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강해,1장~5장
민수기
개요
민수기는 선민의 훈련일지입니다. 선민은 선택받았다는 자만심으로 태만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부단히 훈련을 받아야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한 내용은 바로 레위기입니다.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택하신 후 밤낮 3년이나 훈련을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도 12제자를 훈련시키시는 데 3년이나 걸렸습니다.
훈련을 받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는 순종과 복종입니다. 더우기 애굽의 학대 밑에서 해방을 받아서 선민으로서 받는 훈련이라면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받아야 할 훈련을 이들은 불평과 불만과 거역과 불순종으로 반항하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인간의 연약함과 괴악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민수기는 두번에 걸쳐서 인구를 조사합니다. 한번은 시내산 밑에서 한 것이고 나중에 한 것은 모세의 사역이 끝나갈 무렵 모압 평지에서 실시했습니다. 처음 인구를 조사했을 때는 장정이 603,550명이었으나 40년후의 인구는 601,730명이었습니다. 처음에 출애굽한 장년들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40년동안 광야에서 모두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생존했다고 합니다.
광야생활 40년 중 출애굽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이르는 데 2년이 걸렸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출발하여 세렛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간이나 걸린 것입니다. 그들이 방황한 영역은 사실 시나이반도가 아니라 세일산 근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40년 간에 걸쳐서 603,550명이 거의 다 죽었고 그와 비슷한 수의 여인들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 역시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1,500,000명이 약 40년간에 걸쳐서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평균 약 100명씩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굽의 문화와 관습에 물든 세대는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고 새로운 땅에는 새로운 세대가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돌이켜 세일산 근처를 38년 간이나 이곳 저곳을 옮겨다닌 그 노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정은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모압평지 비스가 산록에 이르기까지 대략 43곳에 장막을 치고 체류하였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균 1년에 한번 정도 이사를 한 셈입니다.
그들이 애굽을 떠나 모압평지에 이르기까지 크게 세번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 첫째는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전쟁은 미디안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전쟁은 아모리왕 사혼과 바산왕 옥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육축을 많이 기르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에게는 요단강 동편의 마모리인들의 땅과 바산의 땅들을 미리 분배하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모세가 그들을 모압 평지에 불어모으고 고별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고별설교는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신명기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수기 1장
고대 사회에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전염병이 사람들에게 한 번 돌기 시작하면, 무수한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칠십 명이 내려갔다(출1: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백삼십 년이 지나서 출애굽을 할 때 칠십 명의 사람은 사백삼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어른 장정만 육십만 명(출12:37)이 되었습니다. 아마 노약자들과 여자들을 포함하면 전체 인구가 족히 이백만 명에서 이백오십만 명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일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급격한 인구 증가는, 애굽 왕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믿음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창12)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 번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수기 1장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시행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계수(민1:3)하는데 인구조사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20세 이상 성인 남자가 몇 명인지 지파별로 인구조사(민1:20~43)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전체성인 남자의 수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명이라(민1:46)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러야 할 전쟁이 단지 사람의 숫자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쟁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전쟁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레위지파 사람들(민1:47~54)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러야 할 가나안 정복 전쟁의 결정적인 승패는, 열두 지파의 육십만 대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앞으로 치러야 할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전쟁의 아주 독특한 면입니다.
레위지파는 첫 번째로 성막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막이 이동할 때와 성막을 다시 세우게 될 때, 레위 지파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항상 성막 사방에 진을 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성막 바로 바깥에 레위 지파가 진을 치고, 그리고 레위 지파 바깥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진을 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열두 지파가 레위지파와 성막을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레위 지파가 열두 지파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외인이 성막에 가까이 오면 어떻게 합니까? 레위지파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에 가까이 온 그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민1: 47~54). 여러분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민1:53).
