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부활절

부활절 새벽예배

공 상희 2017. 4. 11. 07:05

예수님의 부활이 기쁜 이유 (막 16:1-14)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절 새벽입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의 부활이 기쁜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왜 기쁠까요?


1. 예수님의 부활은 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4절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제자들이 부활을 의심했지만 예수 부활은 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목격한 여인들과 제자들이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목격한 후에도 예수님의 그 부활에 대하여 자신들이 평소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바꾸기가 그렇게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먼저 주님을 사랑했던 여인들도 그랬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새벽에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왜 찾아갔을까요? 예수님의 시체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서,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토록 누가 열어줄 것인지 염려했던 무덤의 돌문은 활짝 열려 있고 지키던 로마 병사들도 볼 수 없었고, 무덤 안으로 들어갔으나 예수님의 시신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본문 6-7을 보면 그들은 흰옷을 입은 천사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그래도 믿지 못하고 두려워 떨뿐이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0-11절에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 만난 이야기를 했어도 역시 믿지 못했습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40일 동안 만났어도 꿈인지 생시인지 계속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믿음 없다는 꾸짖음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이 기쁜 것은 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샘 해리스 박사는 “과학은 종교를 파괴시켜야 한다. 동정녀 잉태와 예수의 부활과 같은, 원시시대적인 끔찍한 환상들을 이제는 끝내야할 때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토마스 아놀드 박사는 “과거의 역사와 유물들을 고증하면서, 내가 내리게 된 결론은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2. 예수 부활이 기쁜 것은 평강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평강을 축복하셨습니다. 요20:19-20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했고,


26절에 도마에게 찾아오셨을 때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평강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평강을 축복만 한 것이 아닙니다. 평강을 주셨습니다. 평강만 주셨을까요?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 만난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망하여 고기 잡는 데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오른 편에 던져라 해서 던졌더니 그물에 큰 고기들이 가득히 잡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3. 예수 부활이 기쁜 것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딤전6:15-16에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했습니다.


기독교에는 성탄절이 있고 불교에는 석가탄신일이 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아무도 모방하지 못합니다. 석가는 자신의 생로병사 문제에 봉착하여 자기를 위해 애쓰다 죽었지 누구를 대신해서 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슬람교가 아무리 포악하게 날뛰지만 그들의 교주 마호메트의 시신은 아직도 메카에 있는 무덤에서 흔적조차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모방하지 못합니다. 우리 믿음이 참 믿음이라는 여기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에는 복이 넘칩니다. 영생의 복이 넘치고 국가의 복이 넘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미신에 붙잡혀 어느 것 하나 개발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 수상 네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4. 예수님의 부활이 기쁜 것은 내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엡2:4-7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히2:14-15에도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요5:24-25에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이 내 부활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먼저 우리 영혼이 살아납니다.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는 예수님 재림하시면 영광의 형체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말씀하셨고, 바울도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가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15: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다시 사신 부활의 새벽에 우리 모두 기뻐하십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평강을 주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기에,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부활의 새 생명을 입어 부활의 은혜로 충만할 뿐 아니라 확실히 예수 만난 부활의 증인들이 되어 온 세상에 부활의 소식을 알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