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설교 7편"
제 목 :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자
구 절 : 시 73:21-28
오늘은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금년에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큰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중심으
로 바랍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주님의 종으로서, 새해 첫 주일을 맞는 오늘 이 시
간에,무슨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드려야 할 것인가를 기도하면
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금년 새해에는 저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가고 싶은 충정이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구약 다윗시대에 성전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악사들
의 수석에 있었던 아삽이란 사람이 쓴 시편 중의 일부입니다 (대상
25:1). 이 아삽은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
드셨나이다"고 노래하였으며 (시73:23), "하늘에서는 주 외에 내게 있
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고 노래하였으며
(시73:25),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시
73:28). 이 시편기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겠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복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는 이러한 신앙을 고백하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겪었던 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는 악인의 형통을 보고 거의 실족할뻔
하였습니다 (시73:2-3). 악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형통한대,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정히 하고 죄를 멀리하면서 살려는 자기에게는 재앙이
있고, 징책이 있으니 그럴만도 하였습니다 (시73:4-14). 그러나 이 시
편기자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악인은 비록 잠시 형통해 보여도 졸지에 파멸과 황폐에 이르고 믿음
을 따라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비록 잠시 재앙과 징책이
있어 보여도 큰 축복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시73:16-20).
1.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여 살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든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 이외의 다른 길은 전혀 없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귀한 깨달음을 얻은 시편 기자 아삽은 하나
님을 멀리하는 길은 망하는 길이고,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길은 복
된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73:27-28).
우리들은 우리들이 받기를 원하는 축복이 몇가지의 외부적인 조건들
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
님을 머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파멸과 황폐
를 자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을 중
심하여 사는 것이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
시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순간 만사는 잘 될 이가 없는 것입니다.
혹시 무엇이 잘되는 것 같이 보여도 그것은 잠시동안 꿈속에서 잘되는
것 같이 보여도 그것은 잠시동안 꿈 속에서 잘 되는 것과 같은 것이
고, 결국은 파멸과 황폐만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시73:18-20).
그러나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것이 우리가 축복을 받는 유일의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
리에게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
을 중심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노아시대의 홍수 전후에 세계 역사도 생각하여 보아야 하
며,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의 역사도 생각하여 보아야 하며 롯의 처
에게 일어난 일도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하나
님도 되시지만 공의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은 천
천히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기
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은 분명히 돌아가고 있으며,
철저하게 돌아가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마음을 기울일 것이 없습니다. 혹시는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고 득세
하는 것을 볼지라도 거기에 마음을 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
편 기자 아삽과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중심하여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중에서 하나님의 넘
치는 축복도 받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면
(1)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 아삽은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시73:24). 우리들은 하나님
의 교훈 곧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의 말씀대로 인
도함을 받으면 결국 사후에 우리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영접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생명의 말씀인 하
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서 생명이 이르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
르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축복의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경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
니라"고 말씀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
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
에 복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
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신28:1,6,12-13
상). 기독교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축복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
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너
무나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나
님의 축복을 받고자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축복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
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데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는 사람은 자기의 고집대로 사는 사람이 아
니며, 자기의 잇속을 위하여서 사는 사람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을 따
라서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는 사람
은 자기의 고집도 떠나고,자기의 잇속도 초월하고, 많은 사람의 가는
길도 따르지 아니하면서 다만 하나님의 기쁘신 뜻만을 살피면서, 그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나타내시는 말씀이니, 우리들은 철저하게 이 하나님의 말
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
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죄가 되는 일들을 멀리하면서,하나님을 향하
여 헌신하며, 봉사하며,봉헌의 생활을 힘쓰면서, 이웃을 사랑으로 돌
보면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고 하며 하나님의말
씀대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곳은 죄와 악한 자 마귀의 역사가 전혀 없
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죄가 가득하고 악한 자 마귀가 강
하게 역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살
아가고 있는 이 세상인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
는 우리들은 성화가 완성되고 ,영화가 완성되 우리들이 아니라, 아직
도 육신에 속하여 있으며 죄 아래 팔려있는 우리들이며(롬7:14), 우리
속에는 선한 것만 거하지 않고 죄가 거하고 있는 우리들이며(롬
7:18,20), 따라서 죄를 이기기가 힘이 들며, 세상을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순종하여 살려고 하지 아니하는 우리들인 것입
니다.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 수 없으며,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
로 살려고 하면 위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려고 하면 가만히 있
어가지고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방편을 따라 무엇인가
힘쓰므로 힘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인 우
리에게 무엇이든지 기도하여 받게 하셨지만, 기도하여 성령을 받고 능
력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
여 위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법이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아니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대
로 살지 아니하면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법도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려고 하면 성경말씀을 애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그 말씀을 상고하고 애독하는 심령에게 능력을 주어서 그
말씀대로 살게하며, 따라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상고하며 애독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어
서 죄를 이길 힘도 주시고 세상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도 주시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깨닫게도 하며, 그 뜻
을 행하며,이룰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경말씀을 애독하며, 상고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려고 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
며,헌금을 바치며 하나님의 말슴을 듣는 중에 하나님께 우리의 심령을
굽혀 절하는 것입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시는 것이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크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근실하게 힘쓰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을 힙입을 수 없으며,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도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드리
기를 힘쓰는 사람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능력이 충만하며 따라서 하나
님의 말씀대로 살게되며,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생활에 좀 더 힘쓰는 우리들 모두가 되고 싶은 것
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요리문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
터 소요리문답 1문)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았던 바울 사도는
생사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존귀만을 위하여 살려고 한다고 고백하였
으며(빌1:20),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고린도교인들에게 권면하셨습니다. (고전 10:31). 우리
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에 있어야하고,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크게 영화롭게 하여드려야
합니다. 차라리 죽으지언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은 차마 할
수 없는 우리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일이면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여서라도 즐겨서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
니다. 우리가 빛을 발하는 삶을 살며(미5:14-16), 주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며(요12:26), 주님을 위하여 즐겨 고난을 받는 삶을 살게 될
때(벧전 2:21,4:16,요21:19),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중심하여 힘써 사는 중에, 희생의 대가
를 지불하면서도 선행을 힘쓰며,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위하여 고난
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크게 영화롭게 하여드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
겠습니다.
