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강해,36장~40장

공 상희 2017. 4. 3. 07:06

에서의 후손들(36)

 

36장에는 이삭과 리브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 에서세일 땅에 정착한 후 번성하여 한 민족을 이룬 사실이 족보의 형태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25:23에서 말씀하신 대로 리브가의 태중에 '두 민족'이 있다고 하셨던 말씀이 성취되어 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야곱의 후손 번영도 중요했지만 더 넓은 의미로 에서의 후손 번영 역시 하나님의 예언 성취 일환이었다는 말입니다. 본장에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 에서임을 기록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1. 에서의 족보

1) 에서의 아내들

이미 이스마엘을 통해서 약속의 후손들이 갈라져 나간 일이 있는데, 여기에서 또 에서가 약속의 후손의 대열에서 갈라져 나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에서의 아내들은 그 분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족속 즉 가나안 족속의 여인들을 택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가 그 일을 기뻐하지 않게 되자, 그는 같은 혈통인 이스마엘 족속의 마할랏을 또다시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혼은 무분별한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신앙의 가정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에서는 세 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2) 에서의 자녀들

에서는 가나안 헷 족속 여인 아다와 히위 족속 여인 오홀리바마와 그리고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에게서 다섯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는 야곱의 아들들만큼은 못한 수였지만 후일 그들 후손의 수는 야곱의 후손의 수와 거의 비슷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후손의 수가 아니라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서는 더 이상 거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제외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후부터 성경 속의 주요 인물, 역사 사건들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3) 세일 산에 거함

야곱과 에서는 그들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에서는 모든 가족들과 재물과 짐승들을 이끌고 세일 산에 거하였습니다. 이곳의 현 위치는 예루살렘의 서쪽 약 14km 지점으로 사해 남쪽의 아라바 산악 지대입니다. 이후부터 세일은 하나님 백성들의 도성인 예루살렘과 상반되는 이방 도성으로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에서는 세일 산에 정착하고 그의 후손들 대대로 삶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2. 에서의 자손

1) 아다에게서 낳은 자손들

에서는 가나안 헷 족속 여인 아다에게서 엘리바스를 낳았는데 엘리바스의 첫 아들이 데만입니다. 데만은 에돔 족장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후손들은 에돔 지역의 가장 크고 중요한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바스의 아들들로는 데만 외에 오말, 스보, 가담, 그나스와 아말렐이 있었습니다.

 

2) 바스맛에게서 낳은 자손들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에게서 르우엘을 낳았습니다. 르우엘은 나핫과 세라와 삼마와 미사 등 4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4번째 아들인 미사는 '두려워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 오홀리바마에게서 낳은 아들

에서가 히위 족속 여인 오홀리바마에게서 낳은 첫 아들은 '하나님이 도우소서'라는 의미를 지닌 여우스 입니다. 둘째 아들은 '지체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얄람입니다. 셋째 아들은 고라입니다. '기회'란 의미의 이 이름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어떤 결단을 요구하는 듯합니다. 이는 기회란 말 자체가 놓칠 수 없는 어느 순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 에서의 후손

1) 번성하는 에서의 후손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에는 이미 왕들이 있었습니다. 본장에서 이스라엘의 왕이라 함은 백성의 영도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모세가 그 첫 인물로 간주됩니다(참조, 33:5). 따라서 31절은 에돔의 왕이 모세 이전 시대부터 등장하여 통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에돔 족속은 독립된 나라를 이루면서 정치 제도에서 이스라엘보다 진보된 상태에 있었고 외형적인 번영과 풍요를 누렸던 것입니다.

 

2) 에돔의 왕들

에돔 땅의 벨라와 요밥, 그리고 후삼은 그 첫 세대 왕들이었습니다. 하닷과 삼라 그리고 사울은 첫 세대의 왕들에 이어 에돔의 기틀을 닦아 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에돔국을 훌륭히 발전시켜 간 왕들입니다. 바알하난과 하달까지가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의 에돔의 왕입니다.

