,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그 골리앗이라는 거인 앞에서,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마음이 녹아내려버렸습니다.
♣사울 왕은 용맹이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 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클 만큼, 큰 체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 사울 왕에게는 용맹스러운 장수들이 많았습니다.
♣사울은 늘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힘 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모두 불러 모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진영에 두려움이 임하자. 그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골리앗과 싸울 기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니까, 골리앗과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모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그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그 거인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책망하며 싸우러 나갑니다.
♣여기서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울은 한 나라의 왕이요, 전쟁에서 뼈가 굵은 장수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시골에서 양을 치던 목동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힘을 군사적인 면에서 비교한다면,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숨어 있는 반면, 다윗은 거인과 싸우겠다고 뛰어나갑니다. ♣그것은 사울에게는 두려움이 있고, 다윗에게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골리앗이라는 적보다, 더 큰 적은 안에 있는 두려움 이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도, 이 두려움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입니다. 어둠의 세력은 우리를 거짓으로 속여서 두려움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딤후 1:7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인류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이 온 것은, 처음 사람 아담과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다음부터 찾아 왔습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고 ,기쁨을 소멸해 버립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믿음을 짓밟아버리며, 소망의 등불을 꺼버리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두려움은, 잠재력을 마비시키고, 눈을 어둡게 하여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우리의 뒤에서 펼치는 작전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두려움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귀신을 섬기는 것도, 복을 주어서가 아니라. 해꾸지 할 까봐, 두려워서 달래려고 믿고, 제사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밤에 새를 잡으려면, 총도 필요 없고 돌멩이도 필요 없습니다. 아주 밝은 후래쉬만 있으면 됩니다. 나무 위에 앉아 자고 있는 새에게 강한 후래쉬 불빛을 비추면, 새는 그대로 얼어버립니다. 그래서 날아가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새에게는 분명히 날아가서 도망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가 강한 빛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 자신 안에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전쟁을 해보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두 붙잡힐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두려움에 빠지면,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처럼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 제자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견디기 어려운 모욕과 고난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모욕과 고난 앞에서 두렵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복음 전파의 사명은,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굴속에 숨어서 싸울 생각도 못하고, 벌벌 떠는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처럼,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으로서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절에“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진실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당당할 수 있습니다. 거짓이 없을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때로는 진리가 힘이냐, 힘이 진리냐, 하는 논란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거짓이 만연한 이 땅은, 때로는 힘이 진리 노릇을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지만, 힘없는 사람들은 죄가 없어도, 고통스럽게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믿음입니다. 그래서 거짓으로 자기 이익을 취하는 것보다, 차라리 진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에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제자들이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이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자들이, 두려움의 대상인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편에 있는 분은, 그들보다 훨씬 더 강하신 분입니다.
28절에 우리의 대적이 몸을 죽일 수 있다면, 우리 편이신 하나님은, 몸과 영혼까지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대적이 아무리 강하고 두렵다 해도, 우리 뒤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의 백 그라운드가 되시는 분에 비하면, 사탄의 능력은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패가 되시고, 능력이 되시며, 우리의 간구를 반드시 들어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삼하 19장에 보면, 히스기야는, 유다의 아주 잘 나가는 왕이었습니다.
외적의 침입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치고, 백성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을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 하나님 앞에서 심히 통곡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하20:5절에“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이 얼마나 가슴 벅찬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의 눈물을 보신다는 것 믿으십니까? 나 혼자 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그 눈물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하늘로부터의 위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본분 29절이하에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하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을 어찌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또 본문32절 이하에 사람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다는 것은, 핍박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믿음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께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때는 돌이킬 수도 없고, 회개할 기회조차도 없습니다. 그대로 끝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면, 즉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켰을 때,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반겨주시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에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진실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게 합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욕심일 수도 있겠고, 사람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밖에 있는 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적입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을 없애주시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 제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사41: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내 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만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의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의 형통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제거 할 수 있는 4가지 전략이 있습니다.
1.실패의 원인을 파악하고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절망감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빠진 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원인을 찾아 제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실수였다면 실수는 실패가 아니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라면 회개를 하면 됩니다. 요일4:18절“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하십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두려움이 사라지지만, 회개치 않으면 두려움이 형벌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두려움의 형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는 것입니다.
♣수1:8-9절“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할 때 두려움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3.믿음으로 다시 도전 하라는 것입니다. 실패의 원인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제 두려움을 정복하러, 믿음으로 다시 전진해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은 극복이 됩니다.
4. 적극적으로 두려움을 대적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대적하지 않으면, 그 두려움은 나의 내면을 더욱 병들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생을 가로막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두려움의 영과 대적하여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