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주일 송구영신예배설교 11편"|
제목:새해에는 더욱 큰 축복을 누리소서.
성경:히브리서11:20-21, 창 25:27-34
새해에는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것은 인생의 숙제입니다.그러나 오늘 우리는 야곱과 에서를 비교하므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활할 때 때로는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하고, 일이 잘 안되어 힘들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여러가지 일들로 인하여 고민되는 문제가 있어서 힘들게 될 때가 있지만, 그 중에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어느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느냐 하는 문제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의 바른 선택,바른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소원을 가지고 축복을 열심히 소망하십시다.
상속이란 이어서 받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당시에 장자들이 이어 받는 상속은 아버지의 재산, 축복, 모든 것을 상속받았고 또 장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자였습니다.그리고 약속의 후손, 즉 대(代)를 이을 상속자가 되는 특권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를 잇는다는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조상이 된다는 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장자에게는 집안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었습니다. 창27:29에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라고 했습니다. 보족, 집안, 형제들이 이 장자의 통치 아래에 머물게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장자는 축복권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축복하시는 축복이 그대로 장자에게 임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축복권을 주셨고 또한 그가 축복을 비는 대로 임하는 놀라운 축복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장자권은 경제적이 축복을 받게 되어 있고, 정치적인 복을 받아 가문의 대소사의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영적으로 언약의 축복, 약속의 축복의 대(代)를 이을 자였습니다. 즉,영적․육적인 축복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금년에는 믿음의 장자권을 향하여 최선의 열망을 가지고 달려나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2.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지 마십시다.
세상에 버릴 것 포기할 것도 있지만 그러나 취할 것가 버릴 것을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할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만사가 영적인 것입니다.
히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보시면
레 11:47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레 11:3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①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그리고 새김질하는 기도의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레 11:9 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무릇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것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②환난과 역경을 이기는 굳건한 믿음의 길을 가라는 뜻입니다.불퇴진의 전진하는 믿음에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레 11:13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날되 잡식성,땅에 기는 것은 먹지 말라)
③소망을 기자고 살아라는 것입니다.높은 곳을 향하여 땅에 것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분하여 먹으라는 것은 거룩한 영적인 삶을 살아라 하시는 뜻입니다.
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작은 것으로 인하여 큰 것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금년에 결심하시기 바랍니다.사소한 것에 소홀하면 큰 것을 잃게 되며,작은 것에 집착하면 또 큰 축복을 상실하는 것이기에,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향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서 팔아 버렸습니다.(33하)."…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는 것은 자기가 누려야 할 특권, 축복을 상실한 것이고 잃어버렸다는 것이며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을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는 장자권(믿음과 믿음의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고, 믿음의 삶을 팔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 귀한 장자의 명분을 에서는 팔아 버렸습니
까? 팥죽은 무엇입니까? 물질, 세상의 쾌락, 세상의 것들이 우리 앞에 있는 팥죽입니다. 이런 팥죽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기는 하나,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이 장자의 명분보다 더 좋아하는 팥죽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이며,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팔지 말아야 할 장자의 명분은 영원한 것이며, 정말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팥죽 한 그릇을 얻기 위하여,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리고, 쉽게 포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그에게 주어져 있는 장자권의 특권의 유익을 알지 못했습니다.
3. 축복을 향한 열정과 집념이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차지해야 할 장자의 명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장자의 명분은 그 당시 세상적인 위치에서 볼때에 에서가 누려야 하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잘 보면 야곱이 형의 것을 가로채어서 자기의 것을 만든 것이 부적당해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장자의 명분이 에서의 것이 아니라 야곱의 것임을 야곱은 알았습니다. 창25:21에 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는데 두 아이(에서와 야곱)를 잉태했고 이 두아이가 서로 태(胎)에서 싸웁니다. 그리고 25:23에 하나님께서는 "이 족속(야곱)이 저 족속(에서)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원칙적으로 보면 장자의 명분, 장자로서 누려야 할 복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이 자신의 것임을 알고 또 장자권의 가치가 얼마나 크다 하는 것
을 알았고, 그래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되찾기 위한 열정, 추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에서가 들에서 배가 고파 돌아오는 기회를 선용하여 팥죽으로 썩지 않을 것인 장자의 명분을 얻는데 사용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 두사람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27장에 보면 이들의 결국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
현세적인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
현재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사람과
현재의 고난을 찾으며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본 사람의 차이는 실로 컸습니다.
에서와 야곱, 이 두 사람의 결국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이것을 보면서 금년에 야곱으로 살 것인가, 에서로 살 것인가를 결정하시고
이제부터는 혹시라도 내게 에서와 같은 모습들의 일들로 인하여 곤비하지 않도록 하시고,
축복을 사모하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고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할 명분이 없슴을 알고 야곱처럼 열망을 갖고, 기회를 선용하고, 썩을 것을 썩지 않을 것으로 바꾸시는 일을 행하시므로 축복권을 회복하시는 가나안교회 가족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벼랑 끝에 서는 용기
시62:11-12
시 62:11 하나님이 한두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시 62:12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새해에 축복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축복받는 인물이 될 수 있을까? 성경에서 찾아보고 은혜로운 삶을 실천에 옮기자. 그리하여 금년에는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하는 사람이 되자. 그리하여 아름다운 성도가 되자.
1. 마지막을 드리자
성경은 모험적인 삶에 축복이 왔다고 말한다. 그 모험은 자신의 최후의 것을 드리면서 일어났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여도 복이 되지만 할 수 없는 것을 하니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은 것이다. 나의 마지막 더 이상 뒷걸음칠 곳이 없는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린 사람들은 물질을 드리면 물질을 받고, 믿음을 드리면 구원을 받고, 생명을 드리면 더 낳은 생명으로 돌려받게 하시는 하나님이셨다.
우리가 다 알다싶이 한 어린아이가 오병이어를 드렸다. 그랬더니 오천명이 먹고 열두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의 삶이 주어졌다. 금년에 나의 오병이어를 드려서 기적을 만나자.