 

3)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

본문에는 에돔의 왕들에 이어 족장들에 대한 소개가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왕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업적이나 신상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어떠한 인물들이 족장이었는가에 대한 소개만이 나올 뿐입니다. 이 후에도 그들에 대한 소개가 없는 점으로 보아 다음 장에서 시작되는 야곱의 후손들을 중심한 구속사의 전개를 위해 한 시대를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 소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창세기 36장은 에서의 후예에 대해서 장황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창세기에 기록된 마지막 이방 족보로서 장차 구속사와 벌어질 이방 민족들의 침략에 대한 그 배경적인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형 에서 역시 세상적인 복을 많이 받았으나 그의 인생은 실패한 것입니다. 성도가 말하는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꿈과 팔려 가는 요셉(37)

 

37장에서부터 본서의 마지막 장인 창50장까지는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인 요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집니다. 본장에서는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과 17세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가지의 꿈을 이야기한 것 때문에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고 결국 애굽으로 팔려 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 미움받는 요셉

1) 야곱의 편애

야곱은 라헬에게서 얻은 요셉을 다른 자녀들보다도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셉에게 채색 옷을 지어 입히는 등 편애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특별히 받았던 이유는 그가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알리는 순수하고 정의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형들의 질투

요셉의 행위와 아버지 야곱의 편애는 다른 형제들로부터 질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형제들의 질투는 자신들의 과오에 의한 아버지 앞에서의 수치심,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요셉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요셉을 제외한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요셉에게 언사가 불평하였습니다.

 

3) 요셉의 꿈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밭에서 곡식 단을 묶을 때 요셉의 곡식 단을 향하여 다른 형제들의 곡식 단들이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꿈을 꾼 요셉은 그것을 가족들에게 모두 말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다른 형제들로부터는 더욱 미움을 산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주신 꿈, 즉 꿈을 통한 계시 였습니다.

 

2. 요셉에 대한 형들의 음모

1) 야곱의 심부름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 떼를 칠 무렵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불러 형들에게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겜으로 나아갔습니다. 세겜에 도착한 요셉은 형들을 만나지 못하고 들에서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도단에 형들이 간 것을 알고 그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2) 형들의 음모

방황을 극복하고 힘겹게 도착한 도단에는 요셉을 해하기 위한 형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멀리서 보고 그가 도착하기 전에 그를 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음모는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이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3) 팔려 가는 요셉

요셉이 도착하기 전에 형제들이 꾸민 잔인한 음모는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에 의해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르우벤은 동생 요셉을 아버지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다른 형제들에게 죽이지 말고 그냥 구덩이에 던질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붙들어 채색 옷을 벗기고 들에 있는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때마침 도단을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요셉을 은 20개에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애굽에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3. 슬픈 소식

1) 옷을 찢고 우는 르우벤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은 동생 요셉의 생명을 구원할 마음은 있었지만 요셉이 팔려 갈 당시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간 후에 돌아온 르우벤은 요셉이 없어진 것을 몹시 괴로워하면서 옷을 찢고 울부짖었습니다. 르우벤의 이러한 울부짖음에는 장자로서 동생에 대한 책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슬픔을 생각하며 큰 죄책감을 느낀 데서 나온 것입니다.

2) 베옷을 입고 우는 야곱

집으로 돌아온 형제들은 요셉의 채색 옷에 숫염소의 피를 묻혀 야곱으로 하여금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오인하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단정하고 옷을 찢고 굵은베로 허리를 묶고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요셉이 죽은 것으로 믿게 하려는 아들들의 계략에 속아 고통당하고 있는 야곱의 모습은, 그가 이삭을 속여 축복을 가로챘을 때 에서가 슬퍼하며 울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결론

매사에 성실하고 의로운 생활을 하던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직고하는 것으로 인해 다른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미움을 받는 데는 반드시 어떠한 원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자신이 잘못해서 받는 미움도 있지만 하나님의 크신 섭리하에서 받는 미움도 있습니다.

 

 

유다 집안의 사건(38)

 

본장은 야곱의 아들 유다의 부끄러운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유다가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에 거하면서 자녀를 낳고, 그 후 아들 둘이 악행으로 죽게 되었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의 계대 결혼을 이행하지 않다가 자부인 다말의 계획에 휘말려, 결국 다말과 동침하여 쌍둥이 아들을 낳는 불륜을 저지르게 됩니다.

