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요한계시록 장별강해2장

공 상희 2013. 8. 31. 13:10

6 ,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 2 : 1 - 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서론 : 계시록 2,3장에는 일곱 교회에 대한 편지의 서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편지를 보낸 일곱 교회는 그 당시 로마의 통치 지역인 소아시아 지역 7교회로 지금의 터키를 중심한 대표적인 주님의 교회들입니다. 계시자이신 예수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사도 요한에게 본 계시를 주신 목적이 바로 이들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보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11절의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1:1).

지난 시간에 요한 게시록의 총 대지를 119절 말씀대로 3대지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

1, 네 보는 것이고, 2, 현재 있는 일이고, 3, 장차 될 일 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대지는 1장 내용으로 지난시간까지 말씀드린, 요한이 계시를 받으면서 보고 있는 하늘보좌의 모습으로, 계시하는 곳이 어디며, 계시자가 누구이며, 심판을 집행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부터 몇 시간에 걸쳐 살펴볼 내용은 2번째 대지로, 현재 있는 일인데

2장과3장에 나오는 7교회의 형편을 말 합니다, 이 일곱 교회 형편은 당시 교회만 아니라, 주님 재림 시까지 지상의 있는 모든 교회를 말씀 합니다.

그러므로 이 종말의 계시가 담긴 요한 계시록은 모든 교회들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계시로, 주님 재림하시는 그때까지, 모든 교회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는 교회가 되어서 주 재림을 올바르게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 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1. 에베소 교회가 들은 칭찬과 책망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2~3절에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칭찬이 어느 면으로 보면 대단한 칭찬으로 들리지만 사실인즉 지난날에 그들이 가졌었던 신앙에 대한 칭찬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왜 지난날에 칭찬 받았던 열매들은 사라져 버리고

주님으로부터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책망을 듣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4절에서 언급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 4절에 보면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고하십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 지난날의 그 좋았던 열매를 상실한 원인이 되었고, 이제 회개치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버렸다는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가졌던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가리키며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사랑은 순결한 사랑 이였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22:37)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다는 말씀에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열매는 바로 하나님께 대한 이 사랑이 그 출발점이 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지난날에 이 같은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이 이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되자 그들에게 있었던 열매들이 사라져 버리게 된 것 입니다.

 

(2) 이 처음 사랑은 언제 우리들에게 찾아오며, 왜 떠나게 되는 것일까요? :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은 회개를 통한 구원의 기쁨에서 찾아옵니다. 예를 들면 눅19장에 나오는 삭개오가 주님이 그에 대한 구원의 선언을 내리셨을 때, 이 같은 기쁨이 충만하여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어주고 남의 것을 토색한 재물에 대해서는 4배나 갚겠다고 회개했습니다.

그때 당시 상황을 보면 삭게오가 주님께 대한 첫사랑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데서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이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들로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게 합니다.(요일 4:9-11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런 주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로 진실한 회개를 촉구하게 됩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21:15-18)에 사랑을 요구 하십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2)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는 것들보다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런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처음에 가졌던 주님께 대한 사랑을 상실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점점 세상으로 치우쳐 세속화되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살아남을 길은 회개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경고 하시면서 그 회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고 있는 사실에 관심을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그 방법은 5절에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저버린 분명한 원인이 그들에게 있었고. 그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회개에는 그 원인을 찾아내어 돌이켜야 합니다.

 

다음에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하셨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가졌던 처음 행위를 다시 소유할 수 있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 길은 오직 회개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회개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며 그 결과 처음 행위를 다시 갖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같은 회개를 기뻐하시며,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같은 회개가 없이는 다시 오시는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4) 주님은 그들이 회개치 아니했을 때 그들에게 내리실 보응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들려 주셨는데 :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옮기시겠다고 하신 촛대란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임재하시지 아니하는 교회는 이미 촛대가 옮겨진 교회로 어두움에 버려둔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도 은혜도 구원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개인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성령을 소멸한 성도는 어두움에 쫓겨나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사랑을 회복하고 처음 은혜 받던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결론 : 에베소 교회는 종말 교회의 표본입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종말에 처한 교회는 먼저 주님께 대한 사랑이 싸늘하게 점점 식어질 것 입니다. 18:8절에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은 주님께 대한 사랑을 볼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온다고 했는데 그중에 가장 큰 죄악이 자기를 사랑하는 일로 나와 있습니다.(딤후 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대한 잃어버린처음 사랑찾아 회복 하셔서 처음 행위를 갖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토 의 문 제

 

에베소 교회가 칭찬들은 열매는 무엇 무엇인가?