한 과부가 하나인 자식과 먹고 죽을려든 한웅큼의 밀가루와 적은 기름 한병으로 빵을 구워 주의 종에게 드렸더니 3년 간의 흉년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야속하고 야박한 주의 종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나는 없어서 이제 죽을지라도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공수로 돌려보내지 않음을 믿기 바란다.
아브라함을 보라. 하나님이 100세에 주신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 제물로 바치시라는 것이다.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켕기는 마음이 들어도,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를 다 떨쳐버리고 “주신이도 여호와 취하실이도 여호와”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드렸던 그는 아들을 돌려받았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호칭과 축복을 일생동안 받은 것을 생각하자. 나의 생명같은 것을 드렸더니 자손만대의 축복을 받은 것은 나의 마지막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결단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지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마지막 다 드리고 이제 그만이다 하는 그 순간에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께 드리니 역사가 일어났다. 벼랑 끝에 서서 이제 안된다 하는 그곳에 하나님께 드렸더니 안전하고 안심하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우리도 누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2. 죽을 각오를 하자.
내 심령이 어떻게 하면 부흥이 될까? 내가 속한 목장이, 기관이,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하면 부흥이 될까? 이런 사람이 한사람만 나오면 된다.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다. 내 심령이 부흥되기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하자. 내 가정이 부흥되기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하자. 내 사업이 부흥되기를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에게 매달리면서 일하자. 분명히 된다.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야 만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자. 할 수 없다고 하지 말자. 틀렸다고 생각지 말자.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자. 기도하면 된다. 움직이면 역사가 일어난 것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고 나가자. 생뚱맞게 보일지 모를지라도 개의치 말자.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의 결과는 반드시 성공적일 것이다. 된다. 안될 것이 없다.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면 되게 된다.
초대교회를 보라. 그들이 의지하였던 주님은 이제 승천하셨다. 주님 떠난 빈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주님은 그 빈자리를 성령으로 채워주셨으나 여전히 함께 호흡하시던 주님은 안계신다. 그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그들은 이제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주님이 계시지 않아도 주님이 위임하여 주신 복음증거의 사명을 위하여 그들은 생명을 걸었다. 그랬더니 역사가 일어났다. 주님이 “나보다 큰일을 하리라”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병자들이 낳고 시대를 강타하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 나누는 그들이 되었던 것이다.
초대교회의 12제자가 성령받고 순교 각오하였더니 하루에 3,000명이나 선교되어 교회가 폭발적인 부흥을 보았다. 그들의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그 좁은 예루살렘에 모일 장소가 없어서 모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금년에 부흥은 온다. 심령에 부흥은 온다. 내적 외적 성장은 온다, 단 죽기를 각오하자. 눈물겨운 순교자적인 가오를 가진 사람 한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 때문에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바로 당신이 그렇게 되라.
3. 자아를 깨트리라.
누구든지 쓰임받기를 소원한다. 세상 일에는 권세가 필요하고 직위가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명자는 그렇지 않다. 직위나 직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내가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정신병자 대하듯 한다면 그 사람은 된 것이다. 스스로 좋아서 스스로 취해서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누가 불러서, 누가 시켜서 하는 일들은 항상 댓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서 스스로 하는 일에는 댓가가 상관이 없다. 댓가가 없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남이 인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내 것을 드리고도 열정을 다 바칠 수 있는 일 그 일이 위대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자아가 깨어져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중요하다. 직분은 직위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직분이 있기에 일하고 직분이 없기에 일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애초부터 잘못된 가치관 신앙관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부르시고 일하게 하신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합당한 직무를 주신다. 직무에 따라 직책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직무가 없어도, 직책이 없어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교회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일보다 더 중히 여겨 생명 걸고 덤비는 사람은 자아가 깨어진 사람이다. 그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신다.
나를 부수라. 자아가 살아있는 사람은 쓰임받지 못한다. 금년에는 쓰임받기를 위하여 자기를 부수자. 자아를 깨트리자. 과거의 가치관을 털고 일어서라. 과거의 자아를 깨트리라. 그리고 삶의 방향을 바꾸라. 죄인이 의인된다. 호도는 껍질을 깨어야 한다. 계란도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과거의 나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새로운 나의 믿음을 보여야한다. 자아가 깨어지고 절대적인 순종의 사람이 쓰임받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날 것이다. 벼랑 끝에 쓰는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나를 드리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실 것이다.
말씀을 마친다.
금년에 위대한 축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벼랑 끝에 서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면 차라리 용기를 가지자. 벼랑 끝에 서서 나의 인생을 하나님에게 다 드려버리자. 벼랑 끝에 서서 차라리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 내리자. 벼랑 끝에 서서 나를 포기해 버리자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잡아 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결단코 그의 백성이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믿으니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성경: 마가복음8:1-10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작심삼일이라고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작년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만 자꾸만 용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생이 고달프다고 푸념을 할 만합니다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습니다.
고달픈 인생의 여정을 산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진주를 생각해봅시다. 값비싼 진주는 조갯살에 모래알이 들어가 부드러운 살을 고통스럽게 하니까, 그것에서 진액이 나와 감싸주다 보면 나중에 비싼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진주는 조개의 고통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현재 고통이 바로 이와 같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어떠한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합시다.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믿는 자의 절망적인 삶이 도리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되고 풍성한 삶의 지름길이 되었던 사실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됩니다. 그 만남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용기가 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군중들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놀라운 풍성함을 누린 사건을 만납니다. 그들이 어떻게 기적을 만났는가를 통해 오늘의 절망이 소망으로 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믿는 자에게 절망적인 실패란 없습니다.
광야에 나온 4,000여명의 사람들은 인생의 실패자요 절망적인 삶의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병들었고, 소망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었고 한끼의 먹거리도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 속에 병든 몸을 이끌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현실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어디에도 소망이 없어 빈들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몰려들었습니다.
어떠한 가난과 실패와 좌절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 나오면 주님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주님은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그 사람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온전한 삶으로 달려 나가게 하십니다.
영국의 시인 골드스미스(Gold Smith)는 '우리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적마다 일어나는 데 있다'고 했으며, 제임스 존스(James Johns)는 '영웅의 참으로 위대한 점은 한번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모든 아픔과 고난은 보다 좋은 유익을 낳는 씨앗이다'라고 했습니다.
