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떤 어떤 왕이신가? (슥 9:9-10)
예수님은 어떤 어떤 왕이신가? (슥 9:9-10)
이 시간에 “예수님은 어떤 왕이신가?”라는 제목으로 종려주일의 축복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종려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인을 위해 고난 받으시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공식 입성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영하는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었다 해서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고 불렀고, 무리가 호산나 외쳤다하여 호산나주일(Dominica Hosanna)이라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스가랴가 예언한 대로 예수님은 만왕이시고 왕으로 입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믿다가 강력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약 3세기에 이르는 로마에 의한 박해의 가장 큰 원인은 기독교인들은 다른 왕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반국가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을 믿는 것은 영적인 것이지 지상의 왕을 거부하는 것 아닙니다. 도리어 기독교인들은 황제와 국가에 대해 더욱 충성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성도들은 목숨을 바치기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왕적 신앙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심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이 바로 구원이요 영생이요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왕 삼고 그 앞에 순복하고 순종함으로 철저히 그의 다스리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떤 왕이실까요?
그것이 9~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다른 누구의 왕이 아닙니다. “네 왕” 즉 내 왕입니다. 그리고
1. 예수님은 공의로운 왕입니다.
공의롭다는 것은 예수님이 심판주로서 선악 간에 공정하게 보응하사 악을 없게 하시고 의인에게는 하늘의 상급을 영원히 베푸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왕은 국가의 최고통치자로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나라의 모든 권세를 가진 결정권자인데 악을 방치하고 선이 고통당하게 모른 체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백성은 왕을 잘 만나야 행복합니다. 역사상 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알랑거리는 간신들의 말을 듣고 충신들을 죽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아가 필요 이상 자기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얼마나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선한 왕입니다. 사랑의 왕이고 공의의 왕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시면 도탄에서 구원해주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는 것만 믿어도 죄는 사라지고 악령은 떠나갑니다. 살맛나는 세상이 열립니다.
2. 예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십니다.
구원을 베풀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노샤’ 즉 ‘구원받았다’(saved)는 뜻입니다. 과거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즉 이미 받은 구원을 누리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십니까? 꼭 경험해야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참으로 풍성하여 넘치고 넘쳐서 누구나 이것이 구원이구나 하는 것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12:3에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했고, 벧전1:8-9에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면 안 됩니다. 진정 예수를 나의 왕으로 삼고 그를 높이고 그 앞에 엎드려 그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주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풍성한 구원을 경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1세기 유다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B.C 333년에 두로와 블레셋이 알렉산더에게 차례로 점령되었을 때 유다는 신기하게도 알렉산더의 침략을 면하였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간섭하심 때문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엎드려 간구했는데 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알렉산더를 두려워말고 대제사장은 나가 그를 영접하라.” 그래서 유다는 모든 성문을 열고 알렉산더를 맞았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대제사장은 예복을 입고 하나님의 이름을 새긴 금판을 단 관을 쓰고 알렉산더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도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는 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치지 말고 돌아가라.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이 자기에게 나아오는 것을 봤을 때 꿈에 보았던 대제사장의 모습이었으므로 기뻐 달려와서 하나님의 이름에 입을 맞추고 유다백성을 축복하며 모세의 율법대로 신앙생활을 계속할 것을 권장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 우리 왕으로 섬기면 세상의 어떤 왕도 우리를 해할 수 없으며 영육 간에 주님이 다스려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은 겸손한 왕이십니다.
고대에는 존귀한 자도 나귀를 탔지만 말이 수입되는 솔로몬 이후에는 왕들이 말을 탔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왕이시되 겸손한 왕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나귀를 타셨습니다. 왕이 행차할 때 얼마나 위풍당당합니까? 그러나 주님의 행차는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오셨을까요? 높은 데로 임한 것이 아니라 낮은 데로 임한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막10:45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벌 거 아니게 생각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빅토리아 여왕의 이야기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역대 영국 왕실에서 금슬 좋기로 소문난 여왕입니다. 어느 날 여왕이 부군 엘버트의 방 앞에서 노크를 했습니다. “누구요?” 남편의 소리에 그녀는 “여왕이에요.” 그러나 안으로부터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노크를 했습니다. 여전히 응답이 없자 그녀는 이렇게 바꿔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내예요.” 그러자 문은 열리고 환하게 웃는 부군 엘버트의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수 앞에 우리 모습이 확실해야 합니다. 사랑을 경험하려면 왕후의 입장에 서시고 구원을 경험하려면 백성의 입장을 서시기 바랍니다. 겸손한 자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겸손하면 예수님이 보입니다. 겸손하면 진리가 보입니다. 겸손하면 행복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의 나귀 타신 모습은 정복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셨나요? 믿는 것이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주로만 아니라 왕으로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예수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왕입니다. 그러므로 경외와 겸손으로 그 앞에 엎드려 그의 통치를 받는데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외치며 세계를 정복합니다. 평화가 영어로 피스(Peace)인데 본래는 이 말이 라틴어의 팍스에서 왔습니다. 로마는 자기에게 속하여 복종하고 충성하면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문화 종교 치안 안보 생명 다 보장하고 자유를 줄터이니 우리에게 속하라.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전치 못하리라.
이 로마식 평화는 노예적 평화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히브리식 평화입니다. 이 히브리식의 평화를 샬롬이라고 발음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평안입니다. 왕으로 모실 때 마음의 전쟁이 사라집니다. 외부적인 평안도 허락해 주십니다.
그래서 10절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왕 삼으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은 거룩의 왕이십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이 맨 먼저 하신 일이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입니다. 눅 19장에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지금도 자기를 왕으로 높이는 곳에 거룩함을 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주님이 왕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그만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왕관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높이십시다. 겸손하십시다. 순종하십시다. 사랑하십시다. 우리 모두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을 환영하며 맞이했던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참된 구원과 평화와 거룩과 천국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