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엄마라는 말입니다. 학교에 갔다 돌아와서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부르는 말이 엄마입니다.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도, 몸이 아파 신음할 때에도, 시집간 딸이 친정으로 오면서 제일 먼저 부르는 말도 엄마입니다. 나이가 들어 늙었을 때에도, 괴로울 때에도, 외로울 때도 찾는 것이 어머니입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정다운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머니 없는 사람은 얼마나 쓸쓸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고아라고 부릅니다. 어머니 없이 자라는 연산대군을 보면서 아버지 성종 임금은 늘 측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하루는 밖에서 놀다 들어온 연산에게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구경하였느냐?" 그때 연산이 대답합니다. "어미 소를 따라가며 엄마를 부르는 어린 송아지가 그렇게도 부러워 보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 성종은 돌아서서 눈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양친 중에서도 어머니의 존재는 인생의 요람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 측은해서 오늘을 어버이주일이라고 했지만, 실은 처음 미국에서 제정된 때에는 어머니날이었습니다.
어버이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미국의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라는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안나는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게 되었습니다. 안나는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카네이션 꽃을 어머니 무덤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나갔습니다. 그 꽃을 보는 사람들마다 그 이유를 묻자 안나는 대답하기를 "어머님이 그리워 어머니 산소에 있는 흰 카네이션과 똑같은 꽃을 달고 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날 안나는 1년에 한번이라도 어머니를 기억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유산 중에 10만 달러를 내놓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04년에 시애틀에서 어머니날 행사를 처음 개최하게 되었고, 이 날에 어머님이 살아 계신 분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에게는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습니다.
그 후 미국에서는 1913년에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고, 이것이 점차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고, 1972년에는 어버이날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에서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세계에서 제일 효를 잘 실천해온 나라로 자부해 왔습니다. 효도가 지극한 사람에게는 상을 내리고 효자문(孝子門)을 세워 우대를 하였습니다. 임금도 효자문 앞을 지나갈 때는 어가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고 걸어서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만큼 효를 중요시하고 강조하는 곳은 또 없을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부모를 공경할 것을 명령하고 있고, 그 명령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 에베소서 6장 1절에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하셨고, 2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그랬습니다. 여기서 "첫 계명"이라는 것은 십계명 가운데 인간관계를 위해 주신 첫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이는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 공경이라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우리는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①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가 제2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은 부모로부터 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2의 창조자인 부모를 통하여 나를 지으시고 조직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자녀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생명 창조 역사의 동역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제1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제2의 창조자인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사실 부모는 나의 특별한 이웃입니다. 그 많은 이웃들 가운데 혈연으로 맺어진 첫째 이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났고, 제일 많은 신세를 진 이웃입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의 첫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치 않는 것은 하나님도 모르고 도덕도 모르는 진정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입니다.
②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는 질투가 존재합니다. 고부간에도 질투는 존재합니다. 형제와 친구 사이에도 질투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는 질투가 없습니다.
고려장에 얽힌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 보겠습니다.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내버리려고 지게에 업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등뒤에서 어머니는 손닿는 대로 나뭇가지를 꺾어 자꾸 땅에 떨어뜨립니다.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나뭇가지는 왜 자꾸 꺾습니까?" 그러자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산이 너무 깊어 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에 길을 잃을까봐 그런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그 길로 어머니를 모시고 발걸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자기를 내버리는 아들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사랑은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때에 동생을 칭찬합니다. 그러면 누가 좋아하지 않죠? 형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편을 칭찬하면 아내가 싫어합니다. 거기에는 시기와 질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 딸이 하도 의젓하고 아름다워서 그들 부모님에게 한 마디 합니다. "딸이 너무 곱군요." "아들이 참으로 늠름하군요." 그러면 부모님들은 참 좋아합니다. 심지어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낫습니다" 해도 부모는 좋아합니다. 왜 그렇지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엔 질투와 시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이나 부부간을 두고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싸움 나게 만듭니다. 자녀에 대해 질투가 없는 사랑,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뿐입니다. 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입니까!
