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왕의 5대 타협 (출 8:25-28)
바로 왕의 5대 타협 (출 8:25-28)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이 시간에 “바로 왕의 5대 타협”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바르게 섬길까요? ♣신6:5에 그 답을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먼저는 마음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 바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왕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재앙이 계속되자, 자꾸만 타협합니다. 바로는 모두 다섯 번에 걸쳐서 모세와 타협하게 되는데 이 타협은 세상과 마귀에 사로잡힌 완악한 우리 마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완악한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꾸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지체시키려고 하려고 합니다.
그럼 바로 왕의 타협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믿기는 믿되 세상을 떠나지 말라.
출8:25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이 말은 보낼 수 없다던 바로 왕이 큰 재앙을 받고 한 첫 타협입니다. 그러나 백성은 보낼 수 없고, 이 애굽 땅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세상에서 마음을 떠날 수 없다. 세상의 욕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자라는 이름만 가졌을 뿐 세상에 나가면 일반 사람들과 똑 같이 삽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몸이라도 나왔으니 발전은 큰 발전이지만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우상 섬기고 거짓말하고 욕하고 싸우고 세상 쾌락을 좇아갑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그 뜻대로는 살지 않습니다. 혹시 이런 가운데 있다면 깨닫고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세상을 떠나긴 하되 너무 멀리 떠나지는 말라.
28절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이 타협안은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다가 또 다시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고 내놓은 바로 왕의 두 번째 타협입니다. 보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광야까지만 가라는 것 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떠나기는 떠나되 너무 멀리 떠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는 믿되 너무 빠지지는 말라. 마음 바쳐 예수 믿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한 발, 세상에 한 발 이렇게 믿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 한다고,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국가에 소홀히 하란 말이 아닙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국가와 인류를 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충실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만 적당주의 신앙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이 적당주의로는 은혜 받지 못합니다. 심령은 도리어 사막 같이 삭막하기만 합니다. 여호와께 한 발 바알 우상에게 한 발 그랬던 아합 시대,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3. 신앙생활은 하되 마음은 다 드리지 말라.
출10: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모세가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다. 노인과 어린이까지 그리고 짐승까지 전 재산 거느리고 가겠다고 하니까 바로 왕이 질색하는 장면입니다.
번역 성경을 보면 바로 왕의 반응이 더 생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바로가 그들에게 호통 쳤다. "그래, 어디 다 데리고 가 봐라!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너희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10절) 그러면서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었습니다.
♣이 세 번째 타협안은 바로 왕이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재앙 즉 악질과 독종, 우박과 불이 쏟아지는 재앙을 받고 겨우 내놓은 것입니다. 이 타협안은 종이나 아이나 여자들은 놔두고 남정만 가라. 가족의 대표자들만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식주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형식은 갖추되 마음은 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만이 아니라 헌금 봉사 전도 선행 등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다 하면서도 놀랍게도 마음은 아직도 세상에 왔다 갔다 합니다. 마음 바쳐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영적 생활이 없습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도 없습니다. “혼자는 열심히 믿을 수 있지만 내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에게는 전도할 수 없다.” 나 혼자만 천국 가고 다른 이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리는 사단의 소리입니다. 혹시 신앙생활하면서 마음 바치지 못하거나 전도하지 않는다면 이 과정에 있지 않는지 참고하시기 바립니다.
4. 다 포기해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출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이 네 번째 타협안은 강력한 메뚜기 재앙과 흑암의 재앙을 받고서 나온 말입니다.
계속되는 재앙으로 특히 메뚜기 재앙으로 애굽에 곡식을 모두 잃어버려 나라가 이미 망한 상황에서, 흑암재앙까지 내려 캄캄한 상황에서 한 말입니다. 양과 소는 놔두고 어린 것들만 데리고 가라. 비교해 보면 크게 발전했습니다. 사람까지는 보내주겠다. 그러나 재산은 안 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왕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라도 주어야 할 처지에서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의 가축 중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이 함께 가야 한다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바로가 노하여 다시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28절)고 말합니다. 바로 왕이 짐승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재산을 붙잡아 두면 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되 아직도 무언가 한 가지 이것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자 청년은 율법 다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했지만 돈 사랑하는 마음은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울 왕도 낮은 것은 다 멸하면서 좋은 것은 남겨 놓았습니다.
이것은 각자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자존심, 어떤 이는 물질, 권세, 명예, 쾌락, 오락, 육정, 다 회개할 수 있는데, 이것만은 안 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선한 일일지라도 우리 마음을 뺏어놓은 그 무엇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섬기라 했지 조금 남기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6:4-7)고 했습니다.
5. 고난을 당하고야 떠나보내는 마음입니다.
출12:31-32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합니다.
♣바로는 열 번째 장자 죽음의 재앙으로 애굽에 사망을 당하지 않는 집이 없고 바로의 왕자까지 죽게 되니 놀라서 부랴부랴 밤중에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해방령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그 밤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 외에는 모두 죽음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장자는 우리 심령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혈과 십자가의 공로에 서지 않는다면 그 심령은 찌르는 고통 속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 공로로 양심의 평안과 십자가의 공로로 옛 사람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 심령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도 오래 머뭅니다. 양심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토록 심령의 고통과 삶의 저주를 경험하면서도 버렸다 취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충분히 교훈을 얻은 사람들은 죄악을 온전히 떠납니다. 약해서 넘어질 수는 있으나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십자가 공로를 받아들입니다. 무디 선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참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그 뿐이겠습니까? 그 사랑에 감복하여 그를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또 다시 추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날까지 항상 말씀 보며 근신하여 깨어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까지도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아직도 바로 왕과 같이 완악한 마음 가지고 세상과 타협하고 있습니까? 세상은 고통이지 우리에게 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생각하며 어리석은 세상 죄악 다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 바쳐 신앙생활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