 

1. 유다와 그의 자녀들

1) 유다의 이방 혼인

동생 요셉을 팔아 버린 후 유다는 참회하는 마음, 혹은 회의를 품고 자기 형제들과 헤어져서 독자적인 생활권을 형성합니다. 그는 혼자 떨어져 아둘람으로 갔습니다. 아둘람은 헤브론 골짜기에서 북서쪽으로 약 24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아둘람은 가나안의 31성읍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참조, 12:15), 후에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굴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유다는 이곳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취하여 그와 혼인하였습니다. 이는 이삭이 야곱에게 당부하여 가나안인과의 이방 혼인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뜻에 어긋난 일입니다(참조, 28:1).

 

2) 유다의 아들들

아둘람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한 유다는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유다의 세 아들은 가나안 출신의 어머니와 외가의 방탕한 도덕적 기준에 심각한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요셉의 기사를 계속하기 전 유다의 약전이 갑자기 소개되는 것은, 모세가 구속사의 중요성에 한층 더 노력을 쏟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씨를 통하여 베레스가 나고 그 베레스의 씨를 통하여 뒷날 그리스도가 오실 것임을 간과치 않고자 이 즈음에서 돌연 유다 아들들의 이야기가 소개된 것입니다.

 

3) 장자 엘의 죄악

유다와 가나안 여인 수아와의 사이에 태어난 첫 아들은 ''입니다. 엘은 '파수 꾼, 경계하는 자'의 뜻으로 유다가 명명한 것입니다. 맏아들 엘은 어린 나이에 다말이라는 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악한 사람으로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고 하나님과 율법을 무시했습니다. 엘의 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동생 오난의 죄에 비추어 볼 때 소돔의 죄와 같이 성적인 악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그것도 택하여 메시야를 내시고자 작정하신 집안에 용납될 수 없는 죄를 하나님은 방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습니다.

 

2. 고통당하는 유다 가정

1) 계대법의 시행

고대에는 형이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통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형의 이름으로 상속시키는, 공인된 관습으로 계대법이 있었습니다. 이 법은 모세 때 성문화되었습니다(참조, 25:5-6). 그리하여 오난은 그의 형 엘이 아들 없이 죽었기 때문에 그의 형수인 다말과 결혼하였습니다. 계대법에 따라 형수와 결혼한 아우는 정상적인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여인의 남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즉 아이를 낳고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2) 오난의 죽음

계대법에 따라 형수인 다말과 결혼한 오난은 자신을 통해 낳게 될 자녀가 엘의 기업을 받을 것임을 알고 계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였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행한 오난은 하나님에 의해 갑작스런 죽음으로 형벌을 받았습니다. 이는 정상적 가장으로서 대를 잇게 해야 할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요, 개인의 이해 관계를 앞세운 욕심의 발로였습니다.

 

3) 친정으로 돌아간 다말

갑작스럽게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다말에게 수절하고 친정에 가서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이 말은 변명과 구실에 불과하였습니다. 즉 유다는 다말과 결혼한 두 아들이 모두 죽은 사실을 통하여 그의 마지막 아들인 셀라도 죽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유다의 말을 듣고 다말은 친정으로 돌아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3. 유다와 다말의 범죄

1) 유다를 속인 다말

시부인 유다가 양털을 깎기 위해 딤나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다말은 창녀로 변장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말은 성인이 된 셀라를 기다리다가 지쳤기 때문에 이제는 유다로 하여금 자식을 얻을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다말을 알아보지 못한 유다는 그녀를 창녀로 알고 그와 동침하고자 하였습니다.

