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기적을 부르는 4대 요인

공 상희 2012. 3. 8. 18:33

기적을 부르는 4대 요인

5:25-34

 

오늘날은 능력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성도들도 능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삶이란, 초차연적인 기적을 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과 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전혀 개념이 다릅니다. 사실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적의 주인공처럼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적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려는 목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적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위엄을 알려줍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려는 목적입니다. 즉 치유의 주 목적은 육신의 건강 유지가 아니라 육신의 치유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기적이 필요하지만, 그 기적의 목적이 세상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갑자기 떼돈을 버는 기적, 육신의 병만을 고치는 기적, 성공을 위해 점을 쳐주는 기적들보다, 정말 필요한 기적은, 사람이 변화되는 기적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녹아지고, 고집불통이 온유해지고, 교만한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고, 미운 사람도 사랑하게 되는 전인적인 기적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열두 해를 혈루증 앓던 여인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혈루증은 고통스런 질병이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유사한 질병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결국 이 여인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여인처럼 우리도 마음의 혈루증을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런 치유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강렬한 소원이 필요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이 여인이 삶에 대한 줄기찬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여인은 열 두 해 동안 불치병으로 고난을 당하면서 치료를 위해 애썼지만 가산만 탕진하고 병은 더 중해졌습니다. 종교도 그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외면하고 ,나환자처럼 격리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과 한 상에 둘러앉아 함께 있을 수 있는 행복마저 빼앗겼습니다.

 

이 정도만 되면 웬만한 사람은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런 마음의 소원 때문에 이 여인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매사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예배도 항상 하던 대로 형식적으로 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기도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강한 소원을 가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소원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원은 축복의 기초입니다. 소원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면 보통 이상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템플 대학교를 세운 러셀 콘웰 박사가 백만장자 4043명을 조사했는데 그 중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69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특징을 조사해 보았는데 3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둘째, 그 목표를 향한 불같은 열정이 있었고, 셋째, 그 목표를 향해 나갈 때 어려움을 당해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굳은 결의와 기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강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과 산업과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적극적인 소원과 뚜렷한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시편 8110절에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비극적인 인생이라도 간절한 마음과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복된 귀가 필요 합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소문입니까?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문도 있었고, 나쁜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어떤 분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듣는 것에 야릇한 쾌감을 느낍니다.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복되고 좋은 소식을 듣는 복된 귀가 필요 합니다.

흔히 남자는 눈으로 짓는 범죄가 많고, 여자는 입으로 짓는 범죄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과 입의 범죄 이상으로, 귀로도 짓는 범죄가 많습니다. 우리는 나쁜 소식과 추한 소식을 듣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항상 나쁜 소문보다, 좋은 소문을 잘 들을 줄 아는 복된 귀를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열린 귀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일 아쉬운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할 때 조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품에 있는 것이 너무 안락하고 좋아서, 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조는 것은 잠을 안자고, 열심히 일해서 땀을 많이 흘렸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조는 것이 신앙이 나쁜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을 때 발을 떠는 것, 딱딱 소리를 내며 손톱을 깎는 것, 핸드폰을 받고 말하는 것,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 마음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등은 우리가 충분히 안할 수 있는 태도이기에 그런 태도는 삼가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씀을 듣는 사람이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순종이 없으면 축복도 없기 때문에 순종이 없는 성도들을 보면 강요할 수도 없고 참 안타깝습니다.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귀는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을 가려서 듣기를 훈련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듣는 귀가 되어야 축복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이 필요 합니다,

본문의 여인은 주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왜 주님의 옷을 잡았습니까? 본문 28절 말씀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 여인에게는 주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주님 팔을 붙들고 늘어지고,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고,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 품에 뛰어 들어가 주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려야 더 치유의 역사가 나타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없어도 그녀는 내가 주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치유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향해 몰려왔고, 더 나아가 주님을 둘러싸 밀고, 당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접촉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을 가진 이 여인에게만 나타났습니다.