금년 새해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창조주 구속
주,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보십시다. 하나님을 중심
하여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멀리하여 사는 것인데, 이러한 삶은 패
망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도리도 아니기에 삼가 이러한
삶을 살지 아니하도록 조심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시대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는 사람이
꼭 많지 아니합니다.그러나 이러한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
으며,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도리이기도 하기에 이러
한 생활을 힘쓰는 우리들 모두가 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다. 주일도 거룩히 지키면서, 죄되는 일을
멀리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하며, 봉사하며, 봉헌하면서 살아 보십시
다.
기도하며, 말씀을 상고하며, 근실한 예배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베
푸시는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보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며 차라리 죽을지라도 하지 마
십시다.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라면 힘이 들어도 해내는 우
리들이 되십시다.
하나님이 오늘 찾으시는 신자가 바로 이러한 신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신자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힘써 살아가는 적은 무리가 되
십시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적은 무리여 무서워말라.너희 아버
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여 주
실 것입니다 (눅 12:32).
제 목 : 축복의 땅을 전진합시다
구 절 : 수 1:1-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셔서, 오합지졸이던 백성을광야에서 40년동안 훈련시킬 때 구세대는 모두 죽고 훈련받은 새로운시대를 통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복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오랜 소망, 꿈이었고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오랜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였습니다.
축복의 가정은 먼저 나라와 민족이 축복을 받아야 개인과 가정이 축복을 받는 것 같이 먼저 교회가 축복을 받아야 가정들이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축복을 주시는 방법은무엇입니까?
1. 믿음의 지도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는 40년간 모세를 통하여 일하시고 구세대는 모두 죽고 모세의 뒤를 이어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를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은 율법의 지도자 모세가 아닌 믿음이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하여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은혜와 축복은 믿음으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사람, 믿음이 지도자를 통해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수아는 40년전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군이 모세의 명령따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10명은 부정적인 말을 하였으나 여호수아는 갈렙과 함께 하나님의 함께 하시면 우리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불신앙의구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고 오직 여호수아, 갈렙 두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축복 받은 비결은 먼저 앞서가는지도자들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교회는 목사와 장로, 집사들이믿음으로 나아가고 협력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도자들은 반드시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믿음의말을 하여야 합니다.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믿음의 말이 그 교회의축복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2. 훈련받은 믿음의 백성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올때 오하지졸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 40년동안 구세대가 죽고 율법과 성막중심의 삶과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만나를 먹으며 훈련받은 새로운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명하셨습니다. 전쟁터에서 싸워 이겨야 축복을쟁취하는 것인데 훈련받지 않은 백성은 나가서 싸워 이길 수가 없기때문입니다.
훈련받은 이스라엘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습니까? 16-18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
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니아디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그들은 지도자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따랐으며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일치단결 하였으며 지도자를 격려하였습니다. 이것이 축복받은자격이 있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가나안은 축복의 땅입니다. 교회가축복을 쟁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훈련받은 성도들이 말씀안에서 지도자중심으로 믿음으로 일치하여 나아갈 때 교회는 부흥되고 마귀 세력 무너지고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절대적인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백성과 유사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법궤 메고 넘쳐 흐르는 요단강을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는 절대적인 순종이 축복이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1) 교회당 건축(2) 선교사업입니다. 교회당 건축하면 축복받고 선교하면 축복받습니다. 선교는 교회를 향한 주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믿음으로 순종할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막 9:28).
제 목 : 주님의 신실한 약속
절 기 : 신년새해
구 절 : 마 6:19-33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염려의 시대, 불안의 시대라고도 말합니다. 지난 1
년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십시
오.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작년의 묵은 염려와 근심을 떨쳐버리지 못
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염려는 우리에게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
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
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아니하냐"(마 6:25절) 또한 27절에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
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
다. 염려는 우리 생활에 있어 무익하고 유해할 뿐입니다.