바로 이러한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인도의 성자인 선다씽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가장 좋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 신학교는 바로 우리 어머니 품이었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하나님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장님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인 헬렌 켈러 여사에 대하여 아실 것입니다. 그녀의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이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다가 드디어 소재 하나를 찾아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나이가 많은 헬렌 켈러였지만, 선생님 자기 젖가슴에 손을 대게 합니다. 그리고 몇 마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헬렌 켈러는 "오, 하나님, 나는 이미 당신의 사랑을 체험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젖가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던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요 상징입니다. 이런 사랑의 공급자인 부모를 공경치 않고 저주하고 무관심하다면 진정 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③부모는 하나님의 권위의 대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모님의 백발과 주름살과 구부러진 허리와 굵은 손마디에 기록되어 있는 인생의 경륜과 어른의 위치 때문에 범할 수 없는 권위를 부모님에게 부여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할 때에 "공경하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존경하라"는 정도의 말이 아니라 최고로 높이라는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카베드"인데,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말할 때 사용된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를 하나님 경외하는 것처럼 극진히 높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칼 바르트는 그의 교의학에서 말하길 "부모는 하나님의 대표자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서도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도 센머리, 노인(부모)을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일직선상에 놓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권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를 영적 지도자들과 노인과 부모와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만약 하나님의 주권의 대리자인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잠20:20) 하셨고,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면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5,17) 하셨습니다. "반드시"란 말이 붙어있을 정도로 부모를 공경치 않는 행위는 즉각적인 심판을 가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치 않는 자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대리적인 권위에 도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질서에 도전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께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③부모는 일생동안 나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요람에서 장성할 때까지 부모님은 나의 보호자십니다. 유아 시에는 젖을 먹여 품에 앉고 양육하셨고, 유년 시에는 한눈 팔지 못하고 지키시면서 양육하셨고, 교육을 마칠 때까지 학자금을 대어주시며 지도하셨고, 결혼 후에는 자녀의 축복과 행복을 위해 항상 염려하시고 기도하시며 잠 못 이루는 것이 부모님이십니다. 이것은 부모의 자녀에 대한 보호 본능 때문입니다.
이제 부모님이 늙으면 그 때는 자녀가 부모를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인간은 서로 보호하고 보호받으면서 살아야 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부모 - 자식, 남편 - 아내, 스승 - 제자, 목사 - 교인은 서로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人間이라는 한문의 의미는 이것을 잘 나타내어 줍니다. 서로 기대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란 뜻입니다. 어릴 때 나의 보호자였던 부모님을 내가 장성한 후에 보호해 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도리입니다.
④무엇보다도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효도 사상은 단순히 사람의 사상이요 윤리관이지만, 성경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세상에서의 효도사상은 부모님이 날 낳으시고 기르셨기에 그 보답으로 공경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 있는 첫 계명이므로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여 부모를 공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희 부모", 그리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아무 수식어가 없습니다. 그냥 너희 부모, 네 아버지와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이런 부모에겐 공경하고 저런 부모는 공경하지 말라는 이런 전제가 없습니다. 이런 선하고 좋은 부모는 공경하고 저런 악하고 모진 부모는 공경하지 말라는 그런 구별이나 조건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조건 공경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공경하고, 부모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공경하지 말아라. 부모가 인격적으로 훌륭하면 공경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라. 부모가 존경할 만하면 공경하고, 존경할 가치도 없는 자면 공경하지 말아라.' 이게 아닙니다. 그런 조건이나 구별이나 전제가 없어요. 그냥 네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우리의 부모가 예수를 믿던 안 믿던, 인격적으로 존경받을 만하든 안 하든 거기에 관계없이 자기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그런 말을 듣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하면, "아이고 목사님, 존경할 만하고, 공경할 만한 부모여야 공경해 주지요."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 어떻게 저런 무식한 부모를 받들어 섬깁니까?" "인격적으로 나보다 못한데 어떻게 저런 부모를 공경합니까?"라고들 합니다.
여러분, 부모가 아무리 나보다 못하고 어리석고 무식하다고 해도 부모는 부모입니다.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내 부모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나의 부모로 선택하여 맞이한다고 해서 본래의 그 부모가 나의 부모가 아닙니까? 여러분, 부모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운명적 관계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은 나의 부모가 어떤 부모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공경하라 명령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순종하라"(1절) 하십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안에서, 곧 주님이 인정하시고 원하시는 그 뜻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심청이와 같이 자기 몸을 팔아 아버지를 봉양한다든가, 주일을 범해 가면서 성묘를 한다든가, 부모의 시체 앞에서 무덤 앞에서 절하거나 제사 상을 차려 놓는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부모 공경이 아닙니다. 이것은 십계명 중 제l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이라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가증한 죄가 됩니다. 하물며 생명이 떠나간 시체 앞에서 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2.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일까요?