그 말은 접근보다 접촉이 더 중요하고, 접촉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예배 중에 환상을 보고, 입신을 하고, 영적 체험을 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 같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막연히 잘 될 것을 희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본문의 여인은 막연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낫겠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이 그녀의 생애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절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4. 결단과 실천이 필요 합니다,

본문의 여인은 믿음을 가지고 멀리서 예수님만 쳐다보지 않고, 예수님께 가까이 갔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처럼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순간, 열두 해 동안 앓던 혈루증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죽음도 두렵지 않은 태산 같은 믿음이 생기고, 엄청난 헌신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기회입니다. 이때 우리는 과감히 헌신을 다짐하고, 바로 실천해야 합니다. 결단과 헌신이 없이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여인이 붙잡은 주님의 옷자락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주님의 옷자락이 주님의 흔적임을 생각할 때, 주님의 옷자락은 영적으로 주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주님이 남기신 교회라는 옷자락을 잡고,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면, 절망은 반드시 희망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겸손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헌신하면 이 주님의 음성이 우리에게도 들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헌신이 없는 축복은 결코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선교와 구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나누고, 드리고, 헌신하는, 손길에, 진정한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여인이 치유의 기적을 이룬 것은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나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으로, 믿고 행동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오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믿음의 오용입니다. 어떤 사람은 낭비하면서 부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면서 건강할 것이라고 믿고, 운전을 험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운전대를 붙잡아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 입니다.

이런 믿음은 모험이고, 만용이고, 방종입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소득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지출을 관리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버는 것보다 더 사용하고, 너무 쉽게 카드를 긁으면서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나님이 살 길을 주시겠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적절한 소비는 필요하지만 절제 없는 소비와 사치는 절대 없어야 합니다.

 

록펠러는 가는 곳마다 저축10%, 십일조10%, 구제 10%를 하고 나머지 70%를 가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이 진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헌신과 절제로 무장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 능력 있는 삶이 주어질 것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이 기적 같은 삶을 살기 위해, 강렬한 소원이 불타올라야 하고, 복된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믿음으로, 결단하여 실천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모두 기적 같은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기적을 부르는 4대 요인

5:25-34

 

오늘날은 능력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성도들도 능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삶이란, 초차연적인 기적을 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과 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전혀 개념이 다릅니다. 사실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적의 주인공처럼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적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려는 목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적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위엄을 알려줍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려는 목적입니다. 즉 치유의 주 목적은 육신의 건강 유지가 아니라 육신의 치유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기적이 필요하지만, 그 기적의 목적이 세상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갑자기 떼돈을 버는 기적, 육신의 병만을 고치는 기적, 성공을 위해 점을 쳐주는 기적들보다, 정말 필요한 기적은, 사람이 변화되는 기적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녹아지고, 고집불통이 온유해지고, 교만한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고, 미운 사람도 사랑하게 되는 전인적인 기적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열두 해를 혈루증 앓던 여인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혈루증은 고통스런 질병이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유사한 질병이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결국 이 여인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여인처럼 우리도 마음의 혈루증을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런 치유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강렬한 소원이 필요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이 여인이 삶에 대한 줄기찬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여인은 열 두 해 동안 불치병으로 고난을 당하면서 치료를 위해 애썼지만 가산만 탕진하고 병은 더 중해졌습니다. 종교도 그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외면하고 ,나환자처럼 격리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과 한 상에 둘러앉아 함께 있을 수 있는 행복마저 빼앗겼습니다.

 

이 정도만 되면 웬만한 사람은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런 마음의 소원 때문에 이 여인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매사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예배도 항상 하던 대로 형식적으로 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기도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강한 소원을 가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소원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원은 축복의 기초입니다. 소원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면 보통 이상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템플 대학교를 세운 러셀 콘웰 박사가 백만장자 4043명을 조사했는데 그 중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69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특징을 조사해 보았는데 3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둘째, 그 목표를 향한 불같은 열정이 있었고, 셋째, 그 목표를 향해 나갈 때 어려움을 당해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굳은 결의와 기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강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과 산업과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적극적인 소원과 뚜렷한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시편 8110절에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비극적인 인생이라도 간절한 마음과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복된 귀가 필요 합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소문입니까?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문도 있었고, 나쁜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어떤 분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듣는 것에 야릇한 쾌감을 느낍니다.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복되고 좋은 소식을 듣는 복된 귀가 필요 합니다.