 

2) 유다와 동침한 다말

시부인 유다를 속인 다말은 약조물을 받고 유다와 동침하였습니다. 유다는 동침한 대가로 나중에 염소 새끼를 주기로 하고 그 증거물로 도장과 그것에 달린 끈과 지팡이를 다말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뒷날 자신의 행각을 은밀한 감추고자 대가를 지불하고 약조물을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친구를 통해 약조물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3) 쌍둥이를 낳은 다말

약조물 찾는 것을 포기한 유다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석 달쯤 후에 다말이 음행으로 인해 잉태하였다는 말을 듣고 유다는 대노하였습니다. 그러나 끌려 나온 다말을 통해 그녀와 동침한 남자가 다름 아닌 유다 자신임을 알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다시는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를 통해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유다의 부끄러운 역사인 동시에 메시야의 족보로서 중대한 뜻을 지닙니다.

 

결론

우리는 간혹 성경을 통해서도 충격적인 내용을 접할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창38장입니다. 그것도 메시야의 족보인 유다에게서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죄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디발 부인의 유혹과 요셉(39)

 

38장은 유다의 수치스러운 역사 곧 불륜의 기록입니다. 반면에 창39장은 요셉의 자랑스러운 역사 곧 불륜에 대한 승리적 신앙의 기록입니다. 본장은 창37장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린 요셉이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 온 후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련을 믿음으로 꿋꿋하게 이겨냈던 승리의 사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본장은 유혹을 이기고 시험을 인내하여 낸 그리스도의 궁극적 공생애 사역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애굽의 요셉

1) 보디발 가정에 팔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린 요셉은 애굽에 내려가서 다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가 애굽으로 팔려 간 시기는 요셉이 17세 되던 해로서(참조, 37:2), 주전 1898년으로 추정됩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일반 평민의 가정에 팔리지 않고 애굽 바로 왕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이것은 장차 요셉이 애굽 온 땅을 치리할 자가 될 것에 대한 준비였습니다.

 

2) 최선을 다하는 요셉

보디발 가정에 종으로 들어온 요셉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보디발 집안의 형편이 요셉이 들어온 후로 눈에 띄게 변화가 일어났고 좋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는 사실을 주인 보디발도 알았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소유자는 그가 처한 환경까지 그 자신의 믿음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합니다. 신실한 믿음으로 처신하는 요셉 까닭에 보디발의 가정은 더욱 번창하였던 것입니다. 요셉은 고독한 환경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타인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3) 가정 총무가 된 요셉

보디발은 요셉의 착한 행실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눈여겨보고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의 모든 일을 돌보는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아무 권한도 없는 비천한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결국 노예에서 시위대장의 가정 총무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2. 유혹과 모함을 받는 요셉

1) 요셉의 준수한 외모

요셉은 그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습니다. 준수하다는 말은 신체가 균형 잡힌 모습을 하고 있어 아름다웠음을 의미하며, 아담하다는 것은 요셉의 얼굴이 말쑥하고 잘 생겼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배려로 준수한 외모를 지닌 자는 그 화려함으로 인하여 유혹의 기회가 더 많고 시험받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처럼 아름다웠던 요셉의 용모는 후에 큰 재난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2) 보디발 아내의 유혹

요셉의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까닭에, 음욕이 넘치는 여인이었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을 강청하였습니다. 미혼 청년에게 기혼 여성의 유혹은 극복하기 어려운 시험으로 잠1-9장에서도 이 점을 특히 경계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대담한 욕정으로 요셉의 아름다움을 응시했습니다. 그녀는 죄에 과감하고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유혹은 번번이 거절당했지만 악한 꾀임은 나날이 새로워졌습니다. 죄의 본성이란 집요한 것이어서 표적을 향하여는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요셉을 향한 음녀의 유혹은 매우 집요하였습니다.

 

3) 거절과 모함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비도덕적 제안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신속하게 거절하여 유혹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은 강하였고 유혹하는 사람이 여주인이어서 거절은 곧 핍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단호히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모함하였습니다. 악의 본성은 사람을 죄에 물들이고자 하되 실패하면 최소한 상처라도 남기고자 하게 마련입니다.

 

3. 고난과 은혜

1) 보디발의 분노

죄악 된 사랑을 거절당한 보디발의 아내는 복수심에 불타올랐고 자기의 애정 상대로 삼았던 준수한 젊은이 요셉을 죽일 결심까지 하였습니다. 그녀는 먼저 집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서 남편 보디발에게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모함하였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남편 보디발은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2) 투옥되는 요셉

보디발은 자기 아내의 거짓된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나 심문도 없이 요셉을 죄인으로 취급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갇힌 감옥은 왕의 중죄인, 즉 국가적인 죄수들을 가두는 옥이었습니다.