①부모님을 사랑하고 소중한 분으로 섬겨야 합니다.
시골에 사는 한 어머니가 남편을 여윈 채 홀로 외아들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자신은 헐벗어도 아들에게는 좋은 옷을 입히려 했고, 자신은 굶어도 아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애썼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자라면서 점점 아버지를 닮아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머니의 기쁨이요 보람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마침내 서울로 학업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보고 싶어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러나 하숙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문 앞에서 한나절이나 기다립니다. 드디어 많은 학생들 틈에 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들은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문을 나섭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얼굴을 돌립니다. "저 사람 누구예요?" 여자친구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합니다. "우리 집 식모야." 남루하고 초라한 시골 아낙네를 내 어머니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피했다 합니다.
여러분, 이런 자녀의 마음에 어떻게 바른 효가 자리잡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이 자녀의 마음속에 어떻게 부모 공경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부모에 대해서 말하기가 부끄럽고, 이분이 나의 부모라고 사람들 앞에서 떳떳이 드러낼 수 없는 자녀는 그가 어떤 다른 좋은 것을 부모에게 준다 할지라도 효의 가장 기본을 버린 불효자식인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부모가 시장에서 배추장사를 하고,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고, 직장에서 경비의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의 집에서 식모의 일을 한다 할지라도 나의 부모는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분으로 알아 모셔야 하고 사람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 우리의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에게 있어 부모님이 진정 소중한 분이어야 합니다. 나의 아내를 위하고, 자식을 위하기 전에 나의 부모를 먼저 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친구보다도 부모는 더 소중한 분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 공경의 기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대 인간의 계명 중에서 첫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나의 부모를 더 사랑하고 더 소중히 섬길 줄 아는 자가 진정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인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치도 않고 소중히 여기지도 않으면서 부모를 여행 보내주고, 집을 사 드리고, 차를 사 드리고 한다고 해도 그게 무슨 효도가 되겠습니까?
②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공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4:1)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정에도 권위자를 주시고, 국가에도 다스리는 권세자를 주셨고, 교회에서도 다스리는 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사람에게 위임해 맡겨 주셨기 때문에 그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그 권위를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서 볼 때 부모님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대표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 위에 계신 분이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죄가 되지 않는 한 주안에서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린 시절 순종하여 부모님을 받드셨습니다.
③형제간에 우애 있고, 부부간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어쨌거나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 하십니다. 형제간에 싸우고 부부간에 사랑이 없다면 무슨 효도가 되겠습니까? 아무리 맛있는 걸 사 드리고 좋은 옷을 사 드리고 보약을 해 드려도 서로 싸우고 화목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마음은 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언제나 "너희들이 우애 있고 사랑하고 잘 사는 것이 내 소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부부간에는 사랑이 있어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이것이 부모 공경인 것입니다.
④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고로 "뭐니뭐니 해도 Money(머니)가 최고!"입니다. 돈이 있어야 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지 않습니다. 용돈을 드리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서 부모님이 초라해 지는 겁니다. 어떤 조사 기관에서 어버이날에 부모님이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조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1위가 돈 10만원이었습니다. 2위가 보약이고, 3위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따뜻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1위가 돈이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사고 싶은 것이 있는 법입니다. 노인들도 직접 잡수시고 싶은 것을 사먹고, 원하는 옷도 골라서 사 입고, 친구들끼리 어디 놀이도 가고 싶은 겁니다. 또 며느리나 손자들에게 용돈도 주면서 인심도 부리고 싶거든요. 그래서 용돈이 필요합니다.
