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생활의 3대 암초 (유 1:10-11)
영적생활의 3대 암초 (유 1:10-11)
이 시간에는 “영적생활의 3대 암초”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다에서 배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암초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2년 4월 14일에 일어난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영국 사우스 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항해하다가 암초를 만나 침몰한 사건입니다.
당시 타이타닉호가 얼마나 큰 배였는가 하면 길이 259m, 너비 28m, 총톤수 46,328t의 배로서 이 배 하나 만들기 위해 조선소 주변에 도시가 생길 정도로 큰 배였습니다. 안전성에 있어서는 16개의 수밀격실로 이루어진 이중 선저를 가지고 있어서 수밀격실 중 4개가 물이 차도 부력에 이상이 없는 불침선의 배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빙산 주의’라는 무려 6번의 경고를 무시하고 항해하다가 침몰하여 승객 2,300명 중 단 700명만 살아남는 비극을 당했습니다.
우리 영적생활에도 무서운 암초가 있습니다.
1. 가인의 암초입니다.
본문 11절에“화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합니다. 성경은 가인의 암초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가인의 길의 암초가 무엇입니까? 시기와 질투입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할 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자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죽였습니까? 시기 때문입니다. 시기는 무서운 죄입니다. 예일대학의 심리학교수 살로비(P.Salovey) 박사는 미국 범죄의 20%가 질투 때문에 생긴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질투의 특성 중 하나가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 대하여는 거의 질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기 질투는 같은 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을 때에는 질투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같은 형제라는 것 때문에 질투하게 된 것입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같은 위대한 작품을 남긴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노년에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무명 젊은 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를 자기와 빗대서 칭송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소리를 들은 사울의 마음에 질투의 불꽃이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그의 영감을 막아버렸던 것입니다.
아8:6에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하십니다. 이투기를 이기지 못하면 내가 죽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이 잘되는 것을 볼 수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 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둘이 마라톤 시합에 나갔습니다. 한 친구가 1등을 하여 금메달을 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현수막을 걸어주고 동상도 세웠습니다. 그러자 함께 마라톤에 나갔던 친구가 질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서 동상이 쓰러지도록 조금씩 팠습니다. 어느 날 밤 또 동상 밑을 파다가 동상이 무너지면서 그 동상에 깔려죽고 말았습니다.
남이 잘 하는 것은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대상이요 도전의 목표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고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아니할 때에 그 이유가 무엇인가 찾아보고 더 잘 하고자 하는 다짐이 있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냈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위대한 것은 남을 키워주고 시기와 질투를 모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부흥시킨 안디옥 교회지만 바울이 유익하겠다 싶어 바울을 세웠습니다. 열심히 뒷바라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최대의 일군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도 위대하지만 바나바도 하나님 앞에서 그에 못지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6~28) 하셨습니다.
영적생활의 암초는
2. 발람의 암초입니다.
본문에 11절에“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에 두 번째 암초가 발람의 암초입니다. 발람의 암초가 무엇일까요? 돈을 사랑함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황금의 암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이 돈을 많이 준다고 유혹하자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고 음행에 빠지게 한 거짓 선지자입니다(민31:16-19). 물질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에 빠뜨린 자입니다. 물질의 유혹 앞에서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마음의 발람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디다케(didache,가르침)라는 사도시대 교부들의 교훈집을 보면 “빵 이외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없으면 참 선지자로 알되 그 외 돈을 요구하면 거짓 선지자로 알라.” 고 했습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거짓 신자입니다. 돈에 얽매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팔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딤전6:9~10)“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했습니다.
요즈음 재판 비용으로 인지대만 100억이 넘는 대형 재판이 있었습니다. 삼성 가의 형제들 사이에 상속 때문에 일어난 재판입니다. 이처럼 돈은 형제 사이도 갈라놓습니다. 어느 형제가 욕심을 내는 순간 그 가족은 풍지 박산이 나고 맙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돈이 많으면 하나님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하나님을 삼고 기고만장하게 살다가 지옥에 가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더욱더 큰 문제는 돈이 하나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돈이 있습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돈을 위해서 삽니다. 그에게는 신앙생활도 잘 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돈을 위한 기도입니다. 돈 욕심 없다고 돈 필요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발람의 암초가 있다면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생활의 암초
3. 고라의 암초입니다.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악당들입니다. 같은 레위 자손일 뿐 아니라 유명한 족장 250인의 대표로 뽑힌 당수이니 자기들도 모세와 같은 명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민16:1-35). 인본주의자요 명예주의자들이었습니다.
어떤 저명한 사람이 봉사하겠다고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봉사직이 주어지자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으로부터 저를 끌어내어 주십시오. 저의 의무를 행할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가 있는 저를 낮추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겸손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봉사하기에는 너무나 높아져 있는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특히 남자 분들 화장실 청소 부탁해도 기쁨으로 하시겠습니까? 주방에 가서 설거지 부탁해도 흔쾌히 하겠습니까? 나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편해하신다면 더 낮추셔야 합니다. 더 궂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겠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고라는 정치의 천재였습니다. 250명이나 되는 회중의 유명한 족장들과 함께 당을 만들었습니다. 모세를 도우라고 족장들을 세웠더니 고라당의 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힘의 결집을 통해 회중 가운데 어른 노릇하는 모세와 아론를 견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회중의 지지를 받은 자라도 모세는 모세고, 고라는 고라입니다. 모세가 고라가 될 수 없고 고라가 모세가 될 수 없습니다. 분수를 알지 못하고 대적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과 그들의 가족까지도 산채로 땅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천사를 왜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을 받드는 영광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들을 섬기라고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분수를 모르고 섬기기 싫다고 반역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탄의 무리들이었습니다. 섬기라고 천사장 자리까지 높이 세워주니까 도리어 대적했습니다. 그들의 교만과 명예심이 그들을 지옥불로 던져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유1:6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하셨습니다.
정당한 명예라도 너무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데 하는 순간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이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데 하는 순간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남들은 무의식중에 악감 없이 그랬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그 결과가 반항이요 대적입니다. 그것이 고라당입니다.
심지어 가정에서도 나는 가장인데 하는 순간 당장 시험거리가 생겨납니다. 나는 아버지인데 하는 순간 아이들이 인사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면 서운합니다. 교육은 필요하겠지만 그것마저도 놓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명예를 붙잡는 순간 우리의 심령은 심하게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모든 죄와 슬픔과 저주의 암초를 다 이기신 승리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우리 밖의 암초보다 우리 안의 암초가 더 시급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을 본 받아 가인의 암초 시기와 질투, 발람의 암초 황금, 고라의 암초 명예와 권세의 유혹을 다 이기고 옥토 밭 심령이 되어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