광야 빈들로 나온 이들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은총으로 주님에게 인도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은 그 생명이 풍성하게 되어지도록 축복하십니다.“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 선포하신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절망하는 우리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주님을 통하여 배고픔이 변하여 배부름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고통이 변하여 환희가 되는 새로운 은총을 입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절망적인 실패란 없습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4,000여명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은총은 지금도 여전함을 믿는 자에게 동일한 기적은 일어납니다.
2.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절망적인 사람이란 없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가난한 시골 출신입니다. 통나무집에서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기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못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의지하고 그리고 기도함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총 사건이었습니다. 실로 그는 성경과 기도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가난을 이겼습니다. 고통을 극복하였습니다. 큰 뜻을 이루었습니다. 반드시 부자이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고 말고는 얼마나 하나님에게 자신을 맡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고전 1:27-29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비극은 자기의 연약함과 자기의 죄와 자기의 추악함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광야에 나온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난과 연약함과 병약함을 알고 주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은 그 어디나 따랐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절망은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희망 집단이 되었습니다. 소망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실로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절망은 간곳없이 사라지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절망적인 몹쓸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절망 속에 자포자기 하거나, 자학하거나 그리하여 끝장이 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다시 일어서게 되어 있습니다.
3. 믿음의 사람에게 절망적인 환경이란 없습니다
믿음 안에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전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실패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 좌절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역경과 고통을 주는 환경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어떻게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절망적인 환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어린 소년 시절에 물맷돌 다섯개만 가지고 천하에 무적 장수 골리앗을 하나님을 믿고 대항해 나가 싸워서 물맷돌로 이마를 뚫어 쓰러뜨리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의 골리앗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가 있으나,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실패의 첫째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4,000여명의 사람들에게 7병2어는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들고 축복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광야는 풍성한 만찬의 자리로 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실패한 자가 되어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주님을 만나 믿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침내 모든 환경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절망적인 실패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절망적인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자의 삶에 절망적인 환경도 없음을 믿고 담대하게 새해를 향하여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믿음의 선포”
성경:로마서 10:8-10
1989년 7월 18일, 하반신이 마비된 마크 웰만(Mark Wellman, 29세)은 캘리포니아의 암벽으로 구성된 험준한 산 엘 까피탕(El Capitan, 3천2백 피트)을 정복했습니다. 등산가인 친구 마이크 코벳이 그의 등반을 도왔습니다. 암벽에 로프를 걸어 주면 오직 팔의 만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는 한 번에 6인치(15cm)씩 자기 몸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9일에 걸쳐 정상에 오를 때까지 약 7천 번 동아줄을 당기는 엄청난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그것도 화씨 90도(섭씨 39도)의 더위 속에서 이룩한 것입니다.
그는 1982년도에 등산하다가 암벽에서 추락하여 허리 아랫부분이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엘 까피탕 정복을 위하여 6개월 동안 훈련을 쌓았고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에 6인치만 오르면 됩니다. (6 inches at time)" 물론 이 '한 번'을 7천 회 계속하는 노력이 뒤따랐지만 핸디캡이 있어도 우선 시작해서 6인치만이라도 이룩하겠다는 결의가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웰만 씨는 다시 말한다. "꿈이 있다면 그 꿈은 오직 내가 실천할 때만 이루어집니다. 앉아 있지 말고 나아가 착수하십시오."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갈망, 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간직하도록 애쓰고 마음 가득히 하나님이 주시는 갈망으로 가득 채웁시다. 내게 하나님이 주시는 갈망으로 기뻐하는 일이 있습니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시나니"(빌립보서 2:13)
새로운 꿈을 가지고 믿음을 소원을 선포하면서 힘차게 새롭게 출발합시다.
1.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정하십시오.
어느 날 미국의 대회사 베들레헴 스틸의 슈와브 사장에게 한 신사가 찾아왔습니다. 그 신사는 회사를 수년 내에 크게 성장시킬 비결이 있다고 했습니다. 회사 경영만 몇십 년을 해온 슈와브 사장은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회는 머리에만 있지 꼬리에는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저의 제안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면 돈은 지불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도움이 되었다면 나중에 적당한 사례는 반드시 하셔야만 합니다. 20분만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사장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허락을 했습니다. 그 신사는 하얀 백지를 사장 앞에 내놓았다. “이 종이에 당신이 사장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을 중요한 순서로 6위까지 쓰십시오.”
슈와브 사장은 곰곰히 생각하고 나서 6개의 항목을 썼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당장부터 이 항목의 첫 번째 일부터 시작하여 힘을 다해보십시오. 그것이 끝나면 두 번째, 세 번째, 이렇게 여섯 번째까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경영은 괄목할만큼 발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7위 이하는 다른 중역들에게 맡기고 사장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그럼 성공을 빕니다.”
슈와브 사장은 어안이 벙벙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작 중요한 일을 끝내지 못한 자신의 경영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슈와브 사장은 그 종이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베스트 6의 일에 착수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눈에 띄게 실적이 오르고 몇 년 뒤에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크리스마스 이브 날, 베들레헴 스틸로부터 그 신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왔습니다. 그 안에는 2만 5천 달러 수표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지냈는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마쳤는가? 아니면 다른 일에 휩싸여서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살지는 않았는가? 새해에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목록을 작성합시다. 다른 일보다도 그 목록에 적혀진 일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사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지금 당장 출발하십시오.
로스 차일드가 유럽에서 크게 성공한 후 미국에 진출하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직원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미국에 지점을 낼 생각인데 떠나기 전 준비 기간은 얼마나 필요하겠나?”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던 그 직원이 말했습니다.
“10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좋아. 결정되면 다시 연락하겠네.”
그리고 또 다른 직원을 불렀습니다.
“3일 후면 되겠습니다.”
“다시 연락하겠네.”
그런데 세 번째로 온 직원은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지금 곧 떠나겠습니다.”
“좋아, 자네는 오늘부터 샌프란시스코 지점장일세. 오늘 당장 배를 타도록 하게.”
세 번째 사람이 줄리어스 메이(Julius May)로 그 후 샌프란시스코 최대의 갑부가 된 사람입니다.
