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치료 받는 조건(마 8:5-13)
은혜로 치료 받는 조건(마 8:5-13)
이 시간에 “은혜로 치료받는 조건“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고, 용서받고, 치료받고, 해결 받고, 축복받고,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공적인 예배 자 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복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우리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 받고,영과 육의 저주가 치료되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가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낙비가 쏟아져도, 그릇을 준비해야 빗물을 받을 수 있듯이, 은혜도 마찬가지로 받기에 합당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저는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을 통해서 ‘은혜로 치료받는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치료의은혜 받는 조건은.
1, 긍휼히 여기는 마음 입니다.
본문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간구합니다.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볼 때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당시 로마풍습에 종은 노예를 말합니다. 노예는 법적으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으며, 그 생사가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노예가 노쇠하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면, 주인에게 짐이 되므로 헌신짝처럼 죄책감 없이 내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중풍 병든 노예를 짐으로 여기지 않고, 한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백부장은 병든 하인을 긍휼히 여기고 병을 고쳐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5:7)에 말씀하시기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려움을 만난 사람을 동정하고 긍휼히 여길 때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약2:13절에도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긍휼은 아픈 상처를 치료하고, 싸매어 주어 심판도 면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으셨다면 지금 우리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나와 여러분은 우리의 지은 죄의 형벌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용서와 치료의 은혜를 받기 원하시거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예수 앞에 나올 때 입니다.
이 백부장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참전 경험이 풍부하고, 부하를 다스릴 통솔력이 있고,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중에서 임명했습니다. 따라서 백부장은 로마군대를 지탱하는 기간 장교였습니다. 더구나 그는 식민지주둔군의 장교입니다. 얼마든지 자기를 과시하고 식민지 백성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깔보기는커녕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을 존중해서 회당을 지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식민지의 가난한 목수였던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주”라고 불렀습니다. 이 백부장은 나이로 보아도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예수님보다 많았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그가 더 높았습니다. 그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있었고, 재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아와 고개를 숙이고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고쳐주시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백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면 중풍 병에 걸린 그의 하인이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겸손히 예수님 앞에 나아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료의은혜 받기 원하는 사람은 이 백부장처럼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중풍 병에 걸린 자기의 하인을 고쳐달라고 간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시고 곧바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그 당시의 종교상황에서 볼 때는 파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은 부정한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편견을 무시하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 치료의 은혜를 받습니다.
3, 간절히 간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간구했습니다. 비록 직접 자기 하인을 고쳐달라고 하지 않고. 다만 그 하인의 딱한 형편을 말씀드렸지만, 그의 말 속에는 자기 하인을 고쳐주시기를 원하는 그의 간절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아니,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그 자체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 주시면 좋고, 주지 않으시면 할 수 없지, 그래서는 은혜 받지 못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고 간청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보기에 딱했던지 예수님께 와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거들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도 여자가 와서 예수님께 절하며 말하기를 “주여 저를 도우소서.”하고 간구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냉담하게 거절 하십니다. 얼마나 모욕적인 대접입니까? 그렇지만 이 여자는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대답하기를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이 말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셨고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의 요청을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대방이 이방 여자였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가나안 여자의 진심을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가나안 여자의 간구함에 예수님께서는 감동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간절한 간구를 보시기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해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건성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대한 갈망이 없기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아시면서 왜 구하기 전에 미리미리 주시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그 편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행하시든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행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간절히 구하지 않았는데도 어려운 일이 척척 해결된다면 미련한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지 알지 못하고 우리 자신이 잘해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할 것입니다. 그 결과, 자만하게 되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에서 떠나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구해서 응답을 받게 되면 받은바 은혜가 귀한 줄을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실감하게 되어 더욱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 입니다.
4, 믿음 입니다.
이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예수님을 이방인인 자기의 집에 감히 모실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고 한 것입니다.
이 백부장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깜짝 놀라셨습니다. 어떻게 이방인의 입에서 이처럼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기사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백부장은 유대인들이 죄인시하는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만나보지 못한 큰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주님으로 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한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가버나움 거리에 서 계신 예수님의 한 말씀에 백부장의 집안에 누워 있던 하인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던 주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한 능력과 권세로써 우리 가운데 와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은혜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이 무기력한 것은 열정 있는 믿음이 부족한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고, 1,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2,예수님을 우리의 창조자, 구원자, 통치자로 인정하고 나오고, 3,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며, 4, 큰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게 될 것이며,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영육간에 임한 가난의 저주도, 질병의 저주도, 빚의 저주도, 죽음의 저주도, 치료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치료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