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본문 :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본문 : 시편 23편
이 시간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다윗은 본 시에서 두 가지를 고백을 합니다.
★첫째는 자신을 연약한 양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고백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다윗은 풍성한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런 부강한 나라의 왕이 자신을 연약한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양은 대단한 근시입니다. 멀리를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냇물을 찾는다든지, 길을 잃었을 때 집를 찾아 올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양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자기를 연약한 양으로 비유하면서도,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나는 연약한 양과 같지만,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이 고백이 나와 여러분의 고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여호와가 목자가 되시면, 어떤 면어서 부족함이 없습니까?
1) 환경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2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양에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최상의 환경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은 사람은, 환경적인 회복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15살에 기름부음을 받고, 약 15년의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점점 강성하게 하시면서 그의 모든 환경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의 환경도 회복시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4절의 고백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일이 있어도, 환경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양이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가는 길목의 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잠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이끌고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을 찾아 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양떼를 험한 골짜기로 인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떼를 안전하게 이끌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험한 골짜기를 피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푸른 초장에 도달할 수 없을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라도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틴 목자들이 하는 일을 살펴보면. ★팔레스틴의 목자들은 대체로 네 가지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우선 동물 가죽으로 만든 염낭입니다. 여기에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투석기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던진 바로 그 물 맷돌 투석기입니다. ★그리고 막대기와 지팡이입니다.
★4절에 보면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한다’고 했습니다. ‘안위한다’는 말은 ‘안심시키다’, ‘위로하다’라는 뜻입니다.
목자가 가지고 있는 긴 지팡이는, 길고 끝부분이 구부러져 있어서 양이 골짜기를 지나다가 빠지면 그 지팡이를 양의 목에 걸어서 건져내 줍니다.
★목자는 자기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양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가끔씩 가지고 있는 막대기로 바위를 두들기기도 합니다. 그 목자의 막대기 소리는 양들에게는 안도감을 주고, 다른 짐승들에게는 위협을 주는 소리가 됩니다.
목자의 막대기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양은 안심하고 누울 수 있었습니다. 장소가 좋아서 눕는 것이 아니라. 거기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시골집은 화장실이 마당 가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면 무서웠기 때문에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깨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화장실을 다녀올 동안 당신 방문을 열어두십니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일어나셨고 문까지 열어놓으셨지만, 화장실이 십 여 미터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간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어린이들은 화장실에는 달걀귀신(?)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화장실로 향할 때와 화장실에 있는 동안에, 할아버지는 '헒'하시면서 헛기침을 해주셨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를 들으면 무섭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해주셨습니다.★ 다윗은 평생을 하나님께서 두두리는 막대기 소리를 듣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두드리는 막대기 소리를 듣고 살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막대기 소리는 우리 가운데 임하여 계시는 성령의 감동입니다. 날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여 살 때 음침한 골짜기라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2) 원수를 만나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양들은 자신을 보호하거나 적을 공격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있기에 이리나 늑대가 나타나도 걱정 없습니다. 어떤 적이 나타나도, 목자가 지켜주기 때문에 원수를 만나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목자는 투석기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던져서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바로 그 물맷돌 투석기입니다. 양을 헤치려는 원수가 나타나면 목자는 물맷돌을 던져서 적을 물리치고 양을 보호합니다.
★목자가 가지고 다니는 막대기는 나무로 만든 곤봉에 철을 입힌 것입니다. 이것은 들짐승이나 도적들과 싸울 때 사용했습니다. 목자가 양을 보호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다윗을 보호하시기에 다윗에게는 어떤 원수가 있어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리시고 기름을 머리에 발라주신다고 했습니다. 상을 베푼다는 것은 잔치를 베풀어준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원수의 눈앞에서도 잔칫상을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복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원수의 앞에서도 음식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안전합니까?