“내일부터, 나중에, 생각해 보고 등등” 이렇게 지금 당장이 아닌 말들은 하지 맙시다. 무엇이든지 지금 당장 시작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일의 여러 개보다 오늘의 한 개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지금 당장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마음으로 믿고 자신의 입술로 믿음으로 자신을 선포하고 출발하는 사람에게 구원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축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3. 자신의 본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런 후에 기다립시다.
꿀벌은 아파트먼트를 세웁니다. 꿀을 담기 위해 10,000개의 방을, 아기 벌들을 위해서 12,000개의 방을, 여 왕벌을 위해 한 개의 거룩한 방을 짓습니다. 이 작은 벌들은 더워지는 것을 지켜봅니다. 밀이 녹아 꿀이 흘러내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식구들은 모조리 조를 짭니다. 문간마다 보초를 세웁니다. 다리들로 버티고 섭니다. 그리고 날개로 각자 바람을 부쳐댑니다. 전기 선풍기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꿀은 녹으려다가도 수 만개의 날개로 부치는 바람에 의해 서늘하게 됩니다. 이 작은 꿀벌은 사방 20마일 안에 있는 꽃은 모조리 찾습니다. 꿀벌은 작지만 자기 본분을 다합니다.
그런데, 수년전의 일입니다. 한 미국 사람이 상당수의 꿀벌들을 서인도제도에 있는 바르바도스(Barbados)섬으로 옮겨갔습니다. 처음에 이 꿀벌들은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여 열심히 꿀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날이 지나도 겨울은 오지 않고 여름만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늘 꿀을 가까이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 그 부지런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였던 꿀벌들은 게을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꿀을 모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게으르게 날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마침내는 성질까지 나빠져서 사람들을 쏘는 나쁜 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많은 축복에 젖어 이 꿀벌처럼 우리의 삶이 타락하고 나태해지지 않았는지 염려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불행한 이웃을 잊지나 않았는지, 그리하여 영적인 게으름뱅이들이 되지나 않았는지 늘 우리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멍에를 매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지기 원하시는 영적인 본분, 영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각각 자기의 일을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주의 일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새 해, 지난해 망각해버렸던 영적인 본분을 다시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참 자유 안에서 다시금 나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하여 생명을 얻는 감격의 새해를 맞도록 합시다.
4. 나는 새롭게 되었습니다.
수년 전 스코틀랜드에는 오울드 존 (Old John)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에 인박힌 사람이었고 고기를 잡는 대로 팔아 술을 마시는 데 다 쓰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어촌 마을의 변두리에다 헛간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존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에 모셔들였습니다. 그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버는 돈마다 아내에게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을 했다. 머지않아 가정에 새 옷과 양식, 그리고 땔감이 쌓여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존의 아내가 이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계속 이렇게만 해주신다면 우리 집도 새 집으로 바꿀 수 있겠어요.”
그러자 존은 대답하였습니다.
“맞아. 그래, 새 집을 마련하는거야!”
얼마 후 존은 새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 마을에 세들 만한 좋은 장소를 물색하였습니다.
그 마을에 세들 만한 좋은 새 집이 있었습니다. 존은 집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이 존의 옛 모습을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거절조로 말하였습니다.
“난 당신에게 내 집을 세 줄 수 없소. 당신은 흉측한 술 주정꾼이니 내가 집세를 받아내지 못할 게 아니오!”
이 때 존은 정색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저는 옛날의 오울드 존이 아닙니다. 오울드 존은 죽었습니다. 저는 제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새 사람, 뉴 존(New John)이 되었습니다.”
존의 식구들은 결국 좋은 새 집으로 이사하여 마을에서 새 사람으로 인정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존이 새로운 집에서 새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두가 복음의 힘에 의해서였습니다.
과거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안고 지난해를 살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옛 사람, 옛 이름을 안고 살기에 우리의 생활이 실패로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새 해는 새 사람을 입고 새 이름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살 수 있도록 합시다. 그러할 때 주께서 누리게 하시는 새로운 생활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장미를 아름답다고 말할 때는, 장미의 가시를 보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평가할 때 가시만 보고 좌절합니다. 꽃송이를 보는 시야,그것이 '소망'입니다. 소망을 새롭게 하여 새출발하는 신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답도다.”
성경: 로마서10:12-15
버마에서 활동한 선교사 저드슨은 친구도 없이 외롭게 감옥에 내동댕이쳐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추구했던 선교사업은 아무런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최소한 그의 적들의 생각에는 그러했습니다.
그가 버마의 더러운 감방에 누워 있을 때, 그를 체포한 사람이 찾아와 조롱조로 말했습니다. "저드슨, 선교의 전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오?"그는 주저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선교의 전망은 하나님의 약속만큼 밝습니다."
밝은 전망을 가진 선교는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이 아름다운 발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아름다움으로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골목을 지나다가 한 청년을 만나 길을 물었다고 합니다. 신발을 만드는 가게를 물어도 잘 가르쳐주고. 옷장을 만드는 집 등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을 다 물어보아도 아주 상세히 길을 가르쳐주더랍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사람을 만드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랍니다. 이는 물건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상세하게 알고 있으나.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등한시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풍자입니다.
그렇듯이 양말 한 켤레나 돈 천 원, 만 원을 잃어버리면 크게 신경을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에 둔감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소중함이 절실히 요망됩니다. 우리는 근대화와 경제건설의 경쟁적 추세에서 사람 낚는 일보다 고기 잡는 일에 너무나 많은 것을 유보하고 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얻기 위하여 사람 짓기를 포기한 것처럼 분주하게만 살아갈 따름입니다. 예쁜 옷을 마련하기 위하여 정신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처럼 우리는 삶의 중심이 흐트러진 세상에서 갈팡질팡 생활하고 있습니다. 고기잡이도, 장사도, 과학기술도 엄밀히 말해서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그들은 가족과 생활터전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물고기는 곧 돈이며 생활인에게 있어서 돈은 마치 전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활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도 생활 전체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사람 낚는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나도 너도 그리고 우리도 살리는 중요한 일입니다.
