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 가정의 회복 (요 2:1-11)
가정의 회복 (요 2:1-11)
이 시간에 “가정의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서기 1948년 5월 14일 독립하기까지 방황하며 살아 간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싸들고 다녔던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흙을 싸들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잊지 않으려고 목에 조그만 흙 자루를 걸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무덤에 뿌렸습니다.
♣다음에는 토라(성경)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토라는 유대인들의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 다음엔 안식일이었습니다. 1900년 동안 나라 잃고 방황했지만 안식일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메시아 신앙을 잊지 않고 상기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는데 그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잊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을 최고로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이 군대에 가도 식탁에 아들 숟가락, 젓가락을 놓습니다. 유학 간 자녀, 출타 중에 있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매월 초하루 월삭이면 어디로 흩어졌든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19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집은 없어도, 가정은 있었습니다. 그만큼 가정을 중시했습니다. 그랬기에 신앙도 나라도 가정도 보전되고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집은 있어도 가정이 없는 집이 있다면, 진정한 가정 회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의 회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옵니다.
본문의 가나의 혼인집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인데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1-2절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합니다,
이 가정의 문제점은 예수님께서 주가 아니라 손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초청을 받아야 하는데 손님으로 초청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지만 내 주장 대로 산다면 주님은 손님일 뿐입니다. 그러나 5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한 대로, 어머니 마리아의 노력으로 예수님의 위치를 정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통하는 자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가정들이 하나님을 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손님이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 우리의 존재는 사라지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 되며 항상 예배하며 경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임을 받는 곳이 천국입니다. 각자 마음에서 하나님을 높이면 마음 천국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높이면 가정천국입니다. 나라가 하나님을 높이면 나라에 복이 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128편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질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1-4절)
2. 어른을 존경하는데서 옵니다.
♣다시 5-8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하십니다.
♣본문의 상황에서 마리아는 잔칫집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잔칫집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람 보기에 얼토당토하지 않는 일을 시킵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마리아의 친척집이었을 것이다. 잔치를 준비하는 한 일원이었을 것이다. 추측합니다. 아무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어른의 위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 했는데 이 말씀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할 말이 아닙니다. “여자여”의 원문 헬라어 ‘귀나이’는 ‘귀네’의 존칭 호격으로 그리이스에서는 왕후를 부를 때 사용하던 존칭입니다. 어머니가 존중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가정에서 부모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존경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존경해 달라는 부모는 없지만, 존경해 주면 부모의 마음이 기쁩니다. 부모가 마리아처럼 얼토당토 않는 일을 시켜도 우선은 예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선은 예하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공경이고 지혜입니다. 이것이 잘되고 있는 가정의 모습입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까마귀의 새끼는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이 까마귀를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라 부릅니다. 까마귀 같은 미물도 효도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팔반가(八反歌)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부모공경과 자녀사랑은 그 질이 다르다는 여덟 가지 사실을 말하는 노래입니다. 그 가사 중에 ♣아이들은 아무리 지껄여도 부모는 듣기 싫지 않지만 자녀는 부모가 한 번 말해도 잔소리 많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의 오줌똥도 싫지 않지만 자녀는 늙은이의 침 뱉는 것조차 싫어한다. ♣자녀는 부모를 모시기를 서로 싫어하지만 부모는 열 자식이라도 남 주기는 싫어한다. 맞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식 아프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쳐내지만, 자녀는 부모가 아프면 고칠 생각 않고 연세가 많아서라고 넘어가 버립니다.
부모사랑과 자녀효도는 그 질이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잘하는 자손들도 있습니다. 함께만 살아줘도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엡6:2-3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십니다.
이 구절은 무슨 말씀입니까? 복을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더 크게 주시려고 해도 부모에게 잘못하면 더 큰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어른이 존경 받는 가정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음으로 양으로 가정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3.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하고 격려하는데서 옵니다.
♣9-10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합니다.
연회장이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칭찬합니다. 왜 이제야 가져왔느냐? 왜 진즉 알려주지 않았느냐? 할 말이 많겠지만 칭찬만 합니다.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끝납니다.
가족이란 원래 모든 단점과 결점에 다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랑 가운데서 헤피 엔드로 끝나야 합니다. 가정에 율법이 등장하면 불행입니다. 예절도 있고 법도도도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서로를 비판하는 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법만 존재해야 합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기가 막힌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아주 특별한 관계입니다. 그런 천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기도하는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악마도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매일 5분이라도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자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자 기도입니다. 너무 가깝다 보니 함부로 하고 사탄의 시험이 더 많습니다. 신랑을 칭찬한 연회장처럼 서로 살려주는 천사의 본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집에서 가정의 회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때만이 가정회복이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주로 삼아 경외하므로 부모에게 잘하고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회복된 가정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