2 : 2

에베소 교회는 무엇 때문에 책망을 들었나?

2 : 4

회개치 않을 때 주님은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셨나?

2 : 5

 

연구과제

 

* 에베소 교회가 미워한 니골라당의 행위 / 나골라는 이방인으로 처음에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자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곱 집사 중 하나로 선출된 자로 알려진 인물이다(6:5). 이 자는 기독교 초기의 교회들에 의해 니골라당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니골라당은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오용하여 오히려 육신의 죄악을 조장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5:13). 그 주장의 일부를 보면 인간의 구원은 영에 관한 것이지 육신이 아니다. 육신의 죄는 이미 용서받았으니 육신의 죄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음행을 한다고 해도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죄악에서 떠나지 아니한 이방인들이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원론을 주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이 같은 교리는 죄와 타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며 세상과도 타협할 수 있도록 오도되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이 같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였다. 아직 온전히 세속화된 자리에까지 이르지 아니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7 ,하나님께 부요한 서머나 교회

 

요한계시록 2 : 8 - 11 8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론 :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중에 서마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을 듣지 않고,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이 두 교회는 종말에 시험의 때를 면하고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받은 교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보내신 편지 끝에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의 약속이 교회마다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시간에 살펴본 에베소 교회는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2:7). 오늘 서머나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바로 이 이기는 교회의 표본으로. 오늘날 세상 모든 교회들에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들 교회들이 어떻게 해서 시험의 때를 면하고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받은 이기는 교회를 이루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종말에 처한 우리들의 교회도 서마나 교회처럼 이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서머나 교회에 주신 주님의 칭찬입니다.

일곱 교회마다 나타나시는 주님의 모습이 제각기 다른데. 에베소 교회에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나타나 말씀 하시고,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등장하셨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란 창조와 심판을 뜻하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모습은, 주님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서머나 교회에 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이기는 삶을 산 그들에게 최종적으로 생명의 부활을 약속으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1)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첫째 말씀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 환난과 궁핍을 안다는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그들의 생활이 정말로 환난과 궁핍한 상태에 있었다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이기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환난과 궁핍을 연단으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환난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영적 부요함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하여, 이처럼 말합니다.(5:3,4)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환난은 지극히 큰 영광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고후4:17에도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심이라고합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환난이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환난 중에서 어려움을 당해도, 그것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것이기에 감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또 서머나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사단의 회라고 정죄 받은 자칭 유대인들로부터 비방을 받고 있었지만,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그들의 비방으로 인한 핍박과 환난 중에서도 이 사단의 무리들과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또 궁핍이란, 생활의 가난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경우는 게을러서 가난해진 것도 아니며, 순종의 생활을 못해서 가난하게 살게 된 것은 더욱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위해 가난해진 것입니다. 패역한 세상에서 주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은 가난해 질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주의 일을 위해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19:29에 보면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고 보상을 약속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2)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두 번 째 말씀으로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 여기서 실상이란 말씀은,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판단하는 부요와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부요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짓을 해서라도 돈만 있으면 부요로 알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부요이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부요를 누리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12:15-21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이 부요가 없었던 관계로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취하여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요하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가난해 지는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아름다운 생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자신의 안일한 생활을 버리고 환난 가운데 뛰어드는 생활 역시 그리스도인의 가치 있는 생활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이 같은 생활로 네가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주님의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입니다.

서머나 교회에 앞에는 더욱 큰 환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0절에서 말씀해 주시는 “10일 동안의 환난입니다.