2. 영혼만큼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싸움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 젊은 왕이 있어, 이웃 나라의 나이 많은 왕에게 잠시도 마음 편히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웃 나라의 나이 많은 왕은 부하들에게 그 호전적인 젊은 왕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결국 잡혀온 젊은 왕은 나이 많은 왕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왕은 젊은 왕에게 "물 항아리를 가득 채워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이 길 끝에서 저 끝까지 옮기되, 만약 한 방울이라고 흘리면 죽게 될 것이다"라고 했고, 다음날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이 많은 왕은 길 한 쪽에 모여든 구경꾼들에게는 그 젊은 왕을 야유하고 다른 한 쪽에 서 있는 구경꾼들에게는 응원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젊은 왕은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는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나이 많은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야유를 던지기도하고 격려도 했는데 너는 그들에게 무어라고 대답했느나?" 그러자 젊은 왕은 대답했습니다." 그들과 제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들의 격려가 제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물 항아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왕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려주며 그 젊은 왕을 석방했습니다. "네게는 귀중한 영혼이 맡겨져 있는데, 너는 그것을 완전하게, 아주 흠없이 깨끗하게 주님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 그것만이 중요한 일이다. 그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너는 죽는다. 값싼 승리로 사람들의 갈채를 받으려 하지 말아라. 사람들이 너를 놀리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네 영혼만 돌보아라."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영혼입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3. 기쁜 소식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습니다.
옛날에 숲속으로 여행을 간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앞에 높은 담을 만났습니다. 호기심이 난 그들은 맞은 편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사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꼭대기에 올라가 맞은편을 보자마자 환호를 지르고는 그 즉시 그곳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두 번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번째 사람도, 마지막으로 네 번째 사람이 그 숨막힐 듯한 경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눈이 미치는 먼 끝까지 푸른 정원이 펼쳐져 있고, 아름다운 나무는 온갖 종류의 먹음직한 과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런 곳은 이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곧바로 그곳으로 뛰어내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잠깐 멈추어서 자기의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자 그는 그 유혹을 뿌리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사다리를 뛰어내려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고 뛰어갔습니다.
처음 세 사람은 각기 아름다운 약속의 새 땅을 보았고 그것을 자기 자신만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그것을 나누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해 당신이 통찰한 것을 풍성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당신이 이제까지 본 하나님에 대한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랑을 가져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더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경험한 가장 좋은 일 그 일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나누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증언입니다. 증언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상급으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생명 살리는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가장 좋은 일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경: 고린도전서 10:23-33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끈 여자 육상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조이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다. 그 가운데 미 NBC방송의 한 기자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며 달립니다. 최선을 다함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만큼 인생의 보람을 느껴 본 적은 없었습니다."
1. 영광된 일이 영광을 나타냅니다.
미 우주선 패스파인더호의 화성착륙은 "천문학의 승리"였습니다.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세운 과학자는 요한 케플러(1571∼1630).
그는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단순히 원형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초점으로 타원의 궤도를 그린다는 이론을 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말합니다.
"천문학자는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연이라는 책에서 무언가 찾도록 허락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일 뿐입니다"
지금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일의 중심에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2. 가장 아름다운 것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때 나타납니다.
백년에 한번 들어볼까 말까한 유명한 흑인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n, 1902-1973)은 노래를 잘 부름으로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미국 국가를 독창했고 58년에는 아이크가 유엔대표로 지명까지 했으며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 "대통령자유상패"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40년 간 성악활동을 하고 은퇴할 때 하는 말이 "나는 보잘것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므로 유명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연설하여 미국 모든 시민에게 감명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니 하나님은 그 사람을 가장 위대한 반열에 올려 놓으신 것입니다. 무슨 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나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위대한 삶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동거동락동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외국의 어느 동시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 진흙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의 대답은 "아니요."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그것도 아니요."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이오."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던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 인생이 주님과 함께 할 때 주님의 향기가 내 속에도 생겨나고 이웃에게도 번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아름다운 것도 없고 향기로운 것도 없으며 자랑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롬11:36) 그러기에 우리가 구할 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고 만물의 근원이고 섭리자이시며 그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진흙과 같은 나에게도 주님의 영광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세세로 돌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위한 것은 배설물과 같은 오물(빌 3:7―8)로 여기며 살아갔습니다. 그런 삶의 자세 때문에 의의 면류관이 자신에게 예비되었다고 단언하였던 것입니다(딤후 4:8)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하겠습니다(고전 10:31)
하나님과 함께 길을 가는 것,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사는 것, 하나님과 함께 항상 동행하는 삶이 가장 하나님의 향기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있을 준비뿐 아니라 이 지상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습니다.
한 늙은 부부가 길가 여관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쉴 방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카운터에 있던 종업원은 그 읍내에 3개의 여관이 있으나 때마침 모두 초만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여관도 빈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기꺼이 쉬신다면 제방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노부부는 망설였으나 그 종업원의 간청으로 그 방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여관을 나서며 노신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같이 친절한 사람은 처음이요 당신은 이 미국에서 제일 친절한 여관 종업원이요. 아마도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건축하게 될 것이요. "종업원은 그 노신사의 농담에 웃음으로 답하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그 종업원은 뉴욕방문을 요청하는 왕복 비행기표가 들어 있는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노신사로부터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노신사는 그를 거대한 새 빌딩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것은 당신이 경영하도록 내가 지은 호텔이요"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노신사는 당시 거대한 갑부였던 W. W 아스토이었고 그 청년은 아스토리아 호텔의 첫 번째 경영자가 된 G. C 뿔트이였습니다.
하늘나라에는 사람이 경영하기 위한 "많은 맨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각자 자기 몫의 집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집들은 영광과 고귀를 드러낼 갖가지 크기와 모양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이 땅위에서의 신실한 삶 - 그것이 바로 그 거대한 영광의 준비과정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꿈꾸며 비젼을 가지고 시작하는 새해”
성경: 잠언 29:18
비젼(vision)을 성경은 묵시(默示)라고 표현합니다.