 

3) 은혜를 입는 요셉

하나님은 억압받는 자, 결백한 자에게 있어서는 힘있는 후견자이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에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요셉에게 하나님은 함께하시고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그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하나님과 동행하여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의 관원장들과 요셉의 해몽(40)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힌 요셉은, 그 안에서 투옥된 바로의 두 신하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이들은 왕의 식사관으로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이었습니다. 얼마 후 두 신하가 각각 꿈을 꾸고 근심에 사로잡혔을 때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하여 줌으로써 그는 바로의 신하와 가깝게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요셉이 장차 바로 앞에 나아갈 배경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1. 옥에서 있었던 일

1) 범죄한 두 사람

요셉이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있을 때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왕에게 범죄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고대 애굽에는 왕의 식물을 관장하는 고관들이 많이 있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은 그중에서도 왕의 주류를 관장하는 관원입니다. 그리고 요셉 당시에는 빵이 애굽인의 주식이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떡을 직접 만드는 직책을 가진 자로서, 왕이 먹을 모든 빵을 관장하는 관원입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범했는지 알 수 없지만 왕께 범죄하여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2) 수종 드는 요셉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들어왔습니다. 시위대장은 요셉에게 이들에게 수종하게 하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와 있는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와 관심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신분이 높은 상류층 인사들만 갇히는 옥에 요셉이 갇힌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3) 두 신하 죄수의 꿈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갇힌 두 신하 죄수는 하룻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은 성경이 완비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계시의 방편입니다. 두 관원장은 같은 날 밤에 각자의 앞날을 예고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들은 꿈이 너무나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 있어 분명히 자신들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그것을 해몽할 사람이 없으니 근심하게 된 것입니다.

 

2. 두 신하의 꿈과 요셉의 해몽

1) 근심사는 두 신하

간밤에 꾼 꿈으로 인해 두 신하는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어리석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불안했던 것입니다. 이때 요셉은 그들에게 꾼 꿈의 내용을 이야기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능히 그 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근심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만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꿈의 내용

두 사람은 요셉에게 사실대로 꿈의 내용을 말했습니다. 술 맡은 관윈장의 꿈의 내용은 삽시간에 포도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어서 자신이 그것을 짜서 바로에게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즉시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떡 굽는 관원장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이 길한 것임을 듣고 자신의 꿈도 길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꿈을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다 듣고 난 요셉은 그에게 수치스런 죽음을 예고합니다.

 

3. 꿈의 성취

1) 바로의 탄일

애굽 왕의 생일은 신성하게 취급되어 거대한 잔치로 축하했습니다. 당시 애굽 왕 바로는 고대 애굽의 문명과 사회에 있어 절대적이었고, 사람들 속의 신이요 신들 속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날은 큰 국경일과 같아서 성대한 축연이 베풀어지고 온 국민은 일을 중단하고 하루를 쉬며 잔치에 동참하였습니다. 또한 이날에는 죄수들이 왕의 특별 사면을 받기도 하며 반대로 처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바로는 잔치를 크게 열어 자신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2) 요셉의 해석대로 성취됨

애굽 왕 바로가 모든 신하를 불러 놓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 때에 죄수로 하여금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합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용서를 받고 전직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떡 굽는 관원장은 그의 혐의가 확인되어 나무에 달려 처형되었습니다. 두 관원장의 꿈의 정확한 해석을 통하여 요셉은 만 이 년 후에 바로 앞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3) 은혜를 저버린 관원장

요셉은 자신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었으므로 즉시 출옥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은 요셉의 선행과 관심과 친절 등의 의로운 행위를 망각하고 자신의 일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보살핌과 은혜를 기억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기억하시고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결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의 생애는 투옥된 바로의 두 신하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그는 두 신하가 꾼 꿈을 해석해 줌으로써 만 2년 후에 바로 앞에 나아갈 배경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택한 백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항상 기억하시고 세심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