 

(1) 그러면 이 “10일 동안의 환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10일 동안이란 기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을 의미하는데, 지금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지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에 원근법으로 해석하면, 이 환난은 종말에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겪을 일정한 환난 기간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종말에 이 세상에 임할 환난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통과하느냐는 문제는 많은 논쟁점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약속한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시겠다는 말씀은 7년 기간 중, 3년 반의 대 환난 기간을 의미합니다.

7년 기간 동안에 전3년 반 기간 중, 하나님의 교회가 받을 환난의 시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환난 기간을 통해서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정결하게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 입니다.

 

(2) 10일간의 환난이 곧 첫째 화로 나오는 환난이 될 것입니다 : 첫째 화는 적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아닌, 리교회들이 해를 받는 환난으로 환난을 받는 기간이 다섯 달 동안 입니다.

이 첫째 화를 황충이 환난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화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는 환난이라고 주장하나, 이 환난은 무저갱 속에서 올라오는 황충이 떼들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가 받을 환난입니다. 이 환난을 큰 환난이라고 했고(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 교회가 받는 핍박12: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이라고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환난 기간 중, 성도들이 할 일은 무엇 입니까?“죽도록 충성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이기는 자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생명의 면류관은 온전한 구원의 보장이며, 하늘에서 장차 우리가 받을 상급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 서머나 교회는 종말의 환난 날에 이기는 교회로 인정받은 교회입니다. 그들은 사단의 회와 부단히 싸웠고,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세상 부요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기 위해 힘쓰는 생활을 하였으며, 장차 찾아 올 환난 날을 대비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21:36)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적인 환난의 날이 매우 가까운 시기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며,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서 서머나 교회에 약속하신 둘째사망의해를 받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토 의 문 제

 

서머나 교회는 어떤 형편에 처해 있었는가?

2 : 9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 어떤 칭찬을 들었는가?

하나님께 부요한 서마나 교회 45

 

2 : 9

서머나 교회가 받아야 할 10일간의 환난을 무슨 화라고 하나?

2 : 10

 

연구과제

 

* 10일간의 환난과 첫째 화 / 9장에는 5개월간의 시한부 환난이 나오는데 이것을 황충이 화라고 하며 정확히는 첫째 화라고 합니다. 첫째 화를 받을 대상이 그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불신자들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황충이들은 누구인가? 사단이 무저갱의 열쇠로 무저갱이 열릴 때 그곳으로 부터 올라오는 악령의 무리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9:1-3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그렇다면 그들에 의해 피해 받을 자들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신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마에 인 맞지 아니했다는 말과 144000에 관한 연구는 7장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10일 동안의 환난을 주시는 이유는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곡간에 거두고 쭉정이는 꺼지지 아니하는 불에 태우시기 위해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역사입니다.(3: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8 , 발람의 교훈을 따른 버가모 교회

 

요한계시록 2 : 12 - 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서론 :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시면서 그의 모습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의 이 모습은 바로 심판주의 모습이십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버가모 교회에 심판주의 모습을 보이신 것일까요?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 무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핍박이요, 다른 하나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는 핍박에는 생명을 버리는 순교적인 정신으로 잘 싸웠지만, 세속적인 유혹에는 약했던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은 사단이 버가모 교회를 유혹하려고 파 놓은 함정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이 유혹의 함정에 빠져서 깨닫지를 못하고,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그 모습을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1. 버가모 교회가 받은 칭찬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탄의 권좌가 있다는 말은 그 지방이 황제 숭배와 각가지 우상 숭배의 본 고장으로 이교도의 중심지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상 숭배의 본거지에 있는 버가모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칭찬이 있는데

(1)13절에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고 하셨습니다. : 이 말씀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만을 굳게 의뢰했다는 말씀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만을 의뢰할 때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산성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께만 소망을 두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소망은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은 그가 품은 마음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의 이름을 위해 사는 생애를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삶의 표준은 주의 이름을 위해 살아가는 생애입니다. 이 같은 생애에는 상급이 약속되어 있는데 이 땅에서도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약속 하셨습니다. 주님이 그의 삶 속에 함께 살아가시기 때문에 형통의 축복이 따르는 것 입니다.