[영] Vision, Revelation주로 히브리어 명사 [하-존-@/zj;(chazon)]의 역어입니다. 대상 17:15,잠 29:18,욥 1:1),다른 곳에서는 이상(삼상 3:1,시 89:19,사 1:1,단 1:17,8:1), 또는 [계시](렘 14:14)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본래 [보는 일],[응시하는 일]을 뜻하고 있습니다.(대하 32;32,렘23:16,)
그리므로 꿈꾸며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적인 은총을 소원하면서, 장차 이루어질 은혜로운 삶을 바라보고 응시하는 새로운 새해를 바랍니다. 그러면 새해엔 어떻게 새롭게 살 수 있을까요?
1. 꿈을 꾸며 믿음으로 세우는 새해 계획이어야 합니다.
꿈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깨어나야’ 하는 ‘헛된 꿈’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품고 이루어 가야 하는 ‘참된 꿈’이 있습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과연 그 꿈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간단한 잣대가 좌우합니다. ‘꿈’과 하나님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며 그럴 때 우리는 ‘비전’이라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과연 비전이란 무엇인가? 구태여 성경에서 찾자면 바로 잠언 29장 18절에 나오는 히브리 단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흠정역(King James Version)과 RSV에서는 ‘Vision ’(비전)이라는 단어로 사용함으로써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번역했습니다. 같은 단어를 우리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묵시’라고 했으며 영어의 다른 번역에서는 계시 예언 등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단어의 특징인 의미의 폭이 넓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으나 예외 없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잠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Where there is no revelation, the people cast off restraint; but blessed is he who keeps the law.>
하늘로부터 내려오기에 비전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보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보는 것입니다. 이미 주신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소원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시며 인도하시는 것이 비전의 속성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계획을 세우고 믿음 안에서 행하여야 하기에 믿음과 비전은 유사한 그릇에 담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는 말씀과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그리고 보여주시는 대로 보는 것’이 비전이라는 주장은 같은 맥락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창조와 주관이라는 큰 그림 안에 속합니다. 우리의 장래와 우리의 모든 것이 ‘위대하신’ 그 분의 손에 달려 있기에 우리는 기대를 가지고 ‘위대한’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고 계시며(계 21:5) 이미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기에(고후 5:17)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라는 큰 그림의 ‘한 퍼즐 조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 안에서 거대한 새해 계획을 주님을 향해 세우며 ‘비전’을 가지고 그 분의 역사를 기대해봅시다.
2.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하는 가를 분명하게 하십시다.
폴랜드의 유명한 천재 음악가 쇼팽은 피아노를 위시하여 작곡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가 20살에 예술의 나라 불란서로 유학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가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폴란드의 자랑이 되어다오.” 아들의 마음속에 국가를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쇼팽의 선생님 역시 훌륭한 분이어서 떠나는 그에게 조그마한 은컵에다 폴랜드의 흙을 넣어 정성스럽게 싸서 주며, “어디를 가든지 조국을 잊지 말게. 이 한 줌의 흙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기 바라네”하며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공부하는 동안 힘들 때마다 “나는 폴랜드 사람이다. 폴랜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지”하며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누구보다 폴랜드의 이름을 높이며 산 생애였습니다. 그의 유언은 “나는 폴랜드 흙이 담긴 이 컵을 나의 무덤 속에 넣어주시오”라고 조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죽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나의 마지막 생명을 부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오직 당신의 이름이 나의 생명을 통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항상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for the glory of God) 사는 삶을 사는 목표를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길을 가신다면 (히11:6) 금년에는 하루 하루가 형통한 나날이 분명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3. 천국 시민의 긍지를 가지십시오
해방되기 전 함경북도 나남이라는 도시에 한 여자 거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젊은 여자인데 살이 보이는 남루한 옷을 입고 이집 저집 다니며 구걸 행각을 하였는데, 사람들은 “젊은 것이 무엇을 못해 거지가 됐느냐”하며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으나 그는 한번도 화를 내는 일이 없이 그저 싱글벙글 웃어만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친 여자로 돌려놓고 제대로 상대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8.15 해방이 되고 나남에 소련군이 진주 하였을 때 그 여자 거지가 소련군의 장교 옷을 입고 중위의 견장을 달고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는 거지가 아니라 소련군의 간첩이었던 것입니다. 이 거지가 그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 앞에서도 태연하고 여유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 장교로서 자기의 사명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아무도 자기를 멸시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음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거지로 알고 함부로 대해도 조금도 괴롭지 않고 오히려 그 천대와 경멸 속에서도 남이 모르는 즐거움과 사명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남들이 자기를 대단치 않게 생각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무지한 로마 병정들에게 매를 맞고 가시관을 쓰시고 살인강도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으신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로 위대한 것을 가졌다면 남이 몰라주고 빈정대고 업신여긴다 해도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자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2년 하루 하루를 힘겹다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천국시민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나의 기업이시니 하나님은 크게 축복하여 주시고야 맙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주 안에 형통하게 이루어집니다.”고 선언하시면서 새해를 줄기차게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합니까? 하고 있는 일로 평가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꿈으로, 비젼으로, 바라보는 삶의 목표를 평가될 때 올바른 평가가 됩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천국시민의 긍지를 가지고 승리하는 나날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사야45:5-7
새해를 시작한지 오늘로 한주간이 지났습니다. 이 한해 내내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하길 우리는 모두 소망합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말씀을 매일 매일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밖에 없으십니다.(5,6)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아데네에는 만신전이 있습니다. 일본의 신도는 더 많은 신들을 섬깁니다. 여기 제주도도 그렇습니다. 왜 그렇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신들의 횡포를 사람들이 막아보려는 마음이 더 많은 신들을 만들어 냅니다.
곧 구정이 오고 신구간이 옵니다.
제주도가 한바탕 뒤집어지죠? 여기 저기 이사를 다니느라고 야단들이 일어나는 것은 신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는 속설을 믿고 움직인다고들 하니 기가막힌 현실입니다. 우리야 이에 휘말릴 이유가 없지요. 왜, 그럴까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과 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5,6)
다른이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만사의 주관자이십니다.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7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눅12:4-9)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축복하시는 하니님이십니다. 그분이 만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로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은총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7)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66권이 바로 약속의 책입니다. 그 약속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따라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어떤 약속을 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LPG를 주십니다.
L은 light입니다.
빛가운데 살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빛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아 있으라.” 하시니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물러간 것 처럼 우리의 삶에도 매일 매일 밀려오는 흑암을 몰아내어 주십니다.