이 '염려'라는 말은 '메린나워'또는 '메린에어'라는 말인데, 이 말의 뜻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짐승이 다른 짐승의 목을 꽉 물어 질식시켜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염려는 우리를 상하게 하고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되
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염려와 근심으로 인한 신경성 질병들이 얼마나
산재해 있습니까? 불치병이라 불리우는 문둥병도 60%가 신경성이 그 원인이
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염려와 근심이 많으면 신
경이 예민해지고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되어 고통과 괴로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생애에 두가지 강도에게 유린을 당하는데 첫째는 어제
에 대한 후회요, 둘째는 내일에 대한 염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날에 내가 잘못하고 실수한 것 때문에 후회만 하면서 살지 마시기 바랍니
다. 사도 바울처럼 뒤엣 것을 잊어 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십시오. 또
한 아직 닥쳐오지 않은 내일 일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염려와 근심은 사단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염려와 근심을 통해
서 우리를 공격하고 쓰러뜨리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며 너희 장래에 소
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곧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죠지 트루엣이라는 사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
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
서 선히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를 믿고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생활이며 축복받
는 생활인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백해무익한 것인가에 대해 말
씀하신 후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전에 주님은 마태복음 5장 1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
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
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
시 이루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구하라"라는 말은 성도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하라"라는 말은 성도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하라"라는 말은 헬라 원문의 현대시상인 '제텐'이라는 말로 '
구하기를 계속하라','끊임없이 그 일에 열중하라'는 뜻이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최우선 순위에 두어 열중하고 매달려야 할
것의 첫째는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
니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그의 나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내
생활에 실현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하
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육신에 속해 있지
만 우리는 이미 구속받은 하늘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
의 통치권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깊이 임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라는 말은 '캐도스 캐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캐논'이라는
말은 '자','척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척도가 되어 하나님의 잣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
니다. 내 마음대로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인
가'에 대해 먼저 말씀의 잣대로 재어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산다는 말은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삶
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그러므로 여러분! 새해에느니
하늘 나라의 통치권 안에, 즉 성령 안에서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
니다.
먼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했습니다. "그의 의"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5장 10-11절에는 "의를 위하여 핍
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
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의'라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
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대속의 '의'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가
대속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하 22장 21절은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
함을 좇아 갚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
도의 대속함을 받은 성도로서 마땅히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
고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구속함을 받
기 전에 행하던 죄된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
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주 안에서 어떻게 살아
야 될 것인지 성령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십
일조 헌금할 마음이 생기고, 성수주일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땅히
주 안에서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를 깨닫게 될뿐만 아니라 주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그러한 삶의 자세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더하시리라"는 말은
"프로스 티뎀"이라는 말로 '프로스'라는 전치사와 '티뎀'이라는 동사가 합
성된 말입니다. '프로스'라는 말은 ' - 을 위하여' ' - 을 향하여',' - 쪽
에'라는 뜻이며 '티뎀'은 '진열해 놓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사방에 많은 축복을 진열해 놓으시고 축복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 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를 위하여 이
처럼 온갖 축복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내 주위에 모든 하나님
의 축복이 가득히 쌓여 진열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환
경, 곧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리에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죤 프렌츠라는 사람은 스페인 군대에 쫓겨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빵 하나를 가지고 빨리
도망하여 윗마을에 대문이 열려있는 집으로 가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
이 들렸습니다. 죤 프렌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갔고 그 집 주인
은 그를 골방에 숨겨 주었습니다. 뒤 쫓아온 스페인 군사는 죤 프렌츠를 잡
기위해 마을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군대를 피해 숨어 있던 죤 프렌츠는 빵
하나만 목고 배고파하던 중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만 되면
닭 한마리가 소리도 없이 골방에 들어와 달걀 하나씩을 낳고는 가는 것이었
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주간을 지내고 십오일째 되는 날에는 닭이 오지 않는 것
입니다. 너무 배가 고파 밖으로 나온 죤 프렌츠는 자기를 찾던 스페인 군대
가 이미 다른 지방으로 다 철수한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깊이 감사하게 되었
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생활과 필요를 책임지시고 세밀하게 간섭하
여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데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의에
근거해서 구원받은 사람,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살면서 말씀에 기초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방에 진열해 놓으신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실 것
입니다.
일하는 새해
(요9;4,신5:12-15)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다짐으로 정초에 재출발을 한다.
그러나 몇 날이 못되어 우리의 결심은 물거품처럼 살아지고 여전히 전과 다름
없는 생활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信仰生活에 열심히 하여야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래서 그간 한번도 새벽기도회에 출석 못한 게으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출석
하기로 했다.-성경도 열심히 읽고 -敎會奉仕도 잘해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信仰에 競走에는 運動競技에 못지 않게 피곤하고 규칙적인 노력이 필요
하기 때문에 우리는 중간에 抛棄하기가 쉬운 것이다.
값비싼 對價를 치르고 얻어지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일축하고, 모든 祝福은
저절로 얻어지기를 바라고 있다.-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努力없이 잘되는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이 努力이 없이 이루워 지기를 바라고 있
는데 이런 것은 성경을 잘 모르셔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도 중한 勞動對價가 必要를 한 것이다.-.
"애쓰고 힘써야 한다"그리고 밤낮으로 懇求하여야한다.-쉬지 말고 祈禱해야 한다.
-선을 행하다가 落心하지 말아야한다.-담잠을 깨어야 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
이 모든 말씀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금년 우리는 <일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쉬지 말고 계속 달려가는 성도가
되셔야 한다.
얼굴에 땀을 흘러야 먹을 것이 생기겠다고 하셨다.
(창3: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 동산에서 땀을 흘리지 않고 살아가게 하였
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의 對價로 얼굴에 땀이 흘러야 植物을 먹게
하신 것이다.-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不汗黨이라고 한다.
첫째로 -安息日을 지키기 위해 엿새 동안 最善을 다하라
人生과 땀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늘의 理致로 되고 말았다.
더욱이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명에도 이 말씀은 强調되고 있다.