(2) 13절 중반 절에. 순교하는 자리에서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다고 하셨습니다. : 버가모 교회의 이 같은 믿음은 가장 아름다운 믿음이요 주님은 그들의 이 같은 믿음을 인정해 칭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헌신하고 우리의 온갖 생애를 주를 위해 희생해도 후회함이 없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이처럼 주님을 향한 우리의 충성을 주님께서 알아주시고,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버가모 교인들에게 그들의 순교적인 믿음을 인정해 주셨고.

내 충성된 증인으로 안디바란 사람을 등장시키셨습니다. 이 안디바에 대한 역사적인 확실한 고증은 없지만 그 당시 버가모 교회의 유명한 감독으로 황제 숭배를 거역하다가 순교 당한 하나님의 종으로 알려져 오고 있습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바가모 교회에 내려진 우상 숭배에 대한 핍박이 얼마나 극심했었는가에 대하여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이 같은 악조건 아래서도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안디바와 행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순교의 자리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했지만 그 같은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것입니다(10: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2. 발람의 교훈을 따른 자들에 대한 경고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또 다른 숨은 면을 보셨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순교적인 사명을 이룬 영광스러운 교회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밀한 중에 내부적으로 썩어 들어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신 주님은 14절에 책망을 하시는데.

(1)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 발람의 교훈이 버가모 교회에 들어와서 버가모 교인들을 영적으로 타락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14절에서 발람의 교훈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을 약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발람의 교훈이란 (25:1-5)말씀에 발람이 발락 왕의 부탁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시도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심으로 발람은 하나의 꾀를 내어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락 왕에게 가르쳐 준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압 여자들로 이스라엘 청년들을 유혹케 하므로 자연스럽게 음행과 우상 숭배를 하도록 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도록 한 것인데 이것을 이곳에서 발람의 교훈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 입니다. 이 발람의 교훈은 사단의 교활한 또 다른 공격인 것입니다. 사탄은 순교적 신앙의 버가모 교회를 대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란과 우상 숭배로 아주 자연스럽게 영적으로 타락시키는 발람의 교훈을 택한 것입니다.

 

(2) 발람의 교훈과 니골당의 교훈의 관계입니다. :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 발람의 교훈을 니골라당의 교훈과 연계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발람의 교훈이, 신약에 와서 니골라당의 교훈과 일치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발람의 교훈으로 이스라엘을 저주받게 했던 것처럼,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버가모 교회를 저주받도록 한 것입니다.

니골라당이란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출된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니골라에 의해 창시된 교회 안의 한 파당을 말합니다.

니골라는 새로운 교리를 세워 그 교리를 따르는 무리들과 한 당파를 형성했는데 초대 교회에서 이들을 가리켜 니골라당이란 이름으로 불러온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니골라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육체적 범죄는 구원에 영향이 없다는 교리를 내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영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육체로 범죄 해도 그 범죄로 인하여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그의 새로운 교리는 아직 회개하지 못한 무리들이나 이방 종교의 생활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일부 버가모 교인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 교리는 사단의 교활한 유혹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이단적 교리로써 말하자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음행 죄 나 우상 숭배 죄를 범해도 그것이 그 사람을 구원에서 떨어뜨릴 수 없으며, 천국가는데는 지장이 없고,

 

이방인 중에 혹 음행이나 우상을 섬기는 일을 계속하고 있어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예수 믿고도 여전히 죄와 더불어 살아도 천국 간다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회개가 무엇 입니까,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발람의 교훈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로 범죄의 길로 이끄는 사탄의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어느덧 니골라당의 이 같은 이단적 교리가 들어와 교인들을 유혹하였고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입니다.

결론 : 이제 버가모 교회는 순교적인 그들의 신앙이,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잠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종말적인 교회에는 음란과 우상 숭배를 당연시하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종말에 이 니골라당의 교훈은 (17:4-6)음녀의 음행의 포도주를 통해서 교회에 먹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14:9-11)“짐승과 음행하게 되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게 되며, 결국 짐승의 표를 받게 되므로 주님의 입에서 나오시는 칼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복 습 문 제

 

버가모 교회가 받은 칭찬은 어떤 것이었나?