흔히 남자는 눈으로 짓는 범죄가 많고, 여자는 입으로 짓는 범죄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과 입의 범죄 이상으로, 귀로도 짓는 범죄가 많습니다. 우리는 나쁜 소식과 추한 소식을 듣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항상 나쁜 소문보다, 좋은 소문을 잘 들을 줄 아는 복된 귀를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열린 귀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일 아쉬운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할 때 조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품에 있는 것이 너무 안락하고 좋아서, 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조는 것은 잠을 안자고, 열심히 일해서 땀을 많이 흘렸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조는 것이 신앙이 나쁜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을 때 발을 떠는 것, 딱딱 소리를 내며 손톱을 깎는 것, 핸드폰을 받고 말하는 것,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 마음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등은 우리가 충분히 안할 수 있는 태도이기에 그런 태도는 삼가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씀을 듣는 사람이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순종이 없으면 축복도 없기 때문에 순종이 없는 성도들을 보면 강요할 수도 없고 참 안타깝습니다.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귀는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을 가려서 듣기를 훈련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듣는 귀가 되어야 축복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이 필요 합니다,

본문의 여인은 주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왜 주님의 옷을 잡았습니까? 본문 28절 말씀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 여인에게는 주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주님 팔을 붙들고 늘어지고,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고,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 품에 뛰어 들어가 주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려야 더 치유의 역사가 나타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없어도 그녀는 내가 주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치유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향해 몰려왔고, 더 나아가 주님을 둘러싸 밀고, 당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접촉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을 가진 이 여인에게만 나타났습니다.

그 말은 접근보다 접촉이 더 중요하고, 접촉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예배 중에 환상을 보고, 입신을 하고, 영적 체험을 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 같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막연히 잘 될 것을 희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본문의 여인은 막연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낫겠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이 그녀의 생애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절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4. 결단과 실천이 필요 합니다,

본문의 여인은 믿음을 가지고 멀리서 예수님만 쳐다보지 않고, 예수님께 가까이 갔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처럼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순간, 열두 해 동안 앓던 혈루증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죽음도 두렵지 않은 태산 같은 믿음이 생기고, 엄청난 헌신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기회입니다. 이때 우리는 과감히 헌신을 다짐하고, 바로 실천해야 합니다. 결단과 헌신이 없이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여인이 붙잡은 주님의 옷자락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주님의 옷자락이 주님의 흔적임을 생각할 때, 주님의 옷자락은 영적으로 주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주님이 남기신 교회라는 옷자락을 잡고,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면, 절망은 반드시 희망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겸손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헌신하면 이 주님의 음성이 우리에게도 들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헌신이 없는 축복은 결코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선교와 구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나누고, 드리고, 헌신하는, 손길에, 진정한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여인이 치유의 기적을 이룬 것은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나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으로, 믿고 행동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오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믿음의 오용입니다. 어떤 사람은 낭비하면서 부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면서 건강할 것이라고 믿고, 운전을 험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운전대를 붙잡아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 입니다.

이런 믿음은 모험이고, 만용이고, 방종입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소득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지출을 관리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버는 것보다 더 사용하고, 너무 쉽게 카드를 긁으면서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나님이 살 길을 주시겠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적절한 소비는 필요하지만 절제 없는 소비와 사치는 절대 없어야 합니다.

 

록펠러는 가는 곳마다 저축10%, 십일조10%, 구제 10%를 하고 나머지 70%를 가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이 진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헌신과 절제로 무장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 능력 있는 삶이 주어질 것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이 기적 같은 삶을 살기 위해, 강렬한 소원이 불타올라야 하고, 복된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믿음으로, 결단하여 실천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모두 기적 같은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