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성탄설교]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 (마 2:1-8)

공 상희 2014. 12. 24. 12:19

[성탄설교]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 (2:1-8)


오늘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기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악과 절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큰 희망을 주셨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그럴 리가 없지만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한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고 생각해 볼수록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의무는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어 영접하고 사랑함으로 더욱 기쁘시게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정작 오신 메시아를 만나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과의 생명적 인격적 만남이 없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신앙을 진단하면서 온전히 예수 만나 그 안의 영생과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할까요?


1. 자기 자리를 내놓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 자기 자리를 내놓아야 해요. 사극을 보면 윗어른이나 고위관직자가 오면 자기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아랫사람의 예절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시면 자기 자리를 내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헤롯입니다. 헤롯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유대나라 왕이었습니다. 로마정권의 하수인으로 세워진 왕이기에 늘 자신의 자리가 불안했던 왕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그 마음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2:2-3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헤롯에게 있어서 자기 자리를 대신할 왕이 탄생했다는 것은 자기 왕권에 대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방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재는 아기 예수를 찾으면 죽이려는 음모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꿈에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고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돌아가자 헤롯은 속은 줄 알고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에 군대를 보내서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왕입니까? 세상의 모든 왕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왕노릇하다가 오시면 자리를 반납해야 하는 것이어늘 헤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권세에 대한 애착이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귀한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을 모시려면 내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들도 왕입니다. 내 자신에 관한한 왕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도 내 것이 아니요 나 자신도 내가 왕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맘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헤롯이 따로 있는 것 아닙니다. 교만하여 내 뜻대로 고집하며 사는 내가 바로 헤롯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를 내려놓지 못하면 아기 예수를 살해하는 것과 같은 죄가 됩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부르지만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요 왕이라면 어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입으로 주를 부른다면 삶에서도 주님을 높이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그런데 내 뜻대로 내 취향대로 내 주장대로 살면서 나는 주님과 같이 산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입니다. 하나님의 일할 때도 그래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세를 가져야지 내 주장 대로 하면 함께 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헤롯과 같은 우리 인생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생각, 은혜와 은사를 얼마나 죽였는지 모릅니다. 내 주장으로 말씀을 버리고 성령의 감동을 소멸시키고 있어요. 그러므로 다름 아닌 헤롯은 바로 자기인 것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그러므로 겸손히 자기 자리를 내어놓으세요. 겸손해야 주님을 만납니다. 그 때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2. 행함 없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 중에 또 한 대상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왔을 때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고 했는데 온 예루살렘이란 바로 그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날마다 성경을 가르치며 메시아를 고대하라고 하던 자들이 소동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2:4절 이하를 보세요.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이 얼마나 성경박사입니까? 성경을 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가 정확히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예수를 만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에 행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야보고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지식은 교만하게만 할 뿐 나중에는 버림을 받고야 맙니다. 알고 지은 죄가 더 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믿고 한 말씀이라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참된 영성입니다. 베드로가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그 한 말씀 실천하여 그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두 배에 가득히 잡았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지식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예수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2: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했습니다. 귀신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도 알고 그 사실을 압니다. 지식으로는 우리보다 더 뛰어납니다. 그러나 귀신은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런 믿음 가지고는 예수님을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알지만 행함이 없는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비극을 다시 따라서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3. 마음으로 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기 예수를 영접했지만 싸늘한 마구간에 영접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베들레헴 여관집 주인입니다. 2:7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했습니다. 이 구절에 그 이유가 나타납니다손님들이 많아 빈 객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 때가 로마 황제 가이사가 천하에 호적령을 내린 때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여관 방은 호적하러 고향을 찾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이것은 요셉과 마리아의 입장에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여관 주인의 입장에서도 사항을 보아야 합니다저는 이 사건이 여관 주인의 삶의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정말 인도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방이 없으면 산모를 위해서 안방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강보란 원문에 작은 보자기를 가리킵니다. 목에 두르거나 머리에 쓰는 그런 보자기입니다. 이걸 볼 때 주인으로서 최소한의 조처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라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유대지방에 그 흔한 천막이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노력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산모가 메시아의 모친인 줄 몰랐다고 하더라도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처럼 혹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처럼 하나님은 분명히 그를 만나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만한 철학도 용기도 사랑도 신앙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이 문구는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요셉과 마리아 편에서 보면 여관에 들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여관 주인 편에서 보면 이 말씀은 불성실이요 핑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해산의 문제인데 방이 없다는 편리한 말로 끝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신앙생활에 핑계 대지 맙시다바쁘지 않는 사람 누가 있으며 힘들지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어렵지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문제는 마음 문제입니다정말 주님을 사랑하면 아무 것도 방해 받을 수 없습니다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삶의 우선순위는 우리 주님이 됩니다. 주인에게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방을 구하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문틈으로 "방이 없어요. 딴데 가보세요."로 끝나려는 사무적인 주인의 이 대답이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진정 주님을 기쁘시게 모시려면 마음으로 섬기세요. 신앙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세요.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8:29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더 이상 주님을 싸늘한 마구간에 모시지 말고 마음 중심에 모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세상 일에 치우쳐 주님을 찬밥신세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마음을 다해 섬길 때 그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영접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영접하십시다. 믿는 것이 곧 영접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더욱 온전히 모시고 사십시다. 우리 모두 왕 노릇하는 완악한 자아를 깨뜨리고 행함 있는 믿음 가지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온전히 예수님 모시고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