2 : 13

버가모 교회는 어떤 책망을 들었나?

2 : 14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은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2 : 14 - 15

 

연구과제

 

*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 / 니골라당의 교훈을 발람의 교훈과 연결시킨 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 유혹에 가장 약한 것이 바로 음행과 우상 숭배이다. 재물을 사랑하는 일도 우상 숭배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 받으면서 그에게 신적인 경배를 드리게 되는데 계시록은 이자에게 경배하는 일이야말로 우상 숭배하는 일임을 경종해 준다. 발람이 음행과 우상 숭배로 이스라엘을 타락케 했던 것처럼 종말에는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이 같은 일을 자행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실질적으로 교회의 타락은 도덕적인 타락인데 니골라당의 교훈은 육체적인 음행과 물질 만능 주의로 빠지게 하는 우상 숭배를 조장한다. 또 발람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백성을 정복하라는 의미를 나타내는데 니골라란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이톤역시 백성을 이긴 자란 의미로 발람이란 말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9 , 이세벨을 용납한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 : 18 - 29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서론 :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여자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해 준 일로 말미암아 책망을 들은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 교회에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의 이 같은 모습은 심판 주의 모습이십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습니다. 사탄의 깊은 것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주님은 이 같은 사탄의 비밀을 들추어내어 경고하시기 위해 불꽃같은 눈을 가진 심판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1.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은 누군가?

두아디라 교회는 먼저 주님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1)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하셨습니다 : 2,3장에 나타난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두아디라 교회도 종말 교회의 한 표본이 되는 교회이다. 그들은 물적 재원이나 인적 재원이 풍족했기 때문에 주를 위해 하는 사업도 굉장했다. 그리고 그들 52 쉽게 배우는 요한계시록

 

에게는 사랑도 있었다. 믿음도 섬김도 인내도 있었다. 더군다나 이들에게 주님은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고 칭찬해 주셨다. 이처럼 그들의 신앙적 행위는 점차 향상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 같은 신앙적 이면에는 주님만이 찾아내실 수 있는 숨겨진 사탄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2)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여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했다고 책망하셨다 : 그리고 이세벨을 용납한 죄로 인하여 장차 두아디라 교회가 받을 심판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경종해 주셨다. 그러면 두아디라 교회가 용납해 주었다는 자칭 선지자 여자 이세벨은 누구를 말하며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해 주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세벨은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을 당시, 두아디라 교회에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다. 그 당시 두아디라 교회에서 자칭 선지자로 등장하여 은밀히 쑥물을 먹이고 있었던 자들의 영적 배경으로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 그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아내로 시집올 때 바알 선지와 아세라 선지 850명을 거느리고 와서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아세라 신과 바알 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섬기게 했었다(왕상16:30-33).

이세벨은 두아디라 교회로 하여금 잘못된 교훈으로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 거짓 선지자들을 상징해 주는 인물이다. 또한 이세벨은 종말 교회에 나타나 하나님의 교회들로 짐승과 더불어 영적으로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음녀를 상징해 주는 인물로 등장되고 있다(17:1-6).

 

(3) 그런데 문제는 두아디라 교회에서 이들을 용납해 주고 있었다 는 사실이다 :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업이라든가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도 대단히 중요한 열매들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다. 이세벨의 등장은 말씀의 변질을 가져오며 말씀의 변질은 교회의 영적타락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이단자의 등장이나 다른 복음의 전파나 변질시킨 말씀을 전하는 일에 대하여 두아디라 교회처럼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 종말에 등장할 이세벨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에는 두 가지 모습의 여인을 보여 주고 있다.