P는 peace입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을 다가지고 오라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이 사명을 이루시기 위하여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의 쓴잔을 주님이 대신 마셔 주신 것은 바로 나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입니다.
G는 God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니 이와같은 은총이 가능한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은총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니 하나님의 은총도 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일을 행하십니다.(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45:7)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선초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일하셨습니다, 지금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Working God이십니다. 남마다 우리가운데 계시면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모든 흥망성쇠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지구촌에 일어나고 있는 각가지 일들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의 개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일과표를 만들고 계획된 일을 추진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엄청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흘러가는대로 자신을 내버려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지나고 나면 돌아보니 “아! 하나님이 하셨구나!”라고 경탄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각대로 안되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계신다고 믿으시면 배를 탄 기분으로 그 분에게 맡겨놓고 살려고 하는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지내시면 된다고 봅니다.
“인생은 뱃놀이입니다.” 다른 말로 “인생은 무등타기입니다.”
이렇게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산다면 인생은 훨씬더 즐겁고, 풍요롭고, 아름답습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에 나를 맡기고 믿음으로 한해를 복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에 나를 맡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며 일하시기를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나의 미련한 인생을 차라리 맡기며 산다면 그것이 훨씬더 잘 되는 길임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을 누리며 살 수 있슴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름다운 씨앗,좋은 땅
마태복음13:1-9
말씀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요? 그냥 건성으로 듣는 것일까요? 몇마디씩 듣고 마는 것일까? 온갖 잡념에 사무쳐 들었는지 마는지 자리만 채우는 것일까요? 아님 작심하고 잘 들어 그대로 뇌리에 입력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본문성경은 예수님께서 주어진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밭에 대하여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주신 은혜로운 말씀으로 제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부연 설명을 곁들여주신 참으로 자상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가 아주 자주 들은 말씀 중에 한 부분이고 그 상황이나 내용은 너무나 잘 아는 것 중에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들을 때 마다 은혜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올 한해동안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 태도를 다시 한번 확고하게 하는 아름다운 계기가 된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믿음이 드는 것입니다. 아멘
1. 씨앗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13: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비유에서 항상 중요한 것이 씨앗임을 깨닫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밭에 뿌리기 위하여서 그냥 뿌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어떤 씨앗을 뿌릴까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밭에 적당한 씨앗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논이면 논, 밭이면 밭 다 같은 것을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종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상황에 알맞은 씨앗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에 알맞은 씨앗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선택한 씨앗에서 썩은 것,상처난 것,알이 잘 들지 않는 것은 골라 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확실한가를 심지어 적당한 소금물에 담가 봅니다. 가라앉는 것은 좋은 씨앗이나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은 거두어 버립니다. 알이 꽉찬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대로 밭에 뿌리는 것도 있지만 벼는 먼저 모자리를 만들어 뿌려서 적절한 모종을 만듭니다. 여기서 제대로 자란 것을 모심기합니다 . 제대로 자란 것을 논에다가 다시 심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정선된 씨앗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명심하여야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선된 말씀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생명이 꽉찬 살아있는 말씀입니다.그가 주시는 말씀은 흠과 티가 없는 순결한 것입니다. 그가 주시는 말씀은 살아있어 운동력이 있어 생동감이 넘치는 생명 바로 그자체인 것입니다, 그가 주시는 말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가 주시는 말씀은 바로 우리를 새롭게 하고, 치유하여 주시는 것입니다.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새롭게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세월도 그랬지만 금년 일년 내내 살아서 우리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뿌리는 분이 계십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일지라도 뿌리는 분이 계시지 않으면 그 씨앗은 씨앗 그대로 있을 것이며 논밭은 사용되지 않아 잡초더미로 변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뿌리는 분입니다.
논밭에 뿌리려면 그분은 준비할 것입니다.일반적으로 우리가 다 잘아시는 농사를 짖는 경우를 봅시다.
우선 경작지를 준비합니다.
개간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 지대도 있을 것입니다.그냥 개간이 않됩니다.
먼저 나무나 잡초를 없애고 벌레가 많고 투박한 땅을 바꾸려면 불을 질러야 합니다.불로 개간지를 태우는 것은 풀과 나무를 없애고 불 필요한 벌레들을 없애고 땅의 질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있습니다.
그런 다음 포크레인과 같은 도구로 나무들을 파내어 버립니다. 잡초들의 뿌리를 없앱니다.
그리고 돌들을 제거합니다, 전석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땅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르게 편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잘 가꾸어야 합니다.
제주도에선 이미 잘 가꾸어진 경작지도 파종을 하기 전에 먼저 전석 작업을 합니다. 돌이 계속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다음 땅을 갈아 엎어 고릅니다. 잘 갈아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돌과 나무,풀뿌리들을 제거합니다.잘갈아서 골을 만든다음 그 골에 준비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경작지를 선택하고 그리고 토지를 제대로 만든다음 씨앗을 뿌리는 것이 뿌리는 분이 하시는 책무요 의무인 것입니다. 토지를 처음 그대로 두고 마구잡이로 씨앗을 뿌리는 이는 없습니다.
오늘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사 그의 말씀을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삶을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쓸모없는 허사를 경영하실 리가 없다고 봅니다.
부름받은 우리들이 말씀을 잘 받고,말씀을 잘 이해하고, 그 말씀을 따라 잘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 토양을 만들어주시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양을 잘만드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의 토양을 만드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을 토양을 만드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믿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 믿음을 따라 회개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의 잡초와 나무,그리고 돌들을 제거하여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하여 주실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온전하게 합니다. 성결하게 하십니다.성화의 은총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잘 경작하여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분의 손에 맡겨야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분은 바로 우리를 그분이 참으로 역사하셔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옥토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115:9-16을 읽어보십시다.
<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10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11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12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13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4 여호와께서 너희 곧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15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그대로 되는 해가 되도록 하나님에게 자신과 가정과 그리고 사업을 모두 맡기는 한해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바로 그대로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옥토입니다.