물론, 이 셋째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조항이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이레 되는 날에 쉬셨으니,
너희도 安息日을 記憶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삶이란 반드시 상대적이며 조건부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먹기는 하지만 땀을 흘려 먹어야하고- 安息日을 지켜야 하지만 반드시 엿새
동안에 네 모든 일들을 힘써 다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살이에 있어서 반드시 정확하게 지켜야 할 법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敎會에서는 교인들을 가르칠 때 安息日을 지키라는 것만 强要
했지 엿새동안에 네 모든 일들을 힘써 다 하라는 義務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말 하면 福받는 目的만을 敎育하고 强要했지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秘訣과
方法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안식일도 내 것이요, 엿새도 다 내 것이라는 사고가 젖어 낮과
밤은 구분은 분명한데 우리가 사는 方法이 區分이 없다.-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힘써 일하기는 그만두고 마땅히 자기가 해야 될 일마저
하지 않고 태만에 빠져 버리게 된 것이다.
계약 적인 계명에 있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엿새 동안 자기 일을 힘써
일하지 않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꼭 같은 일인 것이다.
그러나 安息日을 지키라고, 主日을 지키라고는 귀가 닳도록 강조했지만
일하라는 말은 전연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교인들 중에 자기 집안일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도 부흥을 찾아
가고 집회마다 은혜 받으러 간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 무엇인가.가난히 찾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성수를 위해서 엿새 동안은 불신자들보다도 더 열심히 일해서
집안 일을 다 정리해놓고 가벼운 맘으로 주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한다.
집안 일도 다 못해놓고 예배당에 와서 안즌다면 그 마음이 어찌 평안하고
그가 드리는 예배가 어찌 경건된 예배가 되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불신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언제나 하나님
만날 날을 예비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고하였다.
神靈과 眞情의 禮拜는 자기 마음과 환경을 깨끗이 정돈한 사람이라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주님이 주신 健康으로 <하나님>께 奉仕해야 한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근자에 와서 누구나 자기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생활 수준도 많이 향상되었고 삶의 여유도 생기고 보지, 이제는 자기
몸도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난하고 못살 때에 우선 먹고 살기가 바쁘니까 자기 몸의 건강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몸의 건강도 장수의 소망도
걱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 몸의 귀중성을 지나치게 생각하여 분에 지나치도록 신경을 쓰는
일들이 많이 있다. 음식을 먹어도 건강 식품을 골라 먹으려 하고 운동을 해도
지나치게 사치성 운동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몸에 좋은 음식이라면 굼벴이도 좋고 지렁이 탕도 좋아한다.
뱀도 개구리도 무엇이 되었든 몸에만 좋다면 상관없다.
그래서 외국까지 나가서 코브라의 쓸개도,곰 발바닥도 가격이야 어떻든 마구
먹었다.
옛날 중국의 만한 요리나 팔진 요리도 가격이 고하간에 찾아 다닌다.
그러나 약대 발목을 먹든지 제비 혀를 먹든지 원숭이 골을 먹든지 코끼리
코를 먹든지 그런 것을 먹었던 사람들이 영생 불사했다는 말이 있는가 말이다.
공연이 돈 자랑이요 오명만 남길 뿐인 것이다.
그렇게 되는대로 좋은 것이라곤 다 먹고 몸에 살찌고 기름이 찌면 그때는 체
중 줄이기 운동을 한답시고 등산, 수영, 에어로빅, 사우나 등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벗고 흔들어 댄다.
옛날 동의보감을 저술한 명의 허준 선생의 이야기도 보면 그가 왕의 어의로
있을 때 정승들의 자식들이 모여들었다.
건강을 위해서다.
그러나 허준선생은 그 귀공자 아이들을 아침마다 장작 쪼개기를 시켰다.
그때 부모들이 와서 내자식 건강하게 해달라했더니 장작을 쪼개게 일시키느냐고
항의를 했다.
이때 허준 선생이 하는 말 `이 아이는 영양 과다가 되어 기름이 많고 살이 너무
많은데 여기다 다시 보약을 먹이면 죽는 길밖에 없소이다.
그러니 우선 급한 것은 기름을 빼는 일이라고 하였다..
세째는 나라 일에 외면해서는 안된다.
제일 처음으로 우리 쉽게 할 수 있는 환경보호문제이다..
쓰레기 정량 제에 교인가정에서 적극 앞장을 서야 한다.
새해가 밝은 후 2번째 주일을 맞는다.
영원히 흐르는 시간에 무슨 매듭이 지어지는 것도 아니며 어제와 오늘
내일의 연속뿐인 세월 속에 별다른 意味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은 전부 부당한 것은 아니다.
새로 推進하는 일에는 敎人들이 率先垂範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新舊의 구획선을 그어놓고 新年이라 舊年이라 이름함에도 나름대로
어떤 뜻과 목적이 있는 것이다.
時間의 制約을 받고 사는 무상한 인생으로서는 영원이란 시간을 생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피로하고 지쳐서 습관에 얽매이는 권태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시작과 끝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살아온 길을 反省하고 悔改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
해 보며 希望을 걸고 <하나님>의 引導하심을 구하면서 그 생각을 묶어보고 그
삶을 정리해 보자는 데 새해의 意味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는 국내적으로 세계사적인 대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나갔다.
정치적인 어려움 -稅務公務員들의 墮落과 經濟의 勤勞精神이 沈滯되면서
사회의 紀綱이 무너졌고 도덕과 윤리가 무너져 상급계층의 부패가 만 연되여
먹고 마시고 놀자는 풍조가 늘어만 가고 잇는 것이다.
