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5-12)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5-12)
이 시간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주일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悰櫚週日, Palm Sunday)은 십자가 수난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공식 입성을 축하하는 날로 사순절의 6번째 주일이며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이기도 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을 묵상하는 일이야말로 주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감사하는 일이며 또 중요한 한 가지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귀한 진리가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 했는데 그 앞에 “그러므로”라는 부사가 놓여있습니다. 부사란 아시는 대로 앞 내용이 뒤 내용의 원인이나 근거가 될 때 쓰이는 말로 그러니까 온전한 구원을 어떻게 이루는가를 그 앞의 내용이 알려줍니다. 참고로 여기 온전한 구원이란 영적성숙 성화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온전한 구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주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5-6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의 고난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낮고 천한 죄인 된 인간의 자리에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의 놀라운 점은 자기 포기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포기는 사람이 동물이 되는 것보다 더 낮춘 것입니다. 곤충이 되고 구더기가 되는 것보다 더 낮아진 것입니다. 이 낮아지신 예수님을 깨닫는다면 어찌 나를 높일 수 있겠습니까?
덴마크의 윌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안과 의사였습니다. 눈병을 고치는 데에는 그를 따라 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안과계의 전문가였습니다. 윌리는 캐서린 부드(구세군 창시자인 W.부드의 아내. 사회사업가. 전도자)의 전기를 읽고 감격하여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도 포기하고, 명예도 버렸습니다. 선교사로 십자가를 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습니다. 졸업 후 선교부로 가서 선교사로 파송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세계에서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마침내 그의 소원대로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 곳은 눈병환자가 매우 많은 곳이었습니다. 인구의 5분의 1이 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안과병원을 설립하고 토인들의 눈병을 치료하여 주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30년간을 봉사하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여왕은 그에게 그 나라 최고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이 온전하고자 할진데 낮아져야 합니다. 주님의 성육신을 생각하면서 겸손해져야 하겠습니다. 성도는 자기를 낮출 때 온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 땅을 떠나실 때까지 온통 고난이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왕궁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요셉의 아들로 싸늘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헤롯의 시기를 받아 애굽으로 피난 가고 유대인들의 박해로 가는 곳마다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사두개인들의 지도층 사람들은 예수를 멸시 천대하였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고 따라다녔습니다. 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셨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은 이것을 애급과 카르타고로 그리고 로마로 십자가 처형방법을 가지고 갔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죄수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면서 서서히 죽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방법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노예, 외국인, 반란 음모자 그리고 극악무도한 죄수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전체 무게는 대략 135kg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횡목만 죄수로 하여금 나르게 하였습니다. 횡목만 하여도 34-57kg 정도였습니다.
십자가 처형 장소에 도착하면 십자가 틀을 만들어 땅에 뉘어 놓습니다. 그리고 죄수를 십자가 위에 눕히고 양 팔을 뻗게 한 다음 양 손에 못을 박습니다. 못을 박은 후에 십자가를 세웁니다. 숨을 쉴 때마다 극심한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벌레들이 땅에서 피 냄새를 맡고 기어 올라와 눈이나 귀나 코로 들어가기도 하고 새들이 몰려와 살점을 뜯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으면 칼이나 창으로 몸을 찌르기도 합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하기에 사형수의 가족들은 처형자들에게 뇌물을 주어 빨리 죽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보통 밑에 있는 다리를 잘랐습니다. 예수님 옆에 달렸던 두 강도가 그랬지요. 오랫동안 죽지 않자 다리를 잘라서 억지로 죽였습니다. 가장 극심한 고난이 장시간 괴롭힙니다.
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고난은 나를 위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어느 농장에 암탉이 심한 상처를 입고 죽었는데 그 날개 밑에서는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소리를 내면서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미는 족제비에게 물려 다 죽어가면서도 새끼들을 위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죽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에서 충분히 내려오실 수 있었는데도 우리를 위해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까지도 다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영국의 국립박물관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수난을 당한 큰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림 제목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어느 날 그 그림 앞에 한 젊은이가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젊은이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 깜짝 놀란 이 젊은이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도 주님을 위해 한 평생 내 몸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 고백대로 일평생 주님을 위해 살았는데 그가 바로 영국의 그 유명한 '진젠돌프' 백작입니다. 그는 빈민을 구제하고 전쟁 피난민들을 도왔으며 전도사업에 힘을 썼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모라비안' 형제단을 만들어 유명한 사랑의 실천자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함이 이렇게 귀합니다.
3. 주님의 온전하신 승리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예수님의 승리를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도 주와 함께 낮추시기 바랍니다. 딤후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이 놀라운 결과를 생각하면서라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자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를 위해 영광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고난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본 받아 진실로 스스로 낮추며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이시고 더욱 온전케 하시는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