씨앗을 뿌리러 나가시는 분이 나가시는 도중에 그 씨앗이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로 떨어지고 그리고 옥토에 뿌려졌는데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부터 옥토이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 네가지 밭은 사람들의 마음이나 삶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예수님은 설명하시고 계십니다.
그 설명을 다함께 보십시다.
13장18-23입니다.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길가의 씨앗은 새들이 먹어버립니다.
돌밭의 씨앗은 뿌리가 들어 자랄 새가 없이 말라버립니다.
가시떨기 밭에는 가시의 기운으로 바르게 자라지 못합니다.
좋은 땅은 만사에 잘 갖추어져 있어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길가는 외부적인 나의 심령 상태입니다.
돌밭은 내부적인 나의 심령 상태입니다.
가시떨기는 환경적인 나의 심령상태입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다고 할지라도 외부적인 영향력이 나의 믿음을 견제하거나, 그것에 비중을 둔다면 항상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내부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영적 상태는 결정적인 일에 뒤걸음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환경이 여의치 못하면 환경에 매여 결국은 자신을 포기하게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옥토는 그렇지 않습니다.
금년에 우리는 옥토가 되어야할 것입니다.옥토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우리를 맡기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만 가진다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다 잘아시는 말씀이기에 더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신앙생활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금년에 모두 옥토가 되어 귀하고 놀라운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소망합시다. 결단합시다. 열매맺는 옥토가 되기를 !
환상 중에 밝히보매
사도행전10:1-8
우리의 경건한 믿음생활이 하나님의 나라에 상달되어서 하나님의 신비를 미리 볼 수 있는 믿음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금년에 우리의 기도생활과 말씀생활과 찬송생활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미리 미리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하나님의 은총을 따라 우리도 새롭게 환상을 보는 은혜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음을 확신하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부분은 그리스도께서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다는 경건의 비밀'(딤전 3:16)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복음이 이방인에게 의도적으로 전해지지는 않았고 그들 중에 아무도 세례 받은 이가 없었습니다. 전도되고 세례 받기는 고넬료가 처음이었습니다.
1. 경건한 생활에 최선을 다합시다.(1,2)
고넬료는 이방인으로서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이다. 본문에 보면 그는 지체있고 선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성격이 한 사람에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성품이 만나게 되면 그것은 서로를 빛나게 해준다. 선함은 지체 있음을 더 가치 있게 해주며 지체가 있으면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1)고넬료는 군대의 장교였다(1절).
본문에는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가 나오는데 그들이 모두 순수한 로마인 즉 이탈리아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고넬료는 이 군대의 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상당한 지위의 장교 즉 백부장이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대단한 칭찬을 받은 백부장을 기억하고 있다(마 8:10).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때 처음으로 받아들인 한 이방인 군인이었다. 그는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소개받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열히 환영하였다. 군인이나 장교라고 해서 신앙이 없어도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이방인이 교호에 가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첫 개종자가 로마 군대의 장교라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2)그는 본래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참으로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2절). 그는 참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군인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신앙을 지켰다. 그는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다'(2절).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선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도 선해지도록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는 매우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또한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2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곳에서는 어디어사 구제와 경건의 역사가 일어난다.
2. 하늘의 명령을 받음(3-6)
베드로를 청하는 사람을 보내라는 명령이 하늘로부터 고넬료에게 내려졌다.
[1]이 명령이 내려진 경위:그는 환상을 보았고 환상 중에 천사가 그에게 이 명령을 전하였다. 그 때는 '제9시 쯤'이었다. 그때는 성전에서 저녁 희생을 드리는 때였으므로 경건한 사람들은 이 때를 기도의 시간으로 삼았다. 고넬료는 그때 기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30절에서 고넬료가 직접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왔다. 그는 눈을 똑바로 뜨고 밝히 보았다. 꿈속에 상상한 것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환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 천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지신 특별한 관심을 암시하기 위하여 고넬료야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것은 고넬료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4절). 이렇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뜻에 따를 준비가 되어 이는 사람처럼 말했다.
[2]메시지의 내용
1)고넬료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4절).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4절). 기도와 구제는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구제로 뒷받침하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으로 구제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깨끗하여진다(눅 11:14). 또 우리의 구제는 기도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은혜스럽게 받아들이실 것이다. 고넬료는 하나님께 드리듯이 진실하게 기도도 하고 구제도 하였다. 그리하여 본문에는 그것이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도와 구제는 우리의 영적인 제사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인정하시고 기쁘게 받으신다.
2)고넬료는 더 많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알게 되리라고 약속받았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5,6절). (그가 와서 마땅히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너에게 보이리라-흠정역). 본문에는 놀라운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며 구제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과 온 가족이 신앙 안에서 살았다. 그가 해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즉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것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다. 그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믿었으므로 이제 그 약속의 성취도 믿어야 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나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한다. 둘째, 고넬료는 하늘에서 온 천사가 그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 천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으며 단지 "베드로를 부르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말해 주리라"고만 하였다. 베드로가 천사도 허락 받지 못한 것을 전해야 했다는 사실이 그 사도에게 영예가 되었지만 그에게 가도록 명령하기 위해서 천사가 보내졌다는 사실은 그에게 더 큰 영예가 되었다. 신실한 사역자와 순종하는 백성을 결합시키는 것이 천사가 하는 가치 있는 일이다.
3. 고넬료의 복종(7,8)
그는 그 명령에 즉시 복종했다(7,8절). 그는 신속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했다. 그는 말했던 천사가 떠나자마자 사람을 보냈던 것이다. 그는 명령에 따르기 위해 지체하지 않고 서둘렀다. 우리의 영혼이 관계되어 있는 일에는 지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구를 보냈는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7절) 보냈다. 경건한 백부장에게는 경건한 군인들이 있었다. 적은 신앙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군인들에게는 좋은 교훈이 된다. 그러나 지휘관이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군인들에게는 더 큰 감화를 줄 것이다. 이 백부장이 군인 몇 명을 뽑아서 그를 수종들며 항상 곁에 있게 한 것은 그들이 자기 신앙의 본을 받게 하려 한 것이다. 이 일을 다 고하고(8절). 고넬료는 베드로가 있는 곳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를 청해야 하는 이유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종졸들이 베드로를 간청하여서라도 데려올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