분명히 21세기는 우리 나라의 통일의 시대이기도 하다.
공산주의의 붕괴 와 통일문제는 서서히 가시 권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통일과정은 결 국 통일비용이라는 돈의 문제에 귀착된다는 것을 독일과
같이 -우리 나라의 형편은 빚덤이 올라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분열과
혼 란, 폭력과 분쟁으로 일삼는 우리의 내채의 형편으로는 북쪽 못지않게
통일에 대하여 많은 불안요인을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 때에 우리 나라는 우선 내치를 잘해서 사회질서와 기강을 바로 잡아 야 하며
각종 갈등구조의 해소와 쓸모없이 헛되이 낭비하는 사치와 과소 비풍조,
분수를 깨닫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과 지역적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부도덕하고
방종한 국민정신을 혁신하지 못하면 이 민족이 어디로 흘러 떠내려갈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이런 총체적 위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그의 몸인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이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하였다.
社會的으로 부덕한 일에 교인들이 끼여서 안되겠다.그래서 淸敎徒 訓練이
必要하다.-현대 敎人들이 信仰은 있는데 倫理성이 없다고 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불신자와 다른 것이 없다.
그리하여 몽땅 상실한 도덕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회에 정의가 실현되게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일은 개인의 손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복음의 속죄의 은총을 힘입어 죄씻음을 받은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인
거듭난 인격 안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주변에서부터 깨끗한 빛을 발하는 거듭난 영혼의 소유자,
차분히 자신을 녹여 썩음을 막아내는 소금으로 -그리고 거듭난 의로운 인격을
가진 세력으로 이 사회저변에 자리잡고 그 의의 세력으로 이 사회의 저력을
형성하는 일이 교회의 최우선적인 본래의 사명인 것이다.
둘째로 '내 사랑하는 얼굴을 구하라"고하였다.
오늘의 교회의 지상과제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이다.
이것 없이 사회의 지도력 형성을 할 수 없으며 통일도 한낱 희망으로 그칠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랑으로
만 가능하다.
社會는 그 밑바닥에 同情과 理解와 親愛로 사귀는 사랑의 종용한 대다수가
깔려있을 때 그 底力을 갖게 되며 그 活動이 健全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實踐은 죄에서 속량받은 感激과 獻身에서 나아지는 聖徒의
交際가 아니고는 이를 구현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百姓들이 주안에서 하나되어 聖徒의 交際를 再建하고
거룩한 사랑으로 理解關係없이 하나의 共同體를 이루어 이 사회의 사랑의 저력을
이룰 책임을 감당 해야한다.
셋째로 節制와 倫理運動이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안된다. 사람의 힘이란 腕力이요 血氣력이요.
육력이요 情欲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죄를 낳는 힘밖에 더되지 못한다.<하나님>의 힘, 영력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 서 본문에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라" 하였다.
새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謙遜히 일해야 한다.
祈禱란 <하나님>과의 사귐이요 <하나님>의 뜻에 服從하는 生活을 뜻한다.
여기에서만 <하나님>의 영력을 얻게 된다..
韓國敎會는 聖靈께 服從하는 祈禱와 生活運動이 絶對必要 하다.
<하나님>에의 順從이 없는 자기 所願成就는 일반통행의 밀어붙이기 식의
푸닥거리 祈禱가 되는 것이다.
意義 勢力으로 사랑의 共同體로, 能力을 소유한 <하나님>의 몸으로 이 地域社會
속에 자랑스럽게 存在하는 敎會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 경 : 엡 4 : 21 - 24
제 목 : 새 사람의 생활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 모두에게 임마누엘 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원합니다. 1년 365일 중 첫 주일에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며 새롭게 출발하게됨을 감사합시다.
53주 동안도 하나님의 은혜로 늘 새롭게 사는 성도들이 되시고 믿음의 성장이 있기를 원합니다.
23 - “새롭게 되어” 24 - “새 사람” = 새롭게 되는 새 사람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새 해 - 세상 사람들도 새 옷을 입고 새 마음 가짐과 새 결심을 합니다.
성 도 - 새 사람의 모습으로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성 도 -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새롭게 창조된 새 사람입니다.
새사람 - 새로운 삶을 살아야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는 어떻게 하여야 새 사람이 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1) 관 찰 -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로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겉 사람과 속 사람 , * 육신의 사람과 영의 사람 ,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
엡4:22,23,24 = 간접 명령과 현제 시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벗어 버리고”...“새 사람되어”..입으라
새롭게 되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 것이며, 새 사람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하는 것은 옛 사람은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2) 해 석 - 성경은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옛 사람의 모습과 새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줍 니다.
@ 아브라함 = 갈대아 우르에 있을때는 옛 사람이지만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을 때는 새 사람인 것입니다. 옛 사람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고 새 사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야곱 = 고향에 있을때는 욕심이 많던 옛사람, 그러나 고향을 떠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 서원했던 그 때부터 야곱은 새 사람이였습니다. 옛 사람 야곱은 12지파의 조상이 될 수 없고 새 사람 이스라엘로 바꿔지고나서 12지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 사울 =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의 모습은 옛 사람이지만 예수를 만난후 부터는 새 사 람입니다. 옛 사람 사울은 주님의 종이 될 수 없었지만 새 사람 바울로 변화된후 사 도를 쓰임을 받았습니다.