⑤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의 얼굴을 빛내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의 얼굴에 빛을 낼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자식으로써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삶을 살 때 그것이 부모님의 얼굴에 빛을 내는 것입니다. 자녀가 주일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공경하고 하나님께 사랑과 복을 받는 그런 삶을 살면 부모의 마음이 편안하고 부모의 얼굴에 빛이 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부모님의 얼굴을 빛내드리는 것은 바로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식이 이웃에게 칭찬 받고 살 때에 부모님의 얼굴에 빛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6절에는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식 참 잘 두었습니다. 참 훌륭한 자식입니다.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라는 칭찬을 들을 때 부모님의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또 자녀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을 세워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런 위치에 서게 되면 부모로써 큰 영광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자식이 잘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입니다.
⑥부모님을 용서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에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자녀에게 섭섭한 일들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부모로써는 자식이 잘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러나 자식들이 볼 때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섭섭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부모가 교육을 시켜주지 못했다던가, 원하는 대로 먹이고 입혀주지도 못했다든지, 여러 가지 면에서 부모에 대해 섭섭한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평생에 한으로 남아서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원망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라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나의 잘못도 용서해 줘야 되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부모의 죄도 용서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일이요, 효를 다하고 공경을 다하는 것입니다.
⑦살아 생전에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꼴불견은 부모님이 죽고 나서 제사 잘 지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 생전에 하는 것입니다. 시부모가 죽도록 밉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공경해야 합니다. 세상 떠난 부모님은 절대로 다시 모실 수 없습니다. 제사로도 모실 수 없고 굿을 해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불효자는 부모가 죽은 후에 아쉽기만 하는 것입니다.
⑧가장 큰 공경은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께 아무리 좋은 옷을 사드리고 좋은 집을 지어드리며 아무리 좋은 보약을 지어 드린다 할지라도 나중에 부모님이 죽은 후 그 영혼이 영원한 지옥에 빠져 버리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여러분!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뜨거운 불길과 지독한 연기가 영원히 타오르는 곳입니다. 지옥은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피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 고통과 저주는 끝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그곳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그러므로 아직도 부모님이 예수 믿지 않는 분들은 빨리 전도하세요. 빨리 천국에 가시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다시는 사망과 고통과 저주와 눈물이 없는 곳, 저 영원한 영생의 나라로 가시도록 전도해 드리는 것, 그것이 최고의 부모 공경인 줄 믿습니다.
3. 그러면 이제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약속된 복이 무엇입니까?
2절 후반에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약속이 있다는 것은 보상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①먼저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나와 있는 복입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중요한 것은 네가 잘 되리라는 것과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이 복을 두 가지로 분리시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잘 되어도 일찍 죽는다면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반대로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불행하다면 그게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수지다욕"이라는 말이 있지요. '오래 살면 욕이 많다.' 무조건 장수한다고 해서 그게 복이 아닙니다.
진짜 복은 오래 살되, 잘 되는 복을 아울러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 되기도 하면서 장수해야 참 복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잖아요? 오늘 본문의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둘을 분리시켜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겐 모든 것이 잘 되는 복과 아울러 장수의 복도 함께 주어집니다. 형통과 장수, 이 얼마나 좋은 복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여러분, 부모를 잘 공경함으로 이 복된 약속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부모가 안 계신 분은 우리의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잘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땅히 공경 받아야 될 사람을 잘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람을 잘 공경하는 자에게도 똑같은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네가 땅에서 장수하리라.
②존귀하게 됩니다.
잠언 1장 8-9절에 보면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 부모의 훈계를 잘 듣고 그 다음에 어머니의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 반드시 놀라운 복이 오는데, 어떤 복이냐 하면 '네 머리의 관'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벼슬한 사람, 높은 사람이 씁니다.
그리고 '네 목의 금사슬이라' 했습니다. 목에다 금사슬을 걸고 다니는 것은 아무나 걸고 다니지 않습니다. 옛날 솔로몬 시대에는 귀인들이 금사슬을 걸고 다녔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훈계를 잘 공경하는 사람은 결국 그 지위가 높아지고 사람들로부터 존귀함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자녀가 아무리 잘 되어도 그 이웃이 뭐라고 합니까? 저런 못된 사람, 불효자, 배은망덕한 사람, 짐승만도 못한 사람, 이런 단어가 따라 다니지요. 사람들 앞에서 존귀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를 잘 하는 자녀는 어디를 가도 대접받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함으로 모든 일이 잘되고 장수하며, 존귀와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