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심령 2 (약 3:14-18)
맑은 심령 2 (약 3:14-18)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이 시간에 “맑은 심령”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현세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성령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맑은 심령이 절대 필수입니다.
그러나 노아시대 노아 한 사람 의로웠고, 소돔과 고모라에 롯 한 사람 말고는 모두 타락했던 것을 생각해 보세요. 죄악된 세상에서 맑은 심령을 갖고 살기란 비 오는 날 강가에서 생수를 얻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주리고 목마른 마음으로 하늘의 의를 갈망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갈망해야 할 하늘의 의는 무엇일까요?
5. 긍휼입니다.
"긍휼"을 의미하는 원문 ‘엘레오스’는 타인의 비참한 형편에 대한 동정과 함께 실제적인 도움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자세히 말한다면 동정조차 받을 수 없는 심판 받아 마땅한 자일지라도 그를 동정하고 돕는 대단히 파격적인 사랑이 긍휼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엡2:3-4에 “전에는 우리도 -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것이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것만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약2:13에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했습니다. 심판까지도 면하게 합니다. 징계도 면하게 합니다. 이처럼 파격적인 것이 긍휼입니다.
이 긍휼이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그러나 더욱 복되려면 우리도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마5:7)하셨습니다. 긍휼을 베풀어야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약2:13에는 메시지가 강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심령 또한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바깥 어두운데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험에 든다는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똑똑해진 것은 좋은데 너무 지나친 감이 있어요. 아버지 같은 마음, 어머니 같은 마음, 형님 같은 마음이 없어요. 아비가 자녀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긍휼히 여김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 문제 저 문제 이 사람 저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요3:17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원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 원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예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함정입니다. 누구라도 용납할 수 있지만 지도자의 잘못만은 허용할 수 없다는 생각은 엄청난 시험을 불러오게 됩니다. 가족 중에 지도자는 없습니까? 지도자도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한 연약한 한 형제입니다. 지도자에게 기준도 좋지만 내 형제 내 아들 내 동생으로 생각하고 사랑으로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혼에도 복이 됩니다.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세 가지의 고통을 감내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스모그(Smoke), 집집마다 불을 때니까 매캐한 연기들이 가득합니다. 다음은 스멜(Smell), 집집마다 메주냄새, 김치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운드(Sound), 온 동네 개들이 달려 나와 짖고, 밤새 꽹과리 치며 굿하는 소리는 고막을 울립니다. 우리에겐 일상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심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시험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고통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긍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시험 들어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긍휼 없이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맑은 내 심령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입니다.
6. 선을 품어야 합니다.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마음이 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선이 아니라 선한 열매가 가즉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많이 자라야 하듯이 우리 선도 열매를 맺으려면 그만큼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열매가 아니라 가득한 열매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더 자라고 더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걸 쌓은 선이라 하셨습니다. 마12:35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여기 쌓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누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하는 것 같아도 대부분은 쌓인 것이 폭발한 것입니다. 이처럼 선을 행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선에 대한 열망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5:6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선에 대한 갈망을 가지라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 선의 소유자가 되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시5:4-6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일3:10에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마음의 악을 철저히 버리고 선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7.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편견과” 여기 “편벽”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구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은 권세 있고 돈 있고 능력 있어야 대접 받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다보니 우리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기 쉽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초대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약2:1-4에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여기 편견을 악하다 했습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창조물임과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동일하게 피 흘려주신 한 형제요 자매인데 외모로 편향된 시각을 가진다면 그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과 피를 흘려주신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죄입니다.
그렇다고 편벽되이 두호해서도 안 됩니다. 인권단체의 정당한 요구라면 지지해도 독소조항을 가진 지나친 요구라면 거절해야 합니다. 요즘 단체들이 지극히 이기적이어서 꼼꼼히 따져야지 이름만 보고 지지하다가는 실수하게 됩니다. 차별도 나쁘지만 역차별도 차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25:35-36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런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8.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이 없나니” 거짓의 아비는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면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큰 거짓말은 진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자기를 하나님이라 구세주라 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그 미혹이 더 심해집니다.
살후2:3-4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또 거짓은 스스로 죄 없다 하는 것입니다. 요일1:10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셨는데 죄 없다 하거나,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거짓입니다.
다른 종교를 수용하는 것이 멋있고 관대히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예수님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예수님을 헛되이 죽으셨다고 믿는 가장 큰 거짓입니다. 요즘에는 전도를 위해서는 거짓말해도 좋다면서 전문적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집단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거짓말하는 영에 사로잡힌 악령의 짓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히 거짓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선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위대하신 것은 땅의 생각이 아닌 하늘의 생각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땅의 시기와 다툼과 염려와 걱정과 미움과 편견과 차별과 욕심과 거짓과 의심과 이단의 악한 생각 다 버리고,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과 긍휼과 선한 열매와 편견과 거짓이 없는 하늘의 지혜로 가득한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어 조금도 혼탁하지 않는 맑은 심령을 가진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