새 사람이란?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예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본문의 욕심이란? - “갈망한다”는 뜻으로 썩어져 없어질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 갈망하는 상태, 혹은 아주 열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3) 적 용 - 지난 해의 어둡고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 = 옛 사람의 모습.
새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면 안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는 곧 욕심을 갖게함, 썩을 것 허무한 것들, 나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들에 대해 욕심을 갖게 함.
누구에게나 이런 모습이 있는데 그 모습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모든 것들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약해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꽃 - 아름답고 모든 시선을 받지만 곧 시들어버린다.
새사람 - 썩을 것에 욕심을 버려야한다.
기독교 - 버리는 종교이고 철저히 죽으라는 것입니다. 버릴 때 얻게 되며, 낮아질 때 높아짐.
줄 때 받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원리입니다. (눅 6:38)
새 출발하는 지금 지난해의 썩어질 것들을 소망 삼았다면 그것들을 예수 안에서 철저히 버리고 바꾸어지는 첫 걸음이 되시길 원합니다.
2. 모든 것이 새롭게 됩시다.
(엡4:23-24)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1) 관 찰 - 새롭게 되라 = 모든 것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심령으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 영에 이르기까지 전인격적인 변화가 잇어 야 함을 말씀한다. 그 결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해 석 -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에서 말하는 심령은 “ 마음의 영 ” 즉 우리 마음의 영적 인 문제를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심령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라” = 일시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새로워져야 되는 것을 의미한 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계속적으로 새로워지는 성도가 됩시다.
본문 = 날마다 새로와지도록 몸부림치는 자신과의 싸움이 있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새 사람의 삶 = 심령으로, 영적으로 깨끗해지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의” 라는 말씀은 곧 올바른 생활을 의미한다. 그 말씀이 생활속에서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 물들지 아니한 깨끗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적 용 - 올 한해도 “예수님 처럼”“초대 교인들 처럼”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이러한 자세로 나아갈때에 올 한해는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해로 남을 것입니다.
내 믿음을 반석 위에 세워 놓느냐? 지식적인 믿음으로 끝나는냐? 우리의 생활과 연결되는냐?의 중요한 한 해가 될것입니다.
행 2장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본 받읍시다.
** 초대 교인들의 7대 신앙의 모습 **
①어찌할꼬 = 회계관 ②말씀을 주야로 묵상 = 말씀관 ③날마다 모여 기도 = 기도관 ④재산을
팔아 나눠줌 = 물질관 ⑤날마다 모임 = 교회관 ⑥집에서 떡을 뗌 = 가정관 ⑦마라나다 인사 = 재림관
이러한 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핍박속에서 승리할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열심히 모였는지 모른다. 예수가 없는 그들의 행위는 물론 구원을 받을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무의미 하지만 그러한 행위가 예수 안에서라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예수를 받았고, 예수의 사랑을 소유한 우리는 그들보다 더 열심히 철저하게 주일 성수하며 철저히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받은자는 예수의 능력까지 받은 자녀인데 그러나 우리가 무너지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는 살아야 한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예수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이렇게 살고자 노력할 때 언젠가는 믿음의 정상에 우뚝서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해야 초대교인의 경건한 삶을 살수 있고 우리의 심령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을수 있는가?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새롭게 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와 충만함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작심 삼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이 마음껏 역사하도록 한다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유대인들보다, 율법주의자들보다 더 열심을 , 더 많은 힘과 노력을 할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
금년 = 더욱 뜨거운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더욱 뜨거운 찬송이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 성경을 읽기를 바랍니다. 뜨거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길 바랍니다.
그래서 금년 한해도 우리가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3 . 새 사람의 삶
(롬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 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 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1) 관 찰
옛 사람 사울이 새 사람 바울로 변화된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의 사도가 되었고,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였고 전 유럽을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됨.
새 사람 바울 = 예수 만난후의 삶을 오직 예수만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2) 해 석
새 사람의 삶 = 곧 예수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
새 사람 =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구습을 벗어버리고, 썩어질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 사울 = 사회적으로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짐, 종교적으로는 베냐민 지파, 학문적으로는 가말리엘 문하생, 유대인 중의 유대인, 히브리인, 그 옛 사람을 벗을 때 새 사람 바울이 됨.
새 사람 바울 = 삶이 바꾸어져서 예수를 위해 살았음.
바울 = 오직 예수를 위해 감옥에도 가고 못먹고 굶주리고 고난을 당하고 온갖 고통을 당함.
자신이 그 토록 핍박했던 예수를, 바로 그 분을 위해 순교까지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늘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즉 예수만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고 자신은 예수의 소유요, 자신은 그리스도의 것임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적 용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사는자는 자기 것이 하나도 없는 자이며 이러한 성도가 바로 새 사람입니다.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우리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한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만 단단히 붙잡고, 예수 안에만 거하면 그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 안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과 동시에 그 안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역사가 있으며 그 안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으며, 오직 예수만 위해 살아갈 때 그 안에 구원의 완성이 있고 그 안에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금년 1년 동안도 모든 삶이 주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하고,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도, 사업 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됩시다. 늘 감사 찬송이 넘치고 기도하는 삶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결 론
우리의 삶은 잠깐입니다.
50-60이 되신분들 = 예수를 위해 얼마나 살았는가요?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한 번 자기 인생을 돌이켜 보며 점검해 봅시다. 너무나 허무하게 세월만 보냈다고 느끼실 겁니다.