레위지파의 아주 중요한 책임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는 경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정함과 죄악이 하나님이 계신 성막을 침범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룩해야 한다는 사실을 레위기 말씀이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레위지파 사람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지파 사람들이 전쟁에 전여 참여하지 않지만, 전쟁의 승패는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이 성막을 거룩하게 보존하면,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르게 될 전쟁에서 승리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 전쟁에 직접 참여하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장
하나님의 몫, 사람의 몫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전지는 지식과 지혜입니다. 전능은 그 지식과 지혜를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만약 지식을 실천할 능력이 없다면 전지는 이론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에 대해서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신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인간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시기 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인간은 하나님을 생각과 마음에 담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를 성전 삼으신다는 표현의 진실은 인간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바닷물 전체를 인간이 만든 그릇에 담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릇이 크다 할지라도 바닷물의 작은 양을 담을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작은 그릇을 바다에 담그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
이스라엘 민족은 12지파입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3지파씩 진을 쳤습니다. 성막 울타리 가까운 곳에는 레위족속들이 동서남북으로 진을 쳤으며 그 밖으로는 지파의 깃발이 있는 두령의 진과 백성들이 진을 쳤습니다. 아래 그림은 12지파 진영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진을 치고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계수하니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습니다.(민2:32)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계수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몫이 있고 반드시 그 계명을 지키는 믿음의 몫은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쪽에 진을 친 세 지파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가 동쪽에 진을 치게 됩니다(민2:2~9). 남쪽에 진을 치는 세 지파는 르우벤 지파, 시므온 지파, 갓 지파입니다(민2:10~16).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 베냐민 지파가 서쪽에 진을 치게 됩니다(민2:18~24). 북쪽에 진을 치는 세 지파는 단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입니다(민2:25~31). 이렇게 세 지파가 서로 협동을 하는 체제로 진을 형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동을 할 때에도 동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제일 먼저 선두에 서게 됩니다.( 민2:9) 남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성막이 레위 지파와 함께 이동을 합니다. 성막과 레위 지파 뒤에 서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따라붙습니다. 마지막으로 북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후미를 맡아서 이동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동할 때 선두에 선 유다를 비롯한 세 지파가, 나머지 지파들보다 가장 숫적으로 많습니다. 동쪽에 진을 친 세 지파의 총계는 십팔만 육천사백명, 남쪽에 진을 친 세 지파의 총계는 십오만 천사백오십 명, 서쪽에 진을 친 세 지파의 총계는 십만 팔천백 명, 북쪽에 진을 친 세 지파의 총계는 십오만 칠천육백 명입니다.
유다 지파가 인구가 가장 많다는 사실 역시 열 두 지파 중에서 가장 큰 복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장자인 르우벤 지파보다 유다 지파가 훨씬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축복(창49:1~28)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야곱이 축복한 열 두 아들 가운데서 가장 풍성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장자 르우벤이 아니라, 유다입니다. 유다를 향한 야곱의 축복이 오늘 민수기 말씀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다 지파가 어느 지파보다도 인구가 많다는 것이 복인 이유는 가나안 땅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파의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나안 땅을 분배 받을 때, 가장 많은 땅을 상속받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서 13장).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큰 복을 주시면, 그만큼 더 큰 책임도 주십니다. 복은 책임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큰 복을 받은 유다 지파에게, 어느 지파보다도 희생을 해야 하는 전쟁의 최선봉의 자리에 서라고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지파처럼 복을 받으시고, 유다 지파처럼 희생과 섬김의 최선봉에 서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민수기 3장
배자의 태도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오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삶은 선해야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착하게 사는 것, 의롭게 사는 것,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배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이요, 거기에 따르는 행동은 그 그림자인 것입니다.
본문은 레위 지파를 구별하는 하나님의 정당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함과 동시에 그들을 성막을 중심한 제반 종교 업무 책임자로 계수 편성하라는 명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성막이 완성되고 각종 제사 규례도 다 주어진 시점, 곧 레위 지파의 임무가 공식적으로 시작될 시점에서 레위인에 관한 제반 규정이 3:1 -4:49 까지 구체적으로 지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은 레위인 중에서도 특별히 선택되어 성막 제사에 직접 헌신하고 있는 아론 집안의 소개, 5-10절은 아론집안을 도와 성막제사 보조 및 종교 업무를 관장할 레위인의 업무 원칙 규정, 11-20절은 레위 지파를 구별하는 역사적 근거 제시 및 각 분파별 계수 명령, 3:21-39절은 전 레위인의 각 분파별 계수 및 직무 편성, 40-51절은 레위인 구별을 위한 속전,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사람의 주관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부름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행복이나 건강이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신앙인들을 세상에서 구별하여 따로 세운 성도(saint)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거룩한 삶으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행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골 1:21∼22). 그리고 우리를 세상에서 더러움에 빠져 살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살전 4:7).
구원 받은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거룩은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아갈 때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죄에 빠져 있으면 우리가 하는 일과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맙니다(요일 1:5∼9).
둘째, 거룩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절대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집에서는 금그릇이나 은그릇보다 깨끗한 그릇이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요긴하게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딤후 2:20∼21).
셋째,거룩은 구원 받았음을 확인하는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듭났다면 새 피조물로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거듭났는데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다면 어쩌면 그는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거룩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구원 이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죄악된 세상에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로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벧후 1:3).