 

(1) 한 여자는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나타나고 있다 : 이 여자는 진리의 말씀에 서서 비 진리(음녀와 짐승)와 싸우는 교회를 상징한다(12:1). 그러나 다른 한 여자는 그 이름이 음녀로 나와 있다. 이 여자는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17:4). 그녀의 손에는 금잔이 들려 있다. 이 금잔에는 음행의 포도주가 들어 있으며 사람이 이를 마시면 그 영적 생명이 죽게 된다(17:2,8;10,11). 이 음녀가 곧 종말에 등장할 배도세력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로 진리를 떠나게 하며 적그리스도인 짐승을 메시야로 소개하고 그에게 신적인 경배를 강요한다. 이세벨은 곧 이 음녀를 상징하며 이세벨이 하나님으로 섬기게 한 바알은 곧 사탄의 대리인인 짐승을 상징한.

 

(2) 이세벨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는 일이 몇 가지로 나온다 : “내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한다고 했다. 여기서 이세벨이 가르치는 것은 다른 복음이다. “다른 복음이란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전하는 사탄의 복음을 말한다. 이 거짓된 복음은 드디어 온 세계 인류들을 미혹하는데 성공하므로 적그리스도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세계의 정복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13:5).

이세벨의 교훈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꾀는 일로 미혹한다. 그 결과 54 많은 하나님의 종들로 적그리스도와 행음하게 하고 또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고 했다. 그 당시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 일은 실제적인 간음과 제물을 말하지만 종말에 있을 짐승과의 행음과 우상의 제물은 영적 간음과 그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주는 적그리스도의 제물(양식)을 의미한다(13:16,17).

두아디라 교회는 이 이세벨의 세력을 축출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진리의 말씀으로 보존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같은 활동을 용납해 주므로 오히려 동조한 것이다. 그 결과 두아디라 교회는 음녀 교회로 타락하였고 그 많은 열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3) 이들에 대한 심판 방법이 몇 가지로 나오고 있다 :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면서 회개를 명했지만 그들은 이를 거역했다. 회개를 거역하는 무리들에게는 심판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의 심판이 선별적으로 나와 있다.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라고 하셨다. 그라고 지칭한 자는 이세벨을 의미하며 이 자는 자칭 선지자 중의 괴수로 음녀의 무리 중 지도급에 속한 인물이다. 이 자가 받을 심판은 침상에 던지우는 일이다. 침상이란 죽음의 침상을 의미한다(57:2, 32:25;17:11).

다음에 그로 더불어 간음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 나온다. 이들은 이세벨의 가르침으로 꾐을 받은 자들로 이들도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가운데 던지신다고 하셨다. 큰 환난이란 7년 기간 중 후 3년 반을 의미하며 이 기간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환난 기간으로 그들은 이 가운데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받아야 한다(24:48-51). 그리고 그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죽인다고 하셨다. 자녀들이란 이세벨의 자녀가 된 자들로 이들은 이세벨과 더불어 둘째 사망 가운데 던져질 자들이다.

 

결론 :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 복도 약속되어 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철장을 가지고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그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다. 두아디라 교회에 등장한 자칭 선지자 이세벨이 곧 우리들 교회에도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활동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적그리스도와 더불어 음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으므로 짐승의 표를 받아도 안 된다.

 

토 의 문 제

 

두아디라 교회는 어떤 칭찬을 받았는가?

2 : 19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이세벨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2 : 20

종말에 등장할 이세벨은 누구를 말하며 그가 어떤 일을 하나?

2 : 20. 17 : 1 - 6

 

연구과제

 

* 사단의 깊은 것 / 주님은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두아디라 교인들에게 다른 짐으로 지울 것이 없다고 하셨다. “사단의 깊은 것이란 사탄의 깊은 지식을 의미한다. 사단은 이 사단의 깊은 것으로 진리를 대적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사탄의 지식은 미혹의 깊은 함정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알기를 원치 않으신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인이 말한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아담 이전의 인간 존재를 주장한다(4:14). 어떤 사람은 귀신의 존재에 대하여 귀신의 말을 인용하여 죽은 불신자들의 영혼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사탄의 깊은 것들로 성경을 굉장히 오도한다. 통일교에서 주장하는 타락론은 필연적으로 문선명을 구세주로 등장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 같은 사탄의 깊은 지식의 함정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