이제부터 예수만 부르짖고 예수란 이름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증거되는데 남은 여생을 다 바쳐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
우리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이 오실때가 가까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새 사람이 되는데 최선을 다 합시다.
새 사람의 삶을 살아서 주님이 오실 때 그 영원한 나라와 상급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라톤의 승리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 처럼 그 영광의 반열에 동참하여 면류관을 다 받아 쓰는 성도들이 되시길 다시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 목 : 승리의 새해
구 절 : 슥 4:6-10
전통적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날을 설이라고 합니다. 설을 다른 말로
설립(立)자를 써서 입일 (立日)이라고 합니다.설은 일어사다, 세우다,
계획하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출발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은 새
해를 시작하면서 승리의 새해가 되기 위하여 몇가지 생각해야 하겠습
니다.
1. 좋은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은 목표없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표없는 자는 나침반
없이 항해 하는 선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목표를 향
하여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목표는 모든 이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그런데 목표를 세우되 선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돈을 벌어 부자는
될 수 있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지
위를 얻을 수 있지만 지위를 얻기위해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인
생은 부자나 높은 지위자만 향유하여 사는 독점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선하고 구체적인 신앙인다운 목표
를 세워야 합니다. 나아가 목표를 크게 세워야 합니다.
시 81: 10에 "네 입을 넓게 열라"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목표는 하
나님의 영광입니다.
2. 절대 가능의 신앙을 가져라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신앙을 말합니다. 민수기 13
장에는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보고가 나타나 있습니다.40일간 정탐
하고 보고를 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이 그곳엔 젖과 꿀
이 흐르고 실과가 좋지만 그 땅의 거민이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
히 크며 자기들은 메뚜끼라고 보고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
은 우리가 올라가 그 땅을 취하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절대가능의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자의 모습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는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긍정
적이고 역사와 미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창조적인 믿음의 소수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시
118:6-7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
는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1)"고 했습니다.
3.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합시다.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
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 수 잇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사람
의 힘을 대표할만한 것은 지식의 힘, 돈의 힘, 권세의 힘입니다.
그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은 더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곧 성
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능력은 기도하는 자에게 주십니
다. 영적 지도자들은 성령받은 사람들이며 이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
습니다.
베드로도, 사도바울도,무디도, 기도하고 성령받은 자, 기도하는 자를
통해 이어져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골 3:23-24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최선,최속,최다를 의미합
니다. 무엇에든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합니다.
금년 좋은 목표를 세우시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령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여 승리하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목 : 복있는 사람
성경 : 시 1:1-6
신년들어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받은 인사는 역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금년에는 만사형통하세요" 라는 인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사를 받
았다고 해서 정말로 복이 오는 것도,만사가 형통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매년 이러한 인사를 받지만 일년 동안 살다 보면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은걸 보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복을 갈구하는데도 복은 오지
않고 화만 올까요? 그것은 복을 가지고 계신 분에게 복을 간구해야지 복을
줄 수 없는 존재에게 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새해 인사를 자신있게 드립니다. 제가 말씀 드
리는 이복은 다른 존재가 주는 복이 아니라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주
시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받으라는 인사와 함께, 이 복을 받으려면 어
떻게 해야하며, 이 복을 받은 결과가 어떠함에 대하여 두시간에 걸쳐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91년도는 참으로 복있는 성도
가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가 원했던 일이 잘 풀려나가는 소위 형통의 길
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계획했던 일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불통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형통하는 사람들을 성공한
자 같이 보인다 해서 반드시 그가 성공했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하는 일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공 실패를 판단하는 기간이 1년뿐만이 아니요, 또한 그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지나간
한해가 형통했다고 해서 "이만하면 성공했겠지" 라고 자만하거나, 되는 일이
없었다고 "지난해는 실패한 한해였어" 라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사
람이 성공했고 실패했는 지 본문에 하나님의 평가기준이 나와 있기에 이 말씀
에 비추어 보아서 성공 실패를 가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이 말씀대로
살므로 여러분 모두는 성공자로 판정 받아 복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시편 1 편)은 우리가 다 암송할 만큼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중에는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다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다
른 말로 표현하면 "만사형통"이란 뜻일 겁니다. 형통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의 부제를 만사가 형통하는 마음에서
"형통하는 삶"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형통키 위해서 본문은 크게 세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잘 듣고 준행하시어서 91년도, 아니 여러분의
전생애가 만사형통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형통의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전제 조건 둘이 있습니다.
오늘 이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중 형통을 원하지 않는 분은 한분도 안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나나 할것 없이 땅위에서 사는 동안에 모두 형통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슴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전제 조건이 무엇입니까? 본문은 버려야 할 것 세
가지와 취(행)해야 할 것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먼저 버려야 할 것 세가지가 있습니다. (1절)
첫째, 악인의 길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악인은 하나님앞에서나 사람앞에서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을 말합니다. 꼭 살인 강도짓을 해야 만이 악인이 아닙
니다. 성경은 때로 악인을 사자나 개,혹은 황소나 들짐승으로 비유하곤 했습
니다. 악인들은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성이 없는 짐승의 특징은 본능대
로 행하는 것 뿐입니다. 악인들은 바로 이러한 짐승들과 같이 먹고,마시고,
뛰고 욕구를 채우는 것에 서슴치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사회를
가만히 보십시오.정말 인간 사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도덕적
으로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이 시대의 도덕성이 얼마나 천박해 졌는지 짐승
사회와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짐승들의 영토 다툼처럼 깡패들은 구역다툼
으로 살인을 밥먹듯 하질 않지 않나, 짐승들의 먹고자하는 본능처럼 돈 몇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생매장 시키질 않나,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이 아내
를 죽이지 않나, 정부와 놀아나기 위해 아내가 남편을 죽이질 않나,부모가
자식을 팔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유산 몇푼 때문에 형제의 의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짐승들의 일시적 욕구처럼 악인들의 일순간의 성적 욕구
때문에 화성 연쇄살인사건같은 것이 일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입니다. 작년 한해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중
금방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도 이러하거늘 어느 누가 이러한 사회를
인간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악인들에게는 꾀가 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교활한 꾀를 부리는 지, 얼마나 자기 죄를 잘
감추고 남에게 덮어 씌우는 지 여러분은 잘 알것 입니다. 말도 능합니다.