둘째, 우리는 거룩한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순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행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을 것인지, 아니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롬 12:2). 우리가 살아가며 선택한 행동은 우리 자신을 지배하게 되고 그 선택은 결국 습관이 됩니다. 성도는 매순간 육신의 길을 포기하고 성령이 이끄시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 삶을 추구하면 할수록 거룩한 삶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히 12:14).
♣민수기 4장
만인 제사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40년간 광야에 거하는 동안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집중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이방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특별한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기간은 40년이었습니다. 이러한 광야의 특수훈련의 기간 동안을 ‘켄 가이어’는 그의 책 “영혼의 창”에서 광야학교라 표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훈련을 받았던 광야는 지리적 광야인 실제적 광야였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광야 생활을 하게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신앙을 훈련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신8:2)
오늘 우리는 실제의 광야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인 상황적 광야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의 다른 표현은 신앙훈련입니다. 발레리나 ‘강수진’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몸이 안다.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프로들이 안다. 삼일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안다.”
본 전체는 이제 레위 지파 중에서도 각 분파별로 당장 성막 봉사 및 제반 종교 업무에 참가할 수 있는 30-50세까지의 장정만을 계수하고 그들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성막 봉사 업무를 분담, 지시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본 단락을 세분하면 먼저 각 분파별 성막 봉사자 계수 명령(1-3절), 성막 내부의 성소와 지성소의 기구를 운반할 고핫 자손의 업무(4-20절), 그리고 성막 본체의 앙장(仰帳) 및 외부의 포장을 운반할 게르손 자손의 업무(21-28절), 성막 본체의 널판 및 외부 포장의 말뚝을 운반할 므라리 자손들의 업무(29-33절)에 관한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 분파마다 임무가 다르고 이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시는 이유는 효율성과 질서 및 조화란 측면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각양의 은사를 지닌 지체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모형을 제시해줍니다(롬 12:4-8; 고전 12:7-11).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서는 은사에 관하여 ① 지혜의 말씀, ② 지식의 말씀, ③ 믿음, ④ 병 고치는 은사, ⑤ 능력의 은사, ⑥ 예언, ⑦ 영적 분별력, ⑧ 방언, ⑨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바울이 이러한 여러 은사가 있음을 강조한 것은 일치된 신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자신의 은사만이 최고의 은사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은사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심도 한 성령 안에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은사는 모두에게 유익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은사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한 성령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고전12:4). 교회에는 여러 직임과 직책들이 있습니다(고전12:28-30). 그러나 동일한 한 분의 주님께서 이 모든 직임을 정하셨습니다.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6). 여러 가지 은사가 그들 각자에게 주어졌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고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종류들 중 몇 가지를 말하면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그는 복음의 신비스러운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할 능력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즉 신령한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한 풀기 힘든 문제가 있을 때, 권면하고 상담할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갖추어진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즉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즉 병을 낫게 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즉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 성경을 설명하는 일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즉 거짓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혹은 성령의 감화로 여러 언어를 말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혹은 외국어를 번역할 수 있는 은사를 말합니다.
이러한 은사들이 주어진 목적은 그것들은 받은 자들의 유익만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고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어떠한 은사를 내리시던 간에 그 받는 자는 그 은사를 교회의 선한 일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랑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고 봉사하도록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자기 것을 자기 뜻대로 하실 수 있게 합니다. 은사는 사람의 뜻으로, 혹은 그것을 사모한다는 이유로 그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자의로, 기쁘신 뜻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서와 조화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민수기 5장
하나님의 거룩한 전
하나님이 거하시는 모든 것이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이를 보편적 거룩이라 합니다. 이 보편적인 거룩은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 용납, 관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모든 현장에 하나님은 임재해 계십니다. 그러하기에 거룩한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잃지 않으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신앙의 넓은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은 지혜와 순결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5-16)
주께서 말씀하신 뱀 같이 지혜롭다는 것은 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는 것도 비둘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순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지혜는 자신을 잃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포용적인 것이라면 순결은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적 신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안 계신 곳이 없는 무소부재하신 전능자이시지만 특별한 장소를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이 임재하신 곳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이라면 신약시대에는 주님의 핏값으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보편적 거룩성이 있는 사회에서는 거룩함을 입은 성도들이 세상을 수용하는 곳이지만 절대적 거룩성이 있는 장소에서는 개인의 의견이나 취향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에서 훈련 받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에 대한 경배와 신앙태도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과거 애굽에서 생활했던 신적 감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해석하려 했습니다. 심지어는 특별하게 선택받은 제사장조차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심을 수없이 강조해 오셨고, 그 거룩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는 선별된 것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수시로 망각했던 것입니다. 제사할 때 반드시 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불은 아무불이나 붙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불로써만 제사해야 하는데 제사장은 그것을 망각하여 일반불로 제사하였다 죽임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민26:61).
