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로 오신 목적 (마 1:20-25)
아기 예수로 오신 목적 (마 1:20-25)
이 시간에 “아기 예수로 오신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몇 년 전에 미국 보스턴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소머벌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시청에서 성탄절을 기념하려고 시청 앞 광장에 예수님 탄생 장면을 재현하여 놓았습니다.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을 중심으로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절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시민들의 눈길을 끌렸습니다.
그런데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아기 예수를 훔쳐 갔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성탄 장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청에서는 라디오와 TV를 통하여 이런 방송을 여러 차례 내 보냈습니다. “시청에서 알려 드립니다. 아기 예수가 없어졌습니다. 가지고 간 사람은 도로 제자리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알려 드립니다. 아기 예수가 없어졌습니다,,,.” 우리에게 뭔가 깨달음을 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탄절을 지키지만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예수 없는 성탄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팻머스 문화선교회에서 서울 경기 소재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여론 조사를 하였습니다. “성탄절이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까?” 여기에 대해서 싼타크로스가 29.9%로 가장 높았고, 예수님이라는 사람은 불과 예수님 7.2%에 불과했습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답한 학생들 중 80%가 넘는 학생들이 크리스마스에 예수님 보다는 산타클로스와 눈, 캐롤, 선물 등이 먼저 떠오른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님이 주인공이니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와 아기 예수님께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 목적을 다 말할 수 없어서 본문에 나타난 성탄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이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천사가 알려준 이름입니다.
이 이름 속에 예수님이 하실 일이 담겨 있어요. 그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오신 것이 아닙니다. 속죄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 그 자체고 영생 자체예요. 다른 누가 필요한 것 아니예요. 예수면 됩니다. 예수를 모시면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립니다.
그래서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12:47에도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인을 사랑하셔서 자기를 버리신 사건이 바로 성탄인 것입니다.
2. 다스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마 1:20에 보면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그랬습니다. 다윗이 자손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족보상의 관계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혈통을 따라 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하신 것은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는 메시아, 메시아라는 뜻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므로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뜻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왕이라는 뜻입니다.
사32:1에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이 말씀처럼 이 통치는 의로운 통치입니다. 군림하는 세상의 왕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선한 왕도 세금을 걷기 때문에 부담을 주는 왕입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다스려 주시면 다스려 주실수록 복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의술로서 병을 다스린다고 하지요. 병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나 잘 다스려지게 되면 그만큼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이 오시면 얼마나 잘 다스려 지는지 놀랍습니다. 악한 마음을 의로운 마음으로 다스려줍니다. 풍랑 같은 마음을 잔잔한 마음으로 다스려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마귀의 시험에서도 다스려 주십니다.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잘 다스려집니다. 문제의 자녀가 있습니까? 주님을 높이고 엎드려 기도해 보세요. 다스려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스림을 받는 곳이 천국입니다.
3.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여기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오실 때 잠시 죄 없는 육신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담의 유전을 받지 않고 남자 없이 여인에게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태만 빌려서 태어나셨습니다. 여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의학자 m.b.디한 박사는 어머니 태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는 한 방울의 피도 어머니 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어머니는 태속에 있는 그 작은 몸을 기르기 위해 그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나 그 태아 속에 생기는 모든 피는 그 태아 자체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잉태로부터 갓난아기의 탄생까지 단 한 방울의 피도 어머니로부터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결론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수천 년 전에 이미 동정녀 탄생을 예언했는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사람의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학적으로는 교파에 따라 약간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박형룡박사의 기독론에는 예수님은 마리아의 실체, 곧 피에서 모든 인성을 취하셨다는 기록이 그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담의 악성은 물려받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교리의 근간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것은 마귀를 멸하러 오신다는 뜻도 됩니다. 창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너는 뱀 즉 마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일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승리가 있습니다.
뱀은 따뜻한 일정한 온도가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겸손하여 예수만 나타나게 하면 악의 세력은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갔습니다. 소리 없이 나갈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소리지르고 나가야 덕이 될 때는 소리 지르고 나가게 하십니다. 불신자에게 표적이 필요할 때는 소리 지르며 나가기도 합니다. 신약 성경에 소리 지르고 나가는 표적을 기록한 것은 주님이 오시면 귀신은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4.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서입니다.
마1:23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사시기 위해서 중생이라는 신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성령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실 때 우리 영혼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것을 신령한 의미에서 성탄이라고 한다면 성탄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는 척도에 따라 변화의 척도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롬8:9-11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은 누룩과 같아 우리를 신령한 성분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어느 왕이 나라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습니다. 시골에 들어갔을 때 아주 예쁜 처녀를 보았습니다. 왕은 그 처녀를 아내로 맞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하에게 “저 처녀를 데리고 오라. 결혼하겠다.” 그러자 그 대신이 깜짝 놀라며 거절했습니다. “'폐하! 안 됩니다. 왕의 신분으로 천민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시골로 내려가서 거기서 살련다.” 신하가 또 말했습니다. “폐하! 그것도 안 됩니다. 왕의 신분으로 시골에 내려가서 살면 안 됩니다.”
그러나 왕은 너무도 그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천민의 신분이 되어 시골로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덴마크가 낳은 유명한 철학자 키엘케콜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전하려고 쓴 '왕과 시골 처녀의 사랑'이라는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임마누엘은 바로 이런 자기희생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믿어야 그리스도를 모십니다. 그리고 더욱 겸손과 경배로서 그리스도를 더욱 영화롭게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들에게 완전한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죄 가운데 방황하십니까? 악이 다스려지지 않습니까? 원수 마귀의 지배하에 있습니까? 공허하십니까?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우리 모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모든 슬픔을 씻고 더욱 온전히 영화롭게 해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