★거기다가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신다고 했는데, 이 말은 원수 앞에서 높여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근동 지방에서 손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일은 그 손님을 귀한 손님으로 영접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원수 앞에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원수 앞에서 나를 높이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앞에서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니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3) 평생토록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이 시를 지을 때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평생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신을 따를 것이고, 또 영원토록 하나님의 집에 살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기대감으로 미래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사람들은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현재의 목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앞서 행하시며 때를 따라 보호하시고 여러분의 평생에 아니 영원토록 목자가 되십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아서 영원토록 부족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2. 그럼 목자를 따르는 양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전남 순천에 참 존경받는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여순 반란 사건 때 순천에 있다가는 잡혀 죽을 수밖에 없어서 순천에서 조금 떨어진 별량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숨어 지내다가 그 동네 공산당원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순천 사람인지라 순천으로 보내졌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데 불안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으니 독 안에 든 쥐 꼴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반란군 장교 하나가 들어오더니 여기 예수 믿는 놈 있으면 나오라고 소리칩니다. 처음엔 아무도 손을 못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가만히 보았더니 자기 교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치미를 떼고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신앙 양심의 가책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고 하면 당장에 죽을 형편이었기에 꾹 참고 있었습니다. 장교가 나가더니 한참 있다가 다시 들어 왔습니다. “여기 목사 놈 있으면 나와” 라고 거듭 소리칩니다. 그 당시 순천에는 목사님은 그 목사님 한분 밖에는 없었습니다. 분명히 자기를 두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손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이놈아, 너 목사가 아니냐. 바로 너를 부르는 소리 아니냐. 왜 그렇게 목사가 아니라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느냐. 손들어”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목사님은 견디다 못해 “내가 목사요” 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장교가 목사님의 목덜미를 잡고는 “이 반동은 괴수니까 내가 직접 처리할테니 너희들은 가라”며 다른 사람들을 못 따라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을 산기슭으로 끌고간 장교는 공포탄만 쏘고는 목사님에게 “목사님! 빨리 도망가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지금은 이렇게 됐는데, 사실은 내 아버지, 어머니도 다 예수 믿습니다. 나도 주일학교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듣자하니 순천 지방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잡혀 왔다고 하길래 살려 주려고 ‘믿는 사람 나와라’ 해도 안 나오고 ‘목사 나와라’ 해도 안 나오니 참 답답했습니다.
마지막에라도 손을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내가 내 손에 권세가 있을 때 돕는 길은 이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빨리 도망가십시오.” 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살아났습니다. 그 목사님이 바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까지 지내신 나덕환 목사입니다.
만약 나덕환 목사님이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불순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목사님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라가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만약에 양이 목자의 음성을 불순종하고 다른 길로 가면 어떻게 될까요? 들짐승들의 밥이 되든지 아니면 목자에게 혼이 날 것입니다. 목자의 음성에 순종해야 삽니다.
2) 목자의 우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6절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살리로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돌아가리로다’라는 말입니다.
★목자는 날이 어두워지면 양떼가 들짐승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집어넣습니다. 목자는 양의 문에 지팡이를 가로질러 놓습니다.
그러면 양들이 그 밑으로 한 마리씩 지나갑니다. 그 때 목자는 양의 숫자를 헤아리고, 또 하루 동안 다친 데는 없는지, 무슨 문제는 없는지,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목자는 한 마리 양이라도 눈동자처럼 살피고 지켜 보호 합니다.
그러므로 양은 저녁이 되면, 목자의 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목자의 우리 안에 들어가지 못한 양은, 들짐승의 밥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이 땅에 목자의 양 우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세계에서 목자의 양 우리는 천국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는 교회 안에 거해야 하고 죽어서는 천국에 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은 언제나 목자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양이 사는 방법입니다.
★사자나 늑대는 짐승을 잡아먹고 살고, ★소나 나귀는 일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양은 목자를 보고 삽니다.
양이 사는 방법은 목자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우리 안에 사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나와 여러분의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살며, 항상 그 안에 사셔서 범사가 형통하며 평안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