행위도 민첩합니다. 사자와 같이 기동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그들이
성공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만 사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혼란케 하고 창조의 뜻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악인의 꾀를
쫓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들과 의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행하거나 함께 일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이들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형통의 길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말로 형통의 길을 소원하신다면 악인의 꾀를 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간사해서 꾀도 많고 말과 행위도 민첩하여 사람들
보기에는 일시적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 영화를 누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은 6절에 보니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4절에 보니 악인의 길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겨는 쭉정이를 말합니다. 알곡이 들어 있지 않는 겨는 허수아비와
같을 뿐입니다. 텅빈것이요 무가치한 무용지물 입니다. 또한 겨는 생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열매도 맺을 수 없습 니다. 결국은 5절 말씀처럼 심판의 날
불속에 던지움을 받고 말것입니다. 이러한 악인의 꾀를 쫓다가는 결국 함께
심판당하고 맙니다. 악인의 꾀를 쫓고 악인과 함께 먹고 살다가 악인과 함께
망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롯입니다. 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땅은 좋은
땅이었기에 만사가 형통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악인들과 함께
있다가 그들이 불탈때 모든 소유를 다 태워버리고 겨우 생명만 구원 받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을 뿐입니다. 또한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물교회에 등록하고 그물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즉 등록이라는 절차를
밟아서 의인의 회중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악인은 가라지이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결코 곳간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불구덩이에 갈 뿐입 니다. 어느 농부가 가라지를 곳간에
들이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가라지를 천국 곳간에 들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가라지를 속아 내시고 갈라놓으시고 구별하셔서 불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이것이 가라지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누가 가라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악인의 꾀를 쫓다가는 가라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 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악인의
길을 쫓는 사람은 형통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이 진리를 말입니다. 한걸음
더나가서 악인의 길을 쫓는 이상 악인이 심판당할때 같이 당함도 아울러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둘째,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의 길은 반역의 길이요 불순종의
길이요 불법자의 길이요 하나님의 목표에 벗어나는 길입니다. 죄라는 원어의
뜻은 과녁을 벗어난 화살을 의미합니다. 과녁에 못미쳤던지, 지나쳤던지
빗나간 것을 죄라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못미치거나 지나치거나 빗나간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길은 반역자의 길이라 했으니 아담의 길이요,불법자의
길이라 했으니 가인의 길이요,불순종한 길이라 했으니 발람의 길이요, 배신자
의 길이라 했으니 가룟유다의 길이요, 하나님의 뜻에 못미친 자의 길이라
했으니 한달란트 받은 종의 길인 것입니다.
셋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시편기자가 얼마나
영감있는 시를 썼는 지 보십시오. 처음에는 악인의 꾀를 쫓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꾀를 쫓다가는 죄인의 길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고 했습니다.왜냐하면 결국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게 되면 하나님의 대적을 받게
될것이고 결국은 멸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만한자는 자기자신을 절대화
시키며 독선과 이기주의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편도,아내도,집사도,교역
자도,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나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노아시대 사람들이 오만
했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오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바
로가 그랬고 혜롯이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모두들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만사가 형통하시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세가지를 과감
히 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취(행)해야 할것 두가지가 있습니다.(2절)
첫째,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이 말뜻은 하나님 말씀을 좋아한다
는 말이요,사랑한다는 말이요,관심을 갖는 다는 말이요,소원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 세가지를 뽑아 보십시오. 그 안에 말씀이 들어
있습니까? 없다면 다섯가지를 뽑아 보십시오.그안에는 있습니까? 없다면 우리
가 말씀을 즐거워 한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주일 예배후 집에 가서 성경을
얼마나 읽었습니까? 속회보고서를 보니까 그리 많이 읽는 것 같지는 않습
니다. 한주일을 살면서 주일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며 기다렸습니까? 주일
출석현황을 볼 때 그리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형통하시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소원하고 유일한 기쁨의 이유로 삼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주야"라 함은 항상을 의미합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새김질 하여 말씀 그 자체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야"의 의미는 순경과 역경의 때를 말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밤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에서
빛이 나오고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낮에도 역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누구나 괴롭고 외로울 때는 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기쁠때,즐거울 때,이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내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안됩니까?" 하며 원망과 짜증을 내기
전에 내게서 형통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가 악의
꾀를 버렸는가? 죄인의 자리에서 떠났는가? 오만한자의 자리에서 일어
났는가?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기뻐 했는가? 내게 주신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는가?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만사불통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버릴것은 버립시다. 그리고 취할 것은
취합시다. 그리하면 금년 한해는 분명히 하나님앞에서 만사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