율법시대에의 거룩한 하나님의 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몸은 이제 이 땅에 계시지 않으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보내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율법시대의 성전에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의 몸에 임재 하셔서 성전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하는 모든 땅이 거룩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구분해야 할 것은 보편적 거룩과 절대적 거룩함을 구별할 줄 아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I. 부정케 된 자와 배상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5:1-5)
1. 부정한 자에 대한 추방
하나님께서는 유출병이 있는 자나 문둥병자 및 죽은 시체를 만짐으로써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된 자들은 모두 진밖으로 내쫓아 율법에 지시된 대로 정결케 될 때까지 밖에 있도록 하여 진을 깨끗케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2,3절).
이러한 명령들은 즉각 시행되었습니다(4절). 진은 이제 새로 모양이 형성되고 정돈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을 개혁하는 일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 진을 청결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회막이 진 중앙에 고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심해서 진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습니다. 만일 진이 더럽혀지면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시고 공격을 받으신 것이 됨으로 노를 발하시어 그들을 물리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고전 3:16,17).
이처럼 부정하게 된 자를 진밖으로 내쫓는 일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교회의 치리자들이 해야 할 일은 '순전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고' 교리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자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드러내 놓고 상습적으로 불결한 행동을 하는 악한 자들을 회개할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친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추방해야합니다.
치리란 교회에 문제가 발생할시 특별하게 사랑의 목적으로 선도키 위해 문제의 신자들을 바로 지도하여 교회의 안정을 위하는 절차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친히 '천국에서 거치는 모든 것을 모아 밖에 버리어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케'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정하게 된 자가 진에서 쫓겨나듯이 '무엇이든지 부정한 것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것입니다(계21:27).
2. 범죄에 대한 배상
이웃에게 범죄한 경우에 배상해 주는 것에 관한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그 지은 죄를 자복하되' 하나님께와 그가 범죄한 이웃에게 고백하고 또한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는 '속죄의 수양'을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하며(8절). 우리 이웃에게 끼친 손실 뿐 아니라 율법을 깨뜨림으로써 하나님께 범한 죄에 대해서도 속죄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이웃에게 범죄한 경우에 있어서 믿음과 회개 없이 치러지는 배상만으로는 충분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럴지라도 범죄를 당한 피해자에게 원금뿐만 아니라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덧붙여서 충분히 배상을 해주기 전까지는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을 것입니다(7절). 범죄를 당한 당사자가 죽고 죄값을 받을 만한 친척이 없다면 죄 값을 제사장에게 돌려 주어야 했습니다(8절). 어떤 이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달리 배상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마땅히 자비나 자선의 행동으로 보상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바쳐지는 성물에 관한 일반적인 규칙은 제사장에게 돌린 것은 무엇이든지 제사장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가져오는 모든 성물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9절).
Ⅱ. 음행의 혐의가 있는 여인에 관한 법 5:11-31
본문은 남편에게 음행의 의심을 받는 여인을 엄숙하게 재판하는 것에 관한 법입니다.
여기에서 예로 들고 있는 경우는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가 음행을 했을 것이라고 의심을 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입니다(12-14절). 간음의 죄가 매우 악한 죄로 묘사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음행죄는 남편에 대하여 짓는 죄로서 남편으로 하여금 명예를 잃게 만드고 그의 도리를 어그러지게 만들며 그의 가정에 사생아를 낳음으로써 남편의 재산을 자녀들과 함께 그에게도 나누게 만들고 남편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죄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점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아내들은 결코 자신의 정숙함을 의심받을 만한 여지를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모든 남편들은 이유 없이 혹은 부당하게 자기 아내를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사랑의 원칙이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며'라고 말한다면(고전 13:5) 부부애에 있어서는 이점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서로 예의를 잘 지켜야 합니다. 부부일수록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말씀합니다.
만일 의심을 받는 아내가 실제로는 죄가 없다면 그녀가 계속해서 비난을 받거나 남편의 의심 때문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죄가 있다면 그녀의 죄를 밝혀 다른 사람들이 듣고 두려워하며 경고를 삼도록 하였습니다. 남편이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갈'때는 그의 의심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또 그녀가 재판받게 해야 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나는 몸을 더럽혔습니다"라고 고백한다면 그녀는 사형을 받게 되지는 않지만 이혼을 당하고 위자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나는 순결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제사장에게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죄 없는 자들의 결백을 밝혀 내시어 그들의 의로